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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태평농법 이야기
경운기가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원래 관행농법에서는 씨앗을 뿌리기 전에 흙을 갈아엎어준다.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물이 잘 빠지게 하고, 씨앗이 뿌리내릴 자리를 마련해 주는 작업인데, 예전에는 소가 끄는 쟁기로 하던 작업을 이제는 경운기가 대신하고 있다.
경운기로 땅을 갈게 되면서 자생초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그 이유는 경운기로 갈아엎는 작업이 땅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자생초 씨앗을 흔들어서 싹 트기 좋은 위치에 갖다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자연에 경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히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흙 속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먹고 움직이고 배설하는 그 모든 작용들이 끊임없이 땅을 써레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로 놀랍고도 경이로운 깨달음이었다.
애초부터 우리 땅에 맞는 경운기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땅은 아예 갈아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화학비료가 땅심을 망쳐놓지 않은 건강한 논에서는 수천, 수만의 미생물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땅을 갈아엎고 있다. 인간이 손으로 써레질을 하는 것보다 더 부드럽게 물도 잘 빠지고, 충분한 산소가 흘러 다닐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써레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써레질이 알맞게 되어 있는 흙은 부드럽다. 식물의 뿌리가 제 편한 만큼 마음대로 뻗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흙 속의 공기에는 산소는 적고 이산화탄소의 양이 훨씬 많다. 흙 표면이 너무 굳어 있거나 경운이 촘촘하게 되면 이산화탄소가 밖으로 빠져나가지를 못해서 뿌리는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비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식물은 주어진 양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다. 당연히 남은 비료는 물속에 녹아나와 하천이나 호수, 지하수까지 오염시킨다.
오랫동안 관행 농법에 익숙해져 있던 이들은 마른논에 볍씨를 뿌린다는 원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지 않고, 심지어는 그렇게 재배한 논에서 자라는 건강한 벼를 보면서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만큼 이제까지 농사에 관한 한 고정 관념의 뿌리가 너무나 깊고 질기다는 얘기다. 이제는 그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먼저 작은 수조에 물을 담아서 벼를 밭 상태에서 재배해 보았다. 칠월에 한 번 수확을 했는데, 구월 말이 되니까 다시 30센티미터 정도 자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후 조건에서도 벼를 일 년에 두 번 수확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면서 한쪽에서는 수확한 짚을 꺾꽂이해 놓았더니, 다시 살아나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꺾꽂이를 해도 벼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매년 종자를 다시 사지 않아도 재파종이 가능하게 된다. 해마다 새로운 종자를 사기 위해서 우리 농민들이 소비하는 농자금이 만만치 않다.
또 한쪽 화분에 심은 밀은 구월 말인데도 이삭이 달려 있다. 이 시기에 밀 이삭이 맺혀 있는 것은 이 화분의 밀밖에 없을 것이다. 맥류는 가을에 파종해서 이듬해 초여름에 수확한다는 게 현재 농사법의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이 실험 밭에서 옹기종기 자라고 있는 밀 이삭은 이 케케묵은 고정관념을 깨고 싹을 틔웠다.
관행 농법에서는 키가 큰 미루나무 밑에서는 농사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옛 농부들의 경험에 비추어 보거나, 내가 그동안 실험해 본 결과로도 논가에 큰 미루나무가 있으면 오히려 벼가 실하게 열매를 맺는 데 도움이 된다. 왜일까?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에도 큰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이내 어디선가 산들거리는 미풍이 목덜미를 간질이며 땀을 식혀준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논가의 큰 나무는 벼들이 자라기 좋을 만큼 적당한 바람을 불러온다. 실험 밭에도 적당한 크기의 미루나무를 심고 그 밑에 벼와 옥수수를 심었다. 이 또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해서 해가 뜨는 동쪽과 해가 지는 서쪽에 옥수수를 심었다. 똑같이 심은 옥수수지만 건강하게 자란 것은 양쪽이 같아도 동쪽에 있는 옥수수는 서쪽에 심은 옥수수보다 일주일 정도 먼저 수확을 했다. 서쪽에 있는 옥수수는 동쪽 옥수수에 비해 수확은 며칠 늦었지만 알의 수는 더 많았다. 이로써 아침에 뜨는 햇빛을 받는 작물과 저녁에 지는 햇빛을 받는 작물은 생장에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땅을 구입할 때도 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의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생태적 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생이다. 공생의 원리를 잘 이용하면 몇 배나 풍성하게 수확하면서 무공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버드나무와 포도를 함께 키우면 철사나 다른 지지대로 넝쿨을 잡아주지 않아도 포도가 자연스럽게 버드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서로 공생하면서 해충도 줄어들고 건강하게 자란다.
