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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록 상당 35. 화엄육상(華嚴六相)의 뜻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화엄육상(華嚴六相)의 뜻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華嚴六相義 (화엄육상의)同中還有異(동중환유이)
화엄육상의 뜻은 같은(同相)속에 다름(異相)있으니
異若異於同(이약이어동)全非諸佛意(전비제불의)
다름이 같음과 다르다면 부처님 말씀과는 영판 어긋나네
諸佛意總別(제불의총별) 何會有同異(하회유동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에
어찌 같고 다름이 있었으랴
男子身中入定時(남자신중입정시) 女子身中不留意(여자신중불유의)
남자의 몸으로 선정(禪定)에 들 때
여자의 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
不留意 絶名字(불유의 절명자) 萬象明明無理事(만상명명무리사)
마음을 두지 않고 이름(名字)도 끊으니
만상이 분명하여 이치도 현상도 없다네.
원오 보설
화엄육상(華嚴六相)의 뜻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게송(偈頌)으로 법안선사의 상당법문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엄육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이 게송의 뜻을 읽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화엄경의 핵심사상과 육상인 총상(總相)과 별상(別相).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과 괴상(壞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 뜻은 고사하고 현지(玄旨)를 찾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먼저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알아 보겠습니다.
『화엄경』의 사상과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화엄사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화엄경』의 사상이 말 그대로 화엄경에 설해 지고 있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면, 화엄사상은 화엄가(華嚴家)들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전개되어온 사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전자보다는 후자 쪽의 뜻이 명확하여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 사상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화엄경에 있고, 화엄경의 내용은 화엄가의 견해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불설(佛說) 그대로라고 하는 점에서 전자가 가지는 의미는 자못 크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화엄사상보다는 『화엄경』의 사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화엄경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크게 5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화엄경은 법신불사상(法身佛思想) 즉 여하시불(如何是佛)?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법신불(法身佛)이란 "법(法)을 몸으로 하는 붓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법(法)이란 진리(眞理)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법신불이란 "진리를 몸으로 하는 붓다", "진리의 붓다"라는 뜻이됩니다.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vairocana)이라고 한다. 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비로자나 법신불은 어떤 모양이나 색깔이 없다. 즉, 무상(無相)이며 무색(無色)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법신불(法身佛)은 아니 계신 곳이 없다. 온 법계에 충만해 있어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즉, 무소부주(無所不住)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부처님 몸 법계에 가득하시니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중생들 앞에 항상 계시네
수연부감미불주(隨緣赴感靡不周) 인연따라 어디에나 나타나시니
이항처차보제좌(而恒處此菩提座) 언제나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비로자나(vairocana)는 광명변조(光明遍照)라는 뜻입니다.
태양의 광명(光明)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과 같이 법신불은 온 법계에 충만해 있다. 충만해 있으면서 와도 온 곳이 없고, 가도 가서 머무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셋째, 법신불은 그 능력이 부사의 해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
화엄경「여래광명각품(如來光明覺品)」에서는 한 몸(一身)을 무량신(無量身)으로 나투기도 하고 무량한 몸(無量身)을 다시 한 몸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중생들의 성질을 모두 알기에 그를 따라 온갖 곳에 다 나타나시네. 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또「십지품(十地品)」에서는 날아가는 새가 허공을 가듯 석벽(石壁)을 지나갈 수 있고, 땅 위를 걸어가듯 물위를 갈 수 있다. 또 물 속을 들어가듯 땅 속에도 그렇게 갈 수 있다. 고 설하고 계십니다.
넷째, 법신불의 공덕은 무량하다.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에 법신불의 공덕은 불가사의해서 보는 사람은 누구나 번뇌가 다 없어지고 환희의 마음이 솟아 난다.고하며, 「보왕여래성기품」에서는
해가 떠서 광명이 비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은 광명을 보지 못한다. 육안(肉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앞을 보는 사람과 똑같이 광명의 이익을 받는다. 그와 같이 사견(邪見)이나 무지(無智)에 빠져 신심안(信心眼)이 없기 때문에 법신 부처님의 지혜광명은 보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그 공덕을 입으며 살아간다. 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법신불의 기능(機能)이며 작용(作用)이다.
다시 요약하면 법신불은 모양도 색깔도 없다.
