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잔수진,적성강,순자강,압록진)
한반도 남부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유로연장223.9km 유역면적4.911.9km2의 국가하천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고증대부근 북서계곡에서 발원하여 지방하천이되고
북서류하다가 휘돌아 임실군 신평면 원천리에서 국가하천이된다
물길은 다시 서남류하면서 임실군 운암면,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서 옥정호를 이루고 남동쪽으로 흐르면서 순창군 적성면에서 오수천,순창군
유등면에서 경천을 합하고 동남류하면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전남 곡성북쪽에서 요천을,압록리에서 보성강을 구례에서 서시천을 화동 하계리에서 화개천을 합류한후
경남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고 광양시와 하동시를 지나 남해로 유입된다
"동여도"에는 진안부근에 섬강발원지라는 뜻의 "섬강지원"이란 표기가있다한다
대다수의 문헌은 금남호남길에 위치한 "팔공산"북서계곡을 표기한다(국토지리원의 자료에도 그렇게 표기함)
팔공산물은 데미휴양림밑에 신암리 신암저수지로 모이는듯 보입니다
동쪽은 낙동강유역이고 서쪽은 영산강 동진강유역이며 북쪽은 만경강 금강 유역이라하겠다
"섬진"은 조선시대 군사요충지라하여 별장이 상주하는 섬진을
지금의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두었는데 이것이 강이름이 된듯합니다
예로부터 섬진강은 영남과 호남지방을 나누는 경계로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이었다한다
지리산일대의 유역에는 여러전설이 전해오며 옥정호,매화마을,하동송림을
비롯하여 섬진강 주변일대에는 볼거리가 너무나많다
잔수진,적성강,순자강,압록진등은 모두 조선시대 남원,곡성,구례지방에서 섬진강을 부르던 별칭이라하겠다
두꺼비 섬을써서 섬진강이란 이름을 붙인 유래는 예전에도 후기에 올린적이있다
고려말 우왕때 왜적이 강하구로 침입아였는데 이때 어디선가 수십만마리의
두꺼비때가 나타나 울어 왜적이 놀라서 물러났다하여 "두치강"으로 부르던 이름을
두꺼비 섬자로바꾸어 "섬진강"으로 불렀다한다
또하나의 전설은 마을에 살던 어떤처자가 부억에 들어온 두꺼비에게 밥을먹이며
3년을키워 뚜꺼비가 솥뚜껑 만해졌는데 장마가지던 어느해 강물에 떠내려가는 처자를
등에업고 강을건너주어 목숨을 구해준뒤 자신은 기진하여 죽게되자
덕분에 목숨을 구한처자가 두꺼비를 장사지내고 매년 제사를 지내주며 지냈다하여 섬진이라 한다고한다
하나는 뱀형국인 마을앞 강속에 강물이 보통적으로 흐를때에는 마치 두꺼비가 강을 헤엄쳐가는 형상으로
보이게하는 폭5m가량의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있어 섬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무엇이 되었던 두꺼비와 연관이있긴 있나보다 마지막전설이 가장 타당성이있어 보인다(걘적으로)
자연휴양림정자에 가방을 놔두고 홀가분하게 올라간다
데미샘
휜하게 날이밝아오고 금남호남정맥길인가보다
능선 오른쪽으로 타고가면 서구리재로해서 팔공산으로간다
오른쪽은 오계치로간다
언제 눈이온건지 계곡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구요
삼백미터정도 내려오니 물이지표위로 흘러내립니다
오계치
최상류부터 보를 만들어 물의 흐름을 바꿉니다
왜? 무슨필요에의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
휴양림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1.5km 안에 작은보를 두개씩이나 ~~
선각산도 보이고
앞의 능선은 성수지맥인듯 보이고 개동지맥도 저어디인가에 갈라지는데 아리송하다
지도를 찾다가 손이시러워 그냥간다
왼쪽에 높은산이 성수산인가보다
읽어보시구요
반송마을 요기 정류장에 쉬면서 아찔했던 마음을 추스리고
가방에 대갈통만한 빵을내어 아침요기겸 우유와함께 조금먹고 나머지는
다시 구겨넣고 길을 나섭니다 빵이 어찌나큰지 그날 종일먹고 그이튿날도먹고
산행기쓰는 지금도 먹고있습니다
빵집에서 보긴봐도 직접구입한건 처음이었습니다
예전 정맥할때보니 추산대장님이 큰빵을 한번씩 드시는걸봤죠
백운마을 앞에서 찍었는데 무슨산인지 기억이안남 ㅎ 덕태산인가?