실험 밭에서는 포도뿐만이 아니라 가지, 고추, 벼가 함께 자라도록 했다. 여러 작물을 공생시키면서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짝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들이 함께 자라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실험 밭의 가장 안쪽에는 무궁화를 심었다.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아서 다른 식물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루나무와 함께 공생을 시키면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무궁화의 진딧물을 잡아먹기 위해서 천적들이 미루나무에 서식하기 때문에, 이 천적들이 고추밭의 해충까지 잡아먹으므로 따로 농약을 쳐줄 필요가 없다.
농약도 치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순리에만 맡긴 논에는 명주실처럼 얼기설기 쳐놓은 거미줄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농약을 뿌린 논에서는 절대로 거미가 살 수 없다. 거미줄은 이 논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표시인 셈이다. 덕분에 다른 논에서는 벼멸구 피해가 극심해서 뿌리에서 줄기까지 온통 갉아먹었을 때도 내 논만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른 따에 뿌려져 자신들의 자리를 침범하고 들어오는 자생초들과 경쟁하며 자란 논의 벼들은 폭우에도 아랑곳없이 더욱 꼿꼿하게 머리를 세운다. 가뭄이 심해지면 다른 논에서는 물을 끌어다 대느라 야단이지만, 내 논의 벼는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며 강하게 자란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힘이고, 무한한 복원 능력이다.
이웃들은 내가 피종하고 난 이후에는 논에 물도 대지 않고 바쁜 농번기에도 슬슬 뒷짐 지고 논을 둘러본다고 해서 ‘참 태평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태적 농법을 태평농법이라고 이름 짓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이런 점도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논에서는 천적과 해충이, 인간이 주식으로 삼는 풀과 인간이 주식으로 하지 않는 풀이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오늘날의 땅은 인위적으로 토양을 교란시켜 식물이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자랄 수 없게 변해버렸다. 이미 토양 유실이 일어나는 흙이다 보니 화학비료 없이는 식물이 자라지 않고, 필요한 성분 외의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오히려 생흙을 보충해줘야 할 만큼 인산성분이나 화학염이 넘친다.
그런 땅은 풍화작용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데도 해마다 땅을 갈고 있다. 자연의 원리만 이해하면 노동력, 시간,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건만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트랙터로 논을 깊이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흡사 야채 믹서를 돌리다가 딱 꺼버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믹서의 회전이 멈추면 정신없이 돌아가던 찌꺼기가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렇듯 트랙터로 논을 갈고 난 뒤 논밭의 흙도 밑으로 무겁게 가라앉게 되어 있다. 표면에서 숨 쉬던 흙이 밑으로 한꺼번에 가라앉고 그 위로는 흙보다 가벼운 자생초 씨앗들이 덩그럽게 올라앉는 것이다.
한편 조상들의 쟁기질에는 또 다른 지혜가 담겨 있다. 지금과 달리 써레질 깊이는 아무리 깊어도 고작 10센티미터 안쪽이었다. 위로 올라온 흙과 마찬가지로 밑의 갈리지 않은 흙 속에도 여전히 산소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었고 직배수가 잘 되는 흙이었다. 위로 올라온 흙 속에는 벼 그루터기가 남아 있고 밑에 있는 흙 속에는 짚이 남아 있을 만큼 얕게 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토양이 조금 더 깊이 갈아야 하는 조건이라면 조상들은 다른 형태의 쟁기를 만들어서 발달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써레질한 땅에는 지금처럼 자생초 씨앗이 일제히 위쪽으로 올라앉을 도리가 없었다. 그 논에 모를 심을 때 논 주인은 못줄을 잡고 서서 ‘모 좀 얕게, 얕게 심어주소!’ 하고 한곁같이 노래했다.
그러니 아무리 깊이 심어도 손가락 하나 길이를 넘지 않았다. 모를 심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부드럽게 갈아놓은 흙이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모 뿌리는 점점 더 위로 올라와 얕아진다. 자연히 뿌리가 산소를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에 힘입어 직근이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한편 자생초는 저 밑에 가라앉아 있으므로 빛이 차단되어 웬만하면 고개를 내밀지 못한다.
그런데 깊숙이 갈아엎은 논에는 모를 아무리 얕게 심어놓아도 며칠만 지나면 무거운 흙 때문에 모가 위로 올라앉기는커녕 더 깊이 파묻히고 만다. 경운으로 흙이 죽처럼 부드러워져 있기 때문인데, 뿌리가 산소를 호흡하기 힘든 조건이 되는 것이다. 기계로 경운 정지할 경우 생육이 지연되고 포기분열이 억제되며 마디도 기형적으로 열 마디 이내로 형성된다. 당연히 뿌리가 약해지고 따라서 줄기도 낟알도 약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비료를 줘야 한다.
