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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회]
신병쟁탈전의 비무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게 잡혀있어, 승자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은 비무대 위에 올라가야 했다.
때문에 비무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체력을 안배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비무가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칠 일이나 터울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체력과 함께 자신의 절기를 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비무가 진행되면서 차츰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수많은 무인들이 비무에서 탈락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참가를 했던 뜨내기 무인들이 떨어져 나가고, 뒤로 갈수록 절정의 무인들만이 남았다.
홍염화는 자신의 상대로 올라온 참백마도(斬魄魔刀) 사구영을 보며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흉기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육 척의 키에 어깨가 좌우로 떡 벌어져, 보는 이에게 절로 위압감이 들게 하고, 가뜩이나 불량한 얼굴에는 흉터만도 수십 개에 달했다.
자학을 한 것도 아닐 진데 저런 상처를 얼굴에 입고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용했다.
사구영은 홍염화를 보며 이죽거렸다.
“흐흐~! 다음 상대가 어린 계집이라니, 이건 정말 하늘의 도움이군. 흐흐흐~!”
그는 홍염화의 외모를 보며 음소를 터트렸다.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구영의 시선에 홍염화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어디서 저런 괴물이! 아무리 얼굴이 무기라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전각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황의 얼굴을 바라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솔직히 신황도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은 되지 않는가? 그런데 눈앞의 사구영은 기본에서도 한참을 벗어나 있는 얼굴이었다. 거기에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흉터라니.
홍염화는 조금 전의 식사를 하며 무이에게 장담을 했던 자신의 말을 취소해야 했다.
‘음! 신가가보다 무섭게 느껴지다니, 정말 대단한 얼굴이야.’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홍염화를 보며 사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자신의 얼굴에 겁을 집어먹어야 할 계집이 전혀 겁을 집어먹지 않은 채 계속 무어라 구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집,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면 될 거다.”
“흥! 당신의 얼굴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군요.”
“뭐?”
“아~, 실수! 여하튼 당신의 얼굴은 음.........!”
홍염화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그 모습에 사구영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계집!”
사구영이 대갈을 터트리며 홍염화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그의 팔뚝만큼이나 굵은 도가 들려있었다.
위~잉!
미처 도가 들이닥치기도 전에 홍염화의 얼굴에 바람이 느껴졌다.
세밀한 초식이나 기교보다는 순수한 힘을 더욱 중요시하는 참마도의 공격 방법이었다.
홍염화는 사구영의 도를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채대를 이용한 혈산화의 방어 초식을 펼쳤다.
촤르륵~!
홍염화의 채대는 마치 뱀처럼 사구영의 도를 휘감았다. 그에 사구영은 도를 털어 홍염화의 채대에서 벗어나려했다.
하지만 홍염화는 세밀하게 손목을 움직여 악착같이 사구영의 도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만화미인수를 펼쳐냈다.
“감히, 계집이......!”
순간 사구영이 재차 대갈을 터트리며 왼발을 축으로 한 바퀴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발을 내질렀다.
파~앙!
그들 사이의 공기가 터져 나갔다. 동시에 홍염화와 사구영이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그 순간 홍염화의 절초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라염(大邏炎)!”
그녀가 펼친 것은 만화미인수의 절초로 신황과 싸울 때도 펼치지 않았던 초식이었다.
사실 그때는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에 펼치지 못했던 초식이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완벽하게 익혀 실전에서도 펼쳐낼 수 있게 되었다.
“흥~! 참혼분쇄(斬魂粉碎).”
그에 사구영이 홍염화의 채대를 떨쳐내며 자신의 절초를 펼쳐냈다.
촤촤촹~!
두 절초가 충돌하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
순간 사구영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도를 타고 올라오는 한 줄기 시뻘건 불길 때문이었다.
화르륵!
시뻘건 불길이 도를 휘감은 것도 모자라 옷에까지 번져오자, 그는 급히 소맷자락을 움직여 불을 끄며 다시 도를 펼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홍염화의 손에서 번져 나온 불길이 폭발을 일으켰다.
쿠~아~앙!
“크악!”
지척에서 일으킨 폭발에 휩쓸린 사구영이 크게 비명을 지르며 내동댕이쳐졌다.
온몸에 화상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모습은 위세 당당하던 처음의 모습과는 백팔십도 다른 모습이었다.
대라염은 만화미인수의 사 초식으로, 여인이 펼치는 위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초식이었다.
“홍염화소저의 승리입니다.”
그때 무림맹의 장로가 홍염화의 승리를 선언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홍염화의 승리였다.
“와아아~!”
군웅들이 함성을 질렀다.
망연자실한 사구영에게 홍염화는 싱긋 미소를 지어주고는 사뿐히 비무대회에서 내려왔다.
홍염화는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 틈을 걸어 나왔다. 그녀의 귀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고네. 얼굴도 귀엽고, 무공도 대단하고.........”
“그러게! 이번에 참가한 여인 중 최고 같은데?”
들리는 소리에 홍염화의 어깨가 절로 으쓱거렸다. 별로 자신을 내보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왠지 자신이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되면 홍(紅)조의 혁련혜소저와 더불어 여인 중에서는 제일 두각을 나타내는걸.”
