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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예의 정의
서예는 화선지에 먹물을 적신 붓으로 점과 선을 결합하고, 붓을 당기거나 밀거나 혹은 누르거나 들면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고 더디게 동작하느냐 에 따라 다양한 동태미를 나타낸다.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조형예술로, 고도의 기능적 숙련에 의한 점과 선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낸다. 붓이 한번 움직인 필획에는 길고 짧음의 대비와 굵고 가는선이 있고 굽거나 꺽이는 곳이 있으며, 절제된 것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한 것도 있다. 먹의 색깔 또한 짙음과 옅음,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등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면서 문자의 실용적인 형태에 속박되지 않고 주관적인 감정을 형상화 하여 자기의 독창성을 발현하고 그 속에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서예작품은 자연스러운 마음과 훌륭한 인품에서 우러나온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기인(其人)'이란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덕 등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서예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한 기술이나 기교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고 우선 스스로의 인격함양에 힘써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예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다른 어떤 예술장르보다 작가 자신의 인격 수양이 크게 요구되며, 가장 중요한 예술적 요인이 된다.
Ⅱ. 서예의 특성
한자는 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원시적인 그림문자가 점점 모양과 상태가 바뀌면서 실용화, 예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예는 문자를 아름답게 꾸민 예술로 인식되어 지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한자는 우주자연의 이치에서 출발하였고,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마다 의상(意象)이나 미적인 아름다운 요소를 생성할 때부터 함축하고 있었다. 또한 구조가 복잡하고 자수가 많으며 자형의 변화가 심하고, 같은 글자라도 다른 서체로 쓰면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문자에서 볼수 없는 심미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서예는 문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서법이라는 일정하고 엄격한 규율이 있다, 붓의 움직임이 빠르고 느림에 따라 표현의 효과는 달라지며, 먹은 단순한 검정색으로 볼 수있지만 붓놀림의 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색채로 변화하며 신비한 효과를 가져온다.
서예의 또 다른 특성은 일회성에 있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결코 덧칠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회성은 다시 덧칠하지 않은 획 그 자체이며, 그렇기에 서예는 골똘히 생각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써 내려가는 순간성과 즉흥성을 지닌다.
Ⅲ. 서예의 의의
글로벌시대의 가속화로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정서를 순화하고 정신의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서예에서 찾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서예는 단순히 문자를 이용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담아냄으로써 인격도야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유례없는 예술이다.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이 담긴 전통예술이며, 그 속에는 우리조상들의 삶과 학문, 성정이 배어있고, 치열한 정신과 풍성한 감수성이 형상화 되어있다. 이러한 서예의 우수성을 알고 이를 익힘으로써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깨닫고, 서예의 표현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은 물론 실용성도 추구하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들은 자칫 잊혀지기 쉬운 전통예술로서 서예를 자율적으로 표현, 감상하고 나아가 창작함으로써, 주체적 자아의식을 지닌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먹을 갈면서 심성을 다듬고, 화선지를 펼쳐 놓고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며, 붓을 움직여 중용을 깨우친다.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 나감으로써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하고, 쓰고 난 붓을 맑은물에 깨끗이 씻음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묘리를 느낄수 있다.
Ⅳ. 서예의 기원
한자는 일반적으로 중국 고대 제왕시대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전설에 불과하며, 최초의 서예라고 할 수있는 문자는 '갑골문(甲骨文)'이다. 이 문자는 3400여년전의 거북이 배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어서 '갑골문' 이라고 하는데, 칼을 사용하여 단단한 뼈위에 새긴 것으로 필획이 가늘고 강하며 자형은 여위고 길다. 글자의 크기는 각기 다르고 매우 강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붓에 의한 문자의 예술성 추구는 후한대(後漢代)부터 본격화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때에 한자가 전래되었으나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한사군을 통해 한 대(漢代)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부터이다.
Ⅴ. 서예의 변천
갑골문에 이어 주대(周代)에 들어서면서 문자의 형태는 청동기에 주조하여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로 '종정문(鐘鼎文)' 혹은 '금문(金文)' 이라고 하였다. 금문의 글자체는 갑골문과 비슷하지만 필획이 갑골문보다 굵고 웅장하며, 글자체의 구성 크기에도 균형이 잡히고 정연하다. 그리고 표현된 풍격은 장엄하면서 돈후하여 이미 상당한 예술성을 갖추었다.
춘추전국시기에 글자체는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제(齊)초(楚)· 연(燕)· 한(韓)·조(趙〕· 위(魏)등의 문자를 '육국고문(六國古文)'이라 하였다.
진대(秦代)에 들어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육국고문을 폐지하고 대전(大篆)을 기초로 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어 문자를 통일하였다. 소전은 식별하거나 쓰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규범화되었다. 서예에서는 대전과 소전을 통칭하여 '전서(篆書)'라고 한다.
진대(秦代)에는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처리하면서 간단하게 글을 쓰는 '예서(隸書)'가 형성되었으며, 서한(西漢)중기에 이르러 사회에 통행되는 정식 글자체가 되었다.
예서가 발전한 시기에 '초서(草書)'가 등장하였는데, 초서는 예서를 흘려 쓰는 방법으로 빨리 써서 필획과 필획이 연결되고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어 글자의 형상이 간단해 졌다.
위·진·남북조 시기에 예서의 기초 위에 다시 새로운 글자체가 발전하였는데 그것이 '해서(楷書)'이다.
이후 진대에 들어서며 해서와 초서의 중간으로 행서(行書)가 출현한다. 행서는 해서보다 자유롭고 빨리 쓸 수 있으며 편리하고 실용적인 글자체이다.
한자의 변천은 갑골문-금문-소전-예서-초서-해서-행서 순이며 이것은 서예의 글자체 형성 과정이기도 하다.
