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게는 왜 ‘쌍둥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성경을 읽다 보면 유난히 궁금증을 자극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 도마다.
요한복음은 도마를 소개할 때 다른 복음서보다 특별한 표현을 사용한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Thomas, also known as Didymus’라고 번역한다. 주석은 Thomas와 Didymus가 각각 아람어와 헬라어에서 ‘쌍둥이’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그의 쌍둥이가 누구인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도마가 쌍둥이라는 사실은 알려주면서도 그 상대방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도마의 쌍둥이는 예수님이었다”라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후대의 전승과 문학적 상상에서 발전한 이야기이지 정경 성경의 명시적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우리에게 남긴 사실은 더 단순하다.
도마는 쌍둥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쌍둥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나는 이것이 도마라는 인물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쌍둥이는 외모가 닮았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아니다.
성격이 다를 수 있고, 전공이 다를 수 있으며, 친구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의 여정도 다를 수 있다.
실제로 나 역시 대학 선교회에서 나보다 몇 년 선배인 쌍둥이 형제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정말 놀랄 만큼 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외향적이었고 다른 사람은 내향적이었다.
같은 공과대학에 다녔지만 전공도 달랐다.
나는 형과 더 가까이 지냈다.
그들의 이후 신앙 여정까지 깊이 알지는 못한다. 따라서 두 사람의 신앙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직접 경험했다.
쌍둥이는 같은 얼굴을 가진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도마의 쌍둥이를 생각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만약 도마에게 실제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도마와 성격이 같았을까?
정반대였을까?
도마처럼 예수님을 따랐을까?
아니면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제자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상상은 시작될 수 있지만, 상상은 성경의 사실과 구별되어야 한다.
성경이 알려주는 도마의 마지막 모습은 분명하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처음에는 보아야 믿겠다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과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그래서 도마를 ‘의심 많은 제자’라고만 부르는 것은 부족하다.
도마는 질문하는 사람이었고, 확인하려는 사람이었으며, 결국 가장 깊은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를 남긴 사람이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도 도마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쉽게 믿어지지 않고 질문이 많으며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사람.
그렇다면 도마의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질문이 믿음의 반대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그 질문은 오히려 더 깊은 신앙고백으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다.
도마가 그랬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남아 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