가을이면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 들로 나가서 제일 먼저 이슬을 관찰한다. 이슬이 얼마나 내렸나 살펴보면 그날의 기온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슬이 많이 내린 날은 대개 따뜻하게 마련이다. 다음에는 이슬이 맺힌 벼 잎의 모양을 살핀다. 잎이 곧바로 서 있으면 아주 건강한 상태다. 그런데 이슬 무게 때문에 잎이 구부러진 쪽은 세포가 크게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연약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람이 비만하면 건강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윽고 해가 솟아오르면 곤충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녀석은 거미다. 거미가 식물 잎 끝에 올라가서 꽁무니를 하늘로 치켜들고 있으면 논에 해로운 벌레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이 곳에는 이제 더 이상 먹이가 없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단풍이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다 이윽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수확 차비에 나선다. 직접 설계하여 만든 수확기 겸 파종기를 몰고 오전 열한 시쯤 느긋하게 들판으로 나간다. 그 시간이면 새벽에 내렸던 이슬이며 서리도 말끔히 걷히고 없다.
꽉 차게 여문 벼를 거둬들이는 동시에 파종한 보리나 밀 씨앗 위로는 방금 벼를 탈곡하고 남은 볏짚이 고루 덮인다. 그렇게 오후 네시 무렵까지 작업을 마치면 내 한 해 농사 준비도 끝난 셈이다.
땅을 갈지 않고 씨앗을 흙으로 덮지도 않는 태평농법에서는 보리는 결코 말라죽을 염려가 없다. 흙 위에서부터 뿌리를 아래로 깊이 내리기 때문에 자생력으로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이제 기후 덕분이 아니라 토양이 살아나서 우리 땅 어디에서나 보리밟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
자연농법에서 가장 좋은 거름은 그 논에서 수확하고 남은 부산물을 그대로 썩도록 남겨둔 것이다. 논에 자연 비료가 되는 녹비 식물이 자라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그 논은 벼가 잘되는 옥토가 될 수밖에 없다. 어디 먼 산 속에서 부엽토를 긁어오거나 퇴비장에서 일부러 쌓아놓고 썩힌 거름을 가져다 넣으면 토양을 기름지게 만드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원래 땅에 있던 미생물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운영은 콩과 식물로서 뿌리에는 박테리아가 많고 잎에는 질소가 풍부해서 예로부터 자운영이 흐드러진 논에는 따로 거름을 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환경을 보존하면서 농사를 지었던 선조들의 전통농법에서 자운영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생초였다.
더구나 자운영은 워낙 촘촘한 군락을 형성하기 때문에 다른 자생초들이 고개를 들이밀 틈을 주지 않고 자연 소멸하도록 만드는 제초제 역할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운영은 우리 논밭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풀이 되었다. 원인은 예전보다 이른 시기에 모내기가 이루어진다는 것과 독성이 강한 화학 제초제 때문이다. 씨를 남기기도 전에 논을 갈아엎고 모내기를 해버린 다음, 그 위에 제초제를 뿌리니 자운영은 씨가 말라버리고 서서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무궁화는 농사짓는 데 아주 중요한 나무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며 농사를 짓던 우리 선조들은 무궁화와 미루나무를 이용해서 슬기롭게 농사를 지었다. 이 나무들이 논가에서 사라지면서 옛 농법도 잊혀져갔고, 농토가 온갖 화학물질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무궁화를 미루나무와 짝을 이루어 논가에 심어 놓으면, 해충을 잡어먹는 천적들에게 서식처와 먹이를 제공해 주었다. 미루나무는 육식충인 무당벌레의 서식처다. 무당벌레 유충은 미루나무 잎을 먹고 자란다. 무당벌레가 완전한 성충이 되려면 육식을 해야 하는데, 초봄까지는 움직임이 빠른 벌레를 잡아먹을 만큼 성장하지 못한다.
무궁화의 진딧물은 봄에 가장 왕성하게 번식한다. 무당벌레는 무궁화나무로 건너가서 진딧물로 포식하면서 성충이 되고, 미루나무에 기생하면서 논밭에 있는 해충들을 잡아먹는다.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논밭에 해충이 없어지는 것이다. 월동하는 성충들은 논에 심어놓은 보리나 밀의 진딧물도 잡아먹는다. 이것이 바로 천적을 이용한 농사법이다.
옛 농부들은 미루나무 잎이 다 피면 벼 모판을 할 시기로 알고 미루나무 곁가지를 잘라주어 곧게 자라도록 했다. 잘라낸 미루나무 가지는 잘게 썰어 논에 넣고 벼 모판으로 사용했다.
진딧물이 많아서 무궁화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미루나무와 함께 있으면 따로 약을 치지 않아도 진딧물을 물리칠 수 있다.
