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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9월 29일)■
0414년 (장수왕2)광개토왕비 세우다
1399년 잉글랜드 군주 리차드 2세가 퇴위하고 볼링브로크(Bolingbroke)가 헨리 4세로서 왕위를 계승하다.
1504년 (연산군10)갑자사화 발생
1547년 스페인 소설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출생
1758년 영국 제독 넬슨자작(Horatio Nelson) 출생
1829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경찰이 취임하다.
1868년 스페인혁명으로 여왕 이사벨라, 프랑스로 망명
1890년 성공회 선교(조선 고종 27년)
1900년 전신-우편업무 관청 '통신원' 창설
1901년 미국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출생
1902년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 사망
1910년 미국 화가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세상떠남
1911년 이탈리아가 터키의 리비아 트리폴리 점령에 대응하여 전쟁을 선포하다.
1912년 발칸동맹 성립
1913년 독일 기술가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 세상떠남
1913년 디젤엔진 발명가 루돌프 디젤 사망
1916년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미국의 주식시장 중흥기 동안 세계 처음으로 억만장자가 되다.
1925년 프랑스의 정치가 부르주아 사망 - 국제연맹 결성 추진으로 1920년 노벨 평화상 수상
1927년 네덜란드 생리학자 윌리엄 에인소번(Willem Einthoven) 세상떠남 - 심장의 전기적 성질을 발견한 공로로 1924년 노벨 의학상 수상
1935년 미국 가수겸 피아니스트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 출생
1935년 영국 소설가 윈프레드 홀트비(Winifred Holtby) 세상떠남
1935년 조선육상경기협회, 제1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최
1938년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영국 사이에 뮌헨조약이 체결되고 주데텐란트 獨양도 합의
1943년 폴란드 지도자 레흐 바웬사(Lech Walesa) 출생
1944년 2차대전 중 소련군대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다.
1948년 미국-영국-프랑스 3국, 베를린문제를 유엔에 정식 제의
1950년 미국 벨 전화회사(US Bell Telephone Company)가 처음으로 자동 전화 응답기를 실험하다.
1950년 서울 탈환식 거행.
1950년 시인 김영랑 세상떠남
1954년 영화인 윤백남씨 사망
1956년 영국 육상선수 세바스챤 코(Sebastian Coe) 출생
1956년 한국참전 16개국 휴전감시위원단 철수결정
1959년 영국 풍자만화가 브루스 베이런스파더(Bruce Bairnsfather) 세상떠남
1961년 프랑스-튜니지아, 프랑스군의 철수에 조인
1962년 정부, 인도네시아와 통상협정 조인
1963년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우승(한국,일본,중국,필리핀 참가)
1965년 소련이 베트남에게 무기 공급을 인정하다.
1967년 미국 작가 칼슨 맥캘러스(Carson McCullers) 세상떠남
1969년 경남지구 지하당 간첩 검거.
1970년 문공부, '사상계' 폐간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김대중 지명
1972년 일본-중국 국교정상화
1972년 일-중 국교수립 공동선언.
1980년 제8차 개헌안(제5공화국 헌법) 공고
1981년 농수산부, 5차5개년 농수산부문계획 발표
1982년 제일은행 민영화
1983년 서울,인천 등에 하수도료 첫 부과하기로 발표
1984년 북한이 남한에 수재구호물자 제공.
1984년 올림픽 주경기장(서울 잠실) 개장
1987년 국내전화 1천만회선 돌파
1987년 김대중-김영삼 후보단일화 담판결렬되다
1990년 육군본부 직제개정(대통령령 제13110호)
1990년 해군본부 직제개정(대통령령 제13111호)
1990년 공군본부 직제개정(대통령령 제13112호)
1990년 해병대사령부 직제개정(대통령령 제13113호)
1990년 지역의료보험에 의료비 지원제 도입
1991년 아이티의 자유선거로 뽑힌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대통령이 군대에 의해 축출당하다.
1996년 KEDO, 북한과의 경수로 협상 무기연기. "북한의 해명과 성의 있는 조치 있어야"
1997년 미국 예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세상떠남
1997년 중국 전외교부장(錢外交部長), "북한의 개혁거부 좋은방향 아니다" 북.중 갈등보여
1997년 IAEA 총회 개막. "사용후 핵연료 및 방사성 폐기물 관리 안전협약" 서명(署名) 개시.
대만 핵폐기물 북한이전 철회요구 법적 근거 마련.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북한 정성옥선수 금메달
2000년 신문 시사만화 '고바우영감' 국내 최장기 연재기록(1만4139회) 세우고 연재 중단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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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고구려 장수왕 2) 광개토왕비 세움
광개토 대왕은 고구려 제19대 왕으로 우리 영토를 최대로 넓힌 왕이다.
