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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사진’이라는 용어에 관한 객관적 비평“
사진은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1]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심상사진(心象寫眞)’은 한국 사진교육과 일부 사진비평에서 작가의 내면·감정·기억·상상·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사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은 국제 사진사에서 널리 합의된 독립 장르명이나 특정 예술운동의 공식 명칭은 아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연구자와 교육자에 따라 의미가 달라서 엄밀한 학술용어라기보다 한국 사진계에서 형성된 관행적·교육적 분류어에 가깝다.
따라서 ‘심상사진’이라는 용어를 완전히 잘못된 말이라고 폐기할 필요는 없지만, 그 의미와 범위를 설명하지 않고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혼란이 생긴다.
① 심리학의 ‘심상(mental imagery)’과 혼동된다.
② ‘주관주의 사진(Subjective Photography)’과 같은 뜻으로 오해된다.
③ 영어의 ‘Serious Photography’를 번역한 공식 장르명처럼 받아들여진다.
④ 작가의 감정이 사진에 그대로 옮겨진다고 생각하게 한다.
⑤ 다큐멘터리사진은 객관적이고 심상사진은 주관적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만든다.
⑥ 분위기 있고 모호한 사진을 모두 심상사진이라고 부르게 한다.
가장 정확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심상사진은 사진사적으로 확정된 장르라기보다, 외부 대상을 작가의 기억·감정·상상·내면적 연상과 연결하여 표현하려는 사진적 태도를 가리키는 한국적 관행어이다.
[2] ‘심상’의 정확한 의미
심상(心象)은 문자 그대로 마음속에 나타나는 상을 뜻한다. 영어로는 대체로 mental image 또는 mental imagery에 해당한다.
현대 인지심리학과 철학에서 심상은 외부의 직접적인 감각 자극이 없는데도 시각·청각·촉각 같은 지각과 비슷한 경험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눈앞에 사과가 없지만 사과의 붉은색과 모양을 떠올리는 것, 오래전에 살던 집의 내부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상상하는 것이 심상에 해당한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ental Imagery」; Pearson et al., 「Mental Imagery: Functional Mechanisms and Clinical Applications」, 2015)
심상은 시각적인 모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①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청각적 심상
② 레몬의 신맛을 상상하는 미각적 심상
③ 특정한 향기를 떠올리는 후각적 심상
④ 신체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연습하는 운동 심상
⑤ 과거 사건을 장면처럼 재구성하는 기억 심상
따라서 심상은 단순한 ‘마음속 그림’보다 넓은 개념이다. 기억·상상·정서·신체감각이 결합된 지각과 유사한 내적 경험이다.
[3] 심리학적 심상과 사진의 차이
엄밀히 말하면 사진은 심상 그 자체가 아니다.
심상은 외부 대상이 현재 눈앞에 없어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이다. 반면 전통적인 사진은 대체로 카메라 앞에 존재하는 대상에서 반사된 빛을 기록하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마음속 이미지를 카메라로 찍는다”는 표현은 문자적 사실이 아니라 비유이다. 카메라는 기억·감정·욕망·무의식을 직접 촬영하지 못한다.
사진가가 촬영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외부 대상이다.
① 사람의 얼굴과 신체
② 장소와 사물
③ 빛과 그림자
④ 행동과 사건
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과 유품
⑥ 작가가 연출하거나 구성한 장면
사진가는 이러한 외부 대상을 선택·연출·프레이밍·편집·배열하여 자신의 내면과 연결한다. 관객은 그 결과를 보면서 작가의 내면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 속 기호와 관계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추론한다.
따라서 심상사진을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심상사진은 마음속 심상을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외부 현실의 대상과 사진적 형식을 매개로 작가의 기억·정서·상상·내면적 연상을 표현하려는 사진이다.