Ⅵ.서체의 종류
1.갑골문(甲骨文)
갑골문(甲骨文) 이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으로, 한자의 초기형태에 해당된다. 발굴된 뼈의 연대는 기원전 1200년에서 1050년으로 은나라 말기의 것들이다. 갑골의 '甲(갑)'은 거북의 배 껍질이고, '骨(골)'은 소의 어깨뼈나 넓적다리뼈이다. 그 밖에도 사슴두개골, 사슴뿔, 코뿔소, 호랑이뼈, 심지어는 사람 두개골 까지도 발견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1,000년 무렵 중국 고대 은상대(殷商代)때, 국가 중대사부터 모든 행위를 제사장이 천신이나 혹은 조상신에게 점을 치는 방법으로, 갑골에 구멍 같은 흠집을 내고 그것을 불에 올려놓고, 열로 인해 그 흠집으로부터 갈라진 방향에 따라 길흉을 판단했다. 주로 점을 친 후에 그 결과를 갑골에 기록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갑골문은 '복사(卜辭)'라고도 불리고, 칼로 새겨놓았기 때문에 '계문(契文)'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이 처음 발견된 곳이 은나라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 은허문자(殷墟文字) '라고도 한다.
형태는 매우 상형적(象形的)으로 필획이 가늘기는 하지만 둥근원형의 획과 방형의 획으로 장중한 느낌이 들며 획이 굵고 가늠이 조화를 이룬다. 필획은 방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원형인 것은 구불구불 은근히 구르면서 자연스러워 도무지 칼로 새긴 것 같지가 않으며, 서예의 시각으로 보면 크게 웅장하고 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이미 모필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1929년에 발견된 3편의 수골에는 먹물과 붓으로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채 새기지 못한 서사문자가 적혀 있었다.
2 金文 (금문)
금문은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이다. 이로 인해 금문의 다른 명칭으로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물인 '종(鐘) '이나 '솥(鼎:정) '의 이름에서 유래해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종(鐘)'은 대들보에 매달고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일종이며, ' 정(鼎)'은 제사때 쓰는 그릇으로 세발과 두개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향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중국 고대 주나라 시절의 유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이전 왕조인 은나라에서 사용된 금문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후대 철기시대인 한나라 때까지 금문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거의 천년에 가까운 사용시기로 인해 다양한 서체의 특징을 보인다. 기물에 새겨진 내용으로는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표시하거나 주조된 연원이나 기물의 주인등을 표시했고, 또한 당시의 상황인 전쟁이나 제례, 계약 등을 기록하고 있다. 금문의 특징으로는,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의 틀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었기에 명확하게 글자가 보여지기 위하여 글자가 크고 굵어야만 했다. 그래서 가늘고 긴서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갑골문 보다 금문은 넓고 굵다. 또한 갑골문에 비해 금문은 회화적 요소로부터 점차 문자로서의 특징을 지닌 기호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 점차 문자의 틀로 발전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는 <모공정(毛公鼎)>과 <산씨반(散氏盤)>등 이 있다.
3 전서(篆書)
'전서(篆書)'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구분되며, 소전을 일반적으로 '전서'라고 한다. '소전'은 '진시황(秦始皇)'이 승상인 '이사(李斯)'에게 지시하여 이전의 문자들을 한데 모아 통일시켜 만든 문자이다.
'소전'의 특징은 인위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서체가 거의 획일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소전'은 자형 자체가 '대전'격인 '갑골문'이나 '금문'보다 상당하게 상형의 회화적 성격을 탈피하고 문자의 기호적 성격으로 전환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진의 흥망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던 소전이었기에, 사용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고 새로운 서체인 '예서(隸書)'가 등장하게 된다.
소전(小篆)의 대표적 작품은 <태산각석(泰山刻石)>과 <낭아대각석(瑯牙臺刻石)>이 있다.
4 예서(隸書)
진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뒤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공문서등이 증가하면서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예서'이다. 상형의 회화적 요소를 벗어버리고 문자의 기호적 요소가 완성되어 현대 한자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가 있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년을 연구하여 예서 3,000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예(隸)'자를 따서 지었다.
예서에서 '파책'이 없이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고 한다. 파책은 예서를 쓸때 가로획을 긋다가 획의 마지막 단계에서 붓을 누르면서 조금씩 내리다가 오른쪽 위로 튕기면서 붓을 떼는 방법으로 예서만이 가지고 있는 가로획의 특징이다. 예서의 출현은 상형적 회화요소의 고대문자의 틀을 벗어 내고 새로운 문자의 규격을 이루게 되는데 실제 이후에 등장한 서체의 규범이라고 하는 '해서(楷書)'의 자형도 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한자 자형의 전형은 예서에서 갖추어 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서의 대표적인 법첩으로는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사신비(史晨碑)><조전비(曺全碑)> <장천비(張遷碑)> 등이 있다.
5. 해서(楷書)
중국 후한시대 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해서는 '해〔楷〕'자가 '본보기'나 '모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듯이 표준으로 삼을 만한 서체라는 뜻이다. 위〔委〕·진〔晉〕,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는 동진의 <왕희지>, 당나라의 <구양순>이나 <안진경>등이 등장하면서 서체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예서에서 발전된 해서체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예서체 자형의 전체 윤곽이 다소 가로로 퍼진 형태라고 하면 해서는 다소 세로로 퍼진 형태를 지닌다. 모범적인 표준의 서체로 ′정서〔正書〕′혹은 ′진서〔眞書〕′의 명칭으로도 불리는 해서는 바른 한자자형의 전형으로 방정한 예술미와 함께 현재에도 꾸준히 서예교습의 기본서체로 애용되고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도문6) <장맹룡비〔張猛龍碑〕> <〔안근례비顔勤禮碑〕> 등이 있다.