방향은 맞는데 저뒤에 어딘가에 있을듯 ㅎ
이쁜간판 진안고원길간판
아침 동이트기전 서리꽃이 볼만하다
섬진강에는 물가에 새들이없다
그렇다면 물고기가 없다는뜻일터 다른강에는 오리,외가리 등 등 ......
참많았었는데 희한한 일이다 강길을 걸어면서 새가 이렇게 안보인적이 없었는데....
만취정
누정은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지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즐기기 위한 공간 건축을 말한다.
정자는 장방형, 육각형, 팔각형이며 개인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누와 대와 비교해 규모가 훨씬 작고 단층이다.
최초 건립 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진양 하씨의 오형제인 하호(河灝), 하선(河璿), 하욱(河昱), 하식(河湜), 하봉(河鳳)이
순조 연간에 방화 마을로 이사 온 뒤에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종도리 장혀의 상량문에 의하면
1970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취정의 석면에는 오형제의 이름이 열각되어 있다.
이때 조직한 계동 천현 현계의 계원 30여 명의 명단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한다 바위절벽에있어 접근도어렵겠다
마이산이 보이고 미세먼지가 얼마나 심한지 목이 칼칼하다
쌍벽루
쌍벽루는 큰 바위 위에 세워진 누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건물이다.
쌍벽루 서쪽 암벽에 ‘강정대(江亭臺)’, ‘도은선생장구지대(都隱先生杖屨之臺)
규암선생고반지대(葵庵先生考槃之臺)’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글자는 정자를 건립한 전영선이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내용은 도은 전문식(全文軾)의 장구 지대인 것과
규암 전계종의 고반 지대였음을 기록한 것이다.
이 암각서는 1942년 이 고장의 명필인 박소산에게 부탁해 새겼던 것으로 전한다.
또 건물 중앙에 설송 최규상이 쓴 편액이 있다.
도은선생장구지대 규암선생고반지대 무슨뜻인지 ?
신라말 대학자인 최치원이 썻다는 삼계석문
산위쪽에 공사한다고 그러네요
함가보고 싶었는데 그냥지나왔습니다
60m짜리 교각이 세워지면 귀중한 문화재가 또사라지겠네요
똑바로 서있던 바위가 넘어진듯 보입니다
소나무가 자란걸 봐서는 10년은 넘은듯 보이구요
첨만나는 사람에게 사진을 두장 부탁했더니만
한장은 흐릿하게 한장은 뒷모습은 삐딱하게 찍어놓았네요
연무대처자께서 만들어준 5대강 깃발입니다 많은분들 5대강 하시면
깃발은 제가 만들어드립니다 ㅎ
사선대에서보는 운루정
운서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오원천(烏源川)가의 사선대 위에 건립되어 있다.
1928년 당대의 부호였던 승지 김양근(金瀁根)의 아들 승희(昇熙)가 부친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6년간에 걸쳐 지은 누정이다.
정각과 동·서재 그리고 가정문(嘉貞門)으로 이루어진 운서정 일곽은 마치 강학(講學)을 위한 공간과 같다.
경사지에 화강석 장대석으로 높은 축대를 쌓아 단을 만들고, 각 단에 위계에 따라 배치하였다.
정각의 평면은 내진(內陣)과 외진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내진을 구성한 후,
135㎝ 정도 띄워서 주고(柱高)가 낮은 외진기둥을 주위에 돌려 세우고, 기둥 밖으로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시설하였다.
외진과 내진 기둥 사이는 곡선진 퇴보로 결구하였으며 내진은 다시 전후 평주 위에 보를 보내고,
보 위에 충량을 걸어 팔작지붕을 구성하였다.
지붕의 추녀끝을 활주(活柱)가 받치고 있다. 공포(栱包)는 구조적으로 내외 1출목의 익공형식이나
살미첨차가 주심뿐만 아니라 좌우 소로 위치에서 수직으로 2개가 더 짜여져
2제공 익공 쇠서[牛舌]가 3개가 되는 특이한 형태이다.