[4] 한국 사진계에서 사용된 ‘심상사진’
국내 일부 사진이론과 교육에서는 사진을 크게 사회적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사진과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심상사진으로 나누어 설명해 왔다.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 학위논문 「심상사진에 관한 연구」는 심상사진을 작가의 내적 욕구에서 제작되고 자의식을 바탕으로 내면적 자기고백의 형식을 보이는 사진으로 정의하였다. 논문의 영문 제목은 Study of Serious Photography이다. (이화여자대학교 DSpace, 「심상사진에 관한 연구」)
국내 사진교육 자료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분이 발견된다.
① Documentary Photography—사회 현실과 사건을 기록하는 사진
② Serious Photography—사진가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심상사진
이 구분에서 심상사진은 실용적·보도적 목적보다 사진가의 자기표현을 우선하는 예술사진을 뜻한다. (한밭대학교 사진교육 자료, 「디지털사진의 개념」)
이러한 분류는 한국 사진계가 오랫동안 보도사진·생활주의 리얼리즘·공모전사진 중심으로 전개된 상황에서 작가의 주관적 시각과 자기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국내의 일부 논문과 교육자료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심상사진’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장르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5] ‘Serious Photography=심상사진’이라는 번역의 문제
‘심상사진’을 영어로 Serious Photography라고 옮기는 사례가 있지만, 이것은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영어권에서 serious photography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사진운동이나 장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대체로 취미적·상업적·일상적 사진과 구별하여 진지하게 제작하거나 예술적·학술적으로 평가할 만한 사진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미국 국립미술관과 여러 미술관 자료에서도 ‘serious photography’는 독립된 사진사조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예술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받던 사진을 뜻하는 수식어로 사용된다. 예컨대 컬러사진이 오랫동안 ‘진지한 사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표현에서의 serious는 내면적 심상사진을 뜻하지 않는다. (National Gallery of Art, 「12 Documentary Photographers Who Changed the Way We See the World」; Hirshhorn Museum, 「Open City」)
따라서 다음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Serious Photography = 심상사진이라는 국제적 장르
‘Serious Photography’를 ‘심상사진’의 공식 영문명처럼 사용하는 것은 한국 사진교육 내부의 특수한 번역 관행으로 보아야 한다.
‘심상사진’을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작업의 성격에 따라 다음과 같은 표현이 더 정확하다.
① introspective photography—내성적 사진
② expressive photography—표현적 사진
③ psychologically oriented photography—심리 지향적 사진
④ autobiographical photography—자전적 사진
⑤ subjective photographic expression—주관적 사진 표현
⑥ photography of inner states—내면 상태를 다루는 사진
[6] 주관주의 사진과 심상사진은 같은가
‘심상사진’은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의 ‘주관주의 사진(Subjektive Fotografie, Subjective Photography)’과도 혼동된다. 그러나 두 용어는 구분해야 한다.
주관주의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오토 슈타이너트를 중심으로 전개된 구체적인 역사적 운동이다. 1951년부터 국제전이 열렸고, 1952년에는 『Subjektive Fotografie』가 출판되었다.
이 운동은 사진가의 개인적 시각을 중시하면서 포토그램, 다중노출, 솔라리제이션, 극단적 시점, 추상적 형태, 명암 대비 등 사진매체의 실험적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테이트는 주관주의 사진을 1951년 독일에서 슈타이너트가 창설한 국제적 운동으로 정의한다. (Tate, 「Subjective Photography」)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분해야 한다.
① 심상사진은 한국 사진계에서 내면지향적 사진을 넓게 부르는 관행어이다.
② 주관주의 사진은 전후 독일에서 출발한 역사적으로 특정된 사진운동이다.
③ 두 개념은 작가의 주관성과 실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겹치지만 동일하지 않다.
마이너 화이트, 로버트 프랭크, 제리 율스만 같은 서로 다른 작가들을 모두 ‘심상사진가’로 묶는 것도 국제 사진사에서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분류가 된다.
[7] 마이너 화이트와 ‘등가’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는 국내에서 심상사진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주 소개된다. 그의 사진이 외부 대상을 작가의 내면적·영적 상태와 연결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명에는 일정한 근거가 있다.
