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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50강
출애굽기 21:28-36
소의 속죄금
소로 인한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을 말씀하는 규례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27-32절은 자기 소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이고, 33-34절은 부주의로 인해 타인의 짐승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를 말씀하며, 35-36절은 자기 소가 타인의 소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 대한 말씀으로 구분된다. 그러면 우리가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약 오늘날도 율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려면 일단 먼저 소를 키워야 한다. 소가 없으면 이 말씀은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21장 이하의 규례들을 이스라엘의 시민법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같은 신정 통치의 국가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진리의 말씀이 될 수 없다. 율법을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신약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말씀 역시 생명을 대신한 생명에 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언약의 말씀이라는 전제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일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28절). “소”의 ‘쇼르’는 ‘소, 황소’를 뜻한다.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그 소를 돌로 쳐서 죽이고 그 고기는 먹지 말라는 말씀이다. “돌로 쳐서 죽일 것이요”라는 말씀은 언약의 말씀을 배반한 것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성경은 소에 대한 비유로 많은 말씀을 한다.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9-12)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복음의 말씀을 드러내는 자는 육적인 것을 위한 자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소에 비유하여 말씀한다. 교회에는 새 언약의 일꾼들로 구성된다고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전하였다. 율법안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상징하는 ‘에노쉬’와 그 죄인들을 언약의 말씀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이쉬’가 있듯이 교회에도 율법의 일꾼들과 복음의 일꾼들이 있다는 것이다. 복음의 일꾼은 세상에 하늘의 것을 드러내고 전해준다. 그러나 율법의 일꾼들은 문자에 매여 있기에 생존을 전한다. 생존이란 땅에서만 해당되는 것이므로 그것 자체가 멸망이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그러니까 소를 두 분류로 말씀하는데 ‘들이받는 소’와 ‘들이받지 않는 소’가 있는데 들이받는 소는 율법의 문자에 매인 자를 비유하고 들이받지 않는 소는 제물로 사용되는 것이기에 진리를 드러내는 자를 비유한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아는 자는 사람을 들이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자의 율법에 매여 있으면 자기 열심으로 사람을 들이받아 죽이게 된다. 따라서 들이받는 소는 돌로 쳐 죽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나타낸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문자의 율법에 매인 들이받는 소를 심판하고 다시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히시기에 소의 주인은 형벌을 면한다고 말씀한다. 곧 생명을 허락하신다는 의미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마 21:42-44)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29절). 소가 받는 버릇이 있다는 것은 본성이다. 마찬가지로 율법의 말씀을 행위로 인식하여 사람의 계명과 교훈으로 가르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알면 그 복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들이받는 것이 죄인의 속성이다. 그런데 받는 소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속하지 않았다면 주인도 소도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주인이 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여기서 제시한다. 그것은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부과하면 무릇 그 명령한 것을 생명의 대가로 낼 것이요”(30절)라는 말씀이다. “속죄금”(30절)의 ‘코페르’는 ‘몸값, 속전, 역청’이라는 뜻으로 ‘카파르’(덮다, 진정시키다, 화해하다, 속죄하다)에서 유래하였다. 생명을 대신한 속죄금으로 처리한다. 이 규례의 목적은 소의 주인이 어떤 책임을 지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소의 속죄금에 대한 말씀을 통해 속량의 은혜를 말씀하는 것이다(갈 3:13, 골 1:14, 히 2:17).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4-6)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7-10)
그래서 본문에서 “은 삼십 세겔”(32절)로 값을 치르는 것, “돈을 줄 것”(34절, “소를 팔아 그 값을”(35절), “소로 소를 갚을 것”(36절)이라고 값으로 속죄금을 치르는 것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속죄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에 대한 말씀이다.
“31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법규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31-32절). 소가 종(일꾼)을 받아 죽였을 때는 소를 죽이고 그 종의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주어야 한다. 이 값이 예수님의 값으로 지불되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종의 값으로 죽임당하셨다. 그러나 소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들이 열심히 전하던 그 문자들을 폐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문자와 행위를 가지고 사람을 받아 죽이는 일을 하였다면 우리 역시 죄 아래 심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행위로 값을 지불하려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3-28)
여기서 “삯”의 ‘옵소니온’은 ‘삯, 보수, 값’이라는 뜻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죄의 다른 값을 치르고 그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로 그 값을 치르고 의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문자에 매여 사람을 들이받는 짐승으로 사는 것이다. 결국 받는 소는 율법의 문자에 매인 우리의 모습을 폭로한 것이다.
“33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하므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34 그 구덩이 주인이 잘 보상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 것이니라”(33-34절). 구덩이를 팠다는 것은 물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물을 팠다는 것은 가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물을 팠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얻지 못했다면 그 우물은 그냥 물 없는 구덩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물 없는 구덩이는 덮거나 메워야 하는데 그냥 방치하였다면 이는 함정이 된다. 곧 말씀이 없는 무저갱의 상태이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눅 6:39)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계 9:1-3)
진리의 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물이 있는 것처럼 둠으로 사람들이 거기에 진리가 있는 줄 알고 빠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덩이의 주인은 거짓 선지자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온전한 배상으로 갚으셔야 할 것을 계시한다. 율법의 문자를 가지고 온갖 종교적 행위를 열심으로 다 동원하였지만 그 결국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죽음을 통해 구덩이에서 건져 참된 안식을 주시는 선을 행하시는 분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마 12:11-12)
“35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려니와 36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지니라”(35-36절). 상대의 소를 들이받아 죽였다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어야 한다. 받은 소를 반분한다는 것은 겉사람은 죽이고 속사람은 살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은혜임을 드러낸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0-22)
(2026030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