그의 무덤은 만주 즙안현 통구에 있다.
비석은 높이 5.34m, 너비 1.5m로 우리나라 최대.
이 비석에는 첫면에 11줄, 둘째면에는 10줄, 셋째면에는 14줄,
넷째 면에는 9줄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줄은 41자로 총 1804자에 이르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삼국의 정세와 일본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1504(조선 연산 10) 갑자사화 일어남
1890(조선 고종 27) 성공회, 우리 나라에 들어옴
1896(조선 고종 33) 황토현-동대문, 대광통교-남대문 사이 도시계획
1950 시인 김영랑 세상 떠남
1970 신민당 전당대회, 표결로 대통령 후보에 김대중 지명
문공부, <사상계>에 실린 '오적시'를 문제 삼아 <사상계> 등록 취소
1983 서울, 인천 등에 하수도료 첫 부과
1984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개장
대한적십자사, 북측이 보낸 수재물자를 판문점 인천 북평 등서 인수
1987 김대중-김영삼, 후보단일화 담판 결렬
1990 북경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 개최 발표
남북통일축구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남한 선수단 10월 9일 평양 도착
1997 서울 신길동 윤락가 강제 철거
1868 스페인혁명으로 여왕 이사벨라, 프랑스로 망명
1902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 세상 떠남 대표저서: <목로주점>, <나나>
1911 이탈리아, 터키와 트리폴리전쟁 개시
1913 디젤 기관 발명한 독일 기술자 루돌프 디젤 세상 떠남
1923 영국, 국제연맹의 위임으로 팔레스타인 통체 개시
1938 뮌헨 회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1957 파키스탄 몽고메리서 열차 충돌. 250명 사망
1962 알제리 초대 수상 벤 벨라 취임
1971 인도 오리사주에 태풍 강타. 1만명 사망
1979 일본-중국, 국교수립 공동 성명 발표
중국, 건국 30주년 대회서 새 중국공산당선언 발표
문화대혁명의 과오 지적하고 현대화를 최우선과제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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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2008년 09월 28일 (일) 21:52:09 연합뉴스 dynews1991@dynews.co.kr
△갑자사화 발생(1504)
△성공회 선교(조선 고종 27년)(1890)
△조선육상경기협회, 1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최(1935)
△시인 김영랑 사망(1950)
△한국참전 16개국 휴전감시위원단 철수결정(1956)
△정부, 인도네시아와 통상협정 조인(1962)
△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우승(한국,일본,중국,필리핀 참가)(1963)
△문공부, ‘오적시’ 문제삼아 월간잡지 ‘사상계’ 등록 취소(1970)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김대중 지명(1970)
△일본-중국 국교정상화(1972)
△8차 개헌안(제5공화국 헌법) 공고(1980)
△농수산부, 5차5개년 농수산부문계획 발표(1981)
△제일은행 민영화(1982)
△서울,인천 등에 하수도료 첫부과(1983)
△올림픽 주경기장(서울 잠실) 개장(1984)
△북한, 한국에 수재물자 제공(1984)
△국내전화 1000만회선 돌파(1987)
△지역의료보험에 의료비 지원제 도입(1990)
△41차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개막. ‘핵폐기물 이전’ 안전협약 서명(1997)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북한 정성옥선수 금메달(1999)
△신문 시사만화 ‘고바우영감’ 국내 최장기 연재기록(1만4139회)세우고 연재 중 단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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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 세움 (414.09.29. 고구려 장수왕 2)
중국 만주 지안현 퉁구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능비로 높이 6.39m, 각 면의 나비 1.5m의 비석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총44행 1,755자에 이르는 비문은 상고사 특히 고구려의 건국 내력과 삼국의 정세 및 일본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유명한 금석문이다./한· 일 고대사학계의 최대 쟁점이 되어 온 구절은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파해 신민으로 삼았다'로서, 여기에서 왜가 나오는데, 이를 근거로 일제의 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였다./이에 대하여 정인보는 일본인 학자들의 비문 해독의 해석상 모순을 지적하였고, 1972년 재일 사학자 이진희가 1900년 전후에 일본 참모본부에 의해 파괴, 변조되었다는 사실 등을 비교 연구하여 일본인들에 의한 위작설을 뒷받침하였다.
