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선(17·가명)이는 시험 전날이면 태풍이 불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던 평범한 중학생이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혜선이가 중학교를 중퇴하고 방황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친구 말에 엄마 지갑을 친구에게 던져주고는 그 길로 집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엄마한테 혼이 날까봐 못 들어가길 하루,시험을 치지 않아도,밤늦게까지 놀아도 혼내는 사람이 없는 게 좋아 안 들어가길 하루,시간은 그렇게 자꾸 흘러갔고 무단결석이 길어지면서 학교에도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혜선이는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는데...후회는 컸지만 돌아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은 우리나라,중퇴생이라는 이름으로 혜선이의 미래가 틀어져 버린 거지요. 하지만 학교를 안 간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방황은 길었지만,미용기술을 배워 뽀글뽀글한 아줌마 파마는 이제 곧잘 합니다. 딸 덕에 엄마는 미용실 안간지 오래라네요. (좀 촌스럽긴 합니다만 ^---^ )
혜선이는 딸의 긴 방황을 묻지도 않고 덮어준 엄마. 남편없이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한 엄마를 위해서 하루의 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답니다. 미용실 보조로 조금만 더 고생하면,이제 엄마 용돈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네요.
그런 혜선이는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다닐 땐 공부만 아니면 뭐든지 재밌다던 혜선이가 말이에요. 시장에 장사 나가는 엄마더러 이제는 쉬라고 하고 싶지만 고등학교 졸업장 딸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해 달라며,검정고시학원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 졸업장 없이도 혜선이가 일어설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사회로 뛰어 들어 친구들이 다하는 공부를 못해본 게 못내 아쉬워,더 늦기 전에 시작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어린 혜선이가 감당하기에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부 결심을 한지 며칠 후,발품을 팔아 혜선이 뒷바라지를 했던 엄마가 협심증으로 쓰러졌습니다. 응급실에 실려간 엄마의 병원비는 검정고시 학원비로 모아두었던 돈으로 해결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늦은 시작인만큼 어려운 시작인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혜선이가 이대로 주저 앉지 않아야할텐데요.
고지연 해운대구 반송2동사무소 사회복지사. 051-749-59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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