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50)
그의 조용한 발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모든 순간, 모든 시대, 모든 낮과 밤에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나는 수없이 바뀌는 내 마음의 감정에 따라 수많은 노래를 불러 왔지만, 모든 선율이 변함없이 노래한 것은 이것.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햇빛 가득한 사월의 향기로운 낮에 숲의 오솔길을 밟고서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비에 젖은 칠월의 울적한 밤에 천둥 치는 구름의 수레를 타고서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슬픔 다음에 또 슬픔이 이어질 때 내 가슴을 밟고 오는 것은 그의 발소리. 그리고 내 기쁨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 발의 황금빛 감촉.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 『기탄잘리』, 류시화 옮김, 무소의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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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오늘은 동양인으로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 한 편을 골랐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는 노벨문학상 수상 시집인 영문판 『기탄잘리』에 실린 103편의 시중 45번째로 실린 시이나, 애초 편집할 때 특별한 순서 없이 시를 수록하였다고 해서 시만 옮겼습니다. 시인의 모국어인 벵골어 시집 『기탄잘리』를 출간한 것은 시인의 나이 49세 때인 1910년으로 이때 이 시집에 실린 시는 157편이었으나, 같은 제목의 영문판 시집에는 벵골어 시집에 수록된 시 중 53편과 다른 시집에서 골라낸 시를 더해서 103편을 실었습니다. 영문판 시집은 1912년에 출간되었고 노벨문학상은 1913년에 수상했습니다. 타고르는 우리에게는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이라는 유명세와 더불어 “아시아의 황금기에/그 등불지기 중 하나였던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네./동방의 밝은 빛을 위해”라고 한국을 '동방의 밝은 빛'이라고 노래한 시로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1926년 간행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기탄잘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제가 예전부터 갖고 있던 문고판 시집인 타고르의 시선집 『신에의 송가』(조용만 옮김, 삼성미술문화재단, 1982) 해설에는 타고르가 최초로 한국인을 위해 쓴(준) 시가 「쫓긴이의 노래」라고 하면서 원문과 번역본이 실려 있는데, 류시화 시인은 해설에서 이 시는 1916년에 발간한 『열매 모으기』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며, 앞에 옮긴 ‘동방의 밝은 빛’ 4행시 뒤에 『기탄잘리』 시 중 35번째 시가 붙어서 번역되어 현재 몇몇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와 세계 명시선 등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모든 순간, 모든 시대, 모든 낮과 밤에” 온다는 그는 신일까요, 사람일까요.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저는 문득 역사를 떠올렸습니다. 엊그저께 6월 10일은 6ㆍ10만세운동 기념일이자, 6ㆍ10민주항쟁 기념일이었습니다. 6ㆍ10만세운동 기념일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순종 인산일에 전국적으로 벌어진 6‧10 만세운동의 의의를 기억하기 위해, 6ㆍ10민주항쟁 기념일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가 지난 과거의 역사를 소환하여 기념하는 것은 제정 이유에 나온 그대로 그 의의를 기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의의를 현재에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변혁의 역사는 1회로 끝날 수 없습니다. 변혁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는 “그”를 이번에는 변혁, 변혁의 역사로 읽었습니다. “슬픔 다음에 또 슬픔이 이어질 때 내 가슴을 밟고 오는” (20240612)
첫댓글 타고르와 [기탄잘리]에 관한 정보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진리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