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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학관.한국시낭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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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게시판 스크랩 김천 유성리 소나무와 쌍계사지
지리산문학관.계간시낭송 추천 0 조회 58 16.04.28 08: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천 유성리 소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67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78-6)

본래 쌍계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증산면사무소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식생하는 소나무는 수령이 250년 2그루와 200년 1그루가 있다. 당초 처진소나무로 신청이 되었으나 3그루중 1그루는 처진소나무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2그루는 보통의 소나무이다. 이들 소나무는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수려하고 거북등과 같은 껍질 등 형태상 특징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아 도기념물로 지정예고 하기로 하며, 지정명칭은 “김천 유성리 소나무로” 한다. (문화재청 자료)

 

 옥동·옥류동(玉流洞)·백천강·백천구(白川구) : 이곳은 증산면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서 매월 2일·7일로 5일장이 서는 곳이다. 옛날에는 쌍계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는데 이 사찰이 쇠퇴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6·25 때 공비로 말미암아 이 사찰이 완전 소실되자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고 이곳을 흐르는 맑은 물과 돌이 아름답다고 하여 백천구라 했다. 광해군 때 판서 정술선생이 놀러 왔다가 냇물이 바위에 부딪쳐서 흘러가는 것이 마치 옥이 굴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옥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김천시청 지명 유래) 

 

 

 

쌍계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 조선 1647년 충신조사와 반운당지선대선사가 대웅전과 전각들을 35년 동안 중창하였다. 쌍계사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25포집으로 조선 최대 규모 최대 수준의 건축물로서 천정의 그림과 석가여래입상인 괘불(길이 32m. 폭 8m)은 수작으로 꼽혔으며, 괘불은 가뭄이 심할 때에 대웅전 마당에 걸고 기우재를 올리면 바로 비가 내렸다고 전한다. 쌍계사 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한 17, 18세기 한국불교 경학사와 화엄학 대가의 가풍과 선과 교의 맥을 이은 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사찰이었다. 남아 있는 비문을 통해 조선 시대 불교 탄압의 상물인 사찰의 부역 -쌍계사 한지 제작- 등의 시대사도 알 수 있다. 쌍게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대웅전 일부가 임시 증산면사무소로 사용되었는데, 수도산에 남아 있는 북한군 패잔병들의 방화로 인하여 1951년 7월 14일 전소되었다.

증산면에 전하여 오는 이야기 : 1951년 7월 14일. 어둠이 가시고 동이 터 올 무렵 적막에 싸인 증산 쌍계사 대웅전에 북한군 복장의 젊은 여자가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녀는 손에 기름통을 들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인기척이 없자 이내 텅 빈 법당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법당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내 화마가 모든 전각들을 삼켜버렸다. 불이 사찰을 모두 태우는 동안 불을 끄려는 사람들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잔불은 이틀 동안 지속됐다. 쌍계사의 모든 것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됐다. 천년고찰 쌍계사는 이렇게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날 쌍계사에 불을 지른 북한 여군은 이곳에서 1㎞쯤 떨어진 장뜰마을(혹은 천왕문) 앞까지 달아나서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한다.

 

가로 2.5m 주춧돌 10개 웅장한 법당규모 짐작케 6·25때 北 방화로 전소

 

쌍계사지 배례석(현재는 청암사 보광전 앞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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