“그러게! 그나저나 혁련혜소저는 정말 미모가 일품이더군. 사실 미모 면에서 보면 혁련 소저가 훨씬 나은 것 같으이.”
“거야 그렇지만 무공으로 따지면 홍염화소저가 훨씬 강한 것 같네.”
“어~허! 이 사람이, 그래도 여인은 미모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래도 무인인데, 무인은 역시 무공이 제일이지.”
군웅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비무대회에 참석한 여인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여인은 바로 홍염화와 혁련혜 두 명이었다.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입씨름을 벌였다.
홍염화는 자신의 비무에 혁련혜의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평소의 얼굴을 회복했다.
제 아무리 혁련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도 신황의 옆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홍염화는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신황과 무이가 구경하고 있는 전각 위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무이가 활짝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맞아주고 있었다.
천(天)조와 지(地)조의 비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과 반대쪽에 설치된 황(黃)조의 비무대회에서는 이변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황조의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광불(狂佛)이 침착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를 보고 있었다.
자신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 남자의 얼굴에는 보기에도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광불은 남자처럼 기분 좋게 웃을 수 없었다.
‘이런 기도를 가진 남자가 있다니........’
비무대를 바라보는 군웅들은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정면에 있는 당사자인 광불 자신은 사나운 기세를 느끼고 있었다.
소림의 촉망받는 제자로 칠십이 종의 소림절기 중 세 가지를 익혀, 거의 장로급에 육박하는 무공을 지녔다는 그를 이렇게 압박하는 기세라니,
‘백용후라......... 낭인이 이정도의 무공을 소유할 수 있다니!’
출전 참가명단에는 단지 백용후라는 이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만약 무림맹과 거래를 하는 상단에서 그에 대한 보증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무림맹에 돈을 제공하는 사람이 신원을 보증했기에 무림맹에서도 별다른 의심 없이 참가를 허락했다.
한편 백용후는 정말 즐거워하고 있었다.
광불이라면 소림이 자랑하는 후기지수로 특히 권(拳)에 조예가 깊다고 알려진 자였다.
자신이 익힌 것도 권, 그는 이번 기회에 소림의 권을 자신의 몸으로 견식하고 싶었다.
“소림의 권을 꼭 한 번 견식해보고 싶었소. 최선을 다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백용후는 포권을 하며 그리 말했다.
순간 광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용후의 말투가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백용후에게 말했다.
“아미타불! 시주께서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음이니.”
“후후~! 물론이오.”
광불의 말에 백용후는 예의 쾌활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는 별반 변화가 없었다.
‘광오한 시주로구나. 하지만 오늘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음을 알려주마.’
비록 백용후의 기세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았다.
그는 천 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무림의 태산북두로 존재해온 소림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었으니까.
뚜두둑~!
광불이 기수식을 취하자 온몸에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림의 권은 대부분이 강권(强拳)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예외가 존재했으니, 그것이 바로 현공권(玄功拳)이었다.
현공권은 유(柔)에 기반을 둔 권법이다.
보기에는 무척이나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다른 칠십이 종 절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광불이 익힌 세 가지 절기중 하나가 바로 현공권이었다.
백용후는 광불을 보며 가볍게 자세를 잡았다.
그의 자세는 무척 묘했다. 어찌 보면 장난 같기도 한 그의 자세에 구경을 하던 군웅들이 실망을 했는지 무어라 웅성거렸다.
그러나 당사자인 백용후는 그런 군웅들의 이야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해보자고.”
도발적으로 나오는 백용후의 말, 그에 광불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현공권을 펼쳤다.
파바바방~!
광불과 백용후 사이에서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광불의 주먹.
그의 주먹에는 어지간한 바위쯤은 순식간에 부술 만큼의 강력이 실려 있어, 살짝이라도 스치면 그야말로 치명상을 면치 못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마치 버들가지처럼 손을 움직이며 압박해오는 광불에 맞서 백용후는 두 주먹을 번개처럼 번갈아 뻗었다.
쉬쉬쉭~!
마치 채찍처럼 뻗어 나오는 그의 양 주먹은 현공권을 펼치는 광불의 팔꿈치를 슬쩍 슬쩍 건드려 주먹의 궤도를 미묘하게 틀어 놓았다.
때문에 광불의 주먹은 백용후의 몸 근처에서 왜곡된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겉보기에는 광불이 백용후를 압도하는 듯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온몸을 이용해 공격하는 광불에 비해, 백용후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힘으로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자가 펼치는 무공이 무엇인가?’
광불은 현공권을 가볍게 막아내는 백용후를 보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그가 펼치는 무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기 때문이었다.
‘후후~! 형식을 중요시하는 중원에서 이런 무공을 알 리 없지.’
백용후는 광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교에는 중원의 인물들뿐만이 아니라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대단히 특이한 무공을 펼쳤다.
온몸을 이용하는 중원의 무공과는 달리 가볍게 걸음을 밟으며 두 주먹만을 이용해 상체를 공격하는 무공, 단지 두 주먹만을 번갈아가며 뻗을 뿐이지만 그것은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백용후는 그들에게 배운 무공에 자신의 심후한 내공을 운용했다. 때문에 간단하게 보이는 그의 주먹질 하나에도 가공할만한 경력이 깃들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진짜 밑천을 꺼내지 않으면 아마 크게 낭패를 볼 거야.”