무궁화도 잘만 가꾸면 아름드리나무로 키울 수 있다. 묘포장에 무궁화 씨를 촘촘하게 심는 밀실 파종을 한다. 그렇게 삼사 년을 키워 2미터 정도가 되면 나무는 서로가 살기 위해서 곁가지를 퇴화시킨다. 그런 이후에 옮겨 심으면 곧게 자라서 벚꽃나무보다 훨씬 좋은 가로수가 된다.
오래 전부터 텃밭에서 깨달은 원리를 연구하면서 논에서는 삼모작, 밭에서는 육모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작부 체계가 가능할까? 서로 융합하고 어울리는 작물들로 돌려심기를 하면 된다. 가령 이렇다.
논에서는 시월 중순이면 다 자란 벼를 수확한다. 달력을 보고 농사를 짓는 게 아니었던 우리 선조들은 이 때가 수확 시기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모두가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것이다. 이 즈음이면 밤이 길어지고, 밤과 낮의 온도 차이가 10~12도 정도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수확의 시기라는 것을 경험으로 간파했던 것이다. 벼를 수확하면서 보리나 밀을 파종하는데, 약 한 달 뒷면 보리나 밀은 3엽이 나오고 그 상태로 이듬해 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봄까지는 거의 자라지 않고 오종종한 상태로 있다. 여기까지는 이모작이다.
보리나 밀이 낮게 서 있는 사이사이에 구월에 미리 모종을 만들어놓은 배추를 옮겨 심는다. 본답에 옮겨 심은 배추는 각종 미생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며 자라게 된다. 배춧잎은 하루에 한 장씩 만들어지는데 다 자란 배추는 평균 잎 수가 아흔 장 정도 된다. 십일월 중순이면 모판을 만들 때부터 시작해서 삼 개월 반이 되면서 아흔 장 정도의 잎을 가지게 된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십이월까지 배추는 그대로 고온과 저온을 접하면서 건강한 먹을거리로 자라난다. 이렇게 하면 삼모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자란 배추를 수확할 때는 뿌리는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남은 배추 뿌리는 미생물의 양분이 되어서 더욱 기름진 토양을 만들고 보리나 밀이 잘 자라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삼모작을 하게 되면 좁은 면적에서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고 토양도 윤기 있게 살아나서 더 좋다.
밭은 어떨까? 먼저 사월에 밭에 두벌감자를 심고, 이랑 사이에 두벌 콩을 심는다. 감자를 수확하고 나서는 그 자리에 고구마 순을 심고 콩이 심어진 곳에는 참깨 씨를 뿌린다. 콩을 수확하고 나면 이 밭은 고구마와 참깨 밭이 된다. 고구마와 참깨를 수확할 때쯤 해서 마늘을 심고 상추 씨를 산파하면 밭에서의 작부 체계가 맞아서 잘 자란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수확하지 않은 것, 즉 부산물은 밭에 그대로 두어서 다음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밑거름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얄궂게 땅이 준 것을 모조리 다 약탈하듯 가져가서 토양이 피폐해지도록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은 곧 자연을 농업의 동반자로 여기는 마음이다.
이렇게 돌려심기를 하는 작부 체계 속에서는 자생초가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생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육모작은 생각하며 할수록 과학적인 작부 체계라는 생각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심어놓은 작물이 시들시들하거나 가뭄으로 죽어가고 있는 듯이 보일 때, 과연 이 작물이 살아날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속잎을 관찰해서 힘이 있으면 살아날 것이고 없으면 죽어가는 것으로 다른 대책을 세워 주어야 한다. 이는 자연의 신호등이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남성들이 새벽부터 아침까지 발기가 되지 않으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쌀은 대부분 단닙종이다. 우리 토양과 기후에서 재배하기 적당하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어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종자다.
자연농법을 하면 한 사람이 재배할 수 있는 면적이 훨씬 늘어나기 때문에 자연히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자연농법으로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니 미심쩍은 수입 농산물보다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심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우리 농산물을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국산 농산물에 맞서 우리 농산물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농업 정책은 단순히 농업의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농민의 생존과 생활력을 함께 염둥 두어야 하는데, 섣부른 기업농 제도는 농민들의 생존 근거를 급속하게 빼앗아갈 우려가 있다. 문제는 기존 소농 구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농촌이 살려면 더욱 작은 구조, 작은 단위로 흩어져서 가족농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농업을 기업화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벌떼처럼 달려드는 이들이 도시의 농업 투기꾼들이다. 따라서 구조 개선의 방향은 도시 자본에게 농토를 빼앗길 수도 있는 기업농 제도가 아니라 직접 생산자인 농민들이 작은 단위로 흩어져서 다시 협업농으로 모이는 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십칠 일 만에 조기 출수한 벼와 그 뒤에 이십여 일 늦게 파종한 벼를 함께 수확한 이후로 무경운 직파로 농사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이듬해, 이번에는 실험적으로 구백 평의 논에 마른 종자를 뿌렸다. 그런데 수확 시기가 되자 논은 온갖 자생초로 뒤덮여서 그야말로 ‘풀농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수확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니 다음과 같았다. 첫째, 노지 상태에서 직파를 해서 습도를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아가 균일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둘째, 마른 땅에 뿌려진 볍씨를 표적으로 달려드는 새들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셋째, 무성하게 솟구치는 자생초를 제거하기 위한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이와 같은 결론으로 원인은 밝힐 수 있었지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비료도 돈 주고 사 쓰기 시작했다고, 너도 나도 그것 없으면 죽는 줄 안디냐. 풀이라는 것이 숨통만 막아놓으면 자연히 맥이 끊어지는 것인데... 도무지 요즘은 땅심이 시원찮아서 농사를 지어도 풀기가 없어야...”