■갑자사화 일어남(1504.09.29. 조선 연산 10)
갑자사화는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복위문제로 얽혀서 일어난 사화로 연산군은 평소 사림들을 싫어하였는데, 마침 임사홍으로부터 폐비의 폐위, 사사의 경위에 대한 밀고에 접하자, 정숙의·엄숙의와 그들의 소생을 모두 죽이고, 윤씨를 복위시켜 성종묘에 배사하려 할 때 이에 반대한 권달수를 참형하는 한편, 윤씨 폐위에 찬성한 윤필상·이극균·성준·이세좌·권주·김굉필·이주 등을 사형에 처하였다./또 이미 고인이 된 많은 명신거유 등을 부관참시하였으며, 그들의 가족과 제자까지도 벌하였다. 이 때문에 조선은 국정과 문화발전에서 침체기를 겪었다.
■1560년 화폐속의 인물 구스타프 1세 바사 (스웨덴) 세상떠남 구스타프 1세 바사(GustavⅠ Vasa)
본명은 Gustaf Eriksson Vasa. 1496(?). 5. 12 ∼ 1560. 9. 29 스웨덴 왕(1523 ∼1560 재위).
바사 왕조의 시조로 덴마크로부터 독립해 스웨덴 주권을 확립시켰다. /스웨덴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원로원 의원이었다. /그의 가문은 15세기 스칸디나비아 파벌귀족정치의 세도가였고 스웨덴 섭정 3명을 배출한 스투레 가문과 사돈지간이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스웨덴을 강력한 군주국으로 만든 것이었다. 대부분 교회재산을 몰수해서 얻은 왕실과 바사 가문의 막대한 토지를 권력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에 다른 귀족가문은 그와 도저히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는 자기 토지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관심을 쏟았으며 재정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참견했다. 스웨덴인 전문가가 부족해지자 1540년대에는 독일 행정가를 초빙했다. /근무기간은 짧았지만 이들은 스웨덴에 큰 업적을 이루어놓고 갔으며 덕분에 그는 토지를 효율적으로 직접 관리할 수 있었다.
파벌싸움 속에서 커온 정치가답게 구스타프는 교회의 토지를 미끼로 귀족들을 끌어들였고, 스투레 때에 시도로 그쳤던 많은 정책들을 실현시켰다. /예를 들어 1544년 의회를 매수해 선거제 왕위계승을 세습제로 바꾸었다.
또 나중에는 뜸해졌지만 집권 초기에는 각 신분 대표 모임을 불규칙하게 자주 소집해서 자기 정책을 지지하도록 했다./뒤에 이러한 각 신분 모임은 효율적인 의회기구로 발전했고, 반면 15세기 입헌투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귀족회의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1908년 화폐속의 인물 152마차도 데 아시스(브라질) 세상떠남
마차도 데 아시스(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1839. 6. 21 ∼ 1908. 9. 29. 브라질의 시인·소설가.
브라질 고전문학의 대가로 그의 저술활동은 유럽 문화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어 브라질 문학 유파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흑인과 포르투갈인의 혼혈인 도장공(塗裝工)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역시 혼혈계인 계모에게 양육되었다. 병약하고 호감을 주지 못하는 외모에 간질병과 말더듬 증세까지 지닌 그는 17세에 인쇄공의 도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 낭만주의 전통의 단편소설·시·장편소설 등을 출판했다.
1869년 무렵 브라질에서 문인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정부가 마련해준 좋은 직책에 있으면서 교양있는 여인 카롤리나 아우구스타 사비에르 데 노바이스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그해에 병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해야 했지만, 그뒤 곧 당시의 문학관습을 깨뜨리는 매우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문체로 새로운 소설을 써 다시 인기를 끌었다. 이것이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 Memorias Postumas de Bras Cubas〉(1881)인데, 자유로운 연상과 다양한 여담을 담았고 괴팍한 1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줄거리가 종종 이어지지 않는 160개의 짧은 장(章)으로 된 이 작품에서 '작은 승리자'라고 불리는 브라스 쿠바스는 자신의 생을 냉소적으로 회고하면서, 선과 악을 비교한 뒤 자신은 인류의 불행한 유산을 영속화하는 아이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앞선 사람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 작품을 비롯해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들로는 여러 편의 단편소설과 〈철학자냐 개냐 Quincas Borba〉(1891)· 〈돔 카스무로 Dom Casmurro〉(1899) 등 2편의 후기 장편소설이 있다. 특히 〈돔 카스무로〉는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로서 질투로 뒤틀린 마음을 탐구한 무섭고 끔찍한 작품이다. 단편소설 번역본으로는 〈악마의 교회 외(外) The Devil's Church and Other Stories〉(1977)·〈정신과 의사 외(外) The Psychiatrist and Other Stories〉(1963) 등이 있다. /세련되고 귀족적인데다 초연하고 냉소적이며 세계주의자인 마차도는 브라질의 독립이나 노예제도폐지 같은 사회적 문제를 간과했으며, 지방색과 민족주체의식이 강한 브라질인의 열정을 공유하지 못했다. 소설의 배경은 주로 리우였고 그 외의 다른 곳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세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경쾌한 어구와 재치가 아니었더라면 참기 어려운 것이 되었을 성싶은, 뿌리깊은 염세관과 환멸감이 깔린 글을 썼다. 1896년부터 브라질 학술원의 초대 원장으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영국,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개시(1923.09.29)
1923년 9월 29일 영국은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1917년 11월 2일 영국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을 내놓았다./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투쟁하고 있던 시온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주요 연합국들도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1922년 7월 24일 국제연맹의 승인을 받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은 이러한 밸푸어 선언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위임통치 중이던 1939년 5월 정책을 바꿔, 유대인 추가 이주 대상자의 수를 제한하고 1944년에 이주를 완료할 것을 제안하는 백서를 발표해 시온주의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연합(UN)으로 넘어갔고, 1947년 11월 29일 UN 총회는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이에 따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수립이 선포되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영국 관리들도 팔레스타인에서 모두 철수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 간에 전쟁이 발발했다.