백용후는 피식 웃으며 그 거대한 덩치를 가볍게 움직였다.
피피피핏~!
동시에 주먹을 뻗는 백용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의 주먹이 광불에게 쏟아졌다. 그에 광불은 현공권의 방어 초식을 펼쳐내며 백용후의 주먹을 막았다.
퍼버버버벅!
광불의 주먹과 백용후의 주먹이 맞부딪치며 거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주먹과 주먹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누군가의 주먹이 깨졌는지, 핏물이 허공에 튀었다. 그러나 백용후와 광불 그 누구도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번개처럼 비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주먹을 교환하는 그들의 모습에 군웅들은 넋을 잃었다. 그들의 안력으로는 도저히 광불과 백용후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쉬쉬쉭~!
한참을 잔영만 남기며 두 주먹을 교환하던 그들이 멈춘 것은 누군가의 답답한 신음이 터진 후였다.
“큭~!”
광불은 어이없는 눈으로 자신의 주먹을 봤다.
지독한 통증으로 연신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자신의 주먹. 소림의 무공을 익히면서 돌덩이보다 단단하게 굳은 자신의 주먹이 하얀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상대는 별다른 무공을 펼친 것 같지 않은데 자신만 이런 상처를 입다니, 그는 도저히 이 결과를 수긍할 수 없었다.
“당신이 익힌 무공이 무엇이기에.........”
“후후~! 별거 아니오. 그저 물 건너온 잡기일 뿐이지.”
백용후의 말에 광불이 치욕적인 표정으로 지었다. 별거 아닌 무공에 소림의 무공이 밀렸다는 생각을 하니 심기가 상한 것이었다.
“당신, 이제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오. 이젠 더 이상 보주지 않을 테니까.”
“얼마든지.”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광불과 반대로 백용후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그것은 과연 조금 전까지 그토록 격렬한 동작을 소화해낸 사람의 모습인지 싶을 정도였다.
자신과 달리 평온한 모습에 더욱 자존심이 상한 광불이었다.
화~학!
광불의 양손에 갑자기 희미한 빛 무리가 생성됐다.그 모습에 백용후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권기(拳氣)를 유형화시킬 수 있다니.....’
권기를 유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깨달음만 있으면 언제라도 권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스물 중반에 그 정도의 깨달음이라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광불이 비록 소림의 제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 광불이 펼쳐내려는 무공은 여래천수장(如來千手掌)으로 칠십이 종의 절기 중에서도 최상의 위력에 속하는 무공이었다.
광불이 여래천수장을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백용후를 인정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 광불이 백용후를 보는 눈은 일생의 대적을 보는 눈이었다.
그의 눈은 깊게 침전돼 있었고, 몸은 천주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백용후의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졌다. 상대가 진심으로 나온다면 진심으로 상대해줘야 한다. 그것이 백용후의 생각이었다.
뚜둑!
뼈마다 부딪치는 소리가 그의 팔뚝을 타고 들려왔다.
동시에 굵은 힘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이어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적인 기운, 순간 백용후의 눈빛이 바뀌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뀐 그의 분위기에 광불조차 침을 삼켰다.
하지만 광불은 흔들리던 부동심을 다잡으며 여래천수장의 최절초인 여래개벽(如來開闢)의 초식을 펼쳐냈다.
여개관음의 손바닥이 펼쳐지면 세상의 모든 사악한 존재가 사라질지니......
여래천수장의 첫 장에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그만큼 여래천수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콰콰콰콰~!
단지 손을 떨쳤을 뿐인데 엄청난 빛 무리가 터지면서 배용후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비무대 위에 깔려있던 청석이 부서져 나가며 회오리바람이 백용후의 옷자락을 날렸다.
꾸욱!
주먹을 쥔 백용후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한계 이상으로 도드라져 나왔다.
“챠핫!"
이어 터지는 백용후의 기합, 동시에 그의 오른 주먹이 힘차게 광불이 펼친 여래개벽의 기운을 향해 뻗었다.
“...................”
어떤 기척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적어도 중인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광불마저도.
순간,
푸~화~확!
갑자기 비무대 중앙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순간, 폭발 후 빈자리를 주위의 공기가 메우며 군웅들의 머리와 옷자락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너무나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에 군웅들은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잠시 후 바람이 잦아들고 군웅들이 눈을 떴을 때, 비무대는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무너져 내렸고, 그 한가운데 광불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광불의 승복은 거의 넝마가 되다시피 찢겨져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백용후의 몸에서는 격돌의 여파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설마 비무대회 초반에 소림의 희망이라고까지 불리던 광불이 패배를 하다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펼친 무공이 무.....엇이오?”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광불이 물었다.
백용후는 몸을 돌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패천권(覇天拳).”
“패천(覇天)이라........., 과연 지독하게 패도적인........”
털썩!
광불이 말을 끝내 잇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급히 무림맹의 사람들이 무대 위로 달려왔다. 그들은 급히 광불의 상세를 살폈다. 응급조치를 취한 후 그들은 광불의 상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 일 권에 소림의 광불이 이리 망가지다니, 천만다행으로 심맥은 상하지 않았지만, 몸의 중요한 근맥은 철저히 짓이겨졌다.
