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 사건(출애굽기) [그림: 북시리아 알랄라크의 통치자 이드리-미의상(기원전 1500년경). 이 상에 가나안 땅에서 활동했던 용사들인 하비루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대영박물관 소장; Jerome, 47)] 학자들은 출애굽기의 기록을 토대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경로를 추적한다. 그 경로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 신빙성 있는 것은 시내산 경로가 아닌 지중해 연안을 통과하는 북쪽 통로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경로도 그들의 광야여정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한다. 출애굽 사건은 결국 역사적 사건(historical event)보다는 기억될 만한 사건(historic event)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모세가 이집트의 파라오와 싸우는 장면이라든지 광야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이적담(異蹟談)은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적 산물임을 곧 알 수 있게 한다. 이집트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가나안의 봉건국가에 의해 고난을 받았던 약소민족의 아픔이 '출애굽'이라는 사건을 통해 결집되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번창하자 이집트 왕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비록 정치적인 힘은 없는 민족이지만 이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큰 일이다. 오늘날은 산아제한을 통해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지만 고대의 삶은 한 사람이라도 많은 것이 유리했다. 전쟁과 기아와 병마에서 살아남아 종족과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우선 사람이 많아야 했다. 수많은 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만 해도 그렇다. 생활이 비교적 안정된 백인사회는 산아제한을 비교적 잘하고 있는 만면에, 그렇지 못한 흑인사회나 제3세계 사람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낳아야 할 의무가 있다. 우선 선거권을 획득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을 넓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보장 혜택을 더 받아 생계를 꾸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속된말로 약소민족은 우선 "쪽수"가 많아야 살 수 있다. 숫자가 많아지게 될 때 이웃 사람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된다. 물에서 건져진 모세는 파라오의 궁에서 자라게 되고 어느덧 성년이 된다. 성년이 되자 모세는 자기 형제를 찾게 된다. 모세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자기의 뿌리를 알고 고난의 길을 택한다. 아니 자신의 출신을 안 모세는 더 이상 적국의 왕궁에서 편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고려시대에 우리는 원나라의 속국이 되어 살았던 적이 있다. 원나라의 몽고풍이 고려의 상류층에 유행했다는 것은 우리의 주체적 역량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 와중에서 적국에 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그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세도를 부렸으며 오늘날에도 외국의 눈치만 보는 철새정치인들이 많음을 볼 때 모세는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달리 생각하면 모세는 모르는 척 하고 있다가 자기가 왕이 되어 히브리인을 구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동족의 아픔을 보고 의기를 억누르지 못한다. 동족이 이집트인에 의해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살해하게 된다. 나중에 같은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너희들은 동족끼리 싸우느냐"고 호통을 치자 그를 두려워한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살인사건을 폭로하게 된다. 모세는 결국 동족에게 당하는 꼴이 된다. 모세는 할 수 없이 광야로 도망가게 되고 여기서 그의 삶은 다시 시작된다(출 2:11-15). 그 새로운 인생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가능해진다 2. 모세의 등장 모세가 파라오에게 자기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절기를 지키겠노라고 말한다(출 5:1).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가서 광야에 진을 치고 야훼 하나님을 위한 축제를 벌이겠다니 이것은 그냥 넘어 갈 일이 아니다.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자기 민족의 신을 자유롭게 섬긴다는 것은 그 민족의 주체성이 확립되었을 경우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경우 그 나라의 신을 섬겨야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이스라엘은 이제 자기들의 신 야훼를 섬기러 가겠다는 것이다. 그 신은 이집트의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탈출하여 새롭게 맞이할 광야의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광야생활을 하실 것이다.
싸움은 시작된다. 모세와 아론 단 둘이서 이집트 왕 파라오를 상대한다. 모세와 아론 뒤에는 야훼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면서 승리를 안겨주지만 파라오는 옆에 도움되는 신하 한 명 없이 당하기만 한다. 이집트의 술객과 박사들도 야훼의 권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파라오는 쉽게 항복하지 않는다. 강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등에 의한 재앙이 이집트전역을 무력화시키지만 파라오의 마음은 강팍해지기만 한다(출 7:20-10:29). 마침내 이집트의 장자(長子)를 모두 죽이는 엄청난 재앙이 파라오에게 닥친다. 이집트의 장자가 죽는 동안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장자에게 재앙이 닥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유월절(Passover)제도가 생긴 것이다.
