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신공항 예정지 추가 고려청자 발견 >
- 새만금 해저유물 관련 문화층 존재에 대한 추가 실물 확인, 전략환경영향평가 문화재 조사 안해
- 과거부터 서해 조운선들의 해상루트로 난파선 물건일 가능성 제기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에서 추가로 고려청자인 고려상감청자국화문 주발이 발견되었다.
이는 지난달 6월 25일 고려말~조선초에 만들어진 녹청자 다수가 발견된 이후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발견된 것이다. 새만금 지역의 당시 해저 문화층(당시 문화를 알 수 있는 물건들 및 흔적을 가지고 있는 층)이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발견된 장소는 새만금 신공항 예정부지 북쪽으로 임시 수로를 내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갯벌을 2m 가량의 깊이로 수로를 판 후 주변에 모래를 펼쳐놓은 모래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완전한 형태로 있던 유물이 포크레인 작업으로 일부분이 깨진 것이다. 700여년전 수장되어 갯벌에 묻혀 있던 모습과 달리 깨진 단면은 선명한 청자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발견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7월2일부터~5일까지 여러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과 함께 생태/문화 조사를 진행하며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이 조사에서 녹청자 1편도 추가로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 당시는 일부만 노출되어 있었지만 모래를 파보니 거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청자였다.
이번에 발견된 것 또한 처음 녹청자 그릇이 발견된 지점과 반경 20여m 안에서 추가 녹청자와 함께 발견된 점을 미루어 볼 때 과거 침몰선의 물건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당시의 해저 문화층이 뚜렷이 형성되어 있고 문화재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그 이유는 새만금 유역은 과거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해안선과 다르며,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이 하나의 커다란 강하구를 공유하고 있었다. 강하구는 다양한 해양생물을 키웠고, 어민들은 이를 잡아 어패류의 생산지로, 또한 육지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된 곡물등 여러 물품이 육지에서 들고 나는 중요한 출입로로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곳이었다.
두번째는 부안지방과 신안, 강진등에서 생산된 도자기등 많은 물품을 싣고 조운선들이 오르내리던 해상루트라는 점이다. 그로 인해 새만금 방조제 건설 당시 주변 해역에서 대량의 도자기등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추가로 유물이 발견된 지역은 장소에 따라 퇴적 상황은 다르겠지만, 수라갯벌 주변의 간척과 매립(1920년대 옥구지역 간척사업,1990년대 군산 외항공단 건립, 2005년 새만금 방조제)등으로 인위적 해류의 변화가 생기고, 그동안 약 2m 이상의 뻘이 쌓인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100여 년간 경기도에서 전남 해남에 이르는 해안선의 길이가 1910년대에 3,596㎞에서 2,000년대에는 2,148㎞로 약 39%가 감소하듯, 100여 년간에 이루어진 900㎢에 달하는 갯벌 매립(국립환경과학원 2009)을 보면 해류의 변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동안 새만금 유역에서 어선의 그물에 간혹 청자등이 걸려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해안가 갯벌엔 당시 조운선의 문화적 활동을 알 수 있는 문화층이 어느 곳보다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다. 단지 그 면적이 크다는 이유로 해저 문화재는 조사도 거치지 않고 매립되어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주변 해역에서 조사된 것만 보더라도 여러척의 난파선이 있을 것이라고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곳이다.
또한 세번째는 서기 660년 백제가 나라를 잃고, 백제 부흥운동이 전개되고 있을 663년 백제 부흥군은 부안에 주류성을 쌓고 마지막 대대적인 부흥운동을 펼칠 당시 왜(일본)에 도움을 요청하여 백제와 왜, 그리고 당나라와 신라의 나당연합군이 싸우게 되는 해전이 일어나는데, 백제 부흥군이 주둔한 주류성 주변이 동진강 하구이고, 동진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는 하나의 강하구를 형성한다. 바로 지금의 새만금 호와 일치 한다. 역사에 의하면 왜선 800여 척과 당나라 해군 170여 척의 해전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그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전인 백강전투(백촌강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왜선 400여 척이 불타 침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 곳으로 이곳을 바로 동진강 하구라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는 새만금 일대가 고려청자와 같은 조운선들의 난파된 물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배경이 서린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변 선유도는 고려시대 왕의 행궁이 있던 곳으로 육지에서 오갈 때 만경강과 동진강등 주변 포구를 이용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사실이다.
이처럼 만경강 하구와 동진강 하구인 지금의 새만금호 유역은 해양생물의 집산지, 해운업의 이동로, 그리고 다양한 시대를 품어왔던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정부는 새만금 개발만을 위해서 생태적, 문화적, 역사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고 있다. 이번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도 매장 문화재 조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었다.
새만금 신공항 개발과 관련하여 이처럼 추가로 발견된 문화재들이 발견될 문화적, 역사적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해저 매장 문화재에 대해 등안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공동행동은 지난 6월 25일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에서 문화재가 다량 발견되어 보도자료와 공문을 각 기관에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6월 30일 새만금 신공항 고시를 강행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토부가 이런 개발 만능주의적 사고로 해저 문화재에 대해 침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새만금 일대의 해저 문화재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2년 4월 6일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해상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민의 그물에 고려청자 243점이 무더기로 올라왔는데, 12세기 고려청자였다. 이에 문화재청은 2년 동안 5차례나 발굴조사를 벌여 2935점의 청자를 건져올린 사례가 있다. 또한 2006년 4월 야미도 인근에서 고려청자 780점이 인양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새만금 일대는 해상루트의 꽃이였고, 그 실체가 이번 조사에서도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재는 그 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다. 수라갯벌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거대한 강하구의 일부로 해상 무역선이 지나던 곳의 일부이다. 하루빨리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를 진행하여 사질질지 모를 문화재와 역사적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작은 흔적에서부터 발굴된다. 새만금을 이루는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주변에 있는 1000년의 새만금 강하구 문화의 흔적의 증거들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들을 묵살하는 지금의 개발 만능 시대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이번 고려청자의 추가 발견에 대해 공동행동은 미군 제2활주로 공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는 신공항 개발계획을 철회하고, 속도에만 맞춘 개발 계획으로 인해 해양 문화를 알 수 있는 난파된 조운선이 얼마나 묻혀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고시 취소와 매장된 해저 문화재 전수 조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2022년 07월 12일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공동상임대표: 김연태, 문규현, 하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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