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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중단한 글이지만, 여러분이 보시라고 올립니다.>
교육 리엔지니어링
백성주 lietz@hanmail.net 010-5557-4671
대입제도
1. 교육개혁의 시작은 대입제도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살펴보면, ‘대학입학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입시교육’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입시교육이 중학교나 초등학교의 교육에도 상당히 영향을 주고 있다. 부모는 자식이 커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자식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만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부와 무관하거나 거리가 멀거나 방해가 된다 싶은 것은 금지하게 된다. 또 입시교육은 여러 가지 교육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과외문제와 같은 사교육비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사교육비문제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사교육비문제는 입시교육문제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밖에 야간자율학습, 교실붕괴, 0교시수업, 등도 입시교육에서 생겨나는 교육문제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시작은 대입제도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입제도를 바꿈으로써 입시교육을 없애면 그 다음 단계로 사교육비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2. 기업의 제품개발 무한경쟁과 대입제도의 무한경쟁
1991년 5월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전문대 전자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어느 날 캠퍼스를 거닐면서 기업의 연구개발 경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세탁기를 생산하는 3개의 기업이 있다고 치자. 각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A기업의 세탁기는 50%고, B기업의 세탁기는 30%, C기업의 세탁기는 20%라고 가정해 보자. 우선 당장은 A기업의 세탁기가 제일 잘 팔리고 있다. B기업이나 C기업은 새 세탁기 모델을 연구하여 내놓아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A기업이라고 해서 현재에 만족하여 방심하고 있지는 않다. A기업도 새 세탁기 모델을 연구한다. 결국 A, B, C 세 기업은 번갈아 가며 새 세탁기 모델을 출시한다. 세 기업은 연구개발 경쟁을 끝없이 되풀이해서 벌이게 된다. 말 그대로 ‘무한경쟁’이다. 세탁기를 만드는 기업도,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도 제품개발 무한경쟁을 하고 있으며, 그 어느 기업도 이 무한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품개발 경쟁을 안 하면, 그 기업의 제품은 소비자에게 외면을 당하고, 결국 기업이 망할 것이다.
나는 무한경쟁을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 대입제도를 떠올렸다. 그 순간 나는 우리나라 대입제도에도 ‘경쟁’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고사도 학력고사도 선지원 후시험도 선시험 후지원도 경쟁 요소가 들어있다. 이 경쟁은 곧바로 무한경쟁으로 격화되고, 그 와중에 과외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쟁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과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3.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대입제도
우리나라 대학은 시험을 쳐서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험성적순’으로 선발한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성적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시험성적순에 따라 1점 2점 차이로도 합격 불합격이 달라진다. 이 시험성적순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동되는 것이다. 시험성적순은 다니는 학교, 가르치는 교사, 다니는 학원, 과외선생님, 배우는 교재, 풀어 본 문제의 양, 공부하는 시간의 양, 공부에 집중하는 정도, 지능, 학습방법, 체력, 시험 당일의 컨디션, 배짱, 찍기 운, 공부하는 환경, 필기구, 등에 따라 변동된다. 그래서 학생들은 시험성적순을 높이기 위해서 무한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입시명문으로 이름난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하고, 좋은 교사를 만나고 싶어 하고, 남들이 학원에 다니면 나도 학원에 다녀야 하고, 남들이 과외를 받으면 나도 과외를 받아야 하고, 좋은 교재로 배우려 하고, 문제를 많이 풀어 보고, 평일에도 주말에도 방학에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다른 일은 가급적 안 하고 공부만 하고, 지능을 높인다는 DHA도 먹어 보고, 효과가 좋다는 학습법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체력을 높이려고 운동하고, 컨디션을 잘 조절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 심호흡을 하거나 기도하기도 하고, 찍기 운이라도 좋으라고 부적을 사거나 기원을 하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온 가족이 협력하고, 익숙한 필기구를 사용한다.
4. 대입제도에는 ‘시험, 경쟁, 선발’ 3요소가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대입시험의 종류는 예비고사,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내신, 논술, 면접, 체력장, 실기시험 등이 있었다. 이런 시험들은 시험성적순을 산출하는 방법이다.
