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입대 해요
윤태정
등기 우편물 안에서 뜬금없이 입영 통지서가 튀어나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아들이 제대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마당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군대를 다시 오라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들이 아닌 남편 이름이 적혀 있다. ROTC를 마치고 최전방 양구 백두산 부대에서 군 복무 착실히 한 사람을 다시 호출하다니. 아무리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만 노인한테 나라를 지키라는 게 도대체 될 말인가. 병무청 직원의 실수려니 이해는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슬쩍 남편의 심기를 살폈다. ‘입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고 팔짝 뛰어야 정상인데 아무런 동요가 없다. 소리를 지르거나 머리를 쥐어뜯어도 모자랄 판에 명상이라도 하듯 고요하니 이상한 일이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국방부에 따지러 가자는 내 입도 틀어막는다. 우리처럼 힘없는 소시민은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게 도리라나 뭐라나.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듯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툴툴거리던 내가 부대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함께 탔다는 사실이다. 수십 명의 노인과 가족들이 버스를 가득 채웠다. 하나같이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차창만 뚫어지라 바라본다. 휙휙 스치는 산천초목의 덧없음을 삼키는 건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삭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젯밤 서둘러서 자른 남편의 짧은 머리가 더없이 초라했다. 장교 복장을 한 사진 속 그는 머리숱 많은 멋진 군인이었는데. 울창한 산림으로 빽빽하던 청춘은 어디로 가고 희끗희끗 민둥산 노인이 되어버린 걸까.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듯하다.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입대하는 노인들의 외모는 얼추 비슷하여 자연스레 측은지심이 들었다. 누가 잘났는지 못났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조차 없었다.
버스가 부대 코앞에서 가족들을 풀어놓고는 쏜살같이 초원 너머로 사라졌다. ‘노인 입대 환영’이라 쓰인 플래카드가 시선을 낚아채며 열렬하게 펄럭거렸다. 가족들과 일일이 포옹을 마친 늙은 입영자들이 한 명 두 명 연병장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단에 선 대장이 인사말을 할 때에도, 내 신경은 온통 구부정한 남편한테로 가서 꽂혔다.
"여러분의 패기와 애국심에 존경을 표합니다. 우리 부대에 잘 오셨습니다. 부디 내 집처럼 편안하게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묘한 환영사가 끝난 뒤에도 군가 소리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엄격한 규율과 고된 훈련 대신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뒤이어 빨간 모자를 쓴 구릿빛 얼굴의 교관 셋이 나와서 경례를 올렸다.
"복창하십니다!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다."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다."
복창이 끝나고 ‘뒤로 돌앗!’하는 구령이 떨어지자마자 조용하던 연병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동 행진의 첫발을 뗀 남편이 뒤통수를 보이며 나의 시야 밖으로 튕겨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연병장을 향해 냅다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가지 마! 미안해."
외마디소리에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나의 두 팔은 허공에서 훠이훠이 새를 쫓고 있었다.
‘어쩜 이리도 생생할 수가.’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곰곰이 짚어보니 얼마 전에 있었던 문학 토론이 원인인 듯싶다. 상식적인 것도 한번 비틀어서 생각하면 작가의 상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그날은 ‘노인이 군대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토론을 했다. 예상대로 ‘군대는 젊은이들이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만한 타당성 있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노인의 특성은 물론 현 세태를 반영한 재치 있는 발상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노인은 할 일이 적다’라는 것을 필두로 ‘입맛이 없어 군량미를 절약할 수 있다’라는 말도 얼핏 맞는 말 같았다. ‘시간은 많고 잠은 없으니 보초 서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할 때는 한 목소리로 웃었다. 요즘 군인 월급도 많이 올랐으니 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된단다. 나는 다른 어떤 의견보다 ‘노인은 애국심이 강하다’라는 이유에 공감이 갔다.
우리나라 노인의 범주는 65세부터 시작이다. 정신으로 보나 육체로 보나 내가 무슨 노인이냐며 억지를 부려봐도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어쩔 수 없다. 저출산으로 인해 국가 존망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을 군대에 보내지 말고 노인에게 기회를 주어 상생하자고도 했다. 세태를 대변하는 여러 의견에 이미 ‘지혜라는 훈장’을 받은 분들의 자존감에 자칫 흠집이라도 생길까 조심스럽기도 한 시간이었다.
토론이 끝나갈 즈음 이유 하나가 번쩍 스쳤다. 하루 세 끼를 안 먹으면 천지가 뒤집히는 줄 아는 우리 집에 딱 어울릴 만한 거였다. 나는 모깃소리만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삼시 세끼 밥 안 해서 좋아요."
꿈이란 자고로 현실을 반영한 잠재적 의식의 발로가 아니던가. 삼시 세끼에서 벗어나려고 남편을 군대 보내고 싶었나 보다. 웃자고 한 얘기에 혼자만 골똘했었는지 꿈에까지 나타났으니 미안할 수밖에. 그러잖아도 요즘 기력이 없어 보인다며 보약을 지어 먹이라는 엄마의 성화가 있었는데. 약은 고사하고 군인 할아버지를 만들 뻔했으니 내 죄를 알겠다.
머리로 냉장고 안을 재빨리 스캔하면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비록 꿈이지만 사과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밥상을 위해 앞치마까지 둘렀다. 생선 비늘을 긁는 동안 자꾸만 군대 짬밥 먹는 남편 얼굴이 떠올라 쿡, 웃음이 터졌다.
꿈에서 성급히 헤엄쳐 나온 게 조금은 아쉽다.
‘에잇, 하루 정도는 집밥 안 먹여도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