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초 청춘의 서러움과 방황 혼돈이 담긴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식민지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대로부터
현대 주인공의 대학생이던 시절까지 거대한 시대의 우울을 타고난 세대,
그리고 시대가 주는 개인적 경험과 내적 성향이
어떻게 한 인간을 변하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 연수
기러기(Mary Oliver)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너의.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소설은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랐던
1991년 5월의 소위 분신정국 전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소설의 화자는 모 대학의 총학 선전부 차장을 거쳐
대학생 조직의 방북 예비대표로 베를린까지 가게 되는 나이다.
하지만 그 역사의 격렬한 움직임의 가운데 있는
나는 무언가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한 발짝 거기에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적 배경이 그러할 뿐 작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거대한 역사 속에 가려진 다양한 개인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개인의 삶을 모두 똑같게 만들어 버린
고난에 찬 한국 현대사식의 회고담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들로 가득 찬 것이며,
엄숙하고 공식적인 언어들로부터 해방돼
지극히 사소하고도 하잘 것 없는 사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정리된 회고담이 아니라 실제로 이야기에 주목하며,
사람 사는 게 그렇듯,
그저 이러저러한 우연속에 풀리고 꼬여가듯 이야기들은 전개된다.
처음에 소설은 나와 역시 학생운동을 하는 정민이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은 동지애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이끌리게 된다.
그 안에는 둘의 삶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갔던 나의 할아버지,
1964년 수류탄 투척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가
자살하게 되는 ‘정민’의 삼촌 인생까지 담겨 있다.
이러는 와중에 방북 대표단으로 뽑힌 나는
베를린에서 안기부 프락치였던
강시우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번갈아 조명하며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개인들의 삶을 끈기있게 복원하려 든다.
작가는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논리적이지만
그 속에서 실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비현실적이며
비논리적이라면서 작은 이야기야말로 바로 진실한 삶의 이야기이며
그것을 그리는 게 작가의 몫”이라고 말한다.
소설의 제목은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에서 따 온 것이다

"알고 봤더니 이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서로 몸을 비벼대며 한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온기가 필요한지 깨닫게 된 것뿐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다음부터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마녀의 오랜 저주에서 풀려난 것처럼
저마다 자신만의 입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본문중
"하지만 그날의 산책길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유쾌한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 다시 말하자면
연민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존재였다.
그의 삶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불행으로 가득했고,
그 대부분의 불행은 폭력적인 체제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그가 그 무엇에도 훼손되지 않는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것은 정민의 삼촌이,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가 한편생 꿈꿨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행복은 결코 환각이 아니었다"/본문중
작가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시작도 끝도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일종의 라운지 소설을 의도했다고 밝혔듯,
장편소설의 장르적 유연함을 한껏 활용하여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들고,
다양한 개인의 수많은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소설에는 1990년대를 살았지만 그 주변부에 내팽겨져 있던
수많은 인물들,수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그들은 역사의 한 중심에 있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 중심에 있었기에
오히려 역사 밖으로 버려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뜻하지 않게 방북 학생 예비대표 자격으로 독일로 가게 된 나
일본군에 학병으로 징집돼 남양군도까지 가야 했던 할아버지
나가 독일에서 만나게 된 강시우와 독일인 헬무트 베르크
그리고 여자친구인 정민의 삼촌까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작가 김연수에게 1991년은 세계관의 원점 이었다.
역사를 회의하고 진실을 열망하게 된 분기점이었다.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몇 겹의 눈으로 들여다본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작중화자는 1991년 여름 이른바 5월투쟁이 끝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 나 하지만 나는 어쩐지,
1990년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감상하듯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이야기는 그 주변부에 자리했던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역사적 기록의 틈새에 박힌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어,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내면을 밝히고자 한다.
텍스트 전체의 화자인 나는 이야기의 한 주인공이자
작중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인 동시에,
무수한 이야기들을 수집가이자 편집자,그리고 논평자이다.
수많은 개인들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끝도 없이 끼어들고
중첩되고 증식하며 그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는
일관되고 필연적인 인과관계조차 부여되어 있지 않다.
이 소설 흔히 일간지의 서평에서 인드라망의 사상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인드라망은 소소한 등장인물들의
국가를 초월하고, 시공간마저 초월하여 연결되는 관계를 비추고 있다
나’가 혼란한 정체성을 깨고 나와 또 다른 은하에 존재하고 있을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은 내면을 탐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 소설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나와 연결된 나를 찾아가는 나는 강시후이기도 하고,또 아니기도 하다.
그저,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와 나를 가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우리간의 관계라는 끈을 찾아 나가는 것이 보다 아름답고 의미 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김연수 소설의 지속적인 명제,
예컨대 삶의 의미는 이해될 수 없다,진실은 말해질 수 없다
세계는 투명하게 재현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암시하는 한편, 그 문제의식을
소설 쓰기의 방법으로 밀고 나가는 현장 자체인 텍스트이다.
근본적인 질문과 도저한 절망을 소설쓰기의 집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소설언어의 가능성의
한 절정을 경험할 수 있으며, 한국소설의 인식론적 깊이가
한층 심화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진정석(문학평론가)
"개인 각자의 경험을 의미 있게 해주는
거대한 이야기가 붕괴한 자리에서 개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가.
그 거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삼은
집합적 주어가 폐기된 자리에서 개인들이란 누구인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놓고
한 세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가 고민하고 사색한 결과이다.
저자 김연수는 민족 자주와 해방의 이야기가 몰락하기 직전의
운동권 학생을 작중화자라로 내세워 그 이야기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출몰한
다양한 인물들의 열정과 허영,진실과 허위,
광기와 치기가 서로 부딪치고 뒤섞이는 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어떤진심,어떤 연극, 어떤 모험에도 불구하고
광막한 우주 속의 혼자일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
한때 그를 그 자신 이상이게 했던 거대한 이야기 또는 거대한 환상에 대해
오랜 애증 끝에 바치는 별사이기도 하다."/황종연(문학평론가)
(일부 옮긴 글입니다)

기러기/Mary
Oliver
착해지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백 마일이나 되는 사막을
뉘우치며 무릎으로 기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네 몸의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네 절망에 대해 얘기해주렴, 네 것을, 그럼 나도 내 절망을 들려줄게.
그러는 동안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그러는 동안에도 해와 투명한 빗방울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초원과 깊은 숲들, 그리고 산과 강들을
넘어 움직이지.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파란 하늘
높이
집을 향해 다시 날아가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 상상력에 스스로를 내밀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활기차게 네게 소리친다.
온갖 사물들 속에 네 자리가 있음을
거듭 거듭 알려주며.
WILD GEESE by Mary
Oliver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Tell me
about your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知安-

Giulio Regondi/Nocturne`Reverie`op.
19(녹턴 환상곡)
첫댓글 知安님의 정성스런 글과 음악은 우리들의 뼈와 살이 되는듯 합니다~
과찬의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진심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