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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생태코뮌 독서토론 모임
◆ 도서명 : 이반일리치,『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걸음, 2014.
◆ 날짜 : 2014년 12월10일 수요일
◆ 장소 : 놀몸연극놀이연구소
◆ 참석자 : 정복순 님, 박윤태 님, 김은정 님, 제송미 님, 임원종 님, 오영순 님, 오예신 님, 강준용 님, 윤동희 님, 홍유진
◆ 사회자 : 윤동희 / ◆ 기록자 : 홍유진
* 윤동희 : 일리치의 두 번째 책, 자본주의 사회의 획일적 양식 비판, 사유를 하며 세상의 문제 되짚었다.
* 임원종 : 지난 독서토론 모임에서 “과거의 거울을 비추어” 책의 ‘물’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부담스러웠는데,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얇은 책이어서 2시간 이면 다 읽을텐데 오히려 생각의 꼬리를 물면서 금방 읽을 수 없었다.
사회의 근본 이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인은 외롭고, 꿈을 꾸는 것조차도 무의미 하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지극히 시야가 좁고, 외롭게 살아간다. 소비문화, ‘미생(未生)’의 유행 등은 이를 잘 드러내는 단적인 예이다.
예를 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주를 마시러 갈 때 폰 번호에 저장된 사람이 500명이 넘어도 과연 같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이 책은 이 세상의 문제점을 잘 짚어내고 있는 책이었다.
* 오영순 :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됐으나, ‘인간’이 창조적인 삶,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리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것을 방해한다. ‘등잔’을 켜고 사는 사람은 ‘가난’한 것으로 본다.
운전자가 전문가로 있으면 좌석에 앉아있는 탑승객들이 마치 오늘날 사람들의 입장 아닐까?
* 정복순 : 끊임없이 소비를 해야만 하는 세상,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생협 조합원
겉으로 보기에는 따스하고 부유하고,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우리사회가 문제가 있음을 누구나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자급자족’의 세계로 언젠가는 가족들과 돌아갈 생각이 있다.
오늘날 구멍 난 양말을 꿰매 입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회 체제가 지금의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빨리 이 사회의 문제를 깨닫고, 자각하여 극복하길 선동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윤동희 : 일리치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독자들에게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때려 치워라’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앞을 향해서만 가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멈추고 돌아보게 한다.
일리치가 대안이 없더라도 이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기능, 재능들이 세부적인 부분들까지 ‘전문가’에게 내맡겨지고 있는 세상이다.(위탁) 걸어다니는 사람은 신분 혹은 지위가 낮은 인간으로 치부되고, 위생 계급 마저도 있다. 컴퓨터에 이은 스마트폰 세상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인간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세상의 문제를 다시 고민해보고, 되짚어보게 한다. 젊은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임원종 : 어떻게 보면 강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요리를 해먹는 게 아니라 사먹는 게 편한 수동적인 세상이다. 숨 막히게 ‘시간’을 쪼개며 살아야하는 인간,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편하게 살고 있기에 한번쯤 불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그 맥주가 생산된 과정과 근원을 생각하기 힘들다.
‘불편’이 거부되는 사회이기에 오히려 그 반대로 불편을 절실히 택해야하는 사회가 아닐까.
일리치의 지혜를 받아들여, 생활에 적용해본다면 좋겠다. 강요된 세상에 주체적으로 살게끔 계기를 준 책 이라고 보았다.
* 정복순 : 아파트를 버리고, 군불 떼는 세상으로 돌아가라? 수도꼭지만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세상에 익숙해져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세상, 이익의 재분배가 필요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북유럽권 국가 중에는 벽돌공과 의사의 급여가 동일한 사회이다. 그 사회는 ‘일리치’가 지향하는 바를 실천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아 이제와서 버리고 살 순 없다.
일리치는 책에서 언급했다시피, ‘군대’와 ‘대학교’는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회시스템에 이미 익숙해져 다시 불편했던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기에 힘들다. 일리치가 말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 일치시키기에는 어렵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 임원종 : 정신, 마음이 불편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세월호’ 문제, ‘북유럽’과 ‘우리사회’를 비교하며 마음이 불편해야지 이 사회의 문제의 해결점과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늘 정신만이라도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불편을 자각해야한다(?)
* 제송미 : 우리의 시대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읽었다. 우리시대의 문제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코모임을 통해 확인하면서 느낀 바이다.
