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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뒷날 바로 맞선이었다. 안내자는 한국에서 일러준 내용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처음부터 고르지 마라, 얼결에 골랐다가 나중에 바꾼다고 하지 마라, 마음에 맞는 여자를 고를 때까지 섣불리 결정하지 마라, 여자는 쌔고 쌨으니 마음에 꼭 드는 여자를 골라라, 이것은 소개팅이 아니고 맞선이니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 달라,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면 아쉽지만 그냥 돌아갔다 다시 오는 경우까지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장에서 도야지새끼를 고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앞에 놓고 고른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지만 결혼을 위한 것이니 한번만 눈을 질끈 감자고 생각했다. 설사 맞춤한 여자를 못 찾더라도 한번으로 끝내지, 장가 못 가 안달 나 ‘호뇩한 놈’처럼 생판 모르는 이 먼데를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았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있는데 네 명의 여자가 건너편에 앉는다. 한국인 안내자는 오른편에, 통역하는 여자는 왼편에 앉았다. 구경하는 여자들이 주위에서 쉬지 않고 쑤왈거렸다. 손님은 물건을 대하고 마주앉았고, 안내자와 통역은 가운데서 흥정을 붙이고, 구경꾼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와끌대는 모양은, 고르는 대상이 물건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달 뿐, 어렸을 때 재미삼아 구경 다녔던 면소재지 장터와 진배없었다. 영락없이 장터에서 물건을 고르는 느낌이었다.
골라지는 여자들은 고개를 들고 생글거리는데, 선택권이 있는 석철은 오히려 고개를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생전처음 보는 여자들이고, 그것도 네 명씩이나 마주하고 있으니 숫기 없는 석철이 그럴 만도 했다. 넷 중에 자신이 마음대로 고르면 되고,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여자들이 또 대기하고 있으니 가타부타 얘기만 하면 된다. 참으로 얼척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장님, 골라보십시오.”
안내자의 말에 석철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봐도 스무 살 어름밖에 안 됐을 여자 넷이 건너편에 앉아 자기를 골라 달라 생긋거리고 있다. 자신을 선택해 주면 하늘처럼 당신을 섬기겠다는 표정들이다. 아무리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여자를 고르기 위해 그곳에 있기는 하지만, 석철은 한편으로는 황송하고, 한편으로는 황당도 하다. 한 명도 어딘데 네 명씩이나, 그것도 자신이 마음대로 골라도 되는 입장인 것이다. 차마 눈을 마주치기가 열적어 석철은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다른 여자 부를까요?”
안내자가 묻는다.
석철은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여자들을 다시 한번 쓱 훑어본다. 네 아가씨 모두 너무 젊다. 친구 딸래미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다. 석철은 안내자 쪽으로 몸을 굽히며 귀엣말로 속삭였다.
“나이 더 묵은 여자는 없으까라우?”
“예?”
못 알아먹은 듯 안내자가 석철에게 귀를 가까이 댄다.
“좀 더 나이 든 여자는 없냐고라우?”
“나이 더 든 여자요?”
이상하다는 듯 석철을 쳐다본 안내자는,
“다들 한 살이라도 젊은 여자를 원하는데…….” 한다.
“아니라우. 나는 그냥 나이가 좀 더 있었으믄 좋을 것 탁어서라우.”
안내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통역 여자에게 뭐라 말을 한다. 통역이 안쪽으로 들어가 다른 여자 둘을 데리고 나왔다.
조금 전의 여자들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그녀들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많아봐야 스물댓 정도밖에 안 돼 보였다. 석철의 입장에서는 서른이라도 넘겼으면 좋겠는데 사정이 안 그런 모양이었다. 또 바꾸는 것도 객쩍어 그냥 선택하기로 했다. 석철은 좀 덜 발랄해 보이고, 웃음기도 좀 덜 하고, 해사하기는 하지만 촌티가 많이 묻은 오른쪽 여자를 지목했다.
통역이 인적사항을 건네주었다.
‘쩐 티 깜 홍. 스물다섯. 중학교 졸업 후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음. 부모님 잘 모시고, 남편에게 순종할 것임.’
한국에서 같이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뭐라뭐라해도 여자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느니,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으로 고등학교는 나와야 얘기가 통할 거라느니 했지만, 석철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기준을 잡아놓고 있었다. 인물도 아니고 학력도 아니었다. 자신의 인물이 보잘것없으니 눈코입귀가 달려 있어 사람 형상이면 됐고, 자신이 중학교 졸업이니 그 정도나 초등학교 졸업이면 그만이었다. 괜히 많이 배워 잘난 체 해봐야 머릿골만 칠 것이었다. 많이 배운 여자를 섬에 데려다 놓는 것도 부담일 터이고, 데려다 놓는다 해도 그런 여자가 섬 생활에 쉽게 적응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자가 중학교 졸업하고 집안일을 거들었다니 살림도 해봤을 듯하고, 부모도 모셔봤을 듯 싶었다.
맞선으로 신부 선택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결혼식 준비에 들어갔다. 신부 쪽은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여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한 뒤 안내자를 따라 네 쌍의 신랑 신부가 반지를 맞추는 것으로 결혼식 준비는 끝이 났다. 너무 간략히 끝나는 것 같아 잊은 게 없나 돌아봤지만 그것으로 준비는 끝이었다.
