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인력 개편안을 두고 내홍을 겪고 있는 간호계가 이번에는 간호단독법 제정을 놓고 또다시 분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갑작스레 간호단독법 제정을 들고 나오자 회원들의 반발을 의식한 집행부의 의도 있는 행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간협은 최근 간호사 업무 체계 법제화 등을 골자로 한 ‘간호단독법’ 제정을 추진키로 하고, 내달 1일부터 100만 대국민 서명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간호단독법이 제정되면 보건복지부의 간호인력 개편안을 간협이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을 불식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간호인력 개편안을 두고 간호계 내부에서 논란을 빚어 왔던 문제도 종지부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간협의 입장이다.
간호단독법에는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 산재된 간호영역 통합 ▲의료 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간호사 업무 체계 ▲전문간호사 업무 법제화 및 조산원·조산사 역할 및 업무 확대 ▲간호보조 인력에 대한 간호사의 지도·감독권 및 위임 불가 업무 등이 담겨 있다.
간협은 다만 간호단독법 제정 추진이 간호인력 개편안에 전면반대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간협 한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간협의 간호단독법 제정 추진이 간호인력 개편방안을 전면 반대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간호단독법을 통해 국민건강과 환자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간호인력 체계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단독법은 물타기 작전”
그러나 간협이 뜬금 없이 해묵은 간호단독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간호인력 개편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물타기 작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전국 간호사 모임(이하 건수간) 공동대표인 서울대 간호대학 박현애 학장은 “간호단독법에는 (간호인력 개편안에 반하는) 내용이 없다. 간협이 말로는 법 제정을 통해 간호인력 개편안 논란을 잠재우겠다고 하지만 결국 원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라며 “내용이 없는 간호단독법 추진을 위해 하는 서명은 백지수표에 서명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박 학장은 이에 따라 “간협이 간호단독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이유는 간호인력 개편안에 반대하는 이들(건수간 등)을 조용히 시키려는 물타기 작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K대 간호대학 A교수도 “3단계 간호인력 개편안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 간협이 갑자기 간호단독법 제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현 상황을 얼렁뚱땅 넘기기 위한 꼼수 아니냐”며 “간협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를 제외하고는 대학교수, 병원간호사, 간호대학생 등은 모두 간호인력 개편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호인력 개편안이 담겨져 있는)이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지 못하도록 (건수간 등이) 본격적인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법안을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도 비판했다.
간호단독법 제정에 앞서 간호사와 간호보조 인력 간 업무영역을 명확히 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는 “간호단독법 제정 이전에 복지부의 3단계 간호인력 개편안을 원천봉쇄 하는 것과 간호사-간호조무사 간 업무가 정해져야 한다”며 “미래 노인 인구 추이 등을 분석해 간호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하고, 이들이 어떤 업무를 수행할지를 명확히 한 다음에 간호법을 만드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간협 관계자는 “(간호사와 간호보조 인력 간) 업무영역 구분은 간호단독법이 법제화되기 전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일단 간호단독법이 제정된 후에 업무영역을 명확히 하는 방대한 작업을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간호단독법 제정에 대해 의사단체의 분위기도 싸늘하다.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대변인은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일들이 부처 간, 직역 간 여러 가지 장벽 때문에 안 되는 게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명문화 하는 게 장점도 있지만 범위가 넓어지면 자칫 집단 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송 대변인은 이어 “‘환자를 위해서’ 라는 의료의 큰 목적이 일관성 있게 가려면 (의료인에 대한) 법이 찢어져 있는 게 국민들에게 절대 득이 안 된다”며 “법은 최소한의 부분을 규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현 의료법 내에서 여러 가지를 정리하는 게 맞다”고 했다.
복지부 “관망하겠다”
복지부는 간협의 간호단독법 제정 추진에 대한 움직임을 관망하면서 간호인력 개편안을 원래대로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간협이 간호단독법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에 나서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법 제정이라는 게 이해단체의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간호법을 따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면서 “일단은 간협의 행보를 관망하고 향후 필요하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간호인력 개편안을 두고 간호계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간협의 간호단독법 제정 추진과는 별개로 복지부는 (간호인력 개편) 수순을 밟아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간협 관계자는 “외부에서 뭐라고 하든 간호단독법 제정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며 “간호단독법을 통해 간호인력 개편방안에 대한 논란도 불식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