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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5 번째 설교: 초막절에 율법의 참 뜻을 가르치심, 사람을 영적 육적으로 온전케 하심,
믿는 자에게 성령 주셔서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 주심 (찬송 6장, 새찬송가 2장)
2017-12-11, 월
맥락과 의미
6장에서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을 행한 것은 유월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7장은 초막절 때의 일입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1월(오늘날 3,4월), 초막절은 7월(오늘날 9,10월)입니다. 그 사이에는 오순절이 있는데 유대인 달력으로 3월 초(오늘날 5,6월)입니다. 앞으로 오순절은 7:37-40에서 성령님께서 오실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교회에 주신 구원의 축제를 완성합니다.
7장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알아가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1. 명절 준비: 예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1-9절)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천막에 살던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레위기 23:40). 나뭇가지를 꺾어서 움막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광야 생활의 힘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추수의 풍요를 주신 것을 기념합니다. 예배자들은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노래하며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 나무 가지로 제단을 천막처럼 덮습니다. 7일 동안 명절을 지킨 다음에 8일째 되는 마지막 날에는 큰 집회를 합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께 “자기를 세상에 나타내라”(3,4절)고 합니다. 5절에 그때 예수님의 가족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예루살렘에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나타내라고 권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6,8절)고 말씀하시고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때는 29,30절에서, 예루살렘에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나타내고 영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자신을 어린 양 희생제물로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압니다. 예수님 가까이 가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길은 환난 가운데서 순종하는 길입니다.
2. 명절 중간에 가르치심: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율법의 정신을 이루신 분 (10-36절)
1) 명절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음 (10-13절)
10절에 예수님은 초막절 명절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 민중들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무리들의 반응이 11-1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무리를 미혹하는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여러 가지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13절에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싫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 주신 것을 가르침 (14-24절)
14-18절: 14절에 명절의 중간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기를 시작했습니다. 15절에 예수님께서 워낙 말씀을 잘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은 배운 바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가르치는가” 하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7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예수님이 시골 초라한 출신의 청년이라는 것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치는가 하는 외면적인 것만 보면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산다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과 친교를 나눈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으면 누가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외적인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책이다, 유명한 목사다 하는 것을 보기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를 간절히 사모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이 말씀은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18절에 스스로 말하는 자들은 자기 영광만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만 가르치는 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다음에도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갖 좋은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가를 나타내지 맙시다.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도록 합시다. 특별히 가장된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말씀을 인도할 때 내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가를 나타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여서 말씀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에도 내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기를 바랍니다.
19-24절: 안식일에 병 고치는 문제, 율법을 지키는 문제로 그리스도와 유대인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죽이려 하면서 6계명을 어기고 있습니다(19절).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21절에 괴이히 여긴다, 15절에 기이히 여긴다와 같은 단어, 따우마조). 예수 그리스도를 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5장에 나왔듯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안식일에 환자를 고치느냐 안식일은 일하는 날이 아닌데 왜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답변하십니다(23절). “할례를 생각해 봐라. 할례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상징인데, 그 할례는 태어난 지 8일째 행하게 되어 있다. 8일이 안식일이라면 안식일에 할례를 하지 않느냐. 내가 안식일에 병을 고친 것은 할례가 나타내는 그 실제의 의미를 이룬 것이다.” 이런 뜻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치료하시면서 그 사람의 영혼도 함께 치료하셨습니다. 할례가 나타내는 바를 실제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몸과 영혼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4절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율법의 외면적 형식이 아니라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세상적 초라함 때문에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도 형식적인 율법조문을 지키는 일, 규칙을 지키는 일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예컨대 성경을 매일 읽는 것은 아주 중요한 규칙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읽는 것이 가족에게 은혜를 주야 합니다. 오히려 가족을 괴롭히고 힘들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족들이 말씀을 읽을 때에 싫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쨌든 계속 읽게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말씀의 은혜를 공급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가시는 분 (25-36절)
a) 민중들의 의문(24-27절): 민중들은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 지도자들이 죽이려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에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은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인가?” 서로 논란했습니다. 유대인 중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오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27절).
b)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28-29절):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증거하십니다.
c)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 (30-32절): 민중들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많이 행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가 맞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31절).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속(아랫사람)을 보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라고 하는데도 겁없이 잡으려고 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합니다. 믿음 때문에 우리도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d) 하나님께로 가시는 분 (33-36절): “나는 나를 보내신 분으로부터 와서 그분께 돌아간다.”(34,35절) 사람들은 ‘어디 외국에 가는가?’ 하고 의문을 품습니다. 그리스도는 보통 사람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셨습니다. 부활하여 하늘로 가셔서 우리도 하늘로 높여 주십니다.
