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고경면 창하동 육군 3사관학교 교정에 잠들어 있는 황보능장은 고려태조 왕건의 창업공신으로, 호족 출신이다.
그는 금강산성을 축조했으며, 영천 황보씨의 시조로 그의 무덤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돼 있다.
정훈진 기자 jhj131@idaegu.com
신라말 왜구의 노략질과 수도 경주지역 방위를 위해 축조된 금강산성은 천혜의 절벽을 이용해 내성과 외성의 양면을
자연 방위선인 절벽을 이용하고 나머지 양쪽은 토성을쌓았다. 산성이 마치 병풍처럼 길게 늘어 서있다.
주왕산에서 발원하여 죽장~영천으로 흐르는 물길이 자오천이다.
포항 방향의 28번 도로와 맞닿는 단포교를 넘고 완산보(주남보)에 이르면 다시 남천이라 불리면서 높은 자연절벽에
에워싸인다. 남천은 영천시내로 돌아 흐르면서 비로소 금호강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흐르는 강 속에 뿌리를 둔 높다란 단애는 신라를 지켜주던 외성의 하나인 금강산성이다.
현재는 영천시 그린환경센터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시오리 금강산성 길과 남천은 천 년의 대서사를 간직한 역사의
땅이기도 하다.
완산보에서 쏟아지는 여울 소리를 들으면서 절벽 아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금강산성에 이른다. 10여m 족히 넘는
천연단애로 형성된 금강산성은 서북쪽이 탁 트여 있어 전망대와 같다.
광활한 들녘을 비켜 북쪽 멀리 바라보노라면 영천의 진산인 보현산이 우뚝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팔공산이 병풍처럼
좌우로 펼쳐진다. 북쪽 절벽의 중턱에 집채만 한 큰 바윗덩이가 굴러 떨어질세라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것이
용마바위인데 근래 들어 바위 아래 작은 암자가 들어서 그 옛날의 정령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하다.
◆ 하늘이 내린 준마와 용마바위
신라말, 영천지역 금강성의 성주인 황보능장(皇甫能長)은 왕권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정국이 혼란스러워지자 왜구의
노략질과 견훤의 내침을 대비하고 경주지역 방위를 위하여 금강산성을 축조한다.
황보장군은 동서가 발달하고 남쪽을 안위하고 있는 천혜의 절벽을 잘 활용하여 튼튼한 토성을 쌓기 시작한다.
휘하 병사들과 지역주민들이 호흡을 맞추고 힘을 합쳐나가던 어느 날 밤이었다. 훈련과 토성 쌓기에 지친 능장이 군막
에서 곤히 잠을 자는데 꿈속에 아리따운 천상의 여인이 나타나 말을 건넸다.
“황보능장. 나는 옥황상제의 상좌인 천녀요. 상제께서 그대의 나라 위한 충정을 어여삐 여겨 잘 달리는 말 한 필을
선물로 내리니 귀하게 받으시오”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장군이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비록 꿈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현실 같았다. 아직 캄캄한 밤중이어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고요한 산성의 정적을 깨고 땅이 꺼질듯한 우레와 같은 폭음소리와 함께 온 산과 들녘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병사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도 혼비백산하여 소리가 난 절벽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 순간, 꿈을 떠올린 황보장군은 넋을
잃고 있는 병사들을 헤치고 황급히 나아갔다.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일까. 절벽에서 기이한 물체가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오르더니 날개 달린 준수한 말 한 마리가 큰 울음소리를 내며 성문 쪽으로 날아오고 있지 않는가. 꿈속의 천녀가 말해준
옥황상제의 선물이 분명하였다.
“모두 조용하라. 이 말은 하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 모두 말 앞에 큰절을 올릴 것이다” 능장의 위엄 있는 명령에
모여든 모든 군민이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마치 부하가 장수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듯 머리를 조아렸다.
절을 마친 황보장군은 하늘이 내린 말을 부둥켜안고 흑갈색에 윤기가 흐르는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나와 함께
야전을 누빌만한 말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마침 잘 왔다”라며 기뻐하였다.
날이 밝자 간밤에 하늘의 서기가 내린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가파른 절벽이 크게 갈라진 사이로 새로운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 중간을 뚫고 말이 솟아올라 온 것임을 안 황보장군은 그 바위를 ‘용마바위’라 부르고 ‘용마’를
애중지하였다.
준마와 명장은 궁합이 맞는 법. 이제 장군은 용마의 주인이 되었다. 말을 몰고 이곳저곳의 공사현장을 살피면서 멀잖아
성이 완성되면 낙성잔치를 겸한 군사들의 무예경연대회도 진행할 계획을 했다.