소림의 의술로도 원상태로 회복시키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터. 도대체 저 자가 펼친 무공이 무엇이란 말인가?’
무슨 무공인지 모르지만 소림의 광불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광불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족히 몇 년은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광불의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단 일 권으로 소림의 여래천수장을 파훼하고 광불까지도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힌 백용후, 이미 그는 무대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군웅들은 함성을 지르는 것도 잊고 망연히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백용후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무림맹, 어떻게 나올 것인가?’
소림의 광불이 대회 초반에 탈락했다.
이 사건은 커다란 파장을 몰고왔다. 소림의 희망이라고까지 불리던 광불이 단 한 주먹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다니,
더구나 그가 입은 상처는 너무나 엄중해서 무림맹에서 응급처치를 취한 후, 곧바로 소림으로 이송이 됐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광불을 무너트린 남자, 백용후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알려져 있는 것은 오직 이름 석 자뿐, 그의 모든 것은 안개에 둘러싸여있었다.
무림맹의 정보 조직인 비각과, 신병쟁탈전에 참여한 각 문파들의 정보 조직에서는 백용후에 대한 추적에 들어갔다. 그러나 백용후에 대해 알아낸 조직은 아직까지 없었다.
신황 역시 백용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그가 알고자 해서가 아니라, 교수광이 개방의 제자를 보내 신병쟁탈전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과 주목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보내줬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들어왔군.’
신황은 백용후를 떠올렸다.
자신의 아버지에 버금갈 만큼 커다란 체격에, 패도적인 기운을 완벽하게 갈무리한 남자, 강호를 상대로 빚을 받아내겠다고 장담을 하던 남자가 드디어 무림맹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나 신황은 백용후에 대한 사실을 개방에 알려주지 않았다.
백용후가 그에 대해 마지막 배려를 해주었듯, 신황 역시 백용후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해주는 것이었다.
백용후가 무슨 생각으로 신병쟁탈전에 뛰어들었는지 모르지만, 그에 대해 떠들고 다니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는 신황이었다.
화르륵!
신황은 손 안에 있던 서찰을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그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신황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타고 남은 재를 바람에 흩날리며 무림맹의 대회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밖에서는 한참 신병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곳 대회의장에서는 무림의 영도자들이라 할 수 있는 구대문파의 수뇌부들과 오대세가의 수장들, 또한 무림맹의 지도부등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신황은 새로운 대륙십강의 일인이라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할 자격을 얻게 됐다.
제갈문은 갖은 이유를 들어 그의 출입을 반대했지만, 팽가와 무당이 그를 비호하고 나서자 어쩔 수 없이 그의 출입을 허가하고 말았다.
제갈문이 제아무리 제갈 세가의 주인이고 또한 무림맹의 문상일지라도, 강호에서 차지하는 팽가와 무당의 위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신황은 무림맹의 진정한 천하대회의를 직접 견식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무림맹의 대회의장은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과 천하대회의에 참석한 문파의 무인들로 철통같은 경계가 이뤄지고 있었다.
세 겹, 네 겹의 철통같은 경계망을 통과하는 동안 신황은 단 한 번도 제지를 받거나 신분 검사를 받지 않았다.
이미 이곳 무림맹에 와 있는 무인들 중 누구도 신황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유명인사가 돼있는 것이었다.
대회의장의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들은 경외감이 섞인 눈빛으로 신황을 바라봤다.
“신.....대협!”
“명왕!”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신황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에게 있어 신황은 우상이고 희망이었다.
어느 세력에도 속해있지 않은 남자, 홀로 강호를 종횡하면서 아직까지 한 번도 패배를 당하지 않은 남자,
젊은 나이에 대륙십강에 드는 엄청난 무위와 함께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단호한 성격에 젊은 무인들은 열광했다.
신황이 지나가자 그들은 서둘러 길을 내줬다. 그것은 자신들도 모르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어도 결코 부끄럽다가나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게 신황은 수많은 무인들의 선망의 눈빛을 받으며 그들 사이를 통해 대회의장으로 입장했다.
덜컹~!
대회의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내부의 광경이 들어났다.
거대한 탁자가 중앙에 길게 벋어있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 천하대회의에 참석한 문파의 수장들이 앉아있었다.
신황이 뒤늦게 들어오자, 그들은 약간은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황은 그들의 그런 시선을 무시하며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신황의 자리는 구석 쪽에 위치해 있어 회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곳이었다. 제갈문이 일부러 그런 곳에 자리를 배정해준 것이리라.
구대문파의 대표자격으로 온 사람들의 자리는 탁자의 가장 상석에 위치해 있었고, 그 다음이 오대세가의 자리였다. 아니, 제갈세가가 빠져있기 때문에 사대세가였다.
그것은 당금 강호의 힘의 우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한마디로 힘의 우위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은 것이었다.
대륙십강에 들었으나 어떤 세력과도 무관한 신황은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자리에 배정을 받았다.
팽가나 무당에서는 그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으나 다른 문파에서는 그것을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차피 세력의 뒷받침이 없이 홀로 강호를 독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강호의 법칙이었고,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의 생존의 이유였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꾸준히 자신들의 세를 확장해왔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졌고, 그 누구라도 자신들의 아성에 흠집을 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고고해져 있었다.
