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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음악 스크랩 김소희명창- 상주 아리랑
시너먼 추천 0 조회 9 13.03.10 16:08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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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3.10 20:08

    첫댓글 金素姬(김소희)
    1917. 1. 14 전북 고창~ 1995. 4. 17 서울.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예능보유자.

  • 작성자 13.03.10 20:09

    본명은 순옥(順玉), 아호는 만정(晩汀).
    15세에 흥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부터 소리공부를 시작했다.
    국창 송만갑(宋萬甲)의 문하로 들어가 〈심청가〉·〈흥보가〉를 이수받고,
    17세에는 정정열(丁貞烈)에게 〈춘향가〉·〈수궁가〉를 배웠다.

  • 작성자 13.03.10 20:10

    이밖에도 김계문에게 향제 가곡을, 이승환에게 거문고를,
    김종기(金鍾基)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우는 등
    거문고·양금·고전무용·서예 등에도 다재다능했다.
    1937년 창극좌에 입단했고,
    1945년에는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했다.
    한편 빅타레코드사에서 정정열·임방울·이화중선 등과 〈춘향전〉을 전편 취입했는데
    이때 춘향역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 작성자 13.03.10 20:10

    1962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9회 '국제민속예술제'에 참가했고,
    그밖에도 유럽 각국과 미국 등지의 순회공연에 참가했다.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72년 국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 무대에서 판소리를 열창함으로써
    그곳의 비평가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김소희는
    뮌헨 올림픽 대회 참가공연, 유럽 순회공연 등을 통해
    일찍부터 세계에 한국 판소리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 작성자 13.03.10 20:12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해
    1994년 '국악의 해' 기념 국악제를 지휘하기도 한 김소희는
    숨을 거두기 얼마 전
    "광대는 대중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기생은 자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광대와 기생이 다른 점이다."
    라고 말해 철저한 예인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명창 박윤초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특히 후진 양성에 많은 정성을 쏟아,
    신영희·안숙선·이명희·박소영 등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

  • 작성자 13.03.10 20:13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2년 한국 국악대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숨을 거두자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후학들은 국립국악원 박물관에 만정기념실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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