화이트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등가(Equivalent)’ 개념을 받아들였다. 등가란 사진 속 대상이 그 대상 자체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진가의 감정이나 정신 상태를 환기하는 시각적 대응물 또는 은유가 되는 것을 뜻한다.
구름은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감정과 정신의 상태를 환기할 수 있다. 갈라진 벽, 얼음, 나무껍질, 빛이 들어오는 창문도 사진가의 내적 상태와 관객의 기억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노턴 사이먼 미술관은 화이트가 사진을 내면 상태의 등가물 또는 은유로 보는 스티글리츠의 개념을 수용했다고 설명한다. (Norton Simon Museum, 「Minor White: Photography」)
그러나 마이너 화이트의 사진 전체를 단순히 ‘심상사진’으로 번역하면 그의 작업이 가진 다음 요소들이 축소될 수 있다.
① 스티글리츠의 등가 개념
② 선불교·기독교 신비주의 등 영적 탐구
③ 사진을 보는 관객의 명상적 경험
④ 정밀한 촬영과 인화기술
⑤ 사진 연작과 배열을 통한 의미 형성
⑥ 사진교육과 『Aperture』 편집 활동
화이트의 사진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외부 대상, 사진가의 정신 상태, 사진적 형식, 관객의 경험이 서로 대응하도록 만든 매우 조직적인 작업이다.
[8] 심상사진과 ‘사진적 표현’의 문제
심상사진이라는 용어는 사진이 단순한 현실 복사가 아니라 작가의 선택과 해석을 포함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타당하다.
사진가는 다음을 선택한다.
① 무엇을 찍을 것인가.
② 어느 거리와 위치에서 볼 것인가.
③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를 것인가.
④ 무엇을 프레임 안에 넣고 밖으로 제외할 것인가.
⑤ 초점·노출·흔들림·색·명암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⑥ 어떤 사진을 선택하고 버릴 것인가.
⑦ 어떤 순서와 크기로 배열할 것인가.
⑧ 어떤 제목과 글을 붙일 것인가.
따라서 다큐멘터리사진을 포함한 모든 사진에는 사진가의 주관적 선택이 개입한다.
그러나 주관성이 들어 있다는 사실과 내면을 표현하는 심상사진이라는 판단은 같지 않다. 주민등록사진도 조명·렌즈·표정·프레임의 선택을 포함하지만 이를 심상사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심상사진으로 부르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관성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사진가가 외부 대상을 자신의 기억·감정·상상·존재론적 질문과 연결하려는 지속적인 작업 의도와 형식적 구조가 있어야 한다.
[9] 사진은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사진이 작가의 심상을 직접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은 표현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작가는 외로움을 느끼며 빈방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은 그 사진에서 평온함·죽음·휴식·기다림·부동산 광고 같은 전혀 다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작가의 감정과 사진의 시각적 효과는 자동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작가가 슬펐다는 사실이 사진을 슬픈 사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면적 감정이 작품으로 성립하려면 그것을 관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빛·거리·시점·색·반복·배열·텍스트 등의 형식으로 변환해야 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관점에서도 사진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은 자신의 문화적 지식인 스투디움과 개인적 기억을 건드리는 푼크툼을 통해 사진을 다르게 경험한다. (Barthes, Camera Lucida, 1980)
따라서 심상사진은 작가의 마음을 보관해 둔 투명한 그릇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내면적 경험이 외부 대상과 사진적 형식으로 번역되고 다시 관객에 의해 해석되는 매개물이다.
[10] 심상은 순수하게 개인적인가
심상사진은 흔히 개인의 가장 내밀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 역시 사회와 문화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외로움을 표현할 때 떠올리는 빈 의자, 어두운 방, 안개, 흐린 창문, 말라 죽은 나무 같은 이미지는 이미 영화·광고·문학·회화·다른 사진을 통해 학습된 시각적 관습일 수 있다.