과거 6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크게 15번, 작게 21번 교육개혁을 했다고 알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교육개혁을 해 보았고, 대입제도도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보았지만, 대입제도의 본질은 항상 같았다.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이다.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보니, ‘시험, 경쟁, 선발’ 3요소가 있다. 예비고사-본고사 대입제도를 학력고사 대입제도로 바꾸었던 것도, 학력고사 대입제도를 수능시험 대입제도로 바꾼 것도, 이해찬의 여러 줄 세우기도, 모두 대입제도의 껍데기만 바꾸었을 뿐, 본질은 동일했다.
5. 교육개혁 왜 실패했나
모두 36번의 교육개혁이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패했다. 대입제도를 바꾸어도 과외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과외를 금지하는 정책도 과외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논술을 도입해도 과외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방송과외를 해도 과외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했으면, 실패의 원인과 실패의 과정이 무엇인지 명백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음 교육개혁이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교육부도 교육전문가도 학부모도 학생도 그 원인과 과정을 모르고 있다. 아무도 올바르게 분석하지 않았다.
교육개혁이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패한 원인은 대입제도에 들어 있는 ‘경쟁’ 요소를 제거하지 않은 탓이다. 시험성적순을 높이기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졌고, 과외(사교육)가 시험성적순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과외를 받았고, 과외를 받지 않으면 자신의 시험성적순이 낮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경쟁자인 다른 학생들도 과외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이 교육개혁을 할 때마다 되풀이 되었으니 과외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6. 선발은 불가피해도, 시험과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대학마다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 입학정원에 맞추어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입학생을 선발할 때 시험을 쳐야만 하는 필요성은 본래 없으며, 시험성적순으로 경쟁해서 선발해야만 하는 필요성은 더더욱 없다. 시험과 경쟁은 그저 몇 가지 이유(평등, 공정성, 우수한 인재의 선발 등등)로 실행했던 데에 불과하다. 시험과 경쟁은 선발의 도구나 방법에 불과하다.
대입제도에 시험이 꼭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과 시험성적순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조차도 학원에 들어가는 데에는 시험이 불필요하며, 그저 돈만 내고 들어가서 배우면 된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 분명하다. 학원에서 강사에게 배우는 것과 대학에서 교수에게 배우는 것이 비슷한데, 왜 한 쪽은 시험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쪽은 시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는 데에는 본래 시험이 필요 없다. 그냥 가르치고, 그냥 배우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서 논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 때 시청자들은 대학의 동양철학과에서 가르치는 논어를 아무 입학시험 없이 배웠다. 논어를 아무 입학시험 없이 배울 수 있다면, 다른 과목 역시 아무 입학시험 없이 배워도 괜찮을 것이다. 입학시험에 경쟁까지 덧붙여서 입학생을 선발할 필요도 없다. 등록금만 낼 수 있다면, 입학지원자 중에서 무작위로 아무나 뽑아도 된다.
7. 대입제도에서 시험과 경쟁 요소를 제거하는 무시험 대입제도
대입제도에 있는 경쟁 요소를 그대로 놔두면, 경쟁은 즉각 무한경쟁으로 격화되어 과외문제가 생긴다. 과외문제(사교육비문제)를 없애고자 한다면 우리는 대입제도에서 경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시험성적순으로 경쟁하므로, 시험을 아예 없애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나는 이것을 ‘무시험 대입제도’라고 부른다.
8. 무시험-추첨 대입제도
무시험 대입제도를 실행하는데, 입학정원보다 입학지원자가 많은 경우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에는 추첨(제비뽑기)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면 된다. 추첨이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추첨은 경쟁이 불가능하므로 과외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무시험 대입제도에 추첨을 더해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해야 한다.
9. 자격시험-추첨 대입제도와 AP
대학이 무시험-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면, 성적이 우수한 입학지원자가 불합격되고, 성적이 아주 낮은 입학지원자가 합격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대단히 불합리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자격시험을 도입할 수도 있다. 즉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자 한다면, 먼저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 자격시험은 합격과 불합격만 판정할 뿐이다.
이 자격시험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미국의 대학들이 실행하고 있는 AP제도이다. 대학에서 수강할 과목 중에서 몇 개를 골라 고등학교에 수업을 개설하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에게만 어떤 학과를 지원할 자격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분적분학을 배운 학생만이 이공계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나는 자격시험이나 AP제도에 대해서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
10. 대입제도 이원화-경쟁선발시험 대입제도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
모든 대학 모든 학과에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강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명문대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할 것이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도 명문대를 선호해서 경쟁선발시험 대입제도를 감수할 용의가 있다. 그러므로 대입제도의 선택은 대학과 학과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 교육부는 단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이원화될 것이다.