6. 행서〔行書〕
규격체로 인하여 쓰기에 비능률적인 '해서'의 단점과 지나친 간략화로 읽기가 난해한 '초서'의 단점을 함께 보완하고자 생겨난 서체가 바로 '행서〔行書〕'이다.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해서'와 '초서'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서가 서체의 종류 가운데 가장 흘려 쓴 형태이기 때문에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규격체에서 흘림체로 변천하는 과정으로 볼 때 초서가 가장 마지막 단계의 서체로 보여져서 발생시기도 초서가 가장 후대의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제일 나중에 생겨난 서체는 '행서'이다. 후한말기부터 시작되어, 진〔晉〕의〈왕희지>가 등장하면서 확고한 틀이 완성된 행서는 해서의 필기체 형태를 띠고 있어 초서처럼 획을 연결해 쓰면서도 지나친 간략화를 하지 않아 쓰기 쉽고 보기 좋은 두 가지 양상을 모두 해결 했다고 볼 수있다. 후한초의 유덕승<〔劉德昇〕>에게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대표작으로는 행서의 특징인 표현의 다양성과 형태의 변화감을 느낄수 있는 〈왕희지〔王羲之〕>의「난정서〔蘭亭序〕」(도문7)가 있다.
7. 초서〔草書〕
예서가 지닌 혁신성이 감소되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신속하게 문자를 쓸 필요가 생겨났으며 이에 초서가 등장하였다. 명칭은 극도로 흘려서 쓴 서체라는 의미로 '초서〔草書〕'라고 하였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의 단점인 서체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도로 흘려서 빠르고 간단하게 쓴 서체를 생각해 낸 것이다. 현재 초서는 지나치게 간략화하여 흘려 쓰게 된 결과 해독의 어려움을 가져와 실용성은 상실한 상태이나 문자로서의 실용성을 넘어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발전 하였다. ′설문해자 서문′에 ′한조가 부흥하자 초서가 나왔다′는 서술에서 보듯이 예서가 한창 번성하던 한나라시대에 등장하였는데, 진말한초〔秦末漢初〕초기의〈장초〔章草〕〉로 부터, 동진시대의〈금초〔今草〕〉, 당나라 때의 〈광초〔狂草〕〉까지 다양하게 발전을 거듭 하였다.
7-1. 장초〔章草〕
장초(도문8)는 예서로부터 발전하여 이루어진 서체로서 예서에 가까운 초서이다. 장초를 예서와 비교해 보면 장초의 용필은 예서를 답습한 것이므로 가로획의 끝은 위로 치켜 올려지고 왼쪽의 삐침과 오른쪽의 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각 글자마다 필획 가운데 이미 휘감아 이끄는 필법이 있어서 금초〔今草〕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필세에 기초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장초의 가로ㆍ세로획은 예서와 같고, 필획이 휘감기며 이어지는 것은 금초와 같으니 이것이 장초의 기본 법식이다. 게다가 장초는 필획이 평정하여 금초와 같이 비뚤게 기울어져 형세를 취하지는 않으니, 필법에 예서의 근원을 갖고 있어서 질박하고 혼후한 면모를 포함하고 있다.
7-2. 금초〔今草〕
금초〔今草〕(도문9)는 후한에서 동진시대에 이르면서 장초의 점과 획 그리고 파책을 생략하고 덜어내어 독자적인 서체의 틀을 완성하였다. 전한〔前漢〕의 '장지〔張芝〕'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문자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창조할 수 없듯이, '장지' 또한 예외는 아니다. '금초〔今草〕'는 한글자씩 띄어 쓰는 '독초체〔獨草體〕'와 붓을 떼지 않고 계속 연결하여 쓰는 '연면체〔連綿體〕'로 나누어진다. 현재의 일반적으로 쓰는 초서체로 보면 된다.
7-3. 광초〔狂草〕
광초〔狂草〕(도문10) 는 마치 미친듯 거의 끊어짐 없이 이어서 쓰는 형식으로, ' 대초〔大草〕'혹은 '연면초〔連綿草〕'라고 한다. 결자〔結字〕상에서 보면 글자마다 독립된 경계를 두지 않고, 연결된 선과 필획은 결코 구분됨이 없다. 간편하고 쾌속하기 때문에 자체는 이어지고, 이어지는 과정 중에 리듬감을 크게 표현 하였다. 자형의 구속력이 비교적 작기때문에 정서의 표현도 자유자재하며, 점획으로써 자태를 이룬 초서는 추상적 작용이 더욱 강렬하다. 당대〔唐代〕의 장욱〔張旭〕과 회소〔懷素〕가 특히 자유분방한 광초〔狂草〕를 잘 썼으며 두 사람 모두가 술에 취한 채로 글씨 쓰기를 좋아해서 세간에서는 '미치광이 장과 술꾼 소'라는 뜻으로 전장취소〔顚張醉素〕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광초를 일컬어 취초〔醉草〕라고도 한다.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예술경지에 이룬다.
이처럼 한자서예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전〔篆〕예〔隸〕초〔草〕해〔楷〕행〔行〕등 5체를 완비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동양 특유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8. 한 글
한문서예에 비하여 한글서예의 역사는 매우 짧다. 또한 문자의 구조가 단순하여 추상성과 상징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문자형태에 알맞은 독특한 조형원리로 예술성을 창출해 낸 것은 선진들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글서예는 궁체와 판본체로 나뉘어지며, 궁체는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8-1. 고체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둥근점 모양을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도문11)등이 있으며, 판본에 쓰인 자형의 글씨로써 ′판본체′ 또는 훈민정음을 본받아 쓰인 글씨라 하여 ′정음체〔正音體〕′라고도 한다.
8-2. 판각화
한글을 보급하기 위하여는 책이 필요하게 되었고, 책을 찍어내기 위하여 목판본(도문12)이 만들어졌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역과 판각자 개인의 성향으로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 되었다.
8-3. 궁체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한글을 사용하여왔다.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의 궁녀들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편지를 쓰는 일과 왕실 내 필요한 여러 가지 글들을 썼다. 왕실의 명령에 의해 쓰는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엄정하고 품위 있는 글씨를 써야했고 오랜 기간의 습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궁체의 형태와 선질이 유려하고 단아한 모습은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궁체정자(도문13)는 한자의 해서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8-4. 궁체흘림
궁체흘림(도문14)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 되었다.