노인은 오래 전부터 과수 농사를 지으면서 전혀 제초제를 쓰지 않고, 자생초 베기도 하지 안핬다고 한다. 논에서 베어낸 풀을 가져다 덮어주기만 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노인의 거친 두 손을 부여잡고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노인의 경험에 따르면 풀을 베어 덮으면 그 아래에는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자생초가 제거된다고 했다. 또한 부엽토가 만들어지면서 각종 미생물이나 천적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되고, 풀이 썩으면서 자연스럽게 유기물 비료가 공급되는 것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던 옛날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농사에 필요한 일손이 더 적었다. 천석, 만석 농사를 짓는 부농이라도 농사에 필요한 일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료하고 해야 일 년 내내 준비되어 있는 똥거름이나 자연의 부엽토를 활용했고, 자생초도 사람이 손으로 뽑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옛 농법에는 밭에서는 육모작, 논에서는 삼모작을 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작부 체계로 여겼다. 화학농법이 시작되면서 이 체계는 무너지고 무시되어 버렸는 데, 태평농법에서 이 작부 체계를 다시 되살렸다.
태평농법이란 경비와 노력을 적게 들이면서 효과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자연 영농 방법이다. 태평농법의 기본 줄기는 무경운 이모작 건답 산조 직파 재배농법에서 시작된다. 이를 기본으로 해서 시행하는 중요한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무경운은 절대 밭을 갈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손이나 기계의 힘을 빌려 갈아주지 않는 것일 뿐, 땅은 생물학적 경운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수도작이나 맥류의 뿌리에 의해서 흙 속에 산소가 잘 통하고 배수가 잘 되는 토질이 되며 지속적으로 유기물이 공급되고 있다.
둘째, 짚 피복과 제초 효과다. 씨앗 위에 짚을 피복함으로써 수확할 때 이미 나 있는 자생초는 두껍게 피복된 짚에 의해 빛이 차단되어 죽어버리고, 늦게 발아하는 자생초는 자생초 순이 작물 순보다 아주 가늘게 도장되므로 물대주기를 하면 맥류 짚이 썩으면서 볏짚의 남은 섬유질과 도장된 자생초가 녹아버린다.
셋째, 무시비다. 벼와 맥류의 짚이나 뿌리가 썩으면서 순환농법에 의한 토양 미생물의 왕성한 활동으로 유기질이 충분히 공급된다. 무경운 건답 직파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씨앗은 뿌리부터 먼저 나오는 정상적인 발아를 한다. 따라서 튼튼하게 자란 뿌리가 지속적으로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비료가 불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앞서 재배한 작물의 뿌리가 썩으면서 산소 공급이 잘 되고 피복된 짚에 의해 서서히 유기질 양분이 만들어진다. 동시에 토양을 죽이는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미생물의 왕성한 활동이 토양의 부엽토화를 빨리 일으키게 된다. 순보다 먼저 나온 뿌리가 이들 양분과 수분, 산소를 왕성하게 흡수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농약을 치지 않음으로 작물의 환경 적응성을 높인다. 천적과 적당한 자생초들과 경합하면서 자라는 작물들은 웬만한 외부 작용으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강함을 지니고 자란다. 병충해에도 혼자서 싸워 이길 만큼의 내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원칙은 관행농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지난 팔십 년대 초부터 시작된 벼 조기 이앙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점 중 벼가 냉해를 입거나 논에 벼물바구미 끝동매미충과 볏잎굴파리, 매미충 등과 같은 저온성 해충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알고 보면 무논에 일찍 모를 내다 심었기 때문이다.