■심전도 고안 에인트호벤 사망(1927.09.29)
심전도 용어를 처음 사용한 네덜란드 생리학자 빌렘 에인트호벤이 1927년 9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위트레흐트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188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레이덴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03년 에인트호벤 검류계라고 알려진 단선 검류계를 고안해서 심장근육이 수축할 때 생기는 전기적 성질의 차이를 측정하고 도표로 기록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심전도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심전계를 통해 심장의 전기적 성질을 발견한 공로로 1924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 [1938년] 뮌헨회담, 주데텐란트 獨양도 합의
뮌헨회담의 주체들. 왼쪽부터 체임벌린(영국), 달라디에(프랑스), 히틀러(독일), 무솔리니(이탈리아).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침공·합병한 히틀러가 다시 발톱을 세워 9월 초 체코령 주데텐란트를 요구하자 체코는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에 안전보장을 호소했다. 9월 15일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와 마주앉았으나 향후 1주일간 무력 침공을 자제하겠다는 언질만 받아냈다. 독일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체임벌린은 프랑스 총리 달라디에와 이 문제를 협의한 끝에 체코를 독일에 넘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체코는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우리를 희생시킨다”고 볼멘소리만 했을 뿐 영·불의 합의를 따라야 했다. 힘 없는 국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22일의 두 번째 회동에서 히틀러가 주데텐란트를 ‘즉시’ 넘기라는, 전보다 더 강경한 조건을 제시했을 때 체코와 영·불은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총동원령을 내리고 함대까지 동원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최후 통첩을 보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영·불은 꼬리를 내리며 타협으로 방향을 틀었다./9월 29일 당사국인 체코를 제외시킨 채 뮌헨에 모인 체임벌린·달라디에·히틀러·무솔리니는 밤샘 협상 끝에 주데텐란트를 독일로 양도한다는 ‘뮌헨협정’에 서명했다. 체코에는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체임벌린에게는 전쟁을 예방한 영웅이라는 영국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듬해 3월 히틀러가 체코의 나머지 영토까지 점령함으로써 체임벌린은 평화의 사도에서 굴욕외교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화폐속의 인물 82(라오스-100킵:판 보이 차우)
본명: Phan Van San. 1867 ∼1940. 9. 29 라오스 100킵(1957년)발행
판 보이 차우(Phan Boi Chau) 초기 베트남 해방운동 지도자.