Ⅶ. 서예의 장르
1전각〔篆刻〕
전각(도문15)은 중국의 상주〔商周〕시대 때, 새〔璽〕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여 한〔漢〕나라에 들어서면서 비로서 인장〔印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뒤에 명나라에 이르러 전각작가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장을 사용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 추사선생이 금석학의 연구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새기는 작업으로는, 인장에 새길 바닥면에 우선 글을 써서 배치하고, 칼을 사용하여 문장을 새긴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을 하기 위해서는 서예와 새김 기법에 모두 능숙해야 한다. 또한, 전각은 서화등의 작품을 완성한 다음, 본인임을 확인하는 도장의 용도로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落款〔낙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종류별로는' 성명인'으로 이름을 음각으로 새긴것이다. 작품에 찍힌 글자부분이 희게 나타나므로 '백문'이라 한다. 아호를 새긴 '호인'은 양각으로써 글씨에 인주가 묻어 붉게 찍히므로' 주문'이라고도 한다. '두인'은 '수인'이라 하며 작품의 오른쪽 위에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찍는 도장이다. 그 외에 좋아하는 글귀를 조각한 '사구인', 책의 보관을 위해 조각한 '수장인', 사람, 새, 물고기 등 동물모양을 전각한 '초형인'등이 있다.
2. 서각〔書刻〕
서각이란 문자를 나무와 돌등에 칼을 이용하여 새기는 것으로 고도의 숙련된 기능과 장인정신이 있어야 하며 서화에 병칭될 만큼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조상의 얼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이다.
서각의 종류를 몇 가지 분류로 나눠 살펴 보면, 양식에 따라 전통서각・현대서각, 형식에 따라 환서각・판서각・투서각, 형상에 따라 구상・반구상・추상, 각법에 따라 양각・음각・음양각・음평각, 재료에 따라 목서각・석서각・철서각・토서각(테라코타)・포리코트서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각과 서각의 차이점을 보면, 조각은 건축에, 서각은 서예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조각의 주체는 인체・동물・추상물 등이며 서각은 문자이다. 또한 조각은 사물의 모양・표정 등을 중시하고 서각은 문자의 선질〔線質〕・점〔點)과 획〔劃〕을 중시한다.
전통서각〔傳統書刻〕은 과거의 각자〔刻字〕기법으로 전승돼 온 것으로 서체를 새김에 있어 문자의 입체적인 조형미 보다는 필의〔筆意〕를 도의〔刀意〕로 옮기는 것을 더 중요시 했다. 반면 현대서각〔現代書刻〕 은 기존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통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을 시도 개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현대서각은 입체본래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서〔書〕의 새로운 입체 예술이다. 서각은 문자를 매개로한 서예적인 것 이외에도 칼의 움직임에서 오는 조각적인 것과 색채 가미에 의한 회화적인 것, 그리고 다듬고 가공하는 데서 오는 공예적인 것등을 두루 갖춘 예술이다. 또한 옛 것을 익혀 현대의 감각과 기법으로 재창조함으로서 새로운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활자의 발명 이전에는 주로 나무에 판각을 하여 책을 만들었으므로 서각은 우리의 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인쇄매체로서 뿐만 아니라 건축의 현판, 주련등에 이용 되면서 실로 광범위하게 기록의 역사와 함께 장식의 예술로 이어져 왔다.
Ⅷ. 글씨와 서예의 차이
글씨를 쓰는 것은 실용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서예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각각 실용성과 예술성의 특징을 공유하고 둘다 문자를 빌려 글씨를 쓰나 특성과 창조성이 다르다. 하나는 실용미를 추구하여 발전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술미를 추구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 예술미의 일면은 먼저 문자의 조형과 규율을 흐트리지 않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감정의 동태와 사상의 조화를 이루어 법을 타파하여 의를 얻게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펴내어 글자의 기세와 풍모로 하여금 예술미와 매력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갖게 하는 것이다.
Ⅸ. 서예의 규율적 요소
서예에는 행동의 준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붓 잡는 법, 팔을 운용하는 법, 붓을 운용하는 법, 먹을 사용하는 법, 글자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법, 운치를 나타내는 법등이 있다.
1. 필법〔筆法〕
글자의 점과 획을 그을때 붓을 움직이는 법이다. 이것은 붓을 잡는 '집필'과 붓을 움직이는 '용필'로 나뉘는데, '집필법'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법〔指法〕인 '단구법' '쌍구법' '오지집필법'이 있으며, 팔을 사용하는 완법〔腕法〕인 '침완법' '제완법' '현완법'이 있다. '용필'은 기필, 수필, 원필, 방필, 중봉, 측봉, 로봉, 장봉, 제안, 전절 등이 있다.
1-1. 단구법〔單鉤法〕
엄지손가락과 식지〔食指:둘째손가락〕사이에 붓을 쥐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받쳐주며 나머지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하고, 붓대의 중간보다 아래를 쥐며 지면에 대하여 수직으로 하여야 하며, 엄지손가락과 식지는 앞으로 당기는데 이용하며, 가운데손가락은 미는데 사용한다. 평상시 연필을 쥐는 방법이다.
1-2. 쌍구법〔雙鉤法〕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을 나란히 한 후 관절을 꺾어 붓의 오른쪽 위에 대고 손가락 사이를 벌려준다, 엄지는 붓의 왼쪽에서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의 위치에 대고 힘있게 잡은후 안으로부터 받치며, 붓대의 중간쯤을 쥐고 잡은 붓은 수직이어야 한다. 이때 무명지〔無名指: 넷째손가락〕는 안쪽에 대어 밖으로 밀어주며 소지〔小指:다섯째손가락〕는 무명지 밑에 겹치듯 댄다.
1-3. 발등법〔撥登法〕
다섯 손가락의 특징을 활용해서 집필하는 것으로, 특히 이 방법은 각 손가락의 역량이 고루 발휘된다는 의미에서 오지제력법〔五指齊力法〕이라고도 한다. 집필요령은 먼저 엄지와 식지의 관절을 꺾어서 붓대를 잡은 다음 중지는 식지에 붙여 나란히대고 무명지〔無名指〕와 소지〔小指〕는 붓대 안쪽에 대어준다. 이때, 다섯 손가락의 관절은 모두가 꺾이게 되며, 그래서 엄지와 식지가 이루는 공간은 둥글게 된다. 특히 엄지의 관절은 반드시 꺾여져야한다. 왜냐하면 이에따라 다른 손가락의 관절작용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이다. 집필의 요체로서 허장실지〔虛掌實指〕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오지제력〔五指齊力〕으로 필관을 잡았을 때 손바닥 안에 달걀하나가 들어갈 만한 상태의 집필을 가리키는 것인데, 손바닥 안은 비고 손가락의 힘은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허장실지는 몸의 힘을 손끝에 모으는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집필법에 있어서도 이 원리만은 공통적인 것이 되어있다. 따라서 이 손가락의 작용이라는 것도 실은 손가락 그 자체의 힘이라기 보다 팔과 온몸에서 생기는 것이다.