태양광명과 같이 법계(法界)에 충만해 있어 아니 계신 곳이 없지만
생(生)한 일도 없고 멸(滅)하는 일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신통이 자재하여 못하는 일이 없으며,
그 공덕 또한 무량해서 법신의 광명을 한번만 봐도 부처님의 지혜가 얻어져 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요약해서 말하면 법신불은 전지(全知)하고 전능(全能)하며 무소부주(無所不住)한 존재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일까? 불교 교학에서는 그것을 법(法)이라고도 하고, 제법의 실상(諸法實相)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宇宙)의 법칙(法則)이며, 자연(自然)의 섭리(攝理)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리(道理)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법의 참모습(實相)과 사람의 도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법칙을 자각(自覺)하신 분이 인간 석가모니 붓다이다.
그 법의 자각에 의해서 싯다르타 태자는 붓다가 되었고, 붓다에 의해서 자각된 그 법을 우리는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여호아신(神)이나 알라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유일신교의 신은 만물을 창조하거나 인간을 심판하여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일을 한다지만, 법신불은 무공용(無功用)이라는 점이다.
무공용(無功用)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태양광명과 같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출 뿐이다. 무공용이기 때문에 법신불은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다.
라는 것이 불교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있은 그대로를 믿는 것입니다.
화엄육상은 화엄 2조 지엄 스님의 주요 사상은 구십현과 육상원융(六相圓融)이다. 통일제국 당나라의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데올로기로의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즉 아인스타인의 통일장 이론처럼 우주의 보편적 예너지, 힘, 작용하는 것 중에 중력(重力), 전기장(電氣場), 자기장(磁氣場), 강력(剛力), 양력(揚力)의 네 가지의 하나로 꿰뜷을 수 있는 무엇인가 있다라는 것으로 이는 과학적 접근이고 이를 사상적으로 접근한 것이 화엄이다. 육상원융(六相圓融)은 총상(總相)과 별상(別相).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과 괴상(壞相)이며, 모든 존재의 연관성과 조화와 원리는 60경 화엄경의 내용의 일부에서 발전시킨 사상이다.
그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법안선사는 이른 화엄사상과 화엄육상에 대하여 어떻게 게송으로 읊고 계신지 보기로 합시다.
[華嚴六相義 (화엄육상의) 同中還有異(동중환유이)
화엄육상의 뜻은 같은(同相) 속에 다름(異相)있으니]라고 하십니다.
같은 속에라고 하는 것은 육상중에서 총상(總相)과 동상(同相)과 성상(成相)을 말하는 것이며, 다름이라고 하신 것은 별상(別相)과 이상(異相)과 괴상(壞相)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총상(總相)은 전체를 말하고 별상(別相)은 개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전체를 꿈이라고 생각해 보면 꿈속에 개별적인 요소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꿈과 개별적 요소는 차별이 있는가?
전체가 꿈이면 그 안에 나타나는 개별적인 요소도 꿈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총상이고 개별로 보면 별상(別相)인 것입니다.
이것이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며
하나속에 일체있고 일체속에 하나있어,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라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며.
작은 티끌 미진 속에 온 우주가 다 깃들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라.
온갖 티끌 그 가운데 온 우주가 다 깃들었네“ 라고
의상 대사가 법성게(法性偈)로 읊은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異若異於同(이약이어동)全非諸佛意(전비제불의)
다름이 같음과 다르다면 부처님 말씀과는 영판 어긋나네]
라고 읊은 것은 다름과 같음이 다르다면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가 다른가라는 차별상(差別相)이 존재(存在)하는가 하지 않은가?라는 문제를 제시하시였다. 즉 총상(總相)과 동상(同相)과 성상(成相)은 긍적적인 것이며 별상(別相)과 이상(異相)과 괴상(壞相)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이 안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과는 영판 어긋나네라고 하십니다.
긍정(肯定)과 부정(不正). 총상과 별상. 고저장단(高低長短) 등 모든 차별상이 사실로 존재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시면서 그렇게 차별이 있다면 부처님의 절대평등(絶對平等)인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총상은 총상이 아니며 총상 아님도 아니니 총상 그대로가 총상이다. 별상은 별상이 아니며 별상 아님도 아니니 별상 그대로가 별상이다. 총상은 총상 그대로 이며 별상은 별상 그대로 인 것입니다.
이것이 불이법(不異法)이며 대대법(對對法)인 것입니다.
총상이라는 것은 별상이 있어 세워진 상대법이며 별상이란 총상을 세우려니 상대법으로 생겨난 말이며 글이지 사실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가설이며 세워 만든 말이며, 글이며, 생각이라는것입니다. 그럼으로 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것입니다. 돌~~~~~~!!!!!!!!!!
그래서 또 법안선사님은 이렇게 게송을 이어 가십니다.