사진가가 “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미지”라고 믿더라도 그 이미지는 다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① 어린 시절의 기억
② 가족사진
③ 영화와 드라마
④ 광고와 잡지
⑤ 종교적 상징
⑥ 회화와 사진사의 전통
⑦ 성별·세대·계층의 문화
⑧ 다른 작가의 작품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재현이론에 따르면 정체성과 의미는 이미 완성된 내면이 이미지 밖으로 나오는 과정만이 아니라, 재현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즉 사진가는 이미 존재하는 심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사진을 만들면서 자신의 심상을 새롭게 구성한다. (Stuart Hall, 「Cultural Identity and Diaspora」, 1990)
그러므로 ‘심상’은 순수한 개인 내부의 원본이라기보다 기억·감정·문화적 이미지·사회적 경험이 결합된 내적 구성이다.
[11] 심상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의 잘못된 이분법
심상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을 완전히 대립시키는 것은 오늘날 사진이론에서 유지하기 어렵다.
“다큐멘터리는 외부 현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심상사진은 작가의 내면을 주관적으로 표현한다”는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다큐멘터리사진에도 사진가의 위치, 가치관, 정치적 관점, 피사체와의 관계, 편집자의 선택이 개입한다. 반대로 내면을 표현하는 사진도 실제 장소·신체·사물·사회적 관계를 촬영해야 한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미국인들(The Americans)』은 미국사회의 모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이민자인 작가가 느낀 소외·불안·거리감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심상사진가로 규정하면 전후 미국사회를 비판한 사회적·역사적 의미가 약화된다.
심상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은 서로 배타적인 장르라기보다 하나의 작업 안에서 함께 작동할 수 있는 두 경향이다.
사진은 외부 세계를 기록하면서 내면을 드러낼 수 있고, 내면을 표현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기록할 수 있다.
[12] 심상사진과 초현실주의 사진의 차이
심상사진과 초현실주의 사진도 완전히 같지 않다.
심상사진은 일반적으로 작가의 감정·기억·상상·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사진을 넓게 가리킨다.
초현실주의 사진은 꿈·무의식·자동기술·우연·욕망·언캐니·이성적 질서의 전복이라는 역사적·이론적 맥락을 가진다.
따라서 초현실주의 사진은 심상사진의 성격을 가질 수 있지만 모든 심상사진이 초현실주의 사진인 것은 아니다.
고요한 풍경을 통해 명상적 감정을 표현한 사진은 심상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초현실주의의 무의식과 자동기술, 꿈과 현실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초현실주의자가 기존의 경찰사진이나 의학사진을 원래 맥락에서 떼어 새로운 배열에 놓았다면, 그 사진은 초현실주의적으로 작동하지만 사진가 개인의 내면을 고백하는 심상사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3] 심상사진과 추상사진의 차이
심상사진이 반드시 추상사진인 것은 아니다.
추상사진은 대상의 구체적 정체보다 선·면·형태·색·질감·리듬 같은 조형요소를 강조하는 사진이다. 추상사진은 내면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형식적 실험이나 지각 자체를 연구할 수도 있다.
반대로 심상사진은 사람·집·거리·가족사진처럼 대상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구상적 사진으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다음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① 흐릿한 사진 = 심상사진
② 흑백사진 = 심상사진
③ 추상사진 = 심상사진
④ 사물을 알아볼 수 없는 사진 = 심상사진
중요한 것은 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지가 아니라 그 대상과 형식이 작가의 내적 경험 및 작품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이다.
[14] 심상사진과 개념사진의 차이
심상사진은 감정과 내면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개념사진은 작품이 제기하는 생각·질문·규칙·체계에 더 큰 비중을 둔다고 일반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범주는 겹칠 수 있다.
작가가 기억의 불확실성을 탐구하기 위해 가족사진을 자르고 반복하여 배열한다면 개인적 심상과 기억을 다루는 동시에 기억과 사진의 관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따라서 감정이 있으면 심상사진이고 생각이 있으면 개념사진이라는 식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동시대 사진작업에서는 감정·개념·사회적 맥락·매체 실험이 함께 작동한다.
