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불령선인
1960년 11월 3일, 경성 용산의 한 시계점에는 레인코트를 입은 한 중년 남자와 안경쓴 청년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조선귀족’ 시로사키 리츠(베르사유)는 그 다음으로 도착한 ‘마담 사토’, 즉 정예림(소피아)을 마주치더니 아주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뒤로 안경 쓴 청년 ‘페트라’에게 안내를 받아 들어온 앤드류(백악관) 역시 베르사유를 목격하고는 대놓고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권총집에 손을 가져다댔죠. 그 뒤로는 ‘외로운 늑대’ 타입의 거한 이철수(창경원), 꼿꼿한 지식인 인상의 최교수(아고라), 포마드 기름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넘긴 수완가 느낌의 영강(오라클)이 순서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하느라 가장 늦은 공산당원 이소성(오뗄드빌)이 도착했죠.
이들은 서로 다른 출신과 뒷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체제에 불만을 가졌다는 것 하나 정도는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작금의 일본 중심 공영권 체제는 모두의 공적이나 마찬가지였죠. 때마침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이 급사했다는 소식을 레인코트 입은 남자 ‘건축가’가 전달하자, 좌중은 얼어붙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의미를 알아채서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였죠. 고노에는 일본 정계를 조종하는 배후권력이자 귀족원의 최고원로, 대정익찬회의 조정자였고, 그의 죽음은 동아전쟁 이래 20년간 지속되어온 ‘익찬 체제’의 균열을 의미했습니다. 만약 고노에의 사망이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었죠.
결국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려면 적의 단합과 효율을 저해해야 하는 법. 일행은 잠시간의 논의 끝에 북한산의 ‘국가보안국’ 경성지부 건물을 털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곳에 고노에의 죽음에 관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죠. 작전의 개요는 대략 이러했습니다. 첫째, 베르사유가 보안국 보안과장(경비 담당) 시노하라 이치겐(정일권) 대좌를 소피아의 이스탄불 살롱으로 끌어낸 사이 드빌이 소동을 일으켜 보안대원들을 분산시키고, 그 틈을 타 창경원-백악관-오라클로 구성된 침입조가 직원으로 위장해 정보를 빼내며, 빼낸 정보를 소피아와 아고라가 인맥 네트워크 및 언론 등을 통해 폭로하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전목표는 그야말로 초과달성 그 자체였습니다. 우선 시노하라 대좌는 살롱에서 대자로 뻗어 10시간 동안의 긴 잠에 빠졌고, 그 사이 드빌(과 백악관이 붙여준 의용대원들)은 ‘우연히’ 총독부의 금괴수송열차를 폭파시켰습니다. 적당히 큼지막한 화물열차를 폭파할 계획이었는데, 뜻밖의 일이었죠.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 헌병, 보안국이 초비상상태에 빠져 본진의 경비가 허술해졌고, 침입조는 ‘최소한의 교전’으로 정보를 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와중 소좌 한명이 백악관 집도 하에 9mm 총탄 절개삽입술을 받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를 이어받은 폭로조의 소피아와 아고라가 양념을 잔뜩 쳐 야무지게 소문을 뿌려댔으니, 일본 정계는 그야말로 대폭풍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폭풍은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02. 그것은 복수의 '비읍'일지니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의 피살설이 방방곡곡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열도와 반도는 일대 혼란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에서 그치던 군부의 준동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정치권은 동아대전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분열되었으며, 패배감과 무력감에 중독되어 있던 조선 민중들은 알수없는 쾌감의 습격에 짧게 몸서리쳤습니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으니, 이제는 안전클립을 꽉 쥔 손아귀를 풀고 신관에 불을 붙여야 했습니다. 우선 첫째, 1) 조선 해방을 위해 암약하는 조직의 존재를 방방곡곡에 알려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2) 동경이 수족처럼 편하게 부리는 야쿠자와 정치깡패라는 카드패를 없애버려야 하며, 마지막으로 3) '적군'을 최대한 분열시켜 다가올 기나긴 싸움에서의 승산을 높여야 합니다.