때문에 신황이란 신흥강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용납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갈문이 신황의 자리를 구석으로 배정했어도 말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은 불같은 명성을 얻고 있는 신황을 자신들의 밑에 자리로 앉혀놓고 심리적인 우월감을 즐기고 있었다.
‘미안하오. 내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자리의 배정이 끝나있어서.......’
문득 팽주형이 신황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그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신황은 그런 팽주형에게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차피 좋은 자리든 나쁜 자리든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들어온 것도 제갈문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이지,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와 뒤섞여 그들과 같은 소속감을 느끼려고 들어온 게 아니었다.
신황은 팔짱을 낀 채 전면을 바라봤다.
그때 제갈문이 일어나며 말했다.
“자, 이제 신....대협께서 마지막으로 들어왔으니 회의를 진행하기로 하지요.”
신황의 호칭을 말하는 장면에서 제갈문은 무척이나 힘겹게 말을 이었다.
신황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지독한 증오심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는 자신의 그런 감정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제갈문은 평소와 마찬가지의 어조로 회의를 진행해나갈 수 있었다.
“우선 이십 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인 여러 문파의 장문인들과 가주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갈문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을 보며 일일이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의 태사의에 앉은 백무광에게 예의를 차렸다. 그렇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난 제갈문은 허리를 쭉 편 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저희 무림맹은 맹주님의 영도 아래, 급속히 발전을 해왔습니다.
대문에 처음엔 여러 문파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자립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는 자신 있는 얼굴로 설명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중인들의 표정은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마교의 토벌을 마친 이후 거의 버려두었다시피 한 무림맹이다.
각 문파는 무림맹에 파견했던 고수들을 모두 거둬들였고, 무림맹은 빈껍데기만 남았다.
물론 각 문파에서 무림맹에 제공했던 무공비급들은 남아있었으나, 그것은 모두 없어도 좋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이름만 남았던 무림맹이 어느 날 새로운 무림맹주를 뽑고 급속도로 세를 확장해 나갔다. 무섭도록 세를 불리는 무림맹.
각 문파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던 체제를 바꿔 무령상단을 운영해 자체적인 자금줄을 확보했다.
그렇게 무령상단의 규모가 확장되고 영향력이 커지게 되자, 무림의 굵직한 상단들도 무림맹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은 그렇게 커나갔다.
다른 문파의 도움 없이 홀로 규모를 키워나간 무림맹.
지금은 구대문파 둘, 셋을 합친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전력이 그 정도인데 비밀로 숨기고 있는 전력까지 합친다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었다.
무림맹은 그렇게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게 버러진지 이십여 년 만에 거대한 공룡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에 무림맹을 버렸던 문파들은 무림맹에 대한 기득권과 권리를 얻기 위해 무림맹에서 주관하는 천하대회의를 핑계로 다시 의창으로 몰려들었다.
지금 신황이 보는 모습이 바로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그런 무림의 속성이었다.
그나마 무당과 소림은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명성과 힘을 가지고 있기에 담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문파들의 수장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무당과 소림이라는 두 거목을 넘길 원했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무림맹을 생각했다.
백우진인은 제갈문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들으며 옆자리에 있는 점창파의 장문인인 홍루검(紅淚劍) 하원지를 슬쩍 바라봤다.
숨길 수 없는 탐심의 빛이 눈에 어려 있는 모습, 이십 년 전에 제일 먼저 무림맹에서 구대문파의 철수를 주장했던 그가 이제는 반대로 무림맹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문파에서 장로급 인물들을 책임자로 보낸 것에 반해
그는 자신이 직접 무림맹으로 왔다. 그로 미루어보아, 그가 무림맹에 얼마나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무량수불! 이것은 위험하구나.’
백우진인은 장내에 팽배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소림의 책임자로 온 각율대사도 마찬가지인지 백우진인을 보며 우려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제갈문이 무림맹의 규모와 전력,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해 설명을 할수록 참가한 문파들의 탐욕도 그만큼 커져갔다.
제갈문은 교묘하게도 이곳에 참여한 문파들의 무림맹에 참여도를 유도했다. 그에 따른 혜택도 제시하면서 말이다.
천하대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백무광의 무심한 얼굴 위로 한 줄기 웃음이 어렸다.
‘쓰레기 같은 놈들, 이런 것들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중원을 이끌어온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이라니.........’
그는 역겹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명색이 무림을 영도한다는 지도자들인데 당장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눈을 부라리는 꼴이라니.
신황은 자신의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
대회의장에 일어나는 탐욕의 열기, 그리고 모든 무인들이 경외시하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의 욕심 어린 시선을.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뜻있는 사람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 그보다 더욱 많았다.
“지금 무림에는 암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미 저희 무림맹에서는 그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종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누구란 말이오? 무림맹에서 이 지경이 되도록 그것 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무엇을 했단 말이오.“
“그것을 모르니 저희도 답답합니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곳은 있습니다.”
무림맹을 질책하는 중인들의 목소리에도 제갈문은 시종 여유가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 되도록 그 스스로가 유도했기 때문이다.
제갈문의 속을 모르는 중인들은 제갈문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제갈문은 그런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며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무림맹의 정보부에서는 당금 무림의 암류를 마교가 부활하는 징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음!”