[15] 심상사진이라는 용어의 역사적 가치
심상사진이라는 용어에는 분명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한국 사진계가 오랫동안 공모전의 전형적인 아름다움, 보도사진,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집중했을 때 심상사진과 영상사진이라는 논의는 사진가의 내면적 시각과 주관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육명심은 1960년대 한국사진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카메라의 새로운 시각과 사진가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영상사진’을 제시하였다. 그의 작업은 외부 대상을 충실히 설명하기보다 사진가의 순간적 인상과 내면의 심상을 드러내려 했다. (한국영상사진연구, 「육명심의 사진세계를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시각적 무의식을 드러내는 사진의 가능성」)
한정식 역시 현실 대상의 충실한 재현보다 고요·추상·존재에 대한 내면적 탐구를 강조하며 한국 사진예술의 독자적 방향을 모색하였다. 그의 『사진예술개론』은 1986년 출간 이후 예술사진을 추구하는 국내 사진가들에게 중요한 입문서로 기능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예술개론」)
따라서 심상사진이라는 용어는 한국 사진이 단순한 현실 기록을 넘어 작가의 주관적·정신적 표현을 탐구해 온 역사적 과정에서 의미가 있다.
[16] 심상사진이라는 용어의 장점
1. 사진가의 주관성을 강조한다
사진이 기계적인 현실 복사가 아니라 선택과 해석의 결과임을 이해하게 한다.
2. 외부 대상과 내면 경험의 관계를 탐구하게 한다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억·상실·불안·욕망의 대응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정확한 초점과 사실적 묘사뿐 아니라 흔들림·모호함·추상·다중노출·배열도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4. 사진의 시적 가능성을 확장한다
사진이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존재의 상태를 환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5. 한국 사진사의 특정한 문제의식을 담는다
생활주의 리얼리즘과 공모전사진 중심의 환경에서 개인적 시각과 작가성을 요구했던 역사적 흔적을 보여준다.
[17] 심상사진이라는 용어의 한계
1. 의미가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다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들어간 모든 사진을 심상사진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예술사진이 포함된다.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분류어로서의 구별 능력이 약해진다.
2. 작가의 내면을 순수한 원본으로 가정한다
심상은 사회·문화·언어·기억·다른 이미지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심상사진이라는 말은 내면에 이미 완성된 이미지가 있고 사진은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도구라는 잘못된 생각을 만들 수 있다.
3.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동일시한다
작가가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해서 모든 관객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 사진의 형식, 전시 맥락, 관객의 해석 사이에서 형성된다.
4. 다큐멘터리와 주관성을 대립시킨다
다큐멘터리사진에도 주관성이 있고 심상사진에도 외부 현실과 사회적 맥락이 있다. 두 범주를 객관과 주관으로 나누면 사진의 복합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5. 표현을 분위기와 동일시한다
안개, 어두운 톤, 흐린 초점, 빈 공간, 긴 노출처럼 감성적으로 보이는 형식이 심상사진의 공식처럼 반복될 수 있다. 그 결과 작업의 구체적 경험과 질문 없이 분위기만 남는다.
6. 검증하기 어렵다
작가가 “내면을 표현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의 성취를 평가하기 어렵다. 내면은 직접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것이 어떤 대상·형식·배열을 통해 작품으로 전환되었는지 분석해야 한다.
7. ‘진지한 사진’이라는 위계를 만든다
Serious Photography를 심상사진과 연결하면 보도사진·상업사진·가족사진·유머사진·일상사진은 진지하지 않은 사진이라는 잘못된 가치위계를 만들 수 있다.
8. 동시대예술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동시대 사진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젠더·계급·질병·가족·기억·감시·데이터·제도·유통·인공지능 등 복합적인 문제를 다룬다. 이를 모두 심상사진으로 묶으면 각 작업의 구체적인 쟁점이 사라진다.
[18] 흔히 심상사진이라고 오해하는 경우
1. 사진이 흐리면 심상사진이라는 생각
흐림은 형식일 뿐이다. 흐린 사진이 내면적 경험과 연결되는 이유가 없다면 단순한 기술적 효과일 수 있다.