늘 당하기만 했던 이스라엘로서는 이집트에 내린 재앙보다도 더 통쾌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교회마다 출애굽기 설교가 인기를 누렸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힘으로는 누를 수 없는 제국주의의 횡포를 이렇게 해서라도 무찔러야 시원하다. 파라오는 힘있는 자의 대명사요 하나님은 약자의 친구이시다. 우리는 그 파라오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이집트의 왕이라는 사실 외에는. 파라오는 힘과 권력의 상징이요 인간을 억압하는 불의(不義)의 대명사이다. 그 파라오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멸망해야만 한다. 하지만 약자들은 어떻게 하랴! 오직 신의 심판만을 고대할 뿐이다.
나라간에 싸울 적에도 이와 유사한 기적담이 유행하게 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백제가 신라에 의해 멸망당하기 바로 전이다. 의자왕 5년에 서울의 우물물이 핏빛이 되었고 바닷가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먹을 수 없었으며 사비수의 물도 핏빛이 되었다. 4월에는 청개구리 수 만 마리가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정신나간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재물을 잃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집트에 내린 재앙과 어쩌면 그렇게 유사한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나라의 국운이 쇠할 때 발생하는 기이(奇異)한 재난은 이와 유사한 형태로 구전된다. 그것이 후대사람에 의해 문자화되면서 책에 실리게 된다. 백제가 겪은 재앙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백제의 국운(國運)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출애굽 과정에서 발생한 재앙도 이와 유사하다. 파라오의 힘이 아무리 강대하다 한들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요 결국 패하게 된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파라오는 결국 심판을 받는다. 동시에 파라오와 같은 강팍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아무리 고집을 부려봤자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릴 수밖에 없다. 특이한 것은 재앙의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며 그에 따라 파라오의 마음도 강도를 더해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나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도 어디까지 미치는 가를 보여준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마지막까지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다. 1995년 6월 29일 대낮에 발생한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보라!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사고가 나기 전에 여러 번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건물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하였고, 사고 당일에는 5층 바닥이 무너져 내렸음에도 부분적인 수리에 머물렀다. 수많은 인명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주어졌는데도 재물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하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리는 재미를 잊지 못해 하나님의 정의를 읽지 못한 파라오는 온 나라를 초토화로 만들고 장자를 죽이며 결국 부하들은 홍해에 빠져죽게 하는 장본인이 된다. 60만 명, 그것도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사람들이 60만에 이르렀다니 모두 합하면 250만 명은 족히 되었으리라(출 12:37). 그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 나올 수 있으며 그것도 홍해를 건너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삼국유사>에 소개된 고구려의 주몽신화에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있다. 주몽이 달아나다가 엄수(淹水)라는 바다에 이르러 물(水神)에게 일러 어찌하면 좋겠냐고 묻자, 물고기와 자라 떼가 물위에 떠서 다리를 만들어주어 주몽을 건너가게 하고 그가 다 건너가자 다리를 푸니 쫓아오던 기병들이 건널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늘의 뜻을 이룰 사람은 이렇게 신기한 경로를 통해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드디어 반역하기 시작한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여지없이 패하고 홍해가 갈라질 때만 하더라도 살 것 같더니 광야에서 굶주리게 되자 불평하기 시작한다. 다시 이집트 생활을 그리며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출 16:1-3). 사람이란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존재인가 보다. 언제는 종살이가 싫어서 이집트를 박차고 나오더니 이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 종살이를 그리워하다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만족하며 살 수 없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우리에게 고층 아파트와 번쩍이는 자가용도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맑은 공기 속에서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 있는 녹지 공간이 더 필요하다. 문제는 이집트의 종살이를 하면서 문명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누릴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 해방된 자아를 실현하느냐에 달려있다.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물이 없어 고생하다가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이적을 체험하는가 하면(출 17:1-7), 아말렉과 전쟁을 하기도 한다(출 17:8-16). 세월이 흐르면서 광야생활도 어느 정도 질서를 잡아가게 되고 모세는 질서유지를 위해 장로들을 재판장으로 세운다(출 18:1-27). 이전까지 모세가 전권을 행사하며 모든 것을 도맡아 하다가 재판장을 세움으로써 처음으로 업무분담이 이루어진 셈이다. 전체 40장으로 된 출애굽기는 18장까지 제 1막을 이룬다.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 배경과 재앙이야기, 그리고 광야에서의 먹거리 투정으로 이어지는 출애굽기 1-18장은 이로써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그 동안 십계명의 형태가 이스라엘 본래의 것이 아니라 고대 힛타이트 종족
과 그 봉신 사이에 맺어졌던 일종의 종속조약과 유사하다고 주장해 왔다. 양편이 관계를 맺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피정복자는 정복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충성도에 따라 정복자의 자비가 베풀어진다는 고대 힛타이트의 계약문은 이스라엘의 계약법률에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스라엘의 계약법은 인간 사이의 종속조약이 아니라 신과 이스라엘 공동체와의 계약(covenant)이라는 것이다. 이 계약관계는 일방의 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맺어진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부자간의 계약관계와 같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듣고 그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그 충성은 따지고 보면 하나님보다는 이스라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고조선의 팔조법금(八條法禁)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기자(箕子)의 8조지교(八條之敎)라고도 알려진 고조선사회의 법금은 사실 기자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 사회의 습관법에 해당된다고 한다. 전문(前文)은 전하지 않고 몇 가지 내용만 전해지는데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 배상해야 한다>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자 집의 노비가 되거나 은전 50만전을 내야 한다> 등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의무를 제외한다면 고조선의 팔조법금과 이스라엘의 십계명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십계명의 정신은 사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본법에 해당된다. 이스라엘은 거기에 하나님에 대한 경배조항을 삽입한 것이다.