정열적인 저작활동과 독립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위대한 애국자 중 한 사람으로 칭송받고 있다. /가난한 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판 보이 차우에게 열심히 공부해 과거시험에 응시하도록 강조했다. 베트남의 전통적인 관료정치체제에서 과거시험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900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때쯤 판 보이 차우는 이미 확고한 민족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1903년에는 〈류큐[琉球]의 고루(苦淚) Luu cau huyet le tan thu〉를 썼다. /이 책은 베트남이 독립을 빼앗긴 고통을 일본이 류큐 제도를 잃게 될 때 받을 고통에 빗대어 쓴 것이었다./1904년 혁명 동지들과 함께 개혁세력의 조직인 두이 탄 호이(Duy Tan Hoi:개혁회)을 조직했고, 쿠옹 드 공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내어 베트남 해방운동세력과 왕실 사이에 동맹관계가 이루어지게 했다. /1905년 판 보이 차우는 저항운동의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고, 1906년 그곳에서 중국의 혁명가인 쑨원[孫文]을 만났다. 쿠옹 드 공을 베트남 국왕으로 옹립하려 했으며, 이에 따라 1906년 쿠옹 드 공, 개혁운동가 판 차우 친과 회담을 가졌다. /프랑스와 일본 간의 화해가 이루어짐에 따라 1908~09년에 판 보이 차우와 그가 데려온 베트남 학생들, 쿠옹 드 공을 비롯한 사람들은 일본을 떠나야만 했다./1912년에 이르러 그는 마지못해 자신의 군주제 계획을 포기했으며, 중국 광둥[廣東]에 베트남 광복회라는 이름으로 저항운동세력을 재조직했다. 이 조직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총독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판 보이 차우는 1914~17년 광둥의 감옥에 갇혔으며, 이때 자전적 성격을 띤 〈옥중일기 Nguc trung thu〉를 썼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뒤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프랑스에 대한 저항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1925년 6월 체포되어 하노이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베트남인들이 그의 체殆?대해 강하게 반발해 프랑스는 그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고, 공직을 주어 회유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그는 위에에서 프랑스인의 감시를 받으면서 조용하게 말년을 보냈다. 2번째 자서전을 쓰면서 미래의 혁명 노선을 다루었으며 시집도 여러 권 출판했다. /주요저작으로 베트남 최초의 혁명사로 유명한 〈베트남 망국사 Viet Nam vong quoc su〉(1906)와 정치성을 띤 역사소설 〈후진기담(後陳奇談) Hau Tran dat su〉이 손꼽힌다.
■레흐 바웬사 태어나(1943.09.29)
폴란드 노조 지도자 출신 정치가로 198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레흐 바웬사가 1943년 9월 29일 태어났다.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전기공이었던 그는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1980년 8월 파업을 이끌었다. 또 폴란드 최초로 '파업권(임금이나 일하는 조건을 좋게 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을 가진 자유 노조인 '연대(Solidarity)'의 전국위원장으로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다./1990년 11월 폴란드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은 직선제 대통령이 됐다. 1995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후 정계를 떠났다.
■바웬사 Lech Walesa1943년 9월 29일 태어남 ~ .
바웬사 "돌이켜 보면 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흐 바웬사
바웬사는 연대자유노조 의장으로 수백만 폴란드 노동자들을 이끈 노동운동가이며 정치가이다. 1980년 8월 4일 식료품 가격의 인상과 바웬사 및 다른 두 노조 활동가들의 해고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된 파업은 그다인스크-소포트-그디니아 지역의 공장들을 묶는 공장연합파업위원회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결국 8월 31일 바웬사와 폴란드 초대 부총리 야지엘스키는 임금 인상과 더 많은 정치적·종교적 표현의 자유의 허용과 노동자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조직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했다. 그후 공장연합파업위원회는 연대자유노조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 정부는 계엄령을 발표하고, 연대자유노조를 불법화했으며, 바웬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대자유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1983년 그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는데, 폴란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그의 부인이 노르웨이로 가서 수상식에 참여했다. 1986~87년 자서전 <희망의 길 Un Chemin d'Espoir>을 파리로 밀반출해 출판했다. 1988~89년에는 폴란드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해 연대자유노조와 다른 노조들의 법적 지위 회복, 새로 부활된 폴란드 의회 구성을 위한 자유로운 의원선거, 대통령직의 설치, 일정한 경제적 변화조치의 발표 등을 얻어냈다. 1990년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설치(1948.09.29)
1948년 9월 29일 제헌국회 내에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의 집행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되었다. 위원장 김상덕과 부위원장 김상돈 이하 8명의 위원과 중앙사무국, 각도 조사부, 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를 두었다./반민특위는 구성 후 약 3개월 동안 친일분자들의 행적을 추적해 예비조사를 마치고 1949년 1월 8일 박흥식에 대한 검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반민특위의 활동은 여론과 언론, 국민 대다수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49년 1월 25일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장 최난수 등이 반민특위 위원을 암살하려 한 사건이 발표되었고, 1949년 8월 7일에는 경찰이 반민특위 청사를 둘러싸고 특경대원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경찰국장 김태선은 특경대의 무장해제는 정부로부터 지시된 사항이라고 해명했고,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은 국회에 법적인 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활동은 특경대의 해체와 함께 그 기능이 거의 마비되었으며, 1949년 8월 22일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정식으로 폐지되었다./반민특위의 활동으로 실제 체형을 받은 사람은 7명에 불과했으며, 이들도 감형이나 석방 처리되어 친일파 및 친일잔재 처리문제는 미제로 남게 되었다.