1-4. 枕腕法〔침완법〕
왼쪽 손을 붓을 잡은 오른쪽 손목에 받치고 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팔의 힘이 필봉〔筆鋒〕까지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작은 글을 쓸 때 적용이 된다.
1-5. 提腕法〔제완법〕
오른쪽 팔뚝을 책상에 대고 팔목 부분을 들어서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작은 자와 중간정도의 크기의 글씨를 쓸 때 적용이 된다.
1-6. 懸腕法〔현완법〕
팔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팔이 사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온몸의 힘이 손가락을 통해 붓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무리 큰 글자 라도 소화할 수가 있게 된다.
집필 할 때는, 일단 잡은 붓은 고쳐 잡지 말아야 하며 특히 붓을 잡은 손가락으로 붓대를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운필은 팔이 행하는 것으로 어깨 힘의 가감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손목은 팔을 통해서 오는 상박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동작을 하여야 하는데 자칫 팔이나 상박부는 움직이지 않고 손목만으로 붓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1-7.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기필〔起筆〕이란 한 획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며, 획을 그을 때 반드시 역입을 하여 붓끝이 획밖으로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하며, 수필〔收筆〕이란 한 획의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끝에 이르러서 그어 오던 쪽을 향해 회봉〔回鋒)시켜 수필〔收筆〕하는 것이다.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은 그 점획의 형상을 결정 지우는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1-8. 제필〔提筆〕과 돈필〔頓筆, 按筆〕
서예는 한마디로 붓의 변화 과정이다. 곧 붓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 제〔提:끌거나〕, 혹은 돈〔頓:누르는 것〕을 교체해 가며 진행된다. 이 원리를 인식하고, 제〔提〕와 돈〔頓〕의 방법에 주의한다는 것은 곧 필세〔筆勢〕가 영활한 기운을 띠게 되는데 필요한 것이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제〔提〕하면 돈〔頓〕해야 하고, 돈〔頓〕한 다음에는 반드시 제〔提)해야 하는 이 변화는 마음이 거느리는 바에 의해 대단히 빠른 가운데 팔의 운동을 거쳐 필봉〔筆鋒〕에 이르러야 한다.
1-9. 경〔輕〕과 중〔重〕
점획의 경〔輕:가벼움〕과 중〔重:무거움〕은 제〔提〕와 돈〔頓〕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붓을 화선지에 닿게 함에 있어, 가볍게 하면 나타나는 점획이 가늘고, 무거우면 점획이 굵은 것은 당연하다. 경중〔輕重〕과 제안〔提按〕이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르나, 양자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곧 제안〔提按〕은 점획간의 기필〔起筆〕과 행필〔行筆)과 수필〔收筆〕에 있어서, 용력〔用力〕에 따라 조세〔粗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은 점획의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비첩〔碑帖〕의 풍격과 특징까지도 표현되는 것이다.
서예는 용필의 경중에 따라 각기 특징을 지니는 것이어서, 모든 작품에서 느낌도 달리 한다.
1-10. 전〔轉)과 절〔折)
'전〔轉〕'이란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거나 뿔이 나지 않는 필획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때 손가락으로 필관〔筆管〕을 굴리지 않아야 한다. 전〔轉)에 비해 '절〔折〕'은 방적〔方的〕 점획을 만드는 용필법〔用筆法〕으로서 한 획의 중간에서 소위 '일필삼과〔一筆三過〕'라 하여, 관절의 작용으로 꺾는 것이 있기는 하나, 주로 한 획의 시작과 마무리 때의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인다.
절필〔折筆〕의 방법은 필봉〔筆鋒〕이 왼쪽으로 가려면 먼저 오른쪽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이 먼저 닿아야 하며, 위로 가기 전에 아래를 먼저 대고, 아래로 쓰려면 위를 먼저 댄 다음에 쓰기 시작해야 하는 법으로, 이것이 곧 '역입〔逆入〕의 원칙'이다. 그러나 절필〔折筆〕의 중점은 눌렸다가 꺾는 데에 있다.
1-11. 방〔方〕과 원〔圓〕
방필의 필획에는 모가 나 있고, 원필은 각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기본 점획의 주된 특징은 방〔方〕이 아니면 원〔圓〕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方〕에 원〔圓〕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글씨는 분류의 원칙을 방〔方〕과 원〔圓〕으로 구분한다.
1-12.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장봉〔藏鋒〕'이란 원필〔圓筆〕의 경우처럼 봉〔鋒〕을 휩싸서 감추듯 기필〔起筆)하여 필획이 시작되는 곳과, 마무리되는 곳에 봉의 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필〔藏筆)의 방법으로서 기필에는 역봉〔逆鋒〕을, 수필에는 회봉〔回鋒〕을 한다. 이를 '역입도출〔逆入倒出〕'이라고 한다.