일행은 우선 프로파간다 방송을 송출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라디오 및 TV 국영방송국인 조선방송협회(CHK) 방송국 건물은 국가 주요시설이었기 때문에 보안국만큼은 아니어도 경비가 삼엄했고, 저번 불령선인 금괴탈취 및 야마구치 소좌 실종사건 이후 경비는 더욱 강화된 상태였습니다. 그곳을 점거하고 방송실에 들이닥쳐 몇분이라도 방송을 강행한다는 것은 군경의 포위를 감수한다는 의미였고, 그렇게 된다면 최소 1명의 동료가 죽거나 체포될 것이 뻔했습니다. 즉, 이 작전을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이 때 소피아가 낸 아이디어는 패러다임을 바꿔놓는 것이었습니다. 방송 전파는 ‘더 강한 출력으로’ 같은 대역에 송출되는 전파에 ‘납치’되는 법이고, 어디서든 전파를 쏘아올린다면 해당 전파의 영향범위 내에 한정하여 원하는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선 전역을 커버하는 ‘단일 송신기’를 만들거나 찾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작은 송신기를 조선팔도 각지에 ‘아주 많이’ 설치해 동시에 작동시킨다면 이론적으로 전파추적을 회피하며 몇분동안 원하는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NHK의 정기점검으로 위장한다면 각 가호에 들어와 수상기에 송신기를 부착하는 것도 가능했죠. 일행은 즉시 이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베르사유는 사비와 공금(지난번에 훔친 금괴 등)을 사용해 소형 전자기기 부품 공장을 인수했고, 백악관은 이 공장에서 소형 송신기 생산을 관리감독했습니다. 약 2-3개월 안에 공장에서는 물건이 생산되어 나올 것이었고, 이를 빼곡하게 설치해 방송하면 되었습니다.
준비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나머지 계획 역시 실행해야 했습니다. 타겟은 두 명, 뒷세계의 거물인 코다마 요시오와 대본영의 수완가 세지마 류조였죠. 해군 및 혁신파와 연줄이 있는 코다마와 육군 및 보수파 계통의 세지마를 제거하거나 무력화한다면 적은 비가역적으로 분열될 것이었습니다. 코다마는 약 한달동안 조선에 체류하며 일을 처리할테니, 이 계획의 실행은 전파납치 작전 이전에 완료되어야 했습니다. 세지마를 조선에 불러 코다마와 함께 처리해야 했죠. 이를 위해 일행은 몇가지 소문을 퍼뜨리기로 했습니다. 첫째, 세지마가 소련의 밀정이라는 조작된 증거를 코다마에게 뿌리고, 둘째로 세지마에게는 코다마가 고노에 공작 암살사건의 진범이라는 증거를 건네주며, 마지막으로는 둘의 회합 자리를 만들어 ‘사소한 오해’로 양쪽을 공멸시키는 것!
계획은 착실히 진행되었습니다. 문건을 입수한 코다마는 사사건건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세지마를 쳐내기 위해 그를 조선으로 불렀고, 세지마는 “코다마의 계획을 저지할 기회를 주겠다”는 귀족원 자작 베르사유의 연락을 믿고 실제로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베르사유는 소피아에게 언질 없이 이스탄불 살롱을 회합 장소로 정했고... 창경원이 준 ‘코다마의 고노에 암살’ 정보를 건네받은 세지마는 수하들을 이끌고 살롱에 왕림했습니다. 양쪽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던 가운데 백악관이 오픈카에서 기관단총을 난사, 양쪽 사이에서 총격전과 칼부림이 이어져 세지마와 코다마를 포함한 거의 모두가 처참히 사망했죠. 물론 이스탄불 살롱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 열도를 충격에 몰아넣었고, 곧 ‘전파납치 작전’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1961년 4월 9일, 역사적인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의 인민들이여! 노동자와 농민과 지식인들이여! 조선이 자유로운 국가이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혹은,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조선인민 그대들이 영웅적으로 투쟁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그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선언하는 저 자신도 그런 시절을 기억합니다. 태극기를 높이 치켜들고 애국가를 부르던 조선인민의 열화와 같은 외침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서 내려온 홍익인간의 얼과 정신은 분명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제 어디 계십니까? 온갖 감시와 침묵만이 있습니다. 저 돌담 위의 돌멩이 하나까지도 고통과 피땀을 알 정도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죠?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가장 큰 책임은 일본의 제국주의와 무자비한 식민 통치일 것이지만, 정말로 모든게 이 지경이 된 건, 독립과 자유의 희망이 사라지고 모두가 침묵 속에서 살아가게 된 건, 그 원인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지쳤다고,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제국주의와 식민통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되기를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팔도의 삼천만 동포 여러분, 일제가 좋다면, 식민통치가 좋다면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음 속에 불길이 타오르는 자라면, 포기하지 마십시오! 41년 전의 뜨거웠던 기미년 삼월처럼, 조선 독립군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조선인들이여, 일어나라!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우리의 힘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어젖힙시다!”