2. 흑백사진이면 심상사진이라는 생각
흑백은 색 정보를 제거하고 형태와 명암을 강조하지만 그 자체로 내면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3. 분위기가 쓸쓸하면 심상사진이라는 생각
안개, 빈 의자, 폐가, 마른 나무는 이미 익숙한 감성적 상징이다. 개인적 경험과 구체적인 작업 맥락이 없다면 상투적 이미지에 머물 수 있다.
4.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으면 심상사진이라는 생각
난해함과 내면성은 동일하지 않다.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작품의 깊이를 증명하지 않는다.
5. 작가가 느낌대로 찍으면 심상사진이라는 생각
느낌은 작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작품의 완성은 아니다. 촬영 이유, 반복되는 형식, 사진의 선택과 배열이 필요하다.
6. 보정이 강하면 심상사진이라는 생각
색조 변경, 합성, 질감 추가는 내면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보정 자체가 심상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7. 한 장의 사진만으로 깊은 내면이 드러난다는 생각
가능할 수는 있지만 대체로 작가의 지속적인 문제의식은 한 장보다 연작과 배열, 반복되는 대상과 제작 과정을 통해 더 분명해진다.
8. 설명할 수 없을수록 예술적이라는 생각
내면적 경험이 언어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과 작품이 논리적·미학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19] 심상사진을 평가하는 기준
심상사진이라는 표현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라 다음 내용을 평가해야 한다.
① 사진가가 어떤 구체적인 기억·감정·경험에서 출발했는가.
② 그 경험이 왜 해당 대상과 연결되는가.
③ 대상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관계를 만드는가.
④ 빛·거리·초점·흔들림·색·명암이 주제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가.
⑤ 작가의 감정이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지 않는가.
⑥ 관객이 자신의 경험으로 사진을 해석할 여지가 있는가.
⑦ 한 장의 우연한 성공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작으로 발전하는가.
⑧ 사진의 배열이 기억과 감정의 흐름을 구성하는가.
⑨ 개인적 경험이 가족·세대·사회·역사적 맥락과 연결되는가.
⑩ 기존의 감성적 상투어법을 반복하지 않는가.
⑪ 왜 그림이나 글이 아니라 사진이어야 하는가.
⑫ 사진의 지시성·시간성·부재·복제성과 같은 매체적 특성을 활용하는가.
[20] 동시대 사진예술에서 어떻게 고쳐 사용할 것인가
‘심상사진’이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먼저 해당 글이나 강의에서 뜻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심상사진은 사진가의 내면을 직접 복사한 사진을 뜻하지 않는다. 외부 현실의 대상과 사진적 형식을 통하여 기억·정서·상상·무의식적 연상을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사진적 태도를 뜻한다.
그러나 학술적 글이나 작품비평에서는 ‘심상사진’이라는 넓은 표현 대신 작업의 성격을 더 정확하게 밝혀 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① 기억을 다루면 기억 기반 사진 또는 기억의 재구성
② 자기 삶을 다루면 자전적 사진
③ 가족과 사적 관계를 다루면 내밀한 사진 또는 가족 아카이브 작업
④ 감정을 형식화하면 표현적·정서적 사진
⑤ 무의식과 꿈을 다루면 초현실주의적 사진
⑥ 영적 명상을 다루면 명상적·영성적 사진
⑦ 형태와 물질을 강조하면 추상사진
⑧ 작가의 규칙과 질문을 중심으로 하면 개념사진
⑨ 심리적 갈등을 연출하면 심리적 연출사진
⑩ 작가의 신체를 사용하면 수행적 자화상
이러한 표현은 심상사진이라는 하나의 큰 범주보다 작업의 실제 내용과 방법을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
[21] 작가의 내면은 사진을 통해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작가의 내면에 강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감정은 다음 과정을 거쳐야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적 형식이 된다.
① 경험
상실·불안·사랑·노화·질병·기억 같은 실제 경험이 존재한다.
② 성찰
그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한다.
