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하계 해외(몽골) 의료봉사활동 후기
의학부 6학년 김강언
의학부 5학년 고상현
1. 기간 : 2009년 7월 15일(수) ~ 7월 22일(수)
2. 봉사단 구성
․ 아미사(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사람들) - 박철성 원장님, 김동훈, 길병동, 김가영 선생님
․ 현대병원 - 김부섭 원장님, 심우정 외과장님, 황인순 마취과장님 외 간호사 선생님들
․ 나눔.봉사 28년 6개월
․ 국제학교 - 의사선생님들의 자녀들과 그 친구들(초등학생~대학생)
3. 봉사활동 지역 : 몽골 사이산드, 울란바트르
4. 일정
7월 15일(수) : 인천 ~ 울란바트르(비행기)
7월 16일(목) : 울란바트르 ~ 샤이산드(기차)
7월 17일(금) : 사이산드 병원(아이막 종합병원) 의료봉사(전용차량)
7월 18일(토) : 사이산드 병원(아이막 종합병원) 의료봉사(전용차량)
7월 19일(일) : 사이산드 병원(아이막 종합병원) 의료봉사(전용차량)~울란바트르(야간열차)
7월 20일(월) : 울란바토르 ~ 테를지 국립공원 관광(전용차량)
7월 21일(화) : 테를지 ~ 울란바트르 의료봉사(전용차량)
7월 22일(수) : 울란바트르 ~ 인천(비행기)
5. 활동사항 및 느낀 점 (개선 점)
봉사활동의 시작은 7월 15일 오후 3시, 인천공항에 집결하여 시작하였다.
그 곳에는 40명이 넘는 인원과 80개가 넘는 박스, 모두 합하여 1톤 가량 되는 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맨 처음 봉사활동 내에서 예비명단에 속해있을 때의 초조함, 중간에 네팔에서 몽골로 봉사활동 장소가 변경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그리고 출발 당일에도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 사고-짐을 싣고 오던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펑크가 나서 정말 큰일날 뻔 했던 일을 비롯하여, 수화물 무게 초과, 공항 검색대 통과 등의 자잘한 문제까지 모두 해결하고, 정말로 하늘이 도와 일정에 아무런 차질이 없이 몽골로 가는 비행기에 무사히 오르게 되었다.
울란바토르는 우리나라와 1시간의 시차가 난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울란바토르 내의 호텔로 도착한 시각은 현지시각 새벽 12시가 넘어서였다.
이 곳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는 봉사활동을 주로 펼치게 될 사인샨드로 이동하였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중심에 있고, 사인샨드는 그 곳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약 11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넘어 도착한 사인샨드는 생각보다 훨씬 황량한 곳이었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주로 펼치게 될 병원은 규모가 매우 컸지만 대부분의 공간이 이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었다.
이튿날까지는 간단하게 여독을 풀고, 셋째 날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 몽골 봉사활동에 참가한 단체는 총 3개인데,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사람들”, “나눔 봉사 28년 6개월”, 그리고 현대병원 팀이었다. 이 3개 단체의 선생님들은 고등학교 동창생분들이신데, 이렇게 봉사활동 등으로 같이 만나고,
봉사활동도 선생님들의 가족들과 함께 다닌다고 하셨다. 이러한 형태로 봉사활동을 다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 역시 앞으로 이와 같은 모습으로 봉사활동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좋은 모습이었다.
나는 현대병원 소속의 “의대생” 신분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김부섭 원장님을 따라다니면서 외래에서 간단한 일을 도와드리고 수술실에서의 어시스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사인샨드 내에서의 봉사활동은 3일 동안 진행되었고, 나는 원장님과 함께 3일 동안 계속 정형외과 환자를 보았다.
환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았고, 나는 외래방과 수술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정신없이 활동하고 다녔다.
둘째 날에는 수술을 다 마치고 일정을 끝내고 나니 밤 10시가 되었을 정도로 쉴틈 없는 강행군이었다.