“마교라니.......”
순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십 년 전에 마교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써서, 이제는 모두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마교란 이름이 나오다니.
그때 무당의 백우진인이 말을 했다.
“분명 마교가 맞는 것이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보는 것일 뿐이지요.
하지만 마교의 앞잡이로 생각되는 몇 군데가 있기에 그들을 뒤져보면 무언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갈문은 말을 교묘히 돌렸다.
사실 마교가 세상에 다시 나왔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들의 시선을 끌만한 일이었고, 그는 그 방법 중 하나로 마교를 들먹인 것이었다.
제갈문의 예상대로 중인들은 마교란 말에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마교가 다시 세상에 나오다니.........”
“그렇다면 큰일이지 않소. 대책은 세워져 있소?”
뜨겁게 달궈져 술렁이는 실내 공기, 사람들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높은 산 구름 위에 숨어서 신선인 양 고고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이해득실에 민감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움직이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리라 판단했으리라.
답답한 마음에 팽주형의 시선이 신황을 향했다. 그러나 신황은 묵묵부답, 냉정한 눈으로 중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 놈!’
제갈문은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황을 보며 내심 뜨끔했다. 무심한 그 눈빛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제갈문의 눈을 무심히 바라보던 신황은 곧이어 팔걸이에 턱을 궤고 있는 백무광을 바라봤다.
권태로운 눈동자와 나른한 자세, 하지만 신황은 그것이 백무광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먹이를 사냥하기 전의 호랑이처럼 팽팽하게 일어선 백무광의 신경을, 신황은 본능적으로 느꼈다.순간 신황과 백무광의 시선이 마주쳤다.
씨익~!
백무광의 입가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매우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명백히 비웃음이 분명했다.
꿈틀!
신황의 미간이 움직였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대신 더욱 무심하게 눈빛을 가라앉혔다.
잠시간의 대치, 하지만 백무광이 곧 시선을 돌렸기에 둘의 기세싸움은 금방 끝이 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제갈문은 마교로 짐작되는 세력의 움직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신황은 백무광에게서 시선을 돌려 제갈문을 바라봤다.
‘마교라.... 백형이 이곳에 들어왔는데 마교에 대해 떠든단 말인가?’
지금 제갈문의 발표하는 내용에는 확실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마교의 교주인 백용후가 이미 무림맹에 잠입해 신병쟁탈전에 참여했는데, 그것도 모른 채 마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것은 제갈문이나 무림맹이 아직 마교에 대한 확실한 어떤 징후나 움직임도 파악하지 못한 채 억측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백형이 정말 마교의 교주가 맞는다면, 혼자서 이곳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림맹은 자신들의 심장부위에 마교의 정예를 들이고 마교의 토벌을 주장하는 것인가?’
신황은 일이 무척이나 재밌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제갈문은 그들의 자금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황주상단을 마교의 앞잡이로 몰아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몇몇 문파들이 동조를 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마교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 되는 단어였고, 또한 토벌의 대상이었기에 그들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아졌다.
몇 명 사람들이 그들의 과열된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다수의 의견에 묵살되었다.
기이하게 과열되는 대회의장의 공기, 그것은 어찌 보면 섬뜩하기조차 했다.
자신들의 내부에 마교의 정예가 들어와 있는 줄 전혀 알지 못하는 무림맹이나, 자신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줄 모르는 마교.아니 어쩌면 알지도 모른다.
무림맹은 모른다 할지라도, 그토록 오랜 세월 준비한 마교라면 이들 중에 첩자 하나 심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백형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가 아는 백용후는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자신이 없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매사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움직인다. 산 중의 제왕이라는 자신감과 오만할 정도의 자만심,
하지만 그것이 용납이 되는 것은 호랑이가 절대의 강자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될까?’
그의 얼굴에 절로 차가운 웃음이 어렸다. 그는 백용후와의 대결을 고대했다. 그것은 신황 역시 호랑이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결코 자신의 영역에 다른 호랑이가 존재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대문에 야성의 호랑이에게는 호랑이 친구가 있을 수 없다.
신황은 자신과 백용후의 대결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와 백용후가 격돌하는 날, 아마 그날이 무림맹의 최후의 날일 것이리라.
대회의장을 나오는 무인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조금 전에 대회의장에서 논의된 안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우진인과 각율대사가 제일 먼저 대회의장을 나왔다. 청명함을 생명으로 여겼던 두 사람에게 탐욕스러웠던 대회의장의 분위기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리라.
팽주형 역시 고개를 절래 흔들며 대회의장을 나섰다. 승냥이들의 대화와 자신의 뒤에서 나오는 무림명숙들의 대화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 건가?
탐욕과 욕심으로 얼룩진 밀실 대화.
팽주형은 이런 자리는 정말 질색이었다. 때문에 그는 한 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점창파의 장문인 하원지와 종남파의 장로 마광성, 그리고 청성파의 장문인 철산지는 그들끼리 뭉쳐 은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한차례 무림의 세력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겠구나.’
팽주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의 일을 계기로 또다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그 밖의 무림문파들이 이합집산을 할 것이다.
아무리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라지만, 이미 단체를 이루는 그 순간부터 이득을 추구하는 단체로 변질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팽주형이 아는 세상의 이치였다.