다음날 간단히 야외 촬영을 하고 네 쌍이 합동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들이 모여들었고, 신부가 신랑에게 꽃을 바쳤고, 네 쌍이 차례대로 입장했고, 반지를 교환했고, 케이크를 잘랐고, 샴페인을 따라 러브샷을 했고, 입을 맞추고 결혼식은 끝났다. 동작 빠른 사람은 결혼식 하는 동안 번갯불에 너덧 번은 콩을 볶아 먹을 듯했다.
신혼여행은 하노이 시내였다. 네 쌍이 어울려 배도 타고 사진도 찍고 동굴을 구경하고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제 진짜 설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와의 첫날밤이었다. 안내자는 첫날밤에 반드시 성관계를 가지라 했다. 관계를 가져야 신부는 비로소 부부가 됐다고 안심하며, 안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가 싶어 불안해한다는 것이었다. 안내자의 말을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그대로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세게 만지면 마른 꽃처럼 부서질 것 같은 조그만 여자를 어찌 옷을 벗기고 거기에 성까지 맺는단 말인가. 도저히 마음이 용납지 않았다. 석철은 그날 밤을 그냥 잤다.
다음날은 네 쌍이 따로 행동했다. 처가가 가까운 사람은 인사를 드리러 갔고 나머지는 시내 구경을 했다. 석철은 처가가 멀어 색시를 따라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마지막 날 밤이다. 이제 밤이 지나면 석철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신부는 입국수속을 위해 베트남에 남아야 한다. 다시 만나려면 두세 달이 걸린다 했다. 결혼식도 마쳤으니 그냥 한국으로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이녁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었다. 생각 같아서야 신부를 번쩍 안아 몇 발침 걸으면 한국일 듯 싶은데, 현실의 공간은 바다 건너 저만치 있었고, 현실의 규칙은 그보다 훨씬 엄연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동안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고작 이틀을 함께 있었지만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섭섭했다.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볼까. 냉장고에 와인이 준비돼 있다 했으니 그거라도 한잔 마시면서 기분을 내볼까. 그러고는 어제 그냥 보낸 첫날밤을 만들어볼까.
의자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마치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두 손을 모은 채 뚝뚝 눈물을 흘린다. 순간적으로 안내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제는 신부가 아까워 함부로 할 수 없어 그랬고, 오늘은 어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신부는 그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차, 싶어 석철은 손을 저으며 색시를 일으켜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재빨리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친 신부가 은은한 불빛 속에 미소 짓고 서 있다. 예쁘고 화사한 한 송이 꽃이다. 석철은 확실히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저리 젊고 예쁜 여자가 어떻게 자기와 부부로 맺어져 첫날밤을 위해 한방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꿈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석철은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꿈이 아닌 현실이 맞다.
신랑이 두 개의 잔에 와인을 따른다. 잔을 든 신랑이 신부에게 눈짓을 한다. 신부도 잔을 든다. 신랑 신부가 저저금의 잔을 들고 마주본다. 신랑이 신부에게 말한다.
“나를 어차고 생각할지 몰르것지만 나는 누구보다 당신을 아낌시로 살 거요. 우리 행복하게 잘 삽시다.”
무슨 느낌이 왔는지 신부도 신랑을 보며 대답한다.
“깜사합니다. 꼬맙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잔을 부딪는다. 그러고는 서로의 팔을 교차시켜 러브샷을 한다. 신랑 신부가 한 번에 잔을 비운다.
신랑이 다시 잔을 채운다. 이번에는 신부가 먼저 잔을 들면서 신랑에게 눈짓을 한다. 신랑도 잔을 든다. 신부가 신랑의 눈을 찬찬히 쳐다본다. 그러고는 뭐라뭐라 말을 한다. 신랑은 신부의 말이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과 똑같은 내용일 거라 짐작한다.
“내 각시가 돼줘서 참말로 아짐찬하요. 말 못하게 아짐찬하요.”
신랑이 신부의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잔을 부딪는다.
신랑이 신부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 그 옆에 눕는다. 수줍은 듯 신부가 강아지처럼 몸을 옹크린다. 신랑이 살며시 신부를 안는다. 신부의 가슴이 팔뜨락팔뜨락 뛰고 있다. 신랑이 신부의 입술을 핥으며 혀를 밀어 넣는다. 신부가 혀를 내밀어 신랑의 혀를 마중한다. 두 개의 혀가 서로를 맞고 있는 동안 둘의 몸도 점점 뜨거워진다. 신랑이 조심스레 신부의 옷을 벗기고는 자신의 것도 벗는다. 맨몸인 두 사람은 폴뜨락폴뜨락 뛰는 상대의 심장소리를 살갗으로 듣고 있다. 신랑이 살그머니 아랫도리를 신부에게 내민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부가 다리를 벌려 척척해진 곳으로 신랑을 맞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다른 종족으로 태어나, 모든 것이 다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르게 자라났지만,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져 결혼을 하고, 그래서 한 몸이 되고, 그럼으로써 부부가 돼 가고 있다. 첫날밤이다.
첫댓글 연애소설이까? 밤에만 읽어야 쓰것구만.
음~ 그 순간을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