노봉〔露鋒〕'은 필법〔筆法〕에 있어서 장봉〔藏鋒〕과 반대 현상으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봉〔中鋒〕과 편봉〔偏鋒〕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노봉〔露鋒〕은 장봉과는 달리, 서선의 방향대로 붓을 대어서 필봉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노봉 이라고 한다. 한 획을 쓸 때 붓끝이 밖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인데,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쓸때 노봉이 나타난다. 또한 노봉은 작은 글자나 행 초서를 쓸때 많이 나타나게 된다. 노봉으로 쓴 글씨는 점과 획에 붓끝이 노출되고, 노출된 붓끝은 두 현상을 보인다. 곧 붓끝이 점과 획의 정중간에서 부터 나오는 것과, 점과 획의 한편으로 치우쳐서 나오는 것이 있다. 전자는 중봉〔中鋒〕인 경우여서 원경〔圓勁〕하며, 후자는 편봉〔偏鋒〕이어서 편약한 것이니, 전자가 좋은 것임은 당연하다. 원경〔圓勁〕한 노봉은 삐침, 파임, 꺾임등 획에서 삐칠 때 쓰이는 것으로, 반드시 중봉(中鋒〕이라야 하며, 노봉〔露鋒〕이 아무리 첨세〔尖細)하더라도 편획이 되지 않아야 한다.
1-13.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중봉〔中鋒〕'은 정봉〔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봉이란 행필〔行筆〕에 있어 필봉〔筆鋒〕이 획의 정중간을 점하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붓이 종이에 닿았을 때, 모든 털이 가지런히 펴진 다음 획이 가는 길의 정중간에서 필봉이 가도록 하는 것이 중봉〔中鋒〕이다.
모필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해서 원추체〔圓錐體〕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펴질 수 있고 모아질 수 있으며, 먹은 필첨〔筆尖〕을 따라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봉은 상하좌우로 고르게 스며, 퍼지고 호〔毫〕의 사면팔방이 모두 종이에 닿게 되어 원주형〔圓柱形〕의 필획을 이룬다.
측봉〔側鋒〕은 측〔側)으로 세〔勢〕를 취한다는 뜻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점〔點〕법은 측〔側〕법이 일컬었음에 비추어 '측봉〔側鋒〕'은 곧 점법〔點法〕으로 기필(〔起筆〕하는 것이니 '중봉〔中鋒〕'이 장봉원필〔藏鋒圓筆〕이라면 '측봉〔側鋒〕'은 노봉방필〔露鋒方筆〕이다.
'편봉'은 점획의 한곁으로 필봉이 기울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획을 그을때 필봉이 상단이나 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그을 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바른 것이된다. 그리고 수필에 회봉〔回鋒〕는 물론 되지 아니하려니와 호가 드러누은 그대로 들리고 만다.
편봉은 '병필〔病筆〕'과 '패필〔敗筆〕'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병필과 패필이란 점과 획 상의 병폐를 말하는 것으로, 초학자 뿐 아니라 상당히 조예가 있는 서예가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예가에 있을 때 병폐는 더욱 면하기 어렵다.
첫째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생각도 없이 점획을 써서는 안된다. 신중히 붓을 내리되, 낙필〔落筆〕한 다음에는 잠깐 쉬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행필〔行筆〕해야 한다.
둘째, 한 획을 쓸 때마다 필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령 삐칠 경우라면 힘을 들인다고 해서 필봉을 누르자마자 그대로 내리 삐치거나 하면 안 된다. 너무 빨리 사납게 하면 필관이 옆으로 누워 내려오게 되는 나머지, 삐친 획의 하반이 끊겨지고, 갑자기 가늘게 변해서 삐친 끝이 길게 노출된다. 이 현상을 '허첨〔虛尖〕'이라고 한다.
2. 필력〔筆力〕
붓을 움직여 획을 긋는 내재적인 힘을 말한다. 점과 획 사이, 획과 획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그리고 행과 행사이의 상호호응 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붓이 가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기세가 끊어져서는 안되며, 점과 획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그 필세는 항상 혼연일치 되어야한다.
-3. 필의〔筆意〕
글씨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과 취향을 가리킨다. 서예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법칙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심미적 정취가 하나가 되어 사상ㆍ감정 활동과 풍부한 상상 및 운필기교에 근거하여 서법의 조형이 각종의 동태를 드러나게 해서 지면에 생동하면서도 함축된 표정과 의취가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4. 묵법〔墨法〕
서예에서 중요한 기법의 하나이며 여기에는 농묵〔濃墨〕·담묵〔淡墨〕·간묵〔幹墨〕·갈묵〔渴墨〕·습묵〔濕墨〕·고묵〔枯墨〕·창묵〔漲墨〕등이 있다. 이것은 글씨를 쓰는 사람과 서체 및 용도에 따라서 작품의 광채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옛 사람은 글씨를 쓸 때 대부분 진한 먹을 사용하였으나 묽은 먹을 사용한 사람도 많았다. 송대의 서예가 소동파는 진한 먹을 잘 사용하여 '농묵재상〔濃墨宰相〕'이라 칭하였으며 청대의 서예가 왕몽루〔王夢樓〕는 묽은 먹을 사용하여 당시에 '담묵탐화지목〔淡墨探花之目〕'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현대에 있어서 일본에는 묽은 먹을 사용하는 서예가들이 많은데 이들의 시도하는 담묵의 표현 기법은 동양화의 먹색을 참고하여 촉촉한 것으로써 아름다움을 구하여 온아함과 세련됨을 나타내었고 구도의 경중을 충분히 이용하여 흑백대비의 예술효과를 이루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맛을 나타내었다. 물론 담묵을 예술적으로 잘 처리하기란 어려워 서예가의 예술적 소양과 기교를 바탕으로 대처해야 하며 꾸미거나 억지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성공한 서예가는 예술적 처리에 있어서 전후의 호응과 먹색의 윤택함과 운치를 맞추는데 매우 주의하였다. 훌륭한 작품들은 한번 먹을 묻혀서 몇자를 쓴 후 붓에 먹이 다하면 다시 먹을 찍어서 쓴 것을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다. 한 폭의 작품에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먹은 몇차례 묻히는데 불과하지만 먹색의 변화는 끊임없어서 건조함과 습함, 진함과 묽음을 돋보이게 한다.
Ⅹ. 서예의 감상법
서예의 심미관념〔審美觀念〕은 인격과 예술의 통일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인문정신의 발현이며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미적예술이다. 따라서 서예를 감상한다는 것은 사람의 사상, 정감, 취미, 심미안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서예는 회화와 같이 현실 중의 각종사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그러나 서예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점과 획의 구성은 매우 특수한 예술언어와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서예에 있어서, 하나의 획으로 어떤 사물의 형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사물의 형태와 동태적인 미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가가 창작을 할 때 무한히 다양한 객관적 현실 가운데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점과 획 그리고 형체에 집중적으로 표현시킴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감정을 이에 충분히 발설하는 것이다.