십계명의 전문(前文)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역사적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 야훼라는 것이다(출 20:2). 그러기에 야훼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출 20:3). 이것은 마치 부부관계와도 같다. 한 번 인연을 맺는 사이가 신성한 계약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예언자 호세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하지 않았는가. 종이 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라는 사상은 예언자들의 기본사상이 되어 이스라엘 신앙의 기조를 이룬다. 그들은 틈만 나면 이집트의 종살이를 회상하며 야훼의 도우심에 감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과거의 일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일제의 강점이 불과 50여년 전이었는데 우리는 그 일을 그새 잊어버린 것 같다. 우리의 허물을 기억할 때 민족의 소망이 있다. 과거의 허물은 현재의 수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미래의 거울이 된다. 그렇다고 일본과 계속 원수지간으로 지내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노예로 35년간이나 지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바로 세우고 신 앞에 겸손하자는 것이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법은 우리가 잔인하다고 여기는 이른바 '보복법'이다(출 21:24-25).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앙갚음하라는 보복법은 규율이 엄했던 유목사회의 잔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보복법은 모든 경우에 한해서 적용된 법은 아니다.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를 밴 여인을 쳐서 낙태케 했을 때 아무런 해가 없더라도 남편의 청구대로 벌금을 내야하며, 다른 해가 있다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갚으라는 것이다(출 21:22). 그리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 생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이다. 태아의 생명을 해친 사람은 이미 성인이 된 사람도 죽어야 한다. 이 얼마나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법인가? 오늘날 낙태가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생명경시풍조가 만연된 사회는 소망이 없다. 아무리 선진사회가 되어 잘 산다고 한들 생명이 경시되고 무시되는 사회라면 더 이상 어떤 소망이 있겠는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 사람의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가 될 때 이 땅은 하나님이 원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보복법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소유권 문제와 배상에 대한 규정(출 21:26-22:15)에 이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출 22:25). 사람은 누구나 빈 손으로 태어난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본래 자기 재산이 없이 남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웃의 도움으로 재산을 모았으니 이웃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요 하늘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부수적인 규정이 소개된다. 재판은 공정해야 하며 이스라엘은 추수한 후에 제물을 바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출 23:1-19).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주의할 것이 있다.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 것이며 그들과 함께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출 23:20-33).