③ 대상의 선택
경험과 관계되는 신체·장소·사물·가족사진·유품을 찾는다.
④ 사진적 변환
프레임·빛·거리·시간·초점·반사·흔들림으로 경험을 시각화한다.
⑤ 반복과 탐구
비슷한 문제를 여러 상황에서 계속 촬영한다.
⑥ 선택과 배열
사진들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감정과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구성한다.
⑦ 관객과의 만남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관객의 기억과 사회적 맥락에 접속한다.
따라서 내면은 사진 안으로 그대로 이동하지 않는다.
작가의 내면은 외부 대상과 사진적 형식을 만나 변환될 때 비로소 작품이 된다.
[22] ‘심상사진’과 작가의 의도
심상사진은 작가의 의도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작가의 의도가 사진의 최종 의미는 아니다.
작가는 빈방을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은 그 빈방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사, 고독, 휴식, 가난, 병원, 죽음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다. 사진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새로운 사회적·개인적 맥락에 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상사진의 의미는 다음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작가의 경험+촬영된 현실+사진적 형식+배열과 전시 맥락+관객의 기억과 해석
작가의 의도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의미를 독점하는 최종 답은 아니다.
[23] 사진미학적 핵심 문제
심상사진이라는 개념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진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이다.
사진은 마음을 직접 촬영할 수 없다. 그러나 사진은 보이는 현실의 일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상태를 환기할 수 있다.
빈 의자는 부재를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낡은 옷은 지나간 신체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
흔들린 얼굴은 불안정한 정체성을 암시할 수 있다.
반복되는 출퇴근 풍경은 무감각해진 시간을 드러낼 수 있다.
가족사진과 현재의 빈방은 기억과 상실을 충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는 사물 속에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경험, 이미지의 형식, 다른 사진과의 관계, 관객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다.
심상사진의 진정한 가능성은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외부 현실과 내면 경험이 서로 만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간극을 사진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
[24] 객관적 최종 평가
‘심상사진’이라는 용어는 한국 사진사의 특정한 시기에 사진가의 내면·주관성·자기표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의미 있는 개념이다. 보도사진과 생활주의 리얼리즘 중심의 환경에서 사진을 개인의 정신세계와 시적 표현의 매체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독립된 보편 장르명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첫째, 국제 사진사에서 통용되는 안정된 장르명이 아니다.
둘째, ‘Serious Photography’를 심상사진의 공식 영문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영어의 serious photography는 일반적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사진’이라는 평가적 표현이지 특정한 내면적 사진운동의 명칭이 아니다.
셋째, 오토 슈타이너트의 주관주의 사진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주관주의 사진은 1951년 독일에서 시작된 역사적으로 특정된 운동이다.
넷째, 작가의 내면이 사진에 직접 복사된다는 표현주의적 오류를 피해야 한다. 사진은 외부 대상, 카메라, 형식, 편집, 사회적 맥락과 관객을 거쳐 의미를 만든다.
다섯째, 심상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을 주관과 객관으로 대립시키는 것은 오늘날 사진이론에 맞지 않는다. 모든 사진에는 현실의 흔적과 사진가의 선택이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심상사진은 마음속 이미지를 직접 촬영한 사진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확립된 하나의 장르도 아니다. 그것은 사진가가 외부 현실의 대상과 사진적 형식을 이용하여 기억·감정·상상·내면적 연상을 구성하려는 사진적 태도를 가리키는 한국 사진계의 관행적 용어이다.
오늘날 비평과 작가노트에서는 ‘심상사진’이라고만 규정하기보다 자전적 사진, 기억 작업, 명상적 사진, 심리적 연출사진, 추상사진, 주관적 표현, 초현실주의적 사진 등 작업의 실제 내용과 방법에 맞는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심상사진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한다면 그 핵심은 “사진가의 마음이 담겼다”는 막연한 선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험이 어떤 대상을 만나고, 그것이 어떤 사진적 형식과 배열을 통해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의미로 변환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심상사진이라는 말은 비로소 비평적 효력을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