모두 밖으로 나간 적막한 대회의장, 최후까지 신황이 남아있었다.
구대문파의 인물들도, 오대세가의 사람들도 자리를 비운 대회의장, 마지막까지 태사의에 앉아있던 백무광은 무겁게 일어나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신황이 입을 열었다.
“마교라......, 꽤 재밌는 이야기였어.”
“훗!”
그의 말에 백무광이 한 줄기 웃음을 지었다.그에 신황 역시 마주 웃음을 지었다.
“기대해보지, 이야기의 끝을...........”
“후후~! 기대해도 좋을 거야. 꽤 하려할 테니 말이야.”
두 사람만 있는 자리, 백무광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포장을 하지 않았다. 백무광은 이제까지 나른함 속에 숨겨두고 있던 잔혹한 눈빛을 꺼냈다.
“함부로 설치지 말게, 신황. 더 이상 방해를 하면 나도 소극적으로 대처하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소극적이지 않아도 돼.”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듯했다.백무광은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확실한 성격이군. 전혀 재고의 여지도 없으니....... 뭐, 좋네! 앞으론 자네의 삶이 무척이나 고달파질 거야. 그건 내가 보장하지.”
차갑게 가라앉은 눈, 넘실거리는 살기. 백무광의 눈에 광포한 기운이 어렸다 사라졌다.
신황은 그런 백무광의 눈을 무심히 바라보다 대답을 했다.
“내가 고달파질 만큼 당신의 수명이 짧아질 거야.”
“후후~! 밤을 조심하게나. 밤의 안개가 무섭다는 것을 곧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협박이라......, 어설프군.”
“그래! 어쩌면 자네에겐 협박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세상일이 늘 그렇듯, 그것은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네. 때문에 수백,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사용되는 거지.”
백무광의 얼굴이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의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광포한 기운은 이제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난 해야 할 일이 있네 . 그 일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라도 그냥 둘 생각이 없네. 자네도 조심해야 할 걸세. 난 자네의 벼로가 마음에 들지 않거든.”
“기대하지.”
순간 백무광과 신황의 신형이 교차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어깨를 스치고 반대편 쪽으로 걸어갔다.
‘명왕(冥王)이라..... 정말 기분이 나쁜 단어야.’
백무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 밖의 밝은 빛 속으로 사라져갔다.신황은 어두운 대회의장에 홀로 남았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널 부숴주지.”
그의 목소리가 어둠을 타고 번져나갔다.
신황이 별채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이미 사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신병쟁탈전의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난 뒤였다
대낮에 신병쟁탈전이 벌어지는 동안 어두컴컴한 밀실에서는 강호의 중대사가 그렇게 쉽게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무림인은 거의 없었다.
신황이 들어오자 팽주형이 씁쓸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괜찮습니까? 신대협.”
“무엇이 말입니까?”
“후후~! 무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야합을 하는 꼴이라니.... 저도 저들이 이렇게 역겹게 행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팽주형의 말에 신황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늘 그가 본 천하대회의는 밀실담합,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욕망에 눈이 먼 추한 괴물들의 집합처, 그것이 대회의장의 모습이었다.
“팽가는 어떻게 행동할 겁니까? 이곳은 조만간 혼란에 휩싸일 것입니다.”
“휴우~! 일단 조금만 더 있다 팽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님도 편찮으시고, 이곳 무림맹의 일도 마음에 걸립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팽주형의 말에 신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팽주형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지만, 이곳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정국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무림맹은 무림맹대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백용후 역시 마교의 정예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파괴의 수레바퀴. 그것은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팽만우라는 걸출한 무인이 전력을 잃은 지금, 팽가가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무이 때문에 신황 자신이 최대한 돕겠지만, 자신의 몸은 불행히도 단 하나였다. 그 상황에서 무이와 팽가 둘 모두 지킬 자신은 없었다.
“언제쯤 가실 생각입니까?”
“일단 무이와 관수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주기로 한만큼 신병쟁탈전이 끝나는 날까지는 이곳에 있을 예정입니다.
다른 이들의 비무를 보면 그만큼 아이들과 저희 팽가 식구들의 안목도 높아지겠지요. 그런 연후에 떠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들이 조금 일찍 이곳을 떠났으면 싶지만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이었다.
팽주형은 이번 위기를 팽가의 도약의 기회로 생각했다. 기회는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고 했던가? 팽주형은 이번 위기만 잘 넘긴다면 팽가가 한 층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럼 이곳에 있는 동안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십시오. 아무래도 무림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이미 식구들에게 진법을 펼치라고 지시해두었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팽가주께서는 어쩌고 계십니까?”
“별채에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친구 분들도 여러분 다녀가셨기에 기분이 꽤 좋으신 듯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왜 찾으십니까?”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전 이만 팽가주께 가보겠습니다.”
신황은 팽주형에게 포권을 취해 보이고 팽만우가 요양을 취하고 있는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팽주형은 그런 신황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가던 길을 갔다.
홍염화는 무이의 손을 잡고 저자거리를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조금 전에 산 유과와 전병이 가득 담긴 종이봉지를 들고 있었다.
홍염화가 또다시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무이가 자신의 용돈을 털어 산 것이다.
