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기록속의 한수漢水는 한강韓江이 아니다.
대륙의 황하와 양자강 사이를 삼천리를 흐르는 한수.
우리 역사 기록에 분명 漢水라고 기록 되어있다.
백제의 수도였던 漢城.
통일신라때 漢陽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초 陽州가 되었고 충렬왕때 다시 漢陽부로 고쳤다가
조선의 수도가 된 한양은 한수의 북에 건설된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고향 땅이며 서울 장안이 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한반도의 지명과 대륙의 지명을 비교해 보자.
패서13진, 패서도 등 패수의 서쪽이 북계가된다. 한반도에는 대동강 서쪽이 황해바다가 있을 뿐이다.
대륙에 있던 고구려의 패수는 황하에 합류되는 위수이다.
그리하여 청해성이 서해도가 되며 서해도의 해주가 청해성의 서녕시가 되는 것이다.
1. 서경 유수관 평양부
당요 무진년 신인 단군이 나라를 건국하고 조선이라 하였으며 평양에 도읍을 정했다.
고구려 장수왕 15년 국내성으로 부터 도읍을 옮겨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으며, 보장왕 27년 고구려의 멸망으로 신라 의 땅이 되었고, 고려 태조 원년 평양이 황폐하여 염주, 백주, 황주, 해주, 봉주등지의 백성을 이주시키고 대도호부로 만들었다가 얼마후 서경이라 하였고 성종 14년 서경유수라 불렀다.
목종 원년에는 또 호경으로 고쳤고 문종 16년 다시 서경 류수관이라 하고 그 직할 하에 4개 도를 설치 하였다.
인종 13년 서경의 중 묘청, 류감및 분사시랑 조광등이 반란을 이르켜 절령길을 차단 하였으므로 원수 김부식등이 이를 진압하였다.
얼마후 직할하의 경기 4개도를 없애고 6개의 현을 설치 하였다.
원종 10년에 서북면 병마사영 기관 최 탄과 삼화교위 이 영령등이 반란을 이르켜 류수를 죽이고 서경과 여러 성을 가지고 몽고에 투항 하여 몽고는 서경을 동령부로 만들어 자비령을 경계로 만들었다. 충령왕 16년 원나라가 서경과 여러성을 돌려 주었으므로 다시 서경류수관으로 고쳤고 공민왕 18년 만호부를 두었고 후에 평양부로 고쳤다.
여기에 대동강(패강 또는 왕성강이라고 한다, 이강의 하류는 궤진 익수로 되어있다.),
대성산(구룡산 또는 료양산이라고도 한다, 산마루에 3개의 연못이 있다.),
2 개의 옛 성터(하나는 기자 때에 쌓은 것으로 성안에는 구역을 구분하여 정전제를 실시하였고, 다른 하나는 고려 성종때 쌓은것이다.),
아래 지도가 대동강의 위치를 보여준다.

-주-
대동강을 설명하는 특이한 기록이 눈에 뛴다.
궤진익수- 대동강의 하류는 궤진익수(氿津溺水)로 되어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인 즉 하류가 황하에 궤져있다는 말로 황하에
합류된다는 우리말 표현이다. (氿;샘 궤, 溺;빠질 익)
얼마나 기가막힌 기록인가?
대륙의 물에 대한 기록의 원전인 상흠의 水經에
대동강 즉 패수浿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臨浿縣 東入于海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는 표현으로 과거 많은 학자들이 서를 동으로 잘못 적었느니 하면서 논란이 많았다.
패수가 대륙의 황하와 합류되어 동해바다로 들어가니 東入于海가 맞는 것이다.
*"청일통지"의 기록에 의하면 "패수는 조선국 평양성의 동쪽에 있는데 일명 대통하라고 한다. 가운데에 조천석이 있는데 당나라 소정방이 패수에서 군사를 격파하였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이다." 하였다.
*"대통하"는 청해의 서북 <아목니니고>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간니 대통하>이며 <화석특 좌익두기> 북쪽 좌우의 물을 모두 받아, 동남으로 방향을 틀어 대통현을 경유하여 감숙성으로 들어온다. 영등현 서쪽에서 동남으로 흘러 황수에 들어오고, 이 황수는 다시 황하에 합류하는 하천을 말하는데, 이러한 하천을 패수라고 했다.
바로 대륙의 장안성(서안, 서경,평양성)을 흐르는 위하(渭河)가 동쪽으로 흘러 황하와 합류하고 결국 동해바다로 들어간다.

대륙의 섬서성 지도이다.
붉은 부분 하단에 한수가 흐르고 있다.
그 한수 조금위에 진령산맥이 있다.
그 진령산맥에 태백산과 태백시가 있다. 한수의 발원지이다.
그옆에 수양산이 있고 장안이란 도시가 있다.
옛날 우리는 서울을 장안이라고 불렀는데 한반도에는 서울만 남고 대륙에는 장안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한수가 흐르는 곳에 안강이라는 도시가 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 속한 군현에 안강安康이란 지명이 나온다.
똑같은 지명이 이곳에 있다.
첫댓글 대한민국에 지금 중국 지명(地名)과 유사한게 많은데,동이족(東夷族)인 선조님들이 지금의 중국땅에서 살다 전쟁을 피해 또는 나라를 잃고 한반도로 이주하여 옛 고향을 그리워하여 또는 옛 고향을 잊지 말고 살라고 또는 힘이 없으면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나서 살게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하여 지명(地名)을 남겼던것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