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을 감도는 계곡의 옥류소리,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계곡이 대원사계곡이다. 30여리에 이르는 대원사 계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다. 조그만 샘에서 출발한 물길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면서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들어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는 수량을 더해 대원사가 있는 유평리에서 부터 청정 비구니가 독경으로 세상을 깨우 듯 사시사철 쉼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깊은 산중의 정적 을 깨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대원사계곡을 일컬어 남한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으면서 “너럭바위에 앉아 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 하늘을 쳐다 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 했다. 행정지명을 따라 유평계곡이라 하지 않고 통상 대원사계곡으로 부르는 연유가 된 대원사 역시 수난의 지리산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원사계곡은 그 골짜기가 깊다보니 변환기 때 마다 중요 피난처이자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있었던 이곳은, 1862년 2월 산청군 단성면에서 시작해 진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한 농민항쟁에서 부터 동학혁명에 이르기 까지 변혁에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의병의 은신처가 되었고, 6.25 전란에 이어 빨치산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낮에는 반역의 땅이 되고, 밤에는 해방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