“마침내 굳건한 산성을 우리 손으로 완성하였다. 그동안 제병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면서 큰잔치와 더불어 무예
경연대회를 열 것이니 마음껏 즐기라!” 만세! 만세! 만세! 병사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자 능장은 은근히 용마의 용맹을 자랑하고 싶어 말을 불러 군중들 앞에 나타나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로 용마에게 준엄한 다짐을 한다.
“오늘 같은 축전의 날에 너의 용맹을 보여다오. 내가 활을 쏠 터이니 화살과 경주를 하라. 만약 내가 쏜 화살을 따르지
못하면 내 너의 목을 벨 것이다.”
엄명을 내리자 장군은 시위를 힘껏 잡아당기고 용마의 엉덩이를 세게 찼다. “이랴!“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데 용마는 과녁이 위치한 산기슭 언덕을 향해 번개같이 뛰더니 흐르는 강과 절벽을 날아 넓은
들녘을 단숨에 달렸다. 그 날랜 모습은 장군이 쏜 화살이 되레 용마를 뒤따르는 듯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목표에 이른 용마는 비로소 발을 땅에 내딛으며 고개를 쳐들고 큰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용마는 힘이 넘쳐났다.
마상의 능장은 얼른 과녁을 살폈다. 그런데 뒤이어 꽂힐 줄 알았던 화살의 흔적이 영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순간,
용마가 화살을 놓친 것으로 안 장군은 “너는 내 화살을 놓쳐 따르지 못했구나. 약속대로 내 너의 목을 베리라” 장군은
단호했다.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군의 시퍼런 칼이 말의 목을 지나갔다. 그때였다. 씽-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온 화살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말 머리에 꽂혔다. 분명히 장군이 쏜 화살이었다.
용마가 화살보다 더 빨랐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순간 멍하니 보던 장군은 ‘내 성미가 불같이 급했구나’ 하며
애통해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 붉은 피를 낭자하게 쏟아 낸 용마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다 펴지 못한 채 용마는 순순히 주인의 처분에 맡겨지고 만 것이다. 오히려 장군이 당긴 시위의
장력이 자기의 주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큰 일깨움을 남긴 채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능장은 사려 깊지 못한
자신 탓에 애석하게 죽어버린 말을 고이 묻어준다.
훗날, 용맹스럽던 장군이 죽자 그의 무덤은 금강산성을 마주 바라보는 운주산 기슭 천수봉 솔밭에 모셔졌다. 영천시
고경면 창하동, 육군3사관학교의 교정에 마치 왕릉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무덤이 있는데 이곳이 곧 고려 건국을 도운
금강성주 황보능장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세인들은 이 무덤을 두고 말 무덤이라고도 하고 또 혹자는 이 무덤과 달리 용마의 무덤인 말 무덤이 따로 있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문헌에 의하면 용마의 무덤은 확인할 길이 없고 오히려 황보장군의 무덤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이를 두고
큰 무덤, 즉 말 무덤으로 불린다는 향토사학자(이원조, 전민욱)들의 의견에 공감된다.
◆ 육군3사관학교 생도들 굽어 살피다
경상북도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황보능장 묘역과 관련해 3사관학교의 공간구도를 살펴보자.
먼저 묘역 남쪽 방향으로 학교본부와 동양 최대의 잔디연병장인 충성연병장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고 학교 담
넘어 멀지 않은 곳에는 그 옛날 황보능장이 축성했던 금강산성이 병풍처럼 가로 놓인다.
묘소에서 다시 동쪽 지역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볼거리를 안겨주는 연못과 호국정 둘레길, 그리고 연못 둑 아래쪽으로
넓은 연병장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한 성화대와 그 아래로 조국·명예·충용의 글자를 피워내는 회양목 정원이 철철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또한, 병촌에서는 보기 드물게 야외 조각공원을 꾸며놓아 사관생도들과 방문객들에게 미감을
소통케 한다. 다시 서쪽 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생도들의 교육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20여 개의 전공에 따라 학과 학습뿐만 아니라 장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덕육(훈육)을 생활 속에서 체인토록 한다.
사관생도들의 하루는 뜀걸음으로 시작한다. 건각을 세운 사관생도들은 새벽 기운을 가르고 황보장군 묘역 앞 솔밭을
돌아 십리 길을 땀 흘려 뛰면서 심신을 벼린다.
젊은 사관들을 품어 안은 황보능장은 죽어서도 필승의 호령을 놓지 않는다. 살아서는 용맹스러운 장수요 죽어서도
영원한 지휘관으로 미래의 간성이 될 젊은 사관들과 함께 달리고 함께 호흡하며 맹훈련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처서가 지나고 가을바람이 일면 3사관학교 장병들은 장군의 묘역을 말끔하게 벌초하면서 그의 용맹을 되새기고 호국을
위한 필승정신을 아우르는 기회로 삼는다.
김정식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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