출애굽 하여 광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나안의 상황을 어떻게 잘 알 수 있는가? 광야생활을 규정한 법들이 지극히 정교하다는 이유를 들어 학자들은 출애굽기에 소개된 법률이 후대 상황을 반영한다고 믿고 있다. 특히 추수한 후에 지키는 맥추절과 수장절은 이미 가나안의 농경생활을 전제하고 있다(출 23:14-17). 모세에 의해 인도된 광야생활은 당시 생활을 기억하는 후손에 의해 회고적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리라. 기록 당시의 필요법을 모세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명으로 간주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특유의 저술방법이었다. 신성한 공동체의 모든 법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요 모세는 하나님의 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경은 창세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책에서 일관성 없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출애굽기 24장은 모세가 계명이 적힌 돌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위해 사십 주야를 시내산에서 머물게 된 사실을 보도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물과 증거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예배와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된다(출 25-27장). 이어 제사장의 옷과 그들이 지켜야 할 규정 등이 설명되다가(출 28-31장), 32장에 이르러 모세가 시내산에 들어간 것을 이야기한다. 왜 이야기를 하다 말고 다른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일까? 모세가 율법이 적힌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다고 보도하는 성서기자는 독자들을 위해 증거궤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율법이 적힌 돌판을 보관했던 증거궤를 설명하다가 성막과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부연하고 있다. 그러다가 32장에 이르러 시내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오경의 모습이다. 창세기의 태고사도 그렇지만 특히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은 여러 전승이 한데 어울려 복잡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관성 있는 주제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부분적으로 살펴보면 이야기의 단절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결국 오경은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여러 이야기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재편집된 것임이 확실하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형상(形像)이 없는 종교는 거의 없다. 이집트 바벨론 가나안 할 것 없이 고대인들은 신을 섬길 때 그 신의 형상을 지녔다. 그 형상은 성전에 보존되고 사람들에 의해 경배된다. 어떤 이들은 형상이 있는 종교를 우상을 숭배하는 저급한 종교로 간주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 그 형상은 생명력이 없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신의 형상은 일종의 상징(symbol)이다. 상징은 그 안에 본질(本質)을 내포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상징 안에 본질이 존재하지 않고 빈 껍데기만 있다고 한다면 누가 그 앞에 절을 할 것이며 그것을 신으로 여길 것인가? 그러기에 상징은 생명력이 없는 단순한 기호(記號)와는 구별된다. 길거리의 표지판과도 같은 기호는 그 안에 실재하는 존재가 없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상(神像)은 그 안에 신의 본질이 담겨짐으로써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중세 때 성상숭배(聖像崇拜)의 경우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같다. 예수님의 그림에도 그의 영이 살아 계신다고 믿는 것이 상징의 힘이다. 이런 의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기를 부탁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초월적인 신성을 극대화하지만 단순한 민중들에게는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 불안은 신의 형상화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기독교인이 염려하는 우상숭배로까지 이어진다.
모세가 떠나 있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안했다. 그 동안 하나님을 대리했던 모세를 볼 때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면한 것과 같은 체험을 했다. 그런데 신적인 힘을 소유한 모세가 안보이자 그들은 보이는 신(神)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이 송아지 형상이라는데 있다. 이 송아지 형상은 이집트보다는 가나안에서 바알의 형상으로 더 숭배를 받았다. 바알은 가나안 사람에게 널리 섬겨졌던 풍요의 신이었다. 이 풍요의 신은 민중에게 거의 절대적이었다. 야훼를 섬기면서도 농사철에는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때론 바알과 야훼를 구별하지 않고 동시에 섬기기도 했다. 이를 본 모세는 바알의 상징인 송아지를 만드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관련된 자들을 처형한다.
하나님께 속죄하기 위해 모세는 간청한다. "야훼여, 이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시려거든 내 이름을 생명록에서 지워버리소서"(출 32:31-32).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위대함을 본다. 죄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구원받지 않아도 좋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을 본다. 이것이 곧 예수의 마음이다.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 어떤 길인가를 예시하기 위해 악의 제물이 된 예수이다. ~~~~~~~~~~~~~~~~~~~~~~~~~~~~~~~~~~~~~~~~~~~~~~~~~~~~~~~~~~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모세의 뒤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는가가 매우 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는 없다
십계 『십계』가 역사적인 사실을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그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란 아무리 실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많은 부분을 각색한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계』의 줄거리 중에서 단 한 군데라도 역사적인 사실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말은 달라진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통을 받았을까? 이미 이야기했지만 모세의 출애굽에 관해서는 성경에 적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
의 실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와 구체적인 증빙자료는 전혀 없다. 우선 모세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부터 수수께끼이며 모세가 이스라엘인들을 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바다가 갈라졌다는 홍해의 기적은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모세의 탈출이 사실이라면 어떤 경위로 모세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날 수 있게 되었는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의문이 끊이지 않는 출애굽은 과연 언제 있었던 것일까? 오히려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http://img.yahoo.co.kr/blank.gif 홍해는 과연 갈라졌을까?
모세는 이집트 파라오의 출발 허락을 받아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한다. 이때 이집트 각지에서 모인 이스라엘인의 숫자는 모두 60만 명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숫자는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보이며 혹자는 1/10 이하로 추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