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물 창고
김 경 남 ( 수필가 )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수신 번호를 들여다 보고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가끔 전화를 주던 부동산중개업소이다.
“ 집 좀 보러 가겠습니다.”
이사를 하기 위해서 살고 있던 집을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매도를 의뢰해 놓은 상태이다. 나는 갑자기 메뚜기가 되어 실내를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황급히 앞 베란다로 가서 빨랫대에 걸려 있는 속옷을 걷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생활용품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화장기가 지워지지 않았나 하며 거울 한 번 들여다 보고 양말을 신고 옷 매무시를 고치고 난 후 현관문을 열며 배시시 미소를 띄운다.
그렇게 해서 외부인에게 공개된 우리집 실내가 고물 창고였었다는 것을 나는 이때껏 모르고 살아왔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집이 매도가 될 경우에 대비해서 앞으로 몸담고 살 집을 물색차 남편과 부동산중개업자와 함께 남의 집을 여러 번 방문을 해 본 후였었다.
올림픽 공원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송파구 방이동 대로변에 위치한 아파트에 가보았을 때이다. 지은 지 십 년이 채 안되었지만 12층인 최상층을 복층으로 지은 펜턴하우스였다. 이 집은 원래 우리 형편에 전혀 맞지 않았으나, 급매물이었고 맞벌이인 우리 부부가 출혈을 하다시피하여 대출을 떠안으면 매입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부동산중개인이 우리를 데리고 간 것이다.
현관에 들어선 순간 실내 분위기에 매료되어 구조 살펴보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황백색의 은은한 상아빛 벽지를 바탕으로 외제인 듯한 유럽풍 가구 집기, 고급 기물, 고급 천으로 만들어진 커튼이 연하거나 진한 갈색의 색조로 어우러져 우아하면서도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고안한 듯한 실내 장식, 고가품 집기와 기물이 빚어내는 격조 높은 품위가 집주인의 품격까지도 높이고 있었다. 맨얼굴에 부스스한 머리털을 하나로 묶고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친 주인 아주머니는 여기저기를 안내하고 파출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화장실에서 목욕탕 안을 열심히 닦는 모습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뚱딴지 같이 한 마디를 던진다.
“ 화분이 어째 하나도 없지? ”
“ ? ”
나는 내심 놀랐다. 평소 남편에게 당신은 글쟁이가 아니라서 관찰력도 없고 비판적 안목도 없다고 밥먹듯이 핀잔을 주곤 했었다. 내가 외제 일색의 그 집에서 속물이 되어 어리뻥뻥히 호화스런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인간의 온기와, 살아 있는 생명의 숨결과, 때 묻은 생활인의 체취가 없음을 읽어낸 것으로 보아 남편의 그 무딘 감성이 웬일로 오늘은 기지개를 켰나 보다.
아파트를 분양 받아 볼까 하며 언젠가 모델하우스에도 가 본 적이 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평형별로 꾸며 놓은 방들을 돌아보았다. 새로운 벽지, 새로운 구조, 새 집, 거실에, 침실에, 주방에, 화장실에까지 장식된 서구풍의 기물들에 빨려들었다. 안내원의 친절한 안내에 미소로 응답하며 목을 뽑아 들고 여기저기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장차 이 집에서 주인이 되어 살고 있을 내 모습을 황홀하게 꿈꾸었다.