한편, 예체능계 학과의 경우는 실기시험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이것은 경쟁선발시험에 해당한다. 경쟁선발시험은 여러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따라서 일률적인 학력고사보다는 대학별 학과별 본고사를 치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1.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없을 것이라고 반론했다. 지금 현재도 많은 지방대 사립대들은 그냥 원서만 내면 입학할 수 있으니, 굳이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또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은 삼류 대학으로 낙인찍힐 것이므로, 어느 대학도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들의 예측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에는 10가지 정도의 장점이 있으므로, 도입하는 대학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예측하며, 일단 한두 대학이 도입하면 결국 대부분의 대학이 도입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누구의 예측이 맞을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설문조사라도 해 보면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예측이 나올 것 같다.
12. 무시험-추첨 대입제도의 10가지 장점
첫째로 과외문제가 해결된다. 과외공부로 성적순을 올려봤자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하는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남들보다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과외는 대학입학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학부모에게는 제일 반가운 장점일 것이다.
둘째로 공부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성적순을 올리기 위해서 죽어라 노력할 필요가 없다.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도 훈련하는 여유가 생긴다. 시간적인 여유, 정신적인 여유, 금전적인 여유가 다 생긴다.
셋째로 고등학교 교육을 바꿀 기초가 되어 준다. 입시교육을 없애고, 그 대신에 전인교육, 인성교육, 참교육, 자아실현이 가능한 새 커리큘럼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넷째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다. 실행하기 어려운 점은 전혀 없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하는 시스템과 무작위로 추첨하는 시스템만 만들면 된다.
다섯째로 성인들의 평생교육을 쉽게 지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성인들이 뒤늦게 대학교육을 받으려고 하면 재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재수 과정이 없어진다.
여섯째로 학생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학을 선택하거나 학과를 선택할 때 성적순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성적순에 밀려서 원하지 않던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 아래에서는 성적순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일곱째로 재수하기가 아주 쉽다. 자신의 적성에 안 맞는 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 학생은 재수할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재수과정이 너무 힘들고,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동안은 재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 아래에서는 재수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여덟째로 지방대를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지방대 중에서 미충원율이 높은 대학은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면, 경쟁선발시험 대입제도를 채택할 때보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다.
아홉째로 대학입학전형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 원서를 살 필요도 없고, 면접을 보러 갈 필요도 없기 때문에 교통비와 숙박비와 식비 등이 들지 않는다.
열째로 기존의 대학서열이 붕괴되고, 새로운 대학서열이 생긴다. 기존의 대학서열은 대체로 입학생들의 성적이 그대로 대학의 서열이 되었다. 그래서 상위권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입학생들의 성적 서열로 이어지는 순환이 일어났다. 무시험-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의 경우는 입학생들의 성적을 전혀 추측할 수 없다. 그래서 기존의 대학서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수도권 소재 대학-지방 국립대-지방 사립대-전문대 순)이 붕괴된다.
13. 내신성적제도는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여 대입제도를 이원화하자면, 내신성적제도는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 절대평가방식으로 내신성적을 산출하면, 내신 부풀리기가 일어난다. 상대평가방식으로 내신성적을 산출하면, 과학고 외국어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불리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고교등급제를 실행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교등급제가 실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프랑스처럼 고등학교의 교육(시험)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고교등급제를 도입할 수 없다.
학교마다 학생들이 다르고, 시험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내신등급을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내신성적제도는 본래 불합리한 제도다. 이런 불합리함을 적절하게 보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금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내신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학에서 학업성적이 좋을 가능성(연관성)이 가장 높다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신성적제도를 금지하는 것이 더 좋다. 내신성적제도를 금지하면, 무시험-추첨을 택할 학생은 공부부담이 없어질 것이고, 경쟁선발시험을 택할 학생은 그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 국민들 자신이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자신의 힘으로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방법을 모르고, 권력이 없고, 일상생활에 바빠서 국민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60여 년 동안 사교육비문제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은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60여 년 동안 교육개혁을 36번이나 하고도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라. 대통령이니까, 교육부장관이니까, 무슨 박사이니까, 무슨 교육전문가니까 알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도 아무 것도 모른다.
남의 힘으로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고, 국민들 자신이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야 한다. 방법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해서, 대입제도를 이원화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널리 알리고, 대학에 제안하고, 전화를 걸어서 부탁해야 한다.