■ [1950년] 시인 김영랑 사망 /시인 김영랑
김소월 이후 우리말 구사에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서정시인 김영랑이 1950년 9월 29일 타계했다. 전남 강진의 넉넉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영랑은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상경해 휘문의숙에 입학했으나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이후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한국 현대시의 흐름에서 영랑은 하나의 샘이었다. 김억과 김소월이 그 샘으로 흘러들었고 서정주와 박재삼이 그 샘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시는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섬세하면서도 깨끗한 언어 감각과 예민한 감수성, 그리고 잘 다듬어진 시형에 의해 고독한 내면의 세계를 주로 노래했다./사라져가는 우리의 고유어를 발굴하고 향토어인 전라도 방언을 널리 사용함은 물론 독창적인 조어를 활용하는 등 우리 언어의 미적인 가치를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대표시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마음을 아실 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독을 차고` 등이 있으며, 1935년 `영랑 시집`을 출간했다.
▶ 한국,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우승(1963)
1963년 9월 21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회 9일째이자 마지막 날인 9월 29일 우리 국가대표팀이 일본과의 2차전에서 3대0으로 승리하면서 6전 5승 1패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김응룡, 박현식, 최관수, 신용균, 박영길 등이 주축이 된 한국팀은 앞서 1차전에서도 일본을 5대2로 이겼다. /특히 일본과의 2차전에서 4번 타자 김응룡은 8회초 2점짜리 홈런을 날리는 등 3타점을 혼자 올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대회 5연패를 노리던 일본은 타이완과 함께 2위를 차지하고 필리핀은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 우승이 일으킨 야구에 대한 전국민적인 열기는 실업야구로 이어져 1964년 풀리그 페넌트레이스가 도입된다.
■'중국·일본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1972.09.29)
1972년 오늘, 일본의 신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와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 그리고 중국 수상 저우언라이와 외상 지펑페이의 이름으로 양국의 국교 정상화에 관한 공동성명이 발표된다. 다나카 총리는 나흘 전인 9월 25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이날까지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가진 끝에 이 같은 결실을 얻게 됐다./양국 정상은 80년간 계속된 두 나라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수립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갈 것을 약속했다. 다나카 총리는 이를 위해 중국을 중국 대륙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함으로써 대중국 외교노선을 분명히 했다. 타이완은 이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곧바로 일본과 외교단절을 발표한다./6년 뒤인 1978년 8월 12일 베이징에서 '중-일 평화우호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10월 23일 도쿄에서 양국 정상 사이에 비준서가 교환된다.
▶ '중국·일본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1972)
1972년 오늘, 일본의 신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와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 그리고 중국 수상 저우언라이와 외상 지펑페이의 이름으로 양국의 국교 정상화에 관한 공동성명이 발표된다./다나카 총리는 나흘 전인 9월 25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이날까지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가진 끝에 이 같은 결실을 얻게 됐다. /양국 정상은 80년간 계속된 두 나라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수립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갈 것을 약속했다. 다나카 총리는 이를 위해 중국을 중국 대륙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함으로써 대중국 외교노선을 분명히 했다. 타이완은 이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곧바로 일본과 외교단절을 발표한다. /6년 뒤인 1978년 8월 12일 베이징에서 '중-일 평화우호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10월 23일 도쿄에서 양국 정상 사이에 비준서가 교환된다.
■북한, 남한에 수재물자 제공(1984.09.29)
남한이 대홍수 피해를 입었던 1984년 9월, 북한은 북한적십자측을 통해 휴전 이후 처음으로 "남한에 수재물자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수재물자는 1984년 오늘 판문점·인천·북평항 등을 통해 들어왔다. 남북한 사이에 원활한 교류가 시작된 듯했으나 일회성으로 끝났다.
▶ 북한적십자, 남한에 수재물자 인도(1984)
1984년 오늘부터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적십자회가 제공한 수재물자를 인수한다. /우리 한적은 이날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과 북평,판문점을 통해 쌀 5만 섬, 시멘트 10만 톤, 기타 의약품 등을 북한적십자사로부터 건네받는다. 이와 함께 북측이 남북 직통전화 재개에 대한 대한적십자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8년 1개월 만에 남북한 직통전화를 운용하게 된다. /북한적십자회는 앞서 9월 8일 대한적십자사에 보낸 통지문을 통해 서울,경기 일원에 내린 폭우로 생긴 남한 수재민에게 구호물자를 보내겠으니 적극 협력해달라고 요청해왔다./남,북 적십자는 이후 9월 18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실무접촉을 시작한 뒤 인수 장소 등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고 마침내 9월 29일부터 수재물자가 남한으로 수송됐다.