서예작품이란 글자들이 모여서 행〔行〕을 이루고, 행〔行〕들이 모여서 장〔章〕을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점은 한 획의 규범이 되며, 한 자가 한 작품의 부분적인 미가 전체적인 미에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체의 구성을 장법〔章法〕이라고 하는데 그림으로 말하자면 구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문자를 조화롭게 배열 또는 배자하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꾸미는 것을 말하는데 이 뿐만이 아니라 최종적인 낙관을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서예는 이미 정형화된 문자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는 모양뒤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필획에 중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나 역감〔力感〕의 현상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역감〔力感〕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力感〕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필획에는 생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역감중〔力感中〕의 역〔力〕은 서예를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역감〔力感〕이란, 필력〔筆力〕· 골력〔力〕· 근력〔筋力〕· 역도〔力度〕등을 말하는 것인데 글자에는 인체와 같이 뼈, 살, 힘줄, 피가 모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글씨란 사람의 인체조직과 같아서 4가지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져야 한다.
골〔骨〕은, 필획 중에서 힘을 나타낼 수있는 골격을 뜻함이고, 운필을 할 때 중봉으로 글씨가 이루어지게 하며 역봉을 할 때에는 절필을 하여 글씨에서 뼈대가 나타나는 듯하게 쓰는 방법이다.
육〔肉〕은, 먹물의 농담을 비유하여 선의 굵고 가늚, 즉 살찌고 마름을 말하는 것인데, 필봉에 함묵시키는 먹물의 양을 적당히 하여 용필을 해야 살이 알맞게 쪄보이는 서선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먹물의 함묵량에 관계가 있는 것인데 먹물이 너무 많이 함묵되어도 적게 되어도 좋지 않다.
근〔筋〕은, 글자끼리나 획끼리는 기맥이 상통하도록 해야하는데 이것을 사람의 몸으로 보면 힘줄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둔필할 때는 붓을 아주 정지하거나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혈〔血〕은, 필획이 윤택하고 생기가 있어야 하므로 먹물의 신선함을 피에 비유한 것이다. 먹물은 글자쓰기에서 글자의 피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기있고 윤기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먹물의 농도 맞추기를 잘 하여야 한다.
행서나 초서는 한 글자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글자와 저 글자 도는 이 줄과 저 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겨진 필력·필세·필의·성기고 빽빽한 것·긴장되고 해이한 것·균형·서로의 획들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하며, 필묵이 있는 곳에서부터 없는 곳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종합하면 한 폭의 서예작품에는 반드시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의 간격과 대소 획들을 적절히 배합시키고, 먹의 농담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신축성을 고려하여 전체가 일맥상통하게 하여야만 진정한 예술효과가 발휘되는 것이다.
좋은작품에는 필법〔筆法〕·묵법〔墨法〕·장법〔章法〕·기운〔氣韻〕등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 특히 먹빛의 효능은 서예를 평가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좋은 글씨를 썼다 하더라도 먹빛이 영롱치 않고 담백한 맛이 없다면 품격이 있는 작품으로 볼 수가 없다. 선현들은′묵색판단〔墨色判斷〕′이라 하여 글씨를 쓰게 한 연후에 그 필세와 먹빛을 보고 그 사람의 길흉과 운명을 판단하였다고 하니 가히 그 중요성이 어떠한가를 짐작 할 수가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다른 사람의 약점만을 들추지 말고 장점을 흡수하여야 한다. 간혹, 글꼴은 안중에도 없고 오자 찾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오자가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러한 것이 서예의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서예는 읽는 예술이 아니라 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편견은 결코 예술평가의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으며,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품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니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Ⅺ. 서예 도구의 사용
서예를 함에 있어 도구는 붓, 먹, 벼루, 화전지 네가지로 간단하다,
이를 가리켜 문방사우 또는 문방사보라고 한다. 전문서예가나 서예를 배우려고 하는 초보자도 더 이상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1. 붓〔筆〕
문헌에 의하면 붓을 처음 만든 사람은 몽염이라는 진〔秦〕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중국은대〔殷代〕에 이미 모필〔毛筆〕로 쓴 도기의 조각이 발견되므로써 몽염 이전 시대에도 붓의 형태를 지닌 것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붓은 서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해 서예에 사용되는 붓은 정원〔正圓〕이다. 원추〔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용력과 반작용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선질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붓은 길고 유연하며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
모필의 재료는 동물의 털을 이용한다. 주로 쓰이는 것은 양털〔양호羊毫〕 토끼털〔자호紫毫〕이며, 말갈기털〔종모鬃毛〕 늑대털〔낭호狼毫〕 닭털〔계호鷄毫〕 쥐수염〔서수鼠鬚〕과 다른 짐승털을 겸한것〔겸호兼毫〕등이 있다.
붓대는 대부분 대나무을 사용하며 붓의 굵기에 따라 극대필부터 미세필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붓털의 길이에 따라서는 장봉, 중봉 ,단봉으로 나누어진다.
붓의 강한 정도에 따라서는 강호〔强豪-털의 성질이 강한 붓〕, 유호〔柔豪-털이 부드러운 것〕, 겸호〔兼豪-강한 털을 붓의 가운데에 넣고 두 종류 이상의 털을 섞어서 만든 것〕로 나눈다. 초보자에게는 겸호가 가장 적합하다.
붓을 선택 할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면 좋은 붓이라 할 수있다.
-.원〔圓〕: 붓끝주위가 풍만하고 원추상태이며, 편평하지 않고 여위지 않 은 것.
-.첨〔尖〕: 붓끝을 합쳐보면 뽀쪽하여 뭉퉁하지 않는것.
-.제〔齊〕: 붓끝을 평평하게 편후 끝의 털이 가지런 한 것. -.건〔健〕: 붓끝에 탄력이 있어 붓끝이 펴진 후에도 잘 모아지고, 붓털이 굽었다가도 쉽게 원래대로 곧게 회복되는 것.
