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레종'raison)
오랜만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태국 최북단 치앙라이에서 수십 개의 안테나를 가진 나무들로 가득한 숲속, 육포처럼 마른 근육질의 사내가 벼랑 끝에 올라가 석청을 채취하는 모습, 그를 돕는 어린 아들, 오늘 하루! 절벽 끝에 달린 아슬아슬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 사내가 부럽다.
잘 구어진 참새구이 같은 가슴뼈도 부럽고 몇 개 안 남은 이를 보이며 당당하게 웃는 여유도 부럽고 배움이 짧지만 착한 자식도 부럽고 목숨을 걸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도 그냥 다 부럽다. 삶이란 본시 삶에만 충실해야 한다.
지금 당장, 오늘 먹고 살 걱정만 하면 우울증이 도망간다. 자꾸 쌓으려 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 하고 축적하려 하고 내일 그리고 모레, 글피를 걱정하고 더 편하려고 애쓰니까 우울해진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라 다를 수 있음)
잠자기 전 마취제가 저절로 혈관을 타고 흐르는 캡슐로 들어가는 날, 우린 어쩌면 우울증으로 냉동인간이 되기 위해 서명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길고 긴 꿈으로 삶을 이사하고 싶어진다. 첨단 기기들이 동맥주사처럼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 순간, 우린 동물의 본능을 잃어버리고 특별한 종족이 되려고 시도하게 된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날엔 꿈처럼 보이는 철조망 너머 신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에 젖어든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고 모든 것들에 시비를 걸어본다. 성격이 괴팍한 난 오늘도 순간순간을 셈하며 쌀알까지 기억해야 하는 하루를 또 살아야 한다.
언어를 처음 배운, 두 살까지 사진처럼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분명 신이 준 재앙이다. 절대적으로 정신건강에 해롭다. 양치용 컵에도 칫솔에도 숟가락에도 사물에 추억과 정의를 내리는 난, 약국에 들러 갈증을 푸는 약을 살지도 모른다. 망각의 지우개를 갈구하는 걸인이 된다.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온 날이 언제였던가?
대의명분이 사라진 자에게 남은 건 그냥 지탱해야 하는 지루한 일상만이 허울처럼 남아있지! 하기 싫은 일들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최대한 빨리 그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빠른 삶을 살아서 삶을 최대한 차감하는 것이다.
예측불가의 하루도 공포스러운데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단테의 지옥행 특실에 올라탄 기분이다. 내가 장애라는 사실을 말해야 할까? 아니 말아야 할까? 늘 두렵다. 망상증이 맞는 것 같다. 마구 상상하고 살아가는 해석하는 내 마음대로의 세상에서 놀래기도 설레기도 했던 인생은 이제 더는 없다.
힘드니까 고통스러우니까 이렇게라도 발악해 본다. 당신들은 이 지옥을 모르지! 상상을 넘어서는 현실의 맛은 다르니까! 부럽지? 지옥행의 특급열차의 맛을 아는 자의 삶이 어떤지? 다 가진 자의 지옥이 무엇인지? 궁금하겠지!
수차례 백성 신문고(가명)에 올렸지만 같은 답변만 왔다. 이 정도면 백성 신문고가 아니라 백성 신문고 또는 백성 고문고이다. 나라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고통을 알면서도 침묵하는가? 이제는 신문고가 거짓말 안 하기를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한다. 난 좌도 우도 중도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정도(正道)이다.'올바른 정 [正] 길 도[道]이다. 정도껏 하는 자를 응원한다.
증거 다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증스럽게 예측이 가능한 아리송한 답변을 보냈다. 나도 신내림 받았다. 점쟁이다. 신문고가 무슨 말을 할지를 알고 있다. 혜안이 생겼다. 고맙다! 심문고야! 기상청보다 나은 푸념을 푸짐하게 준비해 너를 침묵토록 할게! 신의 언어를 찾아 떠나는 밤이다. 너를 잠재울 방도를 찾아야겠다. 신문고보다 고릴라처럼 가슴을 치는 게 정신 건강에 나을 것 같다.
내 동생은 천재이다. 입만 열면 명언이 나온다.
"언니, 그냥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고 법으로 싸워. 얼굴 보면 마음 흔들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냥 죽여버려! "
한때 젊음과 열정과 재력 재능 다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 의미 없다. 과거도 아닌 대과거( had p.p)이다. 그냥 없다. 이게 더 솔직한 표현이다. 난 삶이 찬란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끝매듭이 좋아야 명품이듯이 인생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촌스러운 화장(化粧)당하고 화장(火葬)이 끝나야 모든 것들이 분명해진다.
수개월째 하루도 안 빼고 꾸준하게 술을 마셨더니 이젠 알코올이 나를 담그는 상황이 되었다. 제정신으로는 단 한 잔도 안 마신다. 오래전 집, 입구마다 있었던 내 키보다 높았던 인삼주처럼 담금주가 되어버린 나의 황망한 일상이다. 베네수엘라 미스월드 대표처럼 다리를 꼬고 있다. 발가 벗겨져 소주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인삶주! 삶은 인삶주가되는 기적이 일구었다.
어떻게 헤어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모든 것들이 답답한 오늘, 글에 술에 약에 취해본다. 수십 년을 살아도 적응 안 되는 남편이랑 적막으로 답하며 살고 있다. 눈꺼풀을 스테이 플러로 찍어버려야 잠이 오는 것인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잠의 남신, 죽음의 신, 타나토스 (Thanatos)의 쌍둥이 동생, 휘프노스를 남편 몰래 불러들여야겠다. 잠과 바람피우는 여자, 나이가 들면 잠이 늘어난다는데 왜 난 자꾸 멀어지는 것일까? 이젠 죽음에도 삶에도 부적응자로 남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승정원 기록처럼 올립니다. 나를 위한 피의 고백서! 삶에서 못다한 말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지나간 시대의 비극인 <코로나 일지>.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상실의 아픔>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망해 버린 삶, 누군가에겐 희망이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