아파트 반상회 참석차 여러 집을 들어다 보는 기회도 있었다. 똑 같은 구조인데도 집집마다 가구나 집기, 부착물, 진열품에 따라 각각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한결같은 것은 가구나 기물이 서구적이고 최신 유행과 최신식 제품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기가 팍 죽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입구에 들어섰다. 2평이 조금 못 되는 서비스 공간에는 어둑한 현관 조명등 불빛 아래에서 취미 삼아 모아서 진열한 수십 점의 싸구려 골동품 아니, 문화재가 숨쉬고 있다. 거실에 들어섰다.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기 시작한지 13살이나 된 등나무 쇼파가, 안방에는 30살 된 텔레비전이, 부엌에는 13살 된 회색빛 냉장고와 전자 레인지. 뒤 베란다에는 13살 된 세탁기가 주인을 반긴다. 건넌방에는 30년 동안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을 때 시어머님께서 사용하셨던 자개농 - 작년에 돌아가신 후 내다버리기는 커녕, 오히려 큰 돈 들여 수리까지 해서 모셔 둔 - 고색을 자랑하며 서 있다. 앞 베란다에는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화초인 아디안텀을 위시하여 직접 화분을 고르고, 흙으로 심어서, 가꾼 꽃나무들이 따가운 여름 햇살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작년에 기사를 불러 전자 레인지를 고칠 때의 일이다. 손길을 놀리다가 문득 한 마디 한다.
“ 고쳐 쓰느니 하나 새 것으로 사시지요. 십 만원짜리도 있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알뜰한 주부라고 자처했던 자긍심이 박살났다. 가까스로 대꾸할 수 있는 뱃장이 어디에선가 솟아나왔다.
“ ……사려면 왜 아저씨를 불렀겠어요? ”
“ ……. ”
반격은 멋지게 한 것 같은데 기사가 던진 그 한 마디는 도끼가 되어 가슴을 찍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더니 검박이 여지없이 추덕이 되어버린 꼴이다.
올해의 일이다. 냉장고 안에서 물이 흘러 내려 목재 부엌 바닥을 적셨다. 급히 기사를 불렸다. 이번에는 아예 내 쪽에서 수치심을 애써 감추면서 먼저 상대방의 눈치를 보았다.
“ 요즘에도 이런 냉장고를 쓰는 집이 있나요? ”
“ 잘 없지요. ……그러나 옛날에 만든 것이 사실은 더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거든요.”
그 말이 진심이라면 나의 검박이 추덕이 아니라 미덕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확인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의 말이 괜한 위로의 말로 들리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게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느끼는 수치심이나 열등감의 발로가 아닐까? ‘ 당당하게 산다.’라고 부르짖으면서도 남에게 뒤지며 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많은 주부들이 한결같이 선호하는 최신식 냉장고의 대명사가 지젤인지 지펠인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가구를 보아도 외제 가구인지, 유명 브랜드의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나의 삶의 사전에는 아예, 호의, 호식, 안락한 주거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옷이란 몸을 가리면 되는 것이고, 밥은 굶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되는 것이고, 집은 비와 바람을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등나무 쇼파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며 침통하게 자신을 돌아보았다. ‘야, 너, 김,경,나암! 넌 도대체가 언제쯤이면 외제 것에 넋을 잃고, 간편하게 살고 안락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며 살 거냐? 몇 살이 되어야 지금처럼 무감각하고 뻔뻔스런 자기식 도취에 벗어날 수 있냐?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봉변을 당해봐야 수치심이나 열등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못났음을 인정할 거냐?’라고 자문해 본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오기 또한 솟구친다. ‘그래, 잘 사는 집을 정말로 내가 질투한다면 30년 원리금 상환으로 대출을 약정해서라도 그 집을 샀을 것이다. 평소 고급차를 부러워했다면 3년 아니라 30년을 할부해서라도 구입하고 핸들을 잡으리라. 그런데,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지. 그럼, 그렇고 말고’라고 자위도 해 본다.
다시 현관으로 나갔다. 쪼그리고 앉았다. 시아버님의 바리때, 시어머님이 쓰시던 다듬잇돌, 언니가 준 젓갈독, 폐가에서 주워 온 개다리 밥상, 친정에서 가져 온 청화 백자 소호, 쓰레기 집하장에서 주워 온 그릇 선반대 등 옛 것들이 나를 반기며 소리친다.
