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불교다]
5. 기도의 가피
기자명 황상준 교수 입력 2019.01.02 13:52 수정 2019.01.02 13:54 호수 1471 댓글 2
가피는 불보살이 중생 구제하는 회향의 모습이자 대자대비 현현
기도의 마음 바탕엔 부처님 법
확고한 믿음·이해 반드시 수반
간절히 염하고 지심으로 찾으면
부처님과 보살 영험 가피 체험
대승불교의 정토·관음신앙 등은
가피력 통한 구제 유형에 속해
맑고 지극한 마음 끊이지 않게
구하는 것 있으면 응답 있다는
확신에 찬 믿음에서 이뤄져야
인지 못할 뿐 부처님 가피 속에
살아가고 있음 잊지 않고 새겨야
기도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원력과 자비가 중생의 간절함에 감응해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림=육순호
일반적으로 기도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절대적인 유일신 또는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절대적인 힘(Absolute Power)에 의지하여 간절하게 비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기도는 부처님과 불보살의 원(願)을 기반으로 하는 가피(加被)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원력과 자비가 중생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기도에 감응하여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가피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려는 회향의 모습이며 동시에 대자자비(大慈慈悲)의 현현인 것이다.
기도의 방법으로는 절·주력·사경·간경·염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염불은 초기불교부터 전래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일반 대중들에게 매우 친숙한 신행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종교 수행에 있어 효용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일반대중에게 교리공부와 참선수행이 접근이 어려운 이유는 대중의 욕구와는 현실적인 괴리감이 존재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염불은 불교 수행법의 난이도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행도(易行道)로써 말 그대로 쉽고 편한 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모든 불보살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가지고 중생 곁에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범부중생이 부처님과 불보살에게 귀의하여 간절히 염하고 지심으로 찾게 되면 부처님과 불보살의 영험한 가피를 체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대승불교는 자력으로 무명을 타파하기 어려운 범부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염불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염불은 부처님을 마음속에 깊이 억념하여 잊지 않고 간직하려는 의식화 작용으로 볼 수 있으며, 염불신앙은 불보살의 본원력과 가피력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본원이란 보살이 성불하기 전에 세운 자비의 서원이다. 불교는 본래 자력신앙을 중심으로 출발하였지만 타력에 의한 중생구제의 길도 열어 보다 많은 사람을 제도하고자 하였다. 대승불교의 정토신앙이나 관음신앙 등의 타력신앙은 불보살의 가피력을 통한 구제의 유형에 속한다는 점에서 초기불교의 자력주의 전통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본래 삼학 수행에 의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지혜의 종교’였으나, 대승불교의 발달과 함께 불보살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안심입명을 얻고자 하는 ‘믿음의 종교’가 성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대승불교의 사상적 발전은 기존의 불타관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으며, 이에 불보살이 증가하였고 따라서 불보살에 대한 다양한 신앙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들 불보살은 중생들이 마음 깊이 귀의하는 신앙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기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실천하겠다는 진실한 믿음에서부터 생긴다. 기도의 마음 바탕에는 부처님의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반신반의하는 믿음이 아니라 결정적인 믿음이다. 과연 부처님과 불보살을 염하면 가피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내 기도가 정말 될까? 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는 기도의 시작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구제 즉 불·보살의 가피를 이끌어내는 원인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피란 무엇인가?
‘가피(加被)’란 산스크리트어로 adhitiṣṭhante이며, ‘가지(加持)한다’ ‘지배(支配)한다’ ‘섭수(攝受)한다’는 뜻으로 부처님과 불보살에게 위신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중생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이들을 지혜와 복덕으로 지켜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가피는 중생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기도[염불]를 통하여 이룰 수 있게끔 해주는 불·보살의 위신력이다.
가피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몽중(夢中)가피’와 ‘현전(現前)가피’, 그리고 ‘명훈(冥勳)가피’이다. 몽중가피는 불자가 꿈속에서 부처님이나 불보살을 만나 본인이 원한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중생의 간절함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바로 중생의 꿈에 나타나서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해 주는 것이다. 현전가피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 그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유명하게 잘 알려진 이야기로 조선시대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다.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낸 후 왕위를 차지하였다. 이 후 단종은 유배된 후 죽임을 당하였다. 어느 날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독설과 저주를 퍼부어 그 후로 세조는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다. 세조가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여도 이를 고치지 못하였으나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동자가 현신하여 고쳐주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현전가피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명훈가피는 꿈속에도 눈앞에도 나타나지 않지만, 평소 불자로서의 신행생활을 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직접적인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불자가 느끼며 겪게 되는 부처님과 불보살의 가피로 중생이 원하는 바가 성취된다. 앞서 언급한 몽중가피와 현전가피는 가피가 꿈속에서도 나타나기를 바라고 현실의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기에 범부중생에게는 망상과 집착이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명훈가피는 중생의 절박한 간절함에 대한 부처님과 불보살의 감응의 결과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지는데 중생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중생이 이 변할 수 없는 진리를 알고서 지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가피를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진실한 신심을 가진 채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각자가 행하는 신행이 공덕이 되어 돌아온다고 인식하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민장사 조(條)’에 의하면, 장춘의 어머니가 간절히 관음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를 함으로써 관세음보살이 스님으로 응현하여 그녀의 아들을 구해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위험에 처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식의 어머니가 관음을 일심으로 칭명하여 가피를 입은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정작 폭풍의 어려움을 당한 것으로 여겨진 당사자인 장춘은 관음에게 직접적으로 구원을 청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실질적으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받을 수 있었던 원인은 자식의 무사귀환을 위해 일심으로 기도한 어머니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즉 어려움에 처한 자식의 어머니가 관음을 향한 염원(기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관음의 응화를 받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발원자인 장춘의 모친에 의해 그 결과(아들의 무사귀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오늘날에도 불자들의 신행 생활 속에서 나타난다.
명훈가피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가피’는 바로 기도를 통해서 실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혜안(慧眼)을 얻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삶의 변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한 생각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로 뒤 바뀔 수도 있으며 이는 불자들의 삶에 있어서 많은 작용을 한다. 중생은 모두 전생의 생각과 행동에 따른 결과인 업보를 갖고 현생에 태어나며, 이 힘은 내생에도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 한 생각을 전환하는 것에 의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성심불간(聖心不間) 유구필응(有求必應)’ 즉 ‘맑고 지극한 마음이 끊이지 않게 구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헛되지 않다’는 확신에 찬 믿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설령 중생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본인의 기도가 이루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묘법연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어떤 중생이 관세음보살에게 공경하고 예배하면 그 복은 헛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중생은 모름지기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닐지니라”라고 설하고 있다. 여기서 당(唐)이란 ‘헛되다’ ‘부질없다’는 뜻인데 예배에 쏟은 정성이 필요한 정도에 이르면 원이 이루어지고 설사 모자라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정성이 ‘헛되이 없어지지 않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준다[冥勳加被]’는 의미이다. 기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지며, 우리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가피’를 마치면서, 1971년 당시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법회에서 고암(古庵, 1899~1974) 종정 스님께서 내려주신 ‘부처님오신날 법어’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미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가피요, 들을 수 있는 것, 생각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황상준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초빙교수
불자가 인지하지 못할 뿐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는 스님의 말씀을 기해년 새해를 맞는 불자들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