■대통령 후보 후보단일화 담판 결렬
1987년 노태우 주도의 6.29 선언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이 합의되었고,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 93.1%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개헌 협상이 타결되자 정국은 곧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민주 세력의 후보 단일화는 달성되지 못한 채, 민주화 진영은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였다. 결정적인 대립은 김대중과 김영삼의 대립과 이에 따른 재야의 분열이었다. /통일민주당 내에서 파당적 우세를 지키고 있던 김영삼은 당내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를 주장했고, 김대중은 전국적 지지 유세를 벌여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지지도를 가지고 누가 양보할 것인지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몇 차례 진행되었던 김대중과 김영삼간의 후보단일화 담판은 1987년 9월 29일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이후 10월 10일 김영삼은 공식적으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그후 11월 9일에 통일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자 김대중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10월 28일 평화민주당 창당 선언을 하였고, 11월 12일 평화민주당은 김대중을 대통령 후보에 추대함으로써 양 김씨의 출마는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1987년 12월 16일 제 13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실시되었다. 투표율은 89.2%로 제3공화국의 5,6,7대 때보다 훨씬 높았다. 후보자별 득표율은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36.7%,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가 28.0%,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27.0%, 공화당의 김종필 후보가 8.1%를 획득하였다. 이로써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결국 6월의 민주화 항쟁은 선거를 통한 5공 세력의 재집권으로 결말을 내렸다. 이러한 결과는 야권의 후보단일화 실패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서 가정은 별 의미가 없지만 당시 야권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정권교체가 앞당겨졌을 것이고 우리 나라의 민주화도 앞당겨졌을 것이다. 또 양 김씨의 분열로 국민들도 지역적으로 분열되었다. 영남은 김영삼을, 호남은 김대중을 지지하게 되었고, 양 김씨의 분열과 대립이 심화됨에 따라 영호남간의 감정적 대립도 심화되었다.
▶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 발사(1988)
1988년 오늘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항공기지.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다. /디스커버리호는 1984년 8월 30일 첫 발사 이래 이번에 7번째 우주비행에 나섰다. /5명의 우주비행사가 탑승한 디스커버리호는 4일 동안 11개 항목의 우주실험을 실시한 뒤 10월 3일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다. /
▶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 (2002)
제14회 아시안게임이 2002년 오늘 부산에서 개막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이어 16년 만에 다시 우리 나라에서 30억 아시아인의 축제를 벌이게 됐다. /'아름다운 만남'을 주제로 한 개회식은 부산 주경기장에서 치러졌는데 참가자들이 알파벳 순서로 입장하던 관례를 깨고 '가나다'순서로 입장했다. /이번 대회에는 44개 나라의 선수와 임원 등 만8천여 명이 참가했다. /10월 14일까지 16일 동안 부산을 비롯해 창원과 마산, 울산 등 인근 도시의 38개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특히 북한에서 2천여 명의 서포터스를 파견해 남북한 화해의 물꼬를 트는데 큰 역할을 했다. /1위는 금메달 150개를 딴 중국, 2위는 금메달 96개를 획득한 한국, 3위는 금메달 44개로 일본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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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광개토대왕(374~413년)
http://kids.hankooki.com/lpage/study/200306/kd2003062317443927360.htm
<참고> 구스타브 바사 사망(1560.09.29)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709/e2007092817293663820.htm
<참고>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태어남(1901.09.29)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609/e2006092818522263820.htm
<참고> 심전도 개발자 빌렘 에인트호벤 사망(1927.09.2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3247&yy=2006
<참고> 북한, 한국에 수해 구호품 제공(1984.09.29)
http://www.donga.com/fbin/moeum?n=dstory$c_134&a=v&l=0&id=200709290067
<참고> 김영삼-김대중. 후보단일화 담판 결렬(1987.09.29)
http://www.knnews.co.kr/news.asp?cmd=content&idx=589151
<참고>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2002.09.2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2621&yy=2007
오늘의 관심뉴스는 자기를 헌신한 아름다운 기사입니다. 누군가 어려운 사람에게 베푼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아름다운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55시단의 이준택 중위의 평소의 생각을 존중하며 진정한 군인정신을 발휘하는 군인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월요일을 맞습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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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교가 꺼져가는 생명에 골수 기증 기사입력 2008-09-26 13:18 |최종수정2008-09-26 13:47
골수 기증한 육군 장교 이준택 중위 (용인=연합뉴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골수를 기증한 육군 55사단 정보통신대대 본부중대장 이준택 중위(25세). << 전국부기사 참고 >> drops@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
(용인=연합뉴스) 박기성 기자 = 육군 장교가 골수를 기증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백혈병 어린이의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렸다.주인공은 육군 55사단 정보통신대대 본부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이준택 중위(25세).