기둥과 활주의 초석도 매우 장식적이다. 전체적으로 권위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어
자연과 조화를 제일로 삼은 전통적인 정자의 구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선대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해서 왔더니만 마늘 잡숫고 금방 굴에서 나오신
단군 할아버지가 금관복을 입으시고 앉아계시네
사연많은 한밤을 보내고 아침일찍 택타고 전주에서 관촌으로
길을 이어가고 있는데 사선문을 앞에두고 배방에게 전화가 오고
걱정이 많이되었던 모양입니다
저앞에서 혼이 반쯤나간 아저씨가 가방을메고 걸어옵니다
섬진강을 걷고있다고 그러십니다
으메 나만 정신줄 놓은줄 알았더니만 똑같은 사람을 만났네요
통화중이라 얘기는 못나누고 ~~~아저씨 표정으로보아 밤새 걸어오신듯
먹을거라도 좀드렸어야했는데 어느새 관촌읍내로 들어가신듯 모습은 보이지않고
아저씨 끝나는 날까지 몸상하지않고 무사히 걸으시길 기원합니다
신평지나고 운암으로 들어서고 아스길을따라 얼마나 걸었나
옥정호를 코앞에두고 먹거리를 찾으러 운암소재지로 가보지만
이른시간이라 아무것도없다
멀리 국사봉이 보이고
옥정호(섬진강댐)
아침의 호수와 나무 서리 환상적인 콜라보
국사봉 제1전망대
붕어같이 보이나요?
국사봉
금남호남에서 약간벗어나있는 봉우리
하지만 정맥팀들은 옥정호의 붕어섬을 보기위해 들러는 곳이랍니다
일이년후에는 옥정호 둘레 데크길이 완성될듯합니다
한창공사중입니다
정맥길과 나란히오다 만나는길입니다 지나갔던 기억이납니다
운암대교가 보이구요
허술한 길까페에 들어가서 아침 진수성찬을 먹습니다
마침 방장님과 연락이되어서 사진 보냈더니 대박이랍니다
배방장님,추산대장님 다요기서 나처럼 이렇게 먹었나 봅니다
운암대교 ㅎ ㅎ
dg뻔 했습니다요
사연인즉은 다리로 내려가는길이 없더군요
할수없이 울타리따라 오백미터를 내려갔는데도 울타리는 계속쳐져있고
이상하다 ? 고속도로인가싶어 살펴봐도 아닌것같고 차들은 바람을 가르며 무십게달리고
일단 담치기를 하자싶어 가던길을 뒤돌아와 진입하기 좋은곳에서
가방을벗어 울타리안으로 던져놓고 담치기를 합니다
1m50정도야 작난이지~ 넘어가니 어떤차들은 ㅈㄹ하고 전조등을 켜기도하고
대부분의 차들은 그냥지나갑니다
대교를 들어서니 인도경계석도없고 옆에서 차들은 백삼사십키로 달리는데
ㄸㄱ이 간질간질거려서 뛰다가 걷다가 1km오는데 듁는줄~
다리를 다건너와서 사진을 한장담습니다 나중에 배방한테 얘기들어보니
자기들은 운암대교가아닌 차도별로 안다니는 운암교로 지나갔다 그러더라구요
죽다살았습니다 ㅎ ㅎ
요밑으로 건넜다고 ㅎ ㅎ
호랑이를 피하니 범을 만난다고 다리를 건너고 조금오니 터널이 나옵니다
으이구 2955m 증말 못살겠다 머리숙이고 최대한 속보로 통과합니다
이날 마신 미세먼지에 자동차타이어 분진......
배가르면 한바가지는 나올듯 ~~~ㅎ ㅎ
그렇게 그렇게 전남 강진이 아니고 전북 강진면 강진교 섬진강에 오후4시경에 도착하고
강진정류장에서 순창으로 순창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동대구로 동대구에서 포항으로
집으로 옵니다 참멀기도 멈니다
첫댓글 어째 2구간 후기 보다 1구간 후기가 나중에 올라오는걸보면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닌듯기면서 다니시길,,,,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ㅇㅅ 老 松
강길 거닐라, 해안길 걷닐라, 무지 고생 되시겠습니다,,, 강길 맞치고 해안길 걷는건 생각 안해봤는지....
체력이 잘 버티여줘야 할긴데.... 첫구간은 금요일 밤부터 걷는다구라, 2무박 만만치 않을덴데,
건강관리 잘하시고,
지난번은 영산강 2구간 이번은 섬진강 1구간
할배 잘 좀 보셔요^^
완전 개 고생 하신듯 합니다.
운암교를 지나야 하는데 운암대교를 지나 터널속으로 진행 하셨으니
지루하던 섬진강은 섬진강 댐 아래부터 본격적인 조망과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 됩니다.
이번주 해안길도 조심해서 다니시구요 컵라면 몇박스 정도 먹어야 끝날듯하니 달달하게 드시기 바랍니다.
남은빵 다음구간에 갖고 가이소 ㅋ
징그러운 길 고생하셨습니다.
빵이 얼매나커길래 아직고 자신다고라고라구...ㅋㅋ
이번주 남해안길에서 기깅 쫌 하입시더^^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시어 고달픔은 잊어시고 행복한 걸음대이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