두 사람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입 안의 아삭아삭한 촉감을 기분 좋게 즐겼다.
“음~ 맛있다!”
홍염화는 봉지에 담긴 유과 하나를 꺼내 입에 물으며 중얼거렸다.그러자 무이 역시 유과를 입에 물며 미소를 머금었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강한 사람들이 나오죠?”
“그래, 뒤로 갈수록 강한 사람들이 나오지. 사실 오늘까지 나온 사람들은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었단다. 아마 내일부터는 정말 힘들 거야.”
“헤~에! 그럼 언니도 고생을 하겠군요.”
무이가 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하자 홍염화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겠지. 그래도 강한 사람들하고 싸운다고 생각하면 온 몸이 짜릿해져.”
“무섭지는 않고요?”
“무섭기도 한데, 그래도 흥분이 돼.”
“그래요?”
“응!”
만화장에 있을 때는 오로지 밀실에만 틀어박혀 무공을 익혔다.
그 후 신황에게 도전했다가 패배를 당한 후, 그녀는 실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신황의 말대로 무공은 방 안에서 익힌다고 느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실제로 홍염화는 신병쟁탈전을 통해 실전을 치루면서 자신의 무공이 급속히 느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와~! 언니, 저기 저 아저씨 좀 봐요.”
갑자기 무이가 탄성을 내질렀다.
무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홍염화의 눈이 절로 커졌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유난히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족히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남자.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 중 제법 커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에게 대면 가슴에 겨우 미칠 정도였으니, 그가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백 아저씨보다 훨씬 크다.”
무이의 기억 속에 가장 키가 큰 사람은, 예전에 신황과 함께 만난 적이 있는 백용후였다. 무이는 백용후가 세상에서 키가 제일 큰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오히려 백용후보다도 더 커보였다.
그때 그 덩치 큰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워낙 덩치가 커서 험악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그의 얼굴은 의외로 순박해 보였다. 유순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무이는 왠지 친근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응?”
남자도 무이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바라봤다. 그는 웬 귀여운 여자 아이가 자신을 보며 웃음을 짓자 마주 웃음을 지었다.
그 순박한 웃음에 무이가 더욱 활짝 웃었다.
덩치 큰 남자가 무이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무이 앞에 무릎을 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무이는 한참을 고개를 들어야했다.
“꼬마 아가씨는 날 아는가?”
무척이나 굵으면서도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무이는 그 목소리도 무척이나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무이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으음! 아니요. 전 아저씨를 몰라요.”
“그런데 초면에 왜 그렇게 웃음을 짓지?”
“몰라요. 그냥 아저씨가 왠지 낯이 익어서요.”
무이의 말에 덜치 큰 남자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가? 난 꼬마 아기씨를 오늘 처음 보는데. 꼬마 아가씨가 날 익숙하다고 하니 이상하군.”
“저도 그게 이상해요. 저도 아저씨를 오늘 처음 보는데 왠지 굉장히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래?”
무이의 말에 덩치 큰 남자가 더욱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남자는 이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서 일곱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한 점 티끌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그는 가슴 속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무이도 자신이 왜 이 덩치 큰 아저씨를 친근하게 느끼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분명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왜 무척이나 낯이 익은지 그 자신조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무이! 백....아니, 팽무이예요.”
“무이, 좋은 이름이구나.”
남자는 솥뚜껑보다도 커다란 손바닥으로 무이의 머리를 쓱쓱 문질러 주었다.
“헤헤~!”
무이는 기분 좋게 남자의 손길을 느꼈다.
크릉~!
그때 무이의 품에서 설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남자는 그런 설아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후후! 귀여운 얼굴을 가면으로 가지고 있구나. 성질은 호아 못지않을 것 같은데.”
“호아는 누구에요?”
“우리 집에서 키우는 녀석이란다. 덩치도 커다란 녀석이 무척이나 애교가 많지.”
“애 이름은 설아인데, 설아는 게으르기만 하지, 애교는 하나도 없어요.”
“그런 면에서는 우리 호아와 정 반대구나.”
남자와 무이는 그렇게 정겹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홍염화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이구나. 무이가 저토록 마음을 여는 모습이라니.........’
저런 모습은 오직 신황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
순간, 홈염화의 신형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돼. 신가가하고는 전혀 닮지 않았는걸.’
그녀는 조금 전에 덩치 큰 남자의 모습에서 신황의 모습을 겹쳐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덩치와 얼굴, 그리고 기질 면에서 하나도 닮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하니,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했다.
덩치 큰 남자는 잠시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도 비무대회에 참가하세요?”
무이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난 비무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왜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거든.”
“그래요?”
“그래! 다음에 기회가 또 된다면 보자꾸나.”
“네!”
남자는 그렇게 무이와 인사를 나누고 홍염화를 지나쳐갔다.
“동생인 모양인데 아이가 정말 귀엽군요.”
“아..., 예!”
“그럼........”
그때 무이가 덩치 큰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외쳤다.
“아저씨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순간 남자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자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사람들 틈 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신원,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의 이름이 묘한 울림을 갖고 무이의 귓가에 울렸다. 무이는 잠시 그의 이름을 읊조리다 무심코 내뱉었다.
“우리 백부님의 성도 신 씨인데...........”
크응~
설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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