논에 깊게 써레질하는 일 역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흙이 너무 부드러우면 배수가 잘 되지 않고 흙 속 산소의 흐름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마디풀과 자생초의 경우 써레질을 함으로써 오히려 번식이 왕성해지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태평농법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한 농사법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땅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제초작업도 하지 않는 것이 이 농법의 핵심이다. 즉 무경운 건답 이모작 직파하는 환경친화적인 농법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농법을 적용할 수 있는 작물은 미맥류다. 무경운 이모작 건답 직파 재배법으로 쌀과 보리, 밀 등을 수확과 동시에 파종할 수 있다. 이 농사를 위해서 무경운 산조 직파기라는 기계도 개발해서 영농에 직접 활용했다.
벼 파종 시기는 오월 중순에서 유월 중순이 알맞다. 밀과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에 맞춰 맥류 수확과 동시에 벼 파종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때 종자는 물에 담그지 않은 것을 사용하되 조생 소립종이 좋다. 굳이 땅을 갈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보리나 밀의 경우 뿌리에 의해서 흙이 자연적으로 부풀려지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또 공기 유입과 배수가 잘 되어 작물 생육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파종 후에는 자생초 제거를 위해서 짚으로 파종한 자리를 덮어준다. 이렇게 하면 수확 시 이미 자라던 자생초들도 짚에 의해서 빛이 차단되어 죽고, 뒤늦게 발아하는 자생초들도 맥류 짚과 함께 썩게 된다. 파종 후 삼심 일 정도가 지나면 논에 물을 대준다. 하지만 처음 일이 년까지는 발아 시기에 끝동매미충의 피해가 우려되므로 이에 주의한다.
직파한 벼는 분얼(식물의 땅속에 있는 마디에서 가지가 나옴)이 자연적으로 조절되고 쓰러지지도 않는다. 자생초로 인한 피해도 거의 없다. 오랫동안 쌀농사만 지을 경우에는 볏짚 섬유질 층이 형성되어 지속적인 무경운 재배가 불가능하지만, 맥류와 이모작으로 재배하면 맥류 짚이 썩을 때 볏짚의 섬유질까지 완전 분해되어 이차로 발아하는 어린 자생초마저 죽게 된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은 쌀농사지만, 수확량은 전국 평균 생산량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삭 하나에는 75~197개의 알곡이 달렸으며, 1제곱미터당 이삭 수는 543~587개였다.
550개 이상이면 풍년작에 속한다.
기존 농법과 태평농업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기존 농법은, 첫째, 인간을 ‘정’, 자연은 ‘부’로 하는 농법이다. 둘째, 수확량이 적고 생산비가 많이 든다. 셋째, 제초가 어렵다. 넷째, 한 사람이 넓은 면적을 영농하기 어렵다. 다섯째, 외국 기계에 맞춰서 하는 농법이다.
태평농법은, 첫째, 자연은 ‘정’으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니 당연히 ‘부’로 하는 농법이다. 둘째, 다수확 농법이며 생산비가 훨씬 적게 든다. 셋째, 제초 작업이 필요 없다. 넷째, 노동력이 아주 적게 든다. 다섯째, 농기계, 농약, 화학비료가 거의 필요치 않다. 여섯째, 생산비 노동력이 관행에 비해 육분의 일이면 충분하므로 한 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농지를 여섯 배로 늘려 경작할 수 있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즈음 또 하나의 농사를 준비한다. 벼를 수확하고 보리와 밀을 파종한 다음에는 밭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년 봄을 준비하는 채소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태평농법에서는 모든 농사가 가을부터 시작된다. 채소 농사도 마찬가지다.
먼저 우리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양념인 마늘을 심어야겠다. 아주 간단하다. 흙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핑계로 로터리를 칠 필요도 없다. 논과 마찬가지로 밭에서도 흙을 살리려면 그 기계부터 멀리하는 것이 좋다. 토양 살충제나 제초제니 비료니 모두 다 필요 없다. 어차피 아침마다 서리가 내리면서 자생초와 해충을 알아서 막아줄 테니까 말이다. 비닐 멀칭도 필요 없다. 추운 겨울이니 비닐로 마늘을 감싸서 따듯하게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마늘 처지에서 보면 그게 오히려 괴롭다. 첫째는 뿌리가 산소를 호흡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리니 괴롭고, 둘째는 따뜻한 곳을 찾아 모여드는 벌레들 때문에 괴롭다. 차라리 겨울 찬바람을 맞더라도 마음껏 숨 쉬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쪽이 훨신 편하다. 실제로 마늘은 흙 속에 뿌리 두 개만 내리면 영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도 잘 견딘다. 생장을 잠시 멈출 뿐이지 얼어 죽는 일은 없다.
선심을 쓰는 대신 마늘 심을 땅을 깨끗이 걷어내는 일만 하지 않으면 무척 좋아한다. 이전에 콩을 심었던 자리라면 남아 있는 공깍지나 콩대를 걷어내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뜻이다. 그것들을 의지하여 살아 나갈 미생물을 위해서 말이다.