2. 화선지〔紙〕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B.C.4000년경 이집트의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papyrus〕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의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시킨 후, 잘 건조시켜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AD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라 하였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마설· 넝마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원리였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후 전한〔前漢〕의 한 무덤에서 종이가 출토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채륜은 종이를 개량했던 사람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간〔簡: 대나무 혹은 나무조각을 잘 다듬어서 , 표면에 나무즙으로 기록하여 그 조각들을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한 것)과 독〔牘〕이 많이 사용되었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붓이 발명되면서부터 비단이 함께 사용되었다.
서화용으로 쓰이는 종이는 크게 나누어 선지계〔宣紙系〕와 당지계〔唐紙系〕로 나누어진다. 선지는 지질이 무른편이며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옥판전 〔玉版箋〕,라문전〔羅文箋〕,백지〔白紙〕등이 선지에 속한다. 당지는 원래 중국제 종이 전반을 가르 키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죽을 원료로 하는 종이를 지칭하고 있다. 그 종류에는 일번당지〔一番唐紙〕,이번당지〔二番唐紙〕,백당지〔白唐紙〕 등이 있으며 이 외의 가공지로서 납전〔蠟箋〕, 채전〔彩箋〕 문양전(文樣箋〕,, 주금전〔酒金箋〕, 문당전〔文唐箋〕 등이 있다. 또 한 청조〔淸朝〕시대의 종이로서 지금까지 감상의 대상으로 애장되는 고지(古紙〕가 있는데 징심당지〔澄心唐紙〕,방금율산장경지〔倣金栗山藏經紙〕같은 것이 있다.
좋은 화선지의 선택 요령은, 거칠지 않고 매끄러우며 앞뒤의 구분이 정확히 되는 것과 흡수, 윤갈이 적당히 되어서 필법이 잘 나타나는 것, 번지지 않고 발색이 좋고 먹빛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 너무 얇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보존성을 지닌 것등이다. 보관할 때는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어야 벌레나 곰팡이로 인해 종이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 할수 있다.
한국의 종이는 지질이 좋고 질기기는 하나 서화에는 적당하지 않아 주로 중국산 종이가 사용되었다.
3. 벼루〔硯〕
벼루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묵서〔墨書〕의 흔적으로 미루어 그때 이미 벼루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시황제때인 것으로 추정되는 원판석연〔圓板石硯〕이 발견되면서 그것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벼루로 알려져있다.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은 연당〔硯堂〕·연홍〔硯泓〕이라고 하고, 먹물이 모이는 오목한 곳은 묵지〔墨池〕또는 연지〔硯池〕라고 한다. 모양은 원형과 4각형에서 부터 여러가지 각형과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금연〔琴硯〕·풍자연〔風字硯〕등이 있으며, 크기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재료로는 돌· 옥· 수정· 도자기· 철· 금동· 은· 대나무· 조개껍질등이 사용되나 대개는 돌을 사용한다. 좋은 벼루는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연당의 표면에는 숫돌과 같은 꺼끌꺼끌한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긴다. 따라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한다. 봉망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반대로 강하기만 하면 잘 갈리기는 하나 먹빛이 좋지 않다. 벼루는 실용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재질의 것을 첫째 요건으로 하지만 먹을 가는 도구라는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이라든가 무늬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나아가 연면〔硯面〕을 미적 의장으로 조각 장식하여 문방사우의 하나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 왔다. 인류가 벼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은대〔殷代〕의 갑골〔甲骨〕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쓴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먹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벼루가 제작된 것은 한대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도연〔陶硯〕인데, 원형의 연면에 연지가 돌려져 있고 5개의 다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부터 단계〔端溪〕에서 나는 것이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포연〔藍浦硯〕과 위원연〔渭原硯〕이 가장 유명하다.
4. 먹〔墨〕
후한(後漢)의 위탄(韋誕)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은대(殷代)의 갑골(甲骨) 가운데 검거나 붉은 액체를 사용한 것이 출토되어 BC 2500년 이전에 먹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도 위탄 이전의 책에서 먹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 이때 사용한 먹은 석묵(石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과 같이 탄소의 분말을 이용하여 만든 것은 한대 이후부터이다.
먹은 위진대〔魏晋代〕에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묵환〔墨丸〕에서 비롯 되었으며 종류로는 식물성 기름의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묵〔油烟墨〕, 소나무 그을음과 사슴의 아교로 만든 송연묵〔松烟墨〕, 유연에 사향을 섞어 금박을 입힌 용향묵〔龍香墨〕, 먹똥과 응어리가 안 생긴다는 청묵〔淸墨〕 등이 있으며, 지금에 와서는 화학원료인 카본블랙을 사용하여 만든 양연묵〔洋煙墨〕 이 있다.
먹의 형태는 초기에는 둥글거나 원주형〔圓柱形〕이었으며 점차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먹 위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장식한 것들도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양덕〔楊德〕과 해주〔海州〕의 먹이 예로부터 가장 유명하다. 먹을 갈때는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사용후에는 벼루에 먹물을 남겨 두지 않는다. 하루 자고난 먹은 먹찌꺼기와 거품이 섞여 있어서 글씨를 쓰는데 좋지 않다. 이밖에 먹의 농도와 양은 쓰는 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털이 센 붓은 일반적으로 좀 진한 것이 좋고, 털이 연한 붓의 경우에 먹이 진하면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해서를 쓸 때는 조금 진한게 좋고, 행·초서의 경우는 먹이 좀 묽은 듯 하여야 흐름이 원활해진다.
먹을 고를 때는 먹빛과 향기가 좋아야하며, 손으로 두들겨 보아 소리가 맑은 것을 고른다. 판매되는 먹물은 가급적 삼가 하는 것이 좋다. 장기간 사용시 방부제로 인해 시력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고 붓의 수명도 짧아진다. 사용하고 남은 먹물은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2~3일은 사용 할 수 있으나 가급적 쓸 만큼만 갈아서 바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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