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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제2년 6월 21일 이사야서 52:13-53:12 찬송가 144장(새찬송가 144장)
[52장]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53장]
0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0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0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0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0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0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0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0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0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네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
본문은 네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로서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고 불립니다. 앞서 나온 종의 노래들에서도 여호와의 종, 즉 메시아의 고난은 어느 정도 암시되거나 묘사가 되었지만, 이 네 번째 노래에서 그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즉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할 메시아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며 고난을 받는 모습으로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비천한 모습의 사람이며, 불의한 자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면서도 한 마디 항변도 하지 않는 연약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자기 백성을 구속할 구원자, 즉 메시아로 올 것이라는 이 예언은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믿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지자는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라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대속 사역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명히 묘사하고 있는 이 예언은 그 정확성이나 신학적 깊이에 있어서 구약에 있는 모든 예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정상에 있는 놀랍고 보배로운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노래 서곡(52:13-15)
【13절】52:13-15은 네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 중 서곡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53장에서 전개될 주제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고난 받게 하시지만 그 후에 그를 지극히 존귀케 하실 것이라는 사실과, 모든 민족들도 이런 메시아의 구속사역을 듣고 크게 놀랄 것을 예언합니다. 여기서 ‘내 종’은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형통하다’는 원래 ‘지혜롭게 행하다’, ‘신중하게 다루다’의 뜻으로서, 여호와의 종이 그의 구원사역을 지혜롭고 신중하게 감당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종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는 예언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승귀(昇貴)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빌 2:9-11).
【14절】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경악하며 놀랄 것인데, 그것은 여호와의 종의 모습이 너무 손상이 되어서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15절】그러나 그 후, 즉 고난 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후에는 다시금 열방이 그를 보고 놀라게 될 것인데, 그것은 그러한 고난을 통한 대속사역이 너무 기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 주님의 대속사역과 그가 이루신 구원은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것입니다(고전 2:9). 그리고 열방이 그를 보고 놀랄 것이라는 말에는 여호와의 종의 구속사역의 효과가 전 세계에 미치게 될 것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멸시받는 여호와의 종(53:1-3)
【1절】여기서 ‘우리’란 이 메시아의 예언을 전하는 선지자와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며, “누가 믿었느뇨”란 질문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묘사가 사람들의 지혜로는 납득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임을 말해줍니다.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백성들의 구원을 이룬다는 메시아의 예언은 한 마디로 ‘십자가의 도(道)’로서, 그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인 반면 구원을 얻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고전 1:18). ‘여호와의 팔’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며, 그 능력이 고난 받는 종을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렵다는 것을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2-3절】여호와의 종으로 오게 될 메시아의 모습은 고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영웅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들이 구원자로 추앙하는 영웅들은 주로 그 풍채가 당당하고 화려하며 뭇 사람들의 흠모함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자로 오실 여호와의 종은 약하고 멸시를 당하는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연한 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11:1)”는 예언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며, 동시에 여호와의 종이 이 땅에 오시되 비천한 환경 가운데 와서 자라실 것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실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삶의 과정이 사람들 보기에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보호 속에 있게 될 것을 말합니다.
3절에서 ‘질고를 아는 자’란 말의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여러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간고(슬픔)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란 말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주변의 환경에 가난과 고난으로 슬퍼하는 자와 병든 사람들이 많아서 늘 그들의 아픔을 보아 그들의 고통을 잘 안다는 뜻인 동시에, 그 ‘병’을 ‘죄’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본다면 죄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인간들을 잘 이해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에 대해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은 인간들의 슬픔과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연약한 자들 가운데 올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의 외형적인 모습만을 보고 멸시하며 싫어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여호와의 종(53:4-6)
【4절】사람들은 메시아가 고난 받는 것을 그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메시아의 고난은 우리,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임이 여기서 선포됩니다. 즉 메시아의 고난에 의해서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라는 말은 우리가 져야 할 질고의 짐을 그가 대신해서 졌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구절을 예수님이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신 일에 대하여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적용하고 있습니다(마 8:16-17).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의 공생애 전체가 인간들의 슬픔과 질병의 아픔을 그 몸에 담당하고자 하는 고난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5절】본 절은 여호와의 종이 장차 받을 고난의 구체적인 내용과 더불어 그가 고난을 받는 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창에 찔리며 채찍에 맞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몸이 부서질(개역성경: 상하다; NIV: to be crushed)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죄악과 허물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악이 하나님이 정하신 실정법인 율법들을 어긴 죄들을 말한다면, 허물이란 히브리어로 ‘페솨’로서 “반역하다”는 뜻을 갖고 있음으로서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원수처럼 살아가는 죄성과 죄악된 삶의 자세 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인간들은 선천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기질을 갖고 태어난 죄인들이며, 또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을 오히려 즐겨하거나, 율법을 알더라도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그 법을 지킬 수가 없는 죄인들이기에, 도무지 자력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는 구제불능의 죄인들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와 허물들은 하나님과 행위언약 관계 안에 있는 인간들에게 영원한 사망을 그 값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창 2:17; 롬 6:23),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일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해야 할 사망의 죄값의 요구가 여호와의 종에게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찔리다’, ‘상하다’ 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의 이런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인데,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님과의 평화와 하나님이 주시는 내면적인 참 평안을 말합니다.