마늘을 심을 때는 마늘쪽 한 배 반쯤 깊이로 구멍을 뚫어주고 그 자리에 마늘쪽을 넣는다. 그게 끝이다. 흙을 덮어줄 필요도 없다. 흙을 덮으면 산소가 부족해서 뿌리의 발육이 늦고 순만 올라오게 된다. 이렇게 하면 벌레가 들어갈 염려도 없다. 그냥 구멍 속에 넣어두기만 하면 마늘은 혼자서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보낼 것이다. 너무 추우면 얼어서 말랑말랑해지기도 할 테지만 죽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상태로 방치하면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이듬해 봄이 되면 비닐을 덮지 않았기 때문에 자생초가 비온 뒤 죽순 올라오듯 자랄 것이다. 마늘 밭이 아니라 온통 풀밭이 될 게 뻔하다. 그러나 마늘을 심고 상추 씨를 골고루 뿌려주면 그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 상추 씨가 바로 내년 봄 자생초를 막아줄 일꾼인 것이다. 겨울에 심은 상추밭에서는 자생초가 자라지 못한다. 넓은 잎으로 빛을 차단시켜 주기 때문이다. 마늘과 함께 뿌린 상추 씨가 떡잎을 내밀고 겨우내 조금씩 조금씩 자랄 것이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활짝 잎을 키운다. 자생초는 이제 막 순을 내밀 시기지만 상추 잎이 떡 버티고 있으니 그만 도리가 없어진다.
혹 마늘 대신 양파를 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는 방법은 마늘과 다르지 않다. 씨를 파종하는 모종을 심든 구멍만 뚫어 넣어주고 흙은 덮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추 씨 대신 시금치 씨를 뿌린다. 시금치가 하는 역할은 상추와 비슷하다. 다만 채소를 심을 때도 궁합을 맞춰주는 것이 좋다. 내 경험으로 보아 마늘은 상추와, 양파는 시금치와 함께 있을 때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논에서는 보리와 미리 자라나고 밭에서는 마늘과 상추, 혹은 양파와 시금치가 사이좋게 크는 동안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 마늘 수확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그 사이 상추는 잎만 뜯어서 먹고 줄기는 밭에 그대로 놓아두는 걸 잊지 말자. 상추 꽃대는 다음 작물이 자랄 때도 그늘을 드리워서 자생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해준다.
하지가 가까워지면 마늘을 수확한다. 대개는 호미나 기계로 캐지만 심을 때부터 흙과 미생물을 활발하게 살린 태평농사꾼의 밭에서는 손으로 뽑아도 전혀 힘들지 않을 만큼 흙이 부드럽다.
가볍게 마늘을 뽑아낸 자리에 이번에는 눈 단 감자를 심어보자. 마늘 뽑아낸 자리에 감자를 차례차례 놓기만 하면 된다. 다만 마늘을 심었던 자리에 그대로 다 심으면 너무 촘촘해지므로 30센티미터 띄엄띄엄 놓는다. 감자를 심지 않은 빈 자리가 아깝다면 그 곳에는 콩을 심는다. 겨울에 심었던 상추나 시금치가 꽃대를 높이 올려서 그늘을 드리워줄 테니 자생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감자 사이사이에 콩을 심는 데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감자 잎에는 벌레가 유난히 많다. 그런데 그 곁에 콩을 심어주면 벌레가 온통 콩잎으로 모여든다. 벌레에게 감자 잎 대신 콩잎을 내주는 것이다. 콩은 벌레가 뜯어먹든 황소가 뜯어먹든 잎을 많이 뜯길수록 많이 열린다. 자칫 벌레가 있다고 약을 쳐주면 콩을 열리지 않고 잎만 무성해질 수 있다. 이제 감자는 감자대로 크고 콩은 콩대로 잘 크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마늘이나 양파를 뽑아낸 자리에 감자 대신 고구마를 심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고구마만 심으면 또 너무 심심하다. 게다가 고구마란 녀석은 자외선에 약해 누군가 양산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감자에 콩이 어울린다면 고구마에는 참깨가 제격이다. 참깨는 키가 큰 작물이라 고구마에 내리쬐는 자외선을 충분히 막아준다. 밑에서는 고구마 순이 파릇파릇 건강하게 자라고 위에서는 고소한 참깨가 너울너울 춤을 추니 그 또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알뿌리가 토실토실해지고 콩이며 참깨가 옹골지게 익을 때까지는 밭에 나갈 일이 없다. 농약 칠 필요도 없고, 비료를 줄 필요도 없고, 김맬 일도 없으니 그저 태평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마침내 때가 되면 밭으로 가서 참깨와 콩부터 걷어온다. 나중에 고구마나 감자를 캐면 넝쿨은 확확 걷어내되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걸 양분 삼아 살아가면서 농사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농사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구마나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이번에는 무나 배추를 심는다. 그러고는 김장철이 될 때까지 밭에는 또 사람 손길이 필요 없어진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고 으스스하게 찬 기운이 감돌면 김장 채소를 거둬들이면 된다. 무, 배추가 어느 정도 자라났을 때나 또는 수확할 때 마늘이나 양파가 자리 잡는다. 대신 상추와 시금치는 일삼아 심지 않아도 그만이다. 지난여름, 꽃대가 한창 올랐다 진 다음 씨앗이 넘치도록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음 겨울에도 밭에는 마늘과 상추가, 양파와 시금치가 새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추 예기만 나오면 제아무리 태평한 나도 아직은 역부족함을 느낀다. 관행농법이 자리 잡으면서 가장 약해진 품종이 바로 고추다. 요즘의 고추는 비료를 하지 않으면 크지도 않고 농약을 치지 않으면 버티지도 못한다. 특히 탄저병은 씨앗 속에 이미 바이러스가 침투애 있다고 믿어도 좋을 만큼 기승을 부린다. 종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종자에 대한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할 기회가 있을 테지만 아무튼 고추만큼 종묘 상인에게 톡톡히 이용당하는 작물도 드물다.