기성세대는 우리 사회 문제에 관해 직시하고 있으나, 선뜻 이 문제를 문제가 있음을 외치지 못한다. 나도 이미 기성세대 이지만 실생활에서 편한 것에 익숙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앞서 ‘정복순’씨가 말했던 북유럽의 교육법은 아마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필란드의 교육법을 이르는 말이었다. 우리는 용기가 없다가 아니라, 우리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있는 만큼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 정복순 : 나이 많은 60~70대 어른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일할 자리가 없다. 내 딸들은 내가 시킨대로 공부했으나, 내딸 뿐만 아니라 모든 오늘날의 20대 젊은이들은 부모가 시킨대로 공부 했으나 일할 곳이 없다.
이 사회는 이미 기득권의 장벽이 견고하다. 최근에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도 그 사건의 당사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확대해서 바라봐야하지 않나 싶다. 그녀는 그 나이가 되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녀의 행동을 제재하는 것이 없진 않았겠으나, 그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평소에 별문제 없었을 것이다.
* 윤동희 : 일리치는 책에서 복지국가도 거부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진리나 이치를 다시 생각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복지시스템 비판, 자본주의 시대 이해 못하면서 사회시스템에 무비판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의 핵심은 ‘위탁’이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다. 전문경영인이 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성과를 부풀린다. 위탁 시스템 없이 작은 공동체를 지향한 이반일리치,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했으면 정치에서의 대리인 문제에 관해 시민들이 정책에 관심이 없음을 꼽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적, 대리인(전문가) 시스템 문제제기.
일리치는 북유럽식 공동체 모델도 비판하였다.
모든 것을 관두어야 할까? 아니다. 혹독한 세상일지라도 개인의 선택이 없으면 어떠한 결과도 없다. 대안을 생각해보자.
* 오예신:일리치의 시선을 따라가진 않는다. 위탁이 없어도 전문가는 필요하고, 적성문제가 생긴다. 이미 자본주의 세상에 있기에, 질좋은 방향을 모색해야한다.
* 윤동희 : 위탁 중에서도 ‘필요’이다. 마치 없으면 못살 것처럼 ‘마케팅’하는 것이 문제이다. ‘옷’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제 기능을 한다. 그러나 유행이 지나거나,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승용차’, ‘휴대폰’, ‘텔레비전’ 등은 모두 마케팅의 결과물이다. 일리치는 ‘어떠한 개인도 한 시대의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감옥에 관하여... 비정상은 시대마다 다르다. 상상자체는 시대 안에서 이야기할 뿐이기에, 한계가 있다.
선택은 자발적 복종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으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상 개인에게 자유의 책임을 묻기 힘들어졌다.
* 제송미 : 사회의 거짓을 인지하고 있으나, 자기 자신을 속인다. 자신이 본 사회의 거짓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제 스스로 먹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을 강요한 사회이다.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하는 세상, 세상이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오늘날은 많이 없어도 되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출산이라는 것만 보아도 옛날에는 ‘산파’가 있었고, ‘가족간의 출산’이 가능했다. 그러나 산모는 환자취급을 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서적으로 좋은 문화가 파괴되었다.
그밖에 18세기 초 책사들은 지식공유를 위해 훌륭한 누군가가 쓴 책을 절실한 마음으로 필사했다. 21세기는 그러한 절실함이 결여돼있다. 왜냐하면 인터넷, 책, 정보 등을 쉽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학생들을 본다. 똑똑하지만 그만큼 글귀 한 줄의 깊은 고민이 없다. 지식의 양은 많으나, 그 깊이는 얕다.
* 윤동희: 인터넷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 소비에 따른 재고회전율 또한 빠르다.
재고회전율이 빨라질수록 전통문화의 잠식 속도도 빨라진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력감에 빠져든다. 이러한 무력감을 깨기 위해 자신이 관심있는 학문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해답이 아닐까?
* 오예신: 할 수 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내가 관심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 윤동희: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자유 또한 산업시스템에서 차선으로 택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 정복순: ‘공장’에서 찍어내듯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 성폭력과 성추행을 낮추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
‘생명’이 태어나는 고귀한 순간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순간을 보인다는 것이 ‘여자’라면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일은 지극히 경이로운 일이다. 가족들이 ‘출산’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부재하기에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한 것이 아닐까.(성폭력, 성추행 사건들도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음에서 나온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300명 이상이 죽었는데도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로 바라보며 침묵한다. 언젠가 그 일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무섭다.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 제송미: 우리는 우리사회의 문제를 자각만 할 뿐이다. 기본적인 법규조차 지키지 않고 사는 세상이지 않은가.
* 장복순 :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 제송미 : 근본적인 것, 나의 일이 아니라면 남의 일이기에 집중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모임을 본 바, 이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생겨났다. “내가 노력해도 바뀌겠어?”라는 생각은 이제 희망을 말하고 있다.
* 윤동희 : 오늘날의 대다수 사람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기력하고, 무관심하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며 아파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절벽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절박하게 살아간다. ‘사랑’이 따뜻한가? 분노의 양말과도 같지 않을까? 삶의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하지만, 타인의 일에 공감할 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제를 제대로 보는 눈이 없기에 절망하고 또 절망하며, 비판해야 한다.