이 곳의 환자들은 특징적으로 선천성 고관절 탈구가 많았고,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다리의 변형이 발생한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환자는 많았지만 모두 다 고쳐주고 수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중에 몇 사람만 추려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곳 병원의 시설은 열악하였지만 수술을 진행할 정도는 되었고, 우리 의료봉사팀의 활동도 처음에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날이 갈수록 체계가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병원 내에서 항상 모든 인력과 물자가 준비되어 있던 것만 보다가 이렇게 제한된 물품을 가지고, 없는 것은 그때그때 만들어 가면서 의료를 행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참으로 새로웠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몽골사람들이지만, 손짓발짓 다 써가면서 말하니까 이야기도 얼추 통하였고, 주사약을 놓아 주었을 때 좋아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도 우리가 준비해 간 약이 다 떨어져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해 주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수술을 해주기에는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렇게 3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7월 19일, 야간 열차를 타고 다시 울란바토르에 돌아왔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몽골의 광활한 초원, 맑은 하늘은 그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하고, 원래 계획상에는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했지만,
현대병원 팀에서는 이날 울란바토르의 병원에서 슬관절 치환술을 하기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나 역시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울란바토르의 병원 역시 규모가 크고 많은 수의 의사들이 있었다.
이 곳의 의사들도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최신 의료기술을 가지고 온 우리 의료진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다만 이곳의 의료제도는 완벽한 사회주의 의료에 가까워서 1년에 몇 천원만 내면 어느 병원에서든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를 많이 본다고 해서 의사에게 이득이 없고 봉급 수준도 낮기 때문에 한 명의 의사가 많은 환자를 보려고 하지는 않았고, 이러한 문제와 결부되어 의료기술의 수준도 낮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에 따라 결국 한 환자가 진료를 보기 위한 대기시간이 2~3개월은 걸리는 등의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20~30년 후 몽골이 지금보다 더 많은 발전을 하게 되어 의료재정 역시 넉넉해진다면
이러한 사회주의 의료가 진정 국민을 위할 수 있는 좋은 제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울란바토르 병원에서도 나는 김부섭 원장님을 따라 정형외과 환자들을 보았다. 사인샨드에서의 진료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7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예정된 소아정형외과 환자들 진료와 3건의 슬관절 치환술을 시행하였다.
이미 진료 및 수술이 약속되어 있던 환자였기 때문에 사인샨드에서의 진료보다는 덜 혼잡하였다.
진료를 마치고 20일에는 국립공원 내의 숙소로 돌아와 몽골 하늘의 아름다운 은하수를 보았고,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봉사활동 멤버들이 다같이 모여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22일에 한국으로 돌아와 2009년 몽골 봉사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대규모로 해외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처음 준비과정에서 일을 진행하는 모습이나 가져가는 준비물들, 각자 담당하는 일 등을 세심하게 눈 여겨 보았다.
1주일 남짓한 활동이지만 정말 준비할 것도 많고 그때그때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이와 함께, 앞으로 내가 의사가 되었을 때 열심히 일하는 의사, 열심히 돈 벌어오는 의사의 모습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의사,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의사가 될 때 진정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바로 눈앞에서 그런 의사선생님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기에.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사항은 의과대학 내에서 선발과정을 좀 더 빨리 진행해야 일정에 차질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봉사활동을 총괄책임 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시길, 처음에 의대생 2명은 예비명단에 들어있었다 하셨고,
그 이유는 명단 통보가 늦은 데 있는 것 같다. 만약 중간에 결원이 없었다면 정말로 봉사활동을 가지 못하는 사태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이 부분은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첫댓글 이번 같던 의대생들도 나중에 박원장 같은 좋은 봉사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의사선생님이 되시길..
작은 하나라고 감동되는 기억이 남아 좋은 의사가 되는 불씨가 되시기를 ~~..
해외서 봉사하는것은 그만큼의 큰 성취감과 희생의 대가를 받는 고마움이 복합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