【6절】본 절은 구약에 나타난 복음적 성구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구절로서, 여호와의 종의 고난의 목적을 요약해 줍니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인간들은 본성적으로 죄로 가득 차 있어서 늘 하나님께 거스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런 우리 인간들의 죄악을 그 종, 즉 메시아에게 담당시키심으로써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길을 마련하셨음을 선지자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사야서 40-66장은 ‘구약 중의 신약’, 또는 ‘구약 중에서도 가장 복음적인 예언’으로서, 그 중에서도 53장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잠한 양같이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53:7-9)
【7절】본 절은 고난에 대한 여호와의 종의 태도를 요약해 줍니다. 여기서 “곤욕을 당하여”는 원래 “그가 자신을 곤욕 당하도록 내맡기셨다”는 뜻으로서, 이것은 그가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또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낸 것을 뜻합니다. 즉 여호와의 종은 고난을 자원할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실 것인데, 선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잠잠한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증거했을 때에 아마 그는 이 이사야서의 예언을 떠올렸을 것입니다(요 1:29).
【8절】여호와의 종은 곤욕과 심문을 당할 것인데, 그것은 많은 매를 맞은 후 법적인 재판 과정을 밟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판결에서 그는 후사를 남기지도 못한 채 죽을 것이 예언됩니다. 그러나 그 사형 판결이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신 받기 위한 것임을 누가 알겠느냐고 선지자는 반문하고 있습니다.
【9절】범죄자로 판결을 받아 죽임을 당한 후 여호와의 종의 무덤이 악인과 함께 하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하리라는 것은 그의 죽음이 마치 악인의 죽음처럼 취급될 것이며, 자기 소유의 묘실이 없어서 남의 묘실에 안장될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 예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른 두 악인들과 함께 처형을 받으며(눅 23:33),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묘에 장사됨으로써 성취가 됩니다(마 27:57-60).
하나님의 속건제물인 그의 영혼(53:10-12)
【10절】여호와의 종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행하신 일임이 여기에 밝혀져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이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그의 죽음과 그의 피가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에 대한 배상이 치러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록 여기서는 여호와의 종의 죽음이 속건제물로만 표현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드려지던 모든 희생제사들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이처럼 성공적으로 자기의 목숨을 속건제물로 바친 후에 오히려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씨들, 즉 영적인 후손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날이 길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을 말합니다.
【11절】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의 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보상을 내려주시는 이유를 말씀하고 계신 것인데, 그것은 여호와의 종이 자기 지식, 즉 자기에 관한 지식,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에 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의롭게 하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본 절은 여호와의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담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렸으며, 고난과 죽음 가운데서도 범죄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정도로 충성하였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자로서의 전리품을 취하도록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고 선포함으로서 이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열방이 여호와의 종을 보고 놀라게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왜 여호와의 종의 죽음은 속건제물로 표현되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성령님이여,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날이 갈수록 더 깊이 깨닫도록 역사하소서!”
◈믿음의 글◈ “십자가의 예수님과 진젠돌프”
독일의 젊은 백작 한 사람이 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그림을 보다가 한 구석에서 스타인백이라는 화가가 그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이전에도 무심히 성화를 많이 보았지만 그 날만은 이상하게 무심히 볼 수가 없었다. 즉 그 그림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얼굴이 그 젊은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서 물러가려야 물러갈 수가 없어서 오래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에는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일을 하였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는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그 글자가 마치 예수님께서 친히 자기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생각되어 그 자리에 앉아서 “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생을 당하시고 죽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하고 온전히 그 몸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18세기 영국교회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한 모라비안 교회의 지도자인 진젠돌프입니다. 그는 회심한 이후 자신의 재산을 바쳐 모라비아 출신의 피난민들을 모아서 그들과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경건운동과 선교운동에 힘썼는데, 나중에 요한 웨슬레가 이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에서 성령을 받고 회심의 체험을 함으로써 영국에서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한 사람의 영향력은 이처럼 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