[諸佛意總別(제불의총별) 何會有同異(하회유동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에
어찌 같고 다름이 있었으랴]라고 하시어서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이지 차별과 분별은 모두 그대 스스로가 상대성으로 느껴 지지만 그 상대성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기억에 있는 여래장심(如來藏心)에 있는 번뇌의 상과 지금 여기 있는 상을 비교 차별하여 크다 작다 길다 잛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의 상은 그대로 일 뿐이며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진실여상(眞實如常)한 진여(眞如)이며, 상(相))의 당체(唐體)이며 실존(實存)이라는 것입니다. 돌~~!!!!!!!
지금 여기 그대 눈앞에 펼쳐진 천지풍광(天地風光) 그대로가 실상(實相)이며, 진실한 여래(如來)이며, 진여(眞如)인 것입니다.
[男子身中入定時(남자신중입정시) 女子身中不留意(여자신중불유의)
남자의 몸으로 선정(禪定)에 들 때 여자의 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라고 하신 것은 남자의 몸으로 선정에 들 때는 라고 하셨는데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라고 하신 것은 선정이란 무심(無心)의 경지이며 평상심(平常心) 그대로 인데 여기에는 그 어떻한 한 생각도 일으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선정인데 시간도 공간도 한 생각도 사라진 적(寂)이요 적멸(寂滅)인 것인데 무엇이 있으리요
“女子身中不留意(여자신중불유의) 여자의 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라고 하시는 것은 선정(禪定) 속에는 어떤 한 마음도 일으나지 않는데 어찌 여자의 생각(生覺)인 들 나겠습니까?
여기서 (여자의 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라고 읊은 것은 음양(陰陽)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양입니까? 음입니까? 아니면 중성(中性)입니까?
여기서 말씀하신 것도 음양도 양변(兩邊)인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가 아니요 남자 아님도 아니니 남자 그대로가 남자입니다. 여자는 여자가 아니요 여자 아님도 아니니 여자 그대로가 여자입니다. 즉 지금 여기 있는 그래로 이지 이렇게 차별을 함으로 음욕도 일으나고 양욕인 진정한 사랑도 일으나는 것이지만 이것도 결국 의식의 한 생각이 일으나는 것입니다.
이것도 차별이며 분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번출여의불사의(飜出如意不思議)
진리세계 현상세계 다른 것이 이 아니며, 시방제불 보현보살 모다라니 큰경계네. 부처님의 적정삼매 해인삼매 그 가운데. 묘희세계 불가사의 한법으로 나투시네.“라고 읊으신 법성게와 무엇이 다러다 하겠습니까? 선정이 바로 그대로 적정열반(寂靜涅槃)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법은 두법이 아니요 다 하나의 법이며 오직 있는 그대로의 완전히 벗어난 중도실상(中道實相)을 노래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후구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不留意絶名字(불유의 절명자) 萬象明明無理事(만상명명무리사)
마음을 두지 않고 이름(名字)도 끊으니
만상이 분명하여 이치도 현상도 없다네.]라고 하시였습니다.
不留意絶名字(불유의 절명자) 마음을 두지 않고 이름도 끊으니라고 읊으신 것은 한 마음도 일으나지 않는 적정 열반인 선정(禪定) 속에 평상심(平常心) 그대로가 있을 뿐 마음을 둔다 두지 않는다 두다가도 안 둔다. 아주 그 자체가 없다. 라는 사구게(四句偈)와 백비(百非)인 부정하고 부정하여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본래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것을 평상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음을 두지 않느니 이름인 명자(名字)도 부질없는 것인 번뇌망상(煩惱妄想)이며 여래장(如來藏)의 화현(化現)이니
“萬象明明無理事(만상명명무리사) 만상이 분명하여 이치도 현상도 없다네.]라고 하시였습니다.”라고 하신 말후구는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있는데 무엇을 찾구 구하고 얻으려 하느냐 나라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 앞에 펼쳐진 본지풍광(本地風光)이 그대로 하나로 분명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기에 무슨 이치(理致)와 현상(現相)도 다 찰나 간에 일으났다가 사라지는 것인데 무엇을 찾고 구하고 얻으려 삼천대천 혜매이는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유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당법문은 마감하시면서 이렇게 사구게를 지어시어 조사선의 본원인 언어도단(言語道斷)이요 불입문자(不立文字)이며 심행처멸(心行處滅)인 조사선의 근본 대의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법안록(法眼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매주 일요일 오후2시~4시에 원오선원에서 명상법회가 열립니다.
수희동참 하시어서 인연성불 하옵시어 대원성취 하옵소서
원오선원 명상쉼터 대구광역시 달서구 새방로 10(용산동577-4) (053) 586 660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법안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