이 중위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를 통해 24일 서울 강남 삼성의료원에서 골수를 기증했고 그에게서 얻어진 조혈모세포는 다음날 13세 남자 어린이에게 이식됐다.조직 적합성 항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이 어린이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옮겨졌다. 8년 전 가까운 친구를 백혈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은 이 중위는 이 일을 계기로 골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골수 기증한 육군 장교 이준택 중위 (용인=연합뉴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골수를 기증한 육군 55사단 정보통신대대 본부중대장 이준택 중위(25세). << 전국부기사 참고 >> drops@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 이후 학군사관후보생 시절이던 2005 학군단과 조혈모세포협회가 공동 주관한 수혈행사에서 헌혈을 하게 됐고, 지난 8월 협회로부터 골수가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흔쾌히 골수 기증에 동의했다. 이 중위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경우 골수가 일치할 확률은 2만분의 1 정도로 희박해서 골수를 기증하려 해도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게는 오히려 행운"이라고 했다.
그는 "8년 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골수 기증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jeansap@yna.co.kr
今日 (09. 29 月) |
1. 시 주요행사
❍ 간부회의
- 9. 29(월) 08:40 / 소회의실 / 국․소장 및 직속 실과장
❍ 옥외 광고물업체 정기교육
- 9. 29(월) 09:30 / 대회의실(09:00~ ) / 73명(정읍,고창업체)
* 진행 : 개회,국민의례,인사(시장님),시정홍보영상물,교육
* 내용 : 옥외광고물 관리법 개정에 따른 교육
❍ 2009년 정읍시 금고지정 심의위원회 2차회의(副)
- 9. 29(월) 10:00 / 영상회의실 / 위원 7명
* 안건 : 금고지정 대상 금융기관 적격성 여부 결정 건
❍ 전라북도 의용소방대 가족한마당 행사
- 9. 29(월) 10:30 / 공설운동장 / 5,000여명
* 내용 : 개회식,대회사(도지사),환영사(시장님),체육행사등
* 주관 : 도 의용소방대연합회(회장 조훈회)
❍ (주)범농『기업의 날』행사
- 9. 29(월) 14:00 / (주)범농 본사(제3산업단지)
/ 50여명(대표이사 임종배)
* 진행 : 테이프커팅,개회,국민의례,소개,인사말씀,축사(시장님)
❍ 제3회 정읍평생학습축제 관계자 설명회
- 9. 29(월) 15:00 / 대회의실 / 110여명
* 진행 : 개회,국민의례,소개,인사말씀(시장님) 등
2. 읍면동 주요행사
❍ 옹동면, 농촌지도자회 현장교육
- 9. 29(월) 08:30 / 면 소재지 ⇒ 익산 호남농업연구소외 1개소
/ 40여명(회장 박동식)
❍ 내장상동, 지역협의회 임시회
- 9. 29(월) 11:00 / 동사무소 회의실 / 동장외 13명
❍ 수성동, 산악회 임원진 회의
- 9. 29(월) 11:00 / 동사무소 회의실 / 14명(회장 김용성)
❍ 산외면, 산외 한우마을 번영회장 취임식
- 9. 29(월) 16:00 / 산외면사무소 회의실 / 100여명
* 취임회장 : 이재용
3. 유관기관 동향
4. 기타 동향
❍ 단풍미인특성화 대학 1차 해외연수
- 9. 29(월) 05:30 / 신태인읍사무소 앞 ⇒ 일본(미야기,동경)
/ 18명(농업인 15, 공무원 3)
* 내용 : 일본 쌀 저장, 정미공장 및 농협견학 등
❍ 신태인 북부노인대학 현장학습
- 9. 29(월) 08:00 / 신태인초등학교 ⇒ 충북 음성꽃동네(사랑의 연수원)
/ 90여명(위원장 신태홍)
❍ 주민생활서비스 정읍네트워크 제1차 총회
- 9. 29(월) 14:00 / 정읍문화원 2층 회의실
/ 70여명(정창환 정읍네트워크 상임대표 등)
* 내용 : 정읍네트워크 사업보고, 사업결과 및 회계결산 등
❍ 정읍사문화제제전위원회 전주세계소리축제 관람
- 9. 29(월) 16:00 / 제전위원회 광장 ⇒ 전주세계소리축제
/ 35명(이사장 이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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