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고린도는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중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도시입니다. 당시 고린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리적 위치와 상업적 중요성
* 항구 도시: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고린도 지협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동쪽에는 겐그레아 항, 서쪽에는 레기움 항이 있어 동서양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 교통의 요충지:
육로와 해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어 수많은 상인과 여행객이 왕래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가 혼재하는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2. 도덕적, 종교적 배경
* 우상 숭배와 성적 타락:
고린도는 아프로디테(로마의 비너스) 여신을 숭배하는 우상의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약 1,000여 명의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창녀 역할도 겸하여 종교적인 매음이 만연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하고 방탕한 도시로 악명이 높았으며, "고린도 사람이 된다"는 말은 성적으로 부도덕하다는 의미로 통용될 정도였습니다.
* 지적인 자부심:
아테네만큼은 아니었지만, 고린도 역시 헬라 철학과 수사학에 관심이 많아 학자들이 모여들고 학교가 번성하는 등 지적인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3. 사도 바울의 고린도 사역 (사도행전 18장)
* 장기간 체류: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 아덴(아테네)을 떠나 고린도로 와서 약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선교 사역 중 상당히 긴 기간에 해당합니다.
* 자비량 선교: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생업인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자비량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이때 로마에서 추방령으로 고린도에 온 유대인 부부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함께 동역했습니다.
* 유대인들의 반대와 이방인 전도: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의 강한 저항과 비방에 부딪혔습니다. 이에 바울은 옷을 털며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고 이방인에게로 향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가족이 주를 믿고 세례를 받는 등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 주님의 격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 사역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주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계속 말하라. 침묵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9-10). 이 말씀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을 계속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 갈리오 총독의 판결:
유대인들이 바울을 아가야 총독 갈리오에게 고소했지만, 갈리오는 종교적인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바울을 풀어주어 바울의 사역에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습니다.
4. 고린도 교회의 특징과 고린도전서, 후서와의 연관성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고린도의 배경 속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고린도전서, 후서)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 교회 내 분열:
지적인 자부심과 다양한 문화 배경으로 인해 교회 안에 분쟁과 분열이 있었습니다.
* 성적 부도덕:
고린도의 타락한 문화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서도 성적인 문제와 무질서가 발생했습니다.
* 은사 남용:
성령의 은사가 풍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은사를 무질서하게 사용하거나 자랑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방언에 대한 이해와 사용에 있어 문제가 많았습니다.
* 부활 논쟁:
부활에 대한 비성경적인 관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5. 결론
결론적으로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고린도는 상업적으로 번영했으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국제 도시였으며,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동시에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경험한 중요한 선교지였습니다. 이러한 고린도의 특성은 이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들(고린도전서, 후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