이 방송은 뭇 조선인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질러놓았습니다. 송신기의 확실한 성능은 조선 전역의 라디오와 TV 주파수를 몽땅 먹통으로 만들어놓았고, 거의 모든 가구가 이 방송을 수신하게 되었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민중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1961년 4월 10일부터 22일까지 벌어진 대봉기는 독립운동사의 새로운 기점이 될 것이었습니다. 물론 위수령(사실상의 계엄령)까지 선포한 총독부와 동경 지도부의 단호한 결정에 의해 참혹하게 짓밟혔지만,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간 일본 본토의 연장(즉 북아일랜드와 같은)으로 알려졌던 조선 문제가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로 올라섰다는 성과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모두가 이 성공에 기뻐만 하는 것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영업장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초토화된 광경을 목격한 그녀는 당혹감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혼혈 특유의 설움이 오해의 씨앗이 되어, 베르사유를 비롯한 동료들을 불신하기 시작한 것이죠. 제국에서도, 공화국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조선은 독립할 수 있을까요? 일행은 순수한 이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E.E.샤츠슈나이더 중국에서 뻘짓하느라 국력을 낭비해왔고 앞으로는 더 많이 낭비할 예정인게 문제인거죠?
@E.E.샤츠슈나이더 문제는 이제 중국에서 빠져도, 중국이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일 가능성이 높고, 본격적으로 성장 시작하면........
@렌지파일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벌들의 과두정이 될수도?
@로콘 그것도 가능하지만, 그 체제가 계속가진 않을테니까요. 분명 어느시점에선 변화가 있기 마련일테니..
@로콘 천황의 이름을 빙자해 실권을 잡고 있을수도 있죠
@로콘 쉽게 말해 조선이 독립하든 말든 일본은 억세게 운좋지 않은 한 ㅈ망 확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931117 에초에 일본 역사를 통틀어서 천황이 제대로 실권잡고 통치한건 얼마 안됩니다...
권력은 거의 없는데 권위가 엄청나게 높은게 천황입니다...
@로콘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냥 군림하고 있다길래 한말입니다.영국 국왕 같은 포지션이겠죠.
@로콘 모든 권력집단들이 천황 한사람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천황이라는 사람은 “시라스”이니 뭐니 해서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는 희한한 상황이라… ㅋㅋㅋㅋㅋ
어찌보면 일본식 돌려말하기, 극한의 눈치 문화가 충실하게 반영된 셈이죠. ㅋㅋ
@E.E.샤츠슈나이더 임진왜란때 천황이 반대했음에도 생깠다는 얘기가 있는걸 봐선 까놓고 말해 행동을 해도 듣지도 않을거고 그걸 이룰 힘도 없는 존재 아닙니까 천황은.
근데 그런 논리로 천황은 2차대전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
+ 그나마 마지막으로 천황이 힘을 쓰려한게 겐무신정 시기려나요?
@E.E.샤츠슈나이더 혹시 이거 나오나요?
@931117 임진왜란은 천황의 권위가 바닥이였던 센고쿠 시대때라서... 작중 시점과 비교하는건 부적절 할것 같은데요...
2차대전이 끝나기 이전엔 히로히토 천황의 권위와 실권이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천황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적은 거의 없긴 하지만 2.26을 진압한것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시킨것도 천황이였습니다.
다이쇼 덴노 사후~2.26 이전 현실 일본의 연장선상에 가까운 작중 일본에선, 천황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다면 감히 천황의 결심을 막으려들 사람은 없을것 같은데요?