“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사세요. 우릴 버리지 마세요. 이사 갈 때 우리도 꼭 데리고 가 주세요.‘
조선 초기 백자 단풍든 다완을 하나 집어 들고 입맞춤을 한다. 비록 구연부에 알튐이 있고, 허리 부분에 유가 보이고, 제살붙임한 흔적이 있어 완전품이 되지 못하지만, 그릇을 빚었던 도공을 그리며 그의 체취를 맡는다. 푸른 기운이 도는 발색에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물레질한 손자국에 정감을 느끼며, 찻그릇의 허리에서부터 굽으로 흐르는 유연한 곡선미에 빠져 든다.
남편은 투덜댄다. 만약 이사를 가게 되면 투자나 소장 가치는 하나도 없으면서 온고지정으로 대했던 싸구려 잡동사니 골동품, 아니 문화재들, 베란다와 거실까지 나와 앉은 책장들, 앞 베란다를 꽉 메운 꽃나무들, 한 점 두 점 탐석해서 좌대에 모셔둔 크고 작은 수석들, 서화 액자들, 철마다 담궈 뒀던 과일주병들을 어떻게 다 처치하느냐가 미리 걱정되는 모양이다.
실내 장식이란 가족 구성원의 개성과 기호와 취향을 바탕으로 연출된 것으로 그 집안 분위기나 품격이나, 문화, 경제 수준까지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보다도 한 지붕 밑에서 인간과 집기, 기물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체온을 나누면서 긴 세월에 걸쳐 정도들고, 애환도 나누고, 고락도 함께 한 흔적이 스며 있는 집안 분위기의 실내 장식을 더 소중히 여긴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그들의 생로병사와 다르지 않다. 어떻게 그들을 낡았다고, 헐었다고, 불편하다고 의리 없이 내다 버릴 수 있는가? 늙은 인간의 세대 교체는 서럽고, 함께 살은 오래된 가구나 집기의 세대 교체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30년 동안 만지고, 닦고, 사용한 집기와 기물이 산재한 실내를 바라본다.
나 혼자 지껄인다.
‘ 나는 내식대로 산다. …… 누가 무어라 해도 나의 냄새가 나는 분위기 속에서 살리라 .’
오래된 가구 집기들이, 성능이 점점 나빠지는 전기제품들이, 유행 지난 기물과 생활용품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 하여 멀어져 갈 이별의 몸짓을 스스로 나에게 해 오지 않는 한, 나의 고물 정신으로 나의 고물 창고를 지켜 나갈 것이다.
첫댓글 노병은 살아 있지요 글 잘 읽었습네다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 주이소 건강하세요
내 차는 프라이드입니다.12살이나 되지요. 나의 지론은 차는 그저 굴러만 가면 될뿐 사치의 대상은 아니더이다. 집도 그렇고 길거리에서 산 만원짜리 옷도 신발도 좋다는 것 그게 문제지만...어쨌거나 손 때 묻고 마음이 담겼던 옛 물건에 애착이 가는 우리네 심정은 친구나 나나 별 다르지 않네요. 그것보다는 늙을수록 지갑은 자주 열고 입은 닫아라는 말이 점차 무게가 더해집니다. 아름다운 늙음이었으면 합니다.아직은 이르다고 부정하고 싶지요? ㅎㅎ
제눈에 안경이 제일 편 하잖아요. 가만히 들여다 보면 사람사는게 별반 다를게 뭐가있겠소. 요줌 고물값이 꽤 나가던데요? 경남님! 좋은 시제로 마음의정화와 은은한향기 실어주심을 감사드림니다.
새것을 좋아하는 현시대에 너무나 상반대는 생활방식을 느끼며... [나는 내식대로 산다. …… 누가 무어라 해도 나의 냄새가 나는 분위기 속에서 살리라 .] 주관이 확실한 경남님의 사고방식을 읽을수 있겠군요. 우린 그것을 뿌리치고 살아 온듯한 현실을 반성도 해봅니다. 좋은글 감명깊게 잘읽고 갑니다. 상하의 계절에 좋은 일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