식물의 잎은 앞면만 슬쩍 보면 말끔해 보여도 뒷면은 각양각색이다. 뒷면은 거칠한 털과 잎맥의 촉감이 선명하고 사람의 콧속 솜털처럼 숨구멍이 있다. 잎의 앞면은 말끔해도 뒤집어보면 벌레 먹은 자리나 균이 번지는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낮보다는 어두워질 때 해충의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밝을 때 겉에서만 보고 작물의 상태를 파악하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사람의 손바닥에서 감지할 수 있는 혈액순환이나 건강 상태를 식물은 잎에서 찾을 수 있다.
집에서 가져온 분무기에 물엿과 물을 적당히 섞은 다음 고추 줄기 전체와 토마토 대여섯 포기에 골고루 분사했다. 작물에 증식하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선 화학비료를 공급해주는 것보다 물엿이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식물에서 추출한 재료로 만든 물엿은 당분과 점도가 높다. 당분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켜 건강하게 해주고, 물엿의 끈적임은 벌레가 식물을 기피하게 만든다. 작은 벌레는 중성화된 물엿에 든 수분이 증발하면 움직임이 둔해져 살아나기 어렵고, 식물은 수분이 쉽게 증발하지 않아 저습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시험 재배하는 밭이라 그다지 넓지 않아서 가정에서 이용하는 소형 분무기로도 충분했다. 이런 방법은 고추뿐 아니라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과일나무에 생긴 병충해 관리에도 응용할 수 있다.
회원들이 고추농사를 지을 때면 재래종 종자를 구하지 못해 시중에서 산 고추 모종을 쓴다. 배운 대로 심으면서 갈지 않은 땅에 지지대도 세우지 않는다. 비닐 멀칭을 하는 대신 자생초를 단단히 막을 요량으로 고추밭에 열무 씨를 뿌려준다. 이만하면 자연농사 시작은 양호하다고 자신한다. 살충제는 단념했지만, 고추벌레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는 마당에 물엿을 뿌려주라고 하면 내 말을 처음 듣는 회원들은 입을 딱 벌린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해도 해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이런 피해를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작물이나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방법으로 막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땅을 갈지 않고 심는 것까진 쉽게 했고, 궁합이 맞는 작물끼리 자라게 해서 제초 관리에 웬만큼 자신이 생겨도 벌레는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지금 시중에서 구입하는 씨앗이나 모종은 화학 약제를 사용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기본적으로 자생력이 떨어진다. 그런 종자라고 해도 땅을 갈지 않고 식물의 궁합을 맞춰 재배하면 화학농법으로 짓는 것보다 식물의 뿌리가 잘 자라기 때문에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다.
농약이 나쁘다고 하니 목초액을 ‘친환경 살충제’라도 되는 양 내세우는 이도 있다. 목초액 같은 경우 그걸 만들자면 자연 훼손이 얼마겠는가. 목초액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태울 때 방출되는 일산화탄소도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작물에 물엿 희석 액을 뿌릴 때는 농도를 적당히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의 양이 많으면 농도가 옅어져 수분이 증발되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텃밭에선 작은 스프레이 통을 이용해도 되지만 재배 면적이 넓은 밭이라면 동력 분무기를 사용해보라. 물엿의 점도가 높아 살포하기가 어려워서 물을 섞는 것인데 고압분무기를 사용하면 물을 많이 섞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