@931117 영국 국왕도 어느 정도의 실권은 가지고 있습니다. 의회해산권, 법안 재가권, 총리 임명권(이긴 하지만 사실상 다수당 당수 임명), 군통수권(명목상) 등등...
@로콘 만주사변,중일전쟁등이 상부 허가없이 일커진걸 생각하면 글썌요?
@931117 제 말의 요점은 작중 일본에서 천황이 허수아비가 아니고 권위와 실권을 가진 존재일거 라는겁니다.
그리고 쇼와 덴노는 군부의 폭주에 대체로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쇼와 덴노가 적극적으로 군부의 폭주를 막으려 들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에초에 작중 세계관에선 군부의 폭주가 없었지 않습니까...
@로콘 그렇게 방관한놈이 왜 쿠데타는 막았는지 의문이기 그지없긴 한데.
아무튼 그럼 아예 천황을 없애버려야...?
+ 설정을 제대로 못봐서 그런가.기억이 안나는...
@931117 쿠데타 일으킨 황도파가 쇼와 덴노가 신임하던 신하들을 간신이라면서 죽여버려서 천황의 역린을 건드려버린지라...
그리고 제가 보기엔 천황을 없애버려서 이득될건 없을것 같은데요?
@로콘 권위와 실권 가진 상황에서 만에하나 천황이 조선 식민지 유지를 택한다면 정말정말정말 시도할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할수는 있겠죠.
현실에서도 천황 죽이려고 한 사람들 있잖습니까.
@931117 현실에서 쇼와 덴노가 직접 전면에 나서서 영향력을 행사한게 2.26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 뿐인지라, 저희가 황도파처럼 쇼와 덴노의 역린을 건들지만 않는다면 내각과 군부가 조선 식민지를 포기하는데 동의할 경우 쇼와 덴노도 승인해줄거라 생각합니다.
@로콘 두고봐야겠죠.
<중국에서의 위기, 세계 경제에 핵폭탄을 던지는가?> - 이코노미스트 지, 1962년 5월.
“아사누마가 ‘노’라고 말하다(Asanuma says NO)”
지난 3월 3일 난징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제2차 동아시아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일본의 신임 아사누마 수상은 “엔화의 평가절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세간의 주장을 일축했다. 전쟁 발발 직후부터 엔화자산 매각 행렬이 이어지며 엔화의 실질가치가 폭락했지만, 일본 정부는 완강하게 평가절하를 거부하여 실질가치와 명목가치 간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중략)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섭도록 간명하다. 금융 투자자들이 (실제보다 훨씬 고평가된) 엔화 자산을 (역시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의) 달러 자산으로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달러 대비 엔화의 실질가치를 더욱 낮추는 역할을 하며, 평가절하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달러자산의 무차별 매수를 촉진하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중략)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케네디 행정부가 일본에게 강한 압박을 가하기를 촉구했다. 이대로라면 “과연 미국이 37달러를 금 1온스로 바꿔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고, 지금의 금본위제 체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린든 B. 존슨 부통령은 일본의 중국 철수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일본에게 고강도 경제제재 및 금수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략)
——
미국이 일본에 빡친 진짜 이유.txt
@E.E.샤츠슈나이더 ... 어후... ㅋㅋㅋ... 플라자 합의때를 능가하는 빡칠 이유로군요. 그땐 쌍둥이 적자가 문제였는데, 여긴 아예 체제를 건드네 ㅋㅋㅋ
@dear0904 “단독으로 소련 GDP의 7할을 차지하는 세계 3위 경제대국이 개트롤을 하면 세계경제가 어떻게 될까?”의 답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E.E.샤츠슈나이더 이대로 가다간 브래튼우즈 체제가 붕괴되서 세계 경제가 박살날테니 그전에 미국이 뭔가 행동을 취하겠죠?
@E.E.샤츠슈나이더 ... 하긴, 저 수준이 아닌 러시아가 개 트롤을 해도 이 **이 나는데, 일본이 저 **을 하면... 박살 이전에... 생존의 문제가 터지겠군요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안전자산이 아닌 엔화... 이야...
2화 올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