기타 사항
15. 영어방송국보다는 영어파일 공유가 더 낫다
이명박 대통령은 영어방송국을 설립해서 영어교육에 도움을 주고 영어사교육비를 낮추고자 한다. 방송은 실시간으로 시청하거나 녹화해서 시청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라면, 영어 강의를 녹화해서 동영상파일을 만들고, 이를 무료로 공개해서, 누구나 자신이 편리한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이 잘 갖추어져 있고, 집집마다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을 위해서는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끔 컴퓨터실을 개방하면 될 것이다.
또 영어 강의에만 이 방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과목에도 이 방법을 적용하여 강의 동영상파일을 만들 수 있다. 이 강의 동영상파일을 이용하면,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공부를 보충해 줄 수 있다. 방과 후 보충수업은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지만, 되풀이해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의 동영상파일은 강력한 장점이 있다.
이 강의 동영상파일을 만들어 배포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그동안은 사교육업체들이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과외비나 학원비에 비하면 비용이 덜 들었지만, 그래도 비용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이 강의 동영상파일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이 일을 할 수도 있다. 몇 백억 원만 모으면 되는데, 가구당 10만 원 정도면 내면 되지 않나 싶다.
16. 사교육이 절대악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교육비문제 때문에 사교육 자체를 죄악시한다. 그러나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사교육으로 보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교육과 사교육비문제를 서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교육은 좋은 것이지만, 사교육비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또 좋은 사교육이라면, 이걸 널리 알려서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
전에 과외문제를 해결하려고 과외를 금지하는 방법을 실행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위헌이라는 판단이 내려졌고, 두 번 다시 실행할 수 없게 되었다.
17. 사교육과 공교육붕괴
학교를 마치고 학생들이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다음 날 학교에 온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졸거나 잔다. 교사는 그 학생들을 깨워서 수업을 듣게 할 수가 없다. 이미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학생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적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되고, 대학입학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사교육을 받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학원에서 한 선행학습은 수업의 분위기를 망친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원에서 안 배웠다고 가정하고 수업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학교의 교육(공교육)은 붕괴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교육이 주가 되고, 공교육이 종이 되는 이유는 사교육이 성적을 올리는 데에 더 효과가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주가 되면서 공교육은 붕괴된다.
18. 학교의 학원화
학교가 학원을 본받아서 성적 올리기 교육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이것을 ‘학교의 학원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첫댓글 애들 죽어도 유지하는 대입제도잖아요... 미국의 총기규제와 같은 거죠. 사건이 일어나도 나 몰라라.... 대입제도만 바꾸면 해결될 일인데, 아무도 바꾸자는 생각을 못하네요... 그래 놓고서 사건이 일어나면 가슴이 아프다는 둥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둥 엉뚱한 말만 하죠. 죽음의 대입제도를 다른 대입제도로 바꿔 주지도 않을 거면서.. (디시에 올렸던 댓글을 퍼왔습니다.)
대학교의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하는 건 어떨까요? ...학년 올라갈때 마다 15프로씩 잘라서...... 4년뒤엔 입학생의 40프로만 졸업시키고 나머진 고졸로 만들어서 .......그냥 고졸 졸업해서 취직한 사람보다 뒤쳐지게 하는 거죠 .......대학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대입제도에 무리수를 두게하고 포기할수 없게 하는건 아닐까요
전두환정부 때 실행했던 졸업정원제와 비슷한 생각이시군요. 어떤 대학이 자체적으로 그런 제도를 실행하는 거야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걸 모든 대학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대학재정도 어려워서 무리이고, 학생들도 지원을 안 하거나 줄이게 되어 대학이 이런 정책을 싫어할 것입니다. 게다가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학교를 하향지원하게 될 것 같고요. 저는 현대 한국인은 대학졸업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가는 대학에 나도 안 갈 수 없는 거죠. 나만 손해를 보니까요. 미국 같으면 학비라든지 월급 등이 우리와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대학진학률이 낮은 것 같고요.
글쓴이가 드신 무시험-추첨 대입제도에는 10가지 정도의 장점은 모두 사회적, 집단적 혜택(collective benefit)입니다. 반면에 먼저 무시험-추첨 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은 선별적 손해(selective harm)를 입습니다. 개인에게는 안좋은 것이지만 사회에는 좋은 제도로서, 전형적인 죄수 딜레마의 문제로서, 개별 대학의 자발적인 도입과 연쇄적인 도입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