* 임원종 : 아파할 줄 모르는 사람들, 속도가 빠르면 똑똑하고 속도가 느리면 멍청하다고 여긴다. ‘행복’은 마약같은 것, 같아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기에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낙오자에 관해 사람들은 또라이 라고 말한다. 창의력과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된다. 우리는 경쟁사회 속에서 전체 100명 중 99명의 낙오자를 두고, 1명의 승리자를 본다. 낙오자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서로 공감하는 ‘눈’을 가지고 있을까? 이미 차별받고 상처받은 낙오자이기에 없다. 정작 우리가 ‘똑똑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휴대폰에 엄마를 ‘시팔년’, ‘미친년’으로 저장해두고 있다.
* 오예신 : 왜 우리가 힘들까? 그것은 남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혼자 밥 먹기가 안 되는 아이들이 많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여 나를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남을 바라보고, 남의 소식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더 많다. 학교의 경쟁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니다’라고 외치기가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학교 수업에서 ‘방법론’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게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 윤동희 : 개인이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이 ‘개인’을 갈아엎는다.
* 박윤태 : 논의는 다 똑같은 사람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지금 모임의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기질(본성), 인격(지위), 성격(습관)에 따라 달라진다.
* 김은정 :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에 관심이 많아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의 이야기에 공감하였다. 책 제목처럼 나는 내가 쓸모없게 느껴진다. 우리가 모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유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요즘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등을 설립한 사람들이 많다. 요새 책에서 말하는 무기력감으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선택 자체가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윤동희씨가 선택마저도 필요에 의한 조작이라고 말씀하신 것 공감한다.
* 오영순 : 갑자기 책을 읽다가 왔으나, 읽으면서 참 많이 공감하였다. 어려운 책의 내용을 거듭 소화하는 게 벅찼다.
* 윤동희 : 토론시간의 ‘호흡’의 표준잡기의 필요성, 한 사람당 5분의 발언기회를 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발언의 제한시간 필요하다.
* 임원종 : 책이 어려워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 좋았다. 책의 내용이 어려울수록 되새기며 생각할 기회가 있고, 책의 내용을 이해하다가 필터링에 걸려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개개인의 변화가 필요하며, 이 사회의 변화의 바람에 동참하여 지식이 강요된 사회에서 삶의 방식에 의문과 비판을 제기한다면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 오예신 : 토론모임에서 끝까지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고,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제송미 : 첫 모임 참석을 통해 독서토론의 신선함을 느꼈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 용기가 없어 ‘술자리 안주’로만 인생을 논하였다. ‘기분이 좋다’ 젊은 친구들이 있기에 이 사회의 방향이 바로잡혀, 탁탁한 혈관에 ‘피’가 제대로 흐를 것이다. ‘희망’을 본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나를 쓸모없게 하는 것은 ‘나’라고 생각한다.
* 윤동희 : 논쟁은 필요한 것이고 좋은 것이다. 앞으로 우리사회는 지식을 얇고 넓게 습득해 갈 것이다.
생코 독서토론 후 다음 시간 토론할 책 : 오래된 미래
16회 생코모임 사회자 : 임원종 / 기록 : 홍유진
첫댓글 급하게 올려서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도 섞여있는 듯 합니다.ㅠㅠ
녹음 파일 채록을 하는 중입니다. 녹음파일 시간이 129분이더라구요.ㅠㅠ 현재 48분 채록완료된 상태입니다. 끝까지 채록하는 대로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우와... 후속 작업이 엄청나군요.
<채록>이 대체 어떻게 나올 것인가도 궁금하지만, 유진씨 힘들까 걱정도 됩니다.
기대 반, 걱정 반... @.@;;
우야든동 선재미, 후의미~!
재밌어요~ 단지 귀가 가끔 집중해서 녹음된 목소리를 듣다보니, 목소리를 못알아듣는 그정도?ㅎㅎㅎ;;;
같은 부분 다시듣기로 인해 129분이 뻥튀기 되는거죠.ㅋㅋㅋ
@홍유진 평소, 남 얘길 귀담아듣지 않아 <주의산만> 딱지가 초딩 이래로 유구히 흘러온
저 같은 넘은 감히 상상키 어려운 즐거움이군요! ^0^)/
^^채록잡업이 두세배 이상이 걸릴 텐데, 대단하군요.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지치면 안되니 안배를 잘 하시겠죠? 감사합니다.
ㅎㅎ 맞아요.. 지치는 건 사실이어서ㅠㅠ 30분씩 끊어 채록하고 있습니다.ㅎㅎ 곧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