3. 명절 끝날(제8일째)의 가르침: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성령님의 생명 주심, 사람들의 반응 (37-53절)
1) 믿는 자에게 성령 주심과 생명 (37-39절)
37절에 초막절 마지막 날, 제 8일 큰 집회를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38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서 계속계속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이 물은 우리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흘러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영광을 얻으신 후에, 하늘에서 교회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 성령이 있으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합니다. 성령님 의지하여서 마음속에 생수가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복음 말씀을 듣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고서 간절히 갈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가 가시는 것을 말할 때도 외치십니다(28절).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시는 것을 말하시면도 외치십니다(38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아버지와 아드님으로부터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배에서 성령님의 생수가 흘러 나오리라’고 하십니다. 구약 교회에서는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장, 왕, 선지자에게 성령님이 충만했습니다. 보통 백성들에게도 성령님은 계셨지만 그렇게 풍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셔서 제사장, 왕,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이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생명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오신 성령님께서 성도의 영혼으로부터 온 육체로 생명이 흐르게 하십니다. 교회 안에 생명이 흐르게 하십니다. 세상을 향해 흘러가게 하십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성령님을 갈망합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하늘의 의와 평강과 기쁨을 충분히 주시는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에 대한 반응: 긍정적 반응, 갈릴리에서 선한 것들이? (40-53절)
a) 무리들의 반응(40-44절):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해 더 긍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스도, 선지자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갈릴리가 아니라 베들레헴에 태어나신다’고 반응합니다.
b) 성전 직원(하속들)과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반응 (45-49절): 대제사장들이 보낸 성전 직원은 예수님을 잡지 않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너희도 유혹에 빠졌느냐? 지도자와 바리새인들 중에 믿는 자가 있느냐?” 사람들의 평가를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결정하려 합니다.
c) 니고데모와, 대제사장, 바리새인의 반응 (50-51절): ‘전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는 말합니다. “우리 율법에는 피고인의 말을 들은 다음에 판결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답합니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
이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믿고 복종할 일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명절에 성전으로 올라가셨지만 자신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그 사명의 시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미워하여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높아지는 일을 우리의 경쟁자로 생각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풍요롭게 잘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의 형식이 아니라 말씀의 내용, 은혜의 내용을 우리가 잘 가르치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전하는 사람의 외모로 보지 않고 말씀을 잘 배웁시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합시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고난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교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성경의 말씀에 더욱 순종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더 충만히 주시도록 사모합시다. 우리 모두와 우리 모든 가정에 생명이 흘러 넘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이 가득 하기를 기도합시다.
<참고> 초막절과 그리스도, 성령님 (37-39절)
2절에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나옵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7월에 있는 명절입니다. 우리 달력으로 치면 한 9월쯤입니다. 7일 동안 명절을 지킨 다음에 8일째 되는 마지막 날에는 큰 집회를 합니다. 그 집회의 날에 유대인들은 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때는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 이렇게 세 번입니다. 오순절은 칠칠절이라 하기도 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천막에 살던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레위기 23:40). 나뭇가지를 꺾어서 움막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광야 생활의 힘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에는 예배자들이 한 손에 나무 가지, 한 손에는 키트론 열매(레몬처럼 생긴 과일)을 들고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플루트를 불고 춤을 추며 들어 갑니다. 열매와 나무 가지로 성전 위를 천막처럼 덮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비와 풍요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7일 동안 매일 실로암 물을 금 그릇에 담아서, 성전으로 가지고 옵니다. 트럼펫을 즐겁게 연주합니다. 이 물은 제단 옆에 있는 그릇에 담아 둡니다. 그 그릇에 튜브를 연결하여 제단 밑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이 물은 광야 생활, 바위에서 샘이 솟아 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또한 지난 해 비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동시에 다음 해의 비를 간구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예루살렘 탈무드는 이 풍습을 이사야의 예언과 관련시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이사야 12:3) 물이 떨어지는 것은 성령님을 부어주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또 상징적으로 에스겔 선지자가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와 동쪽 문으로 흐르던 물과 비슷합니다(겔 47:1,12). 이 물이 흘러가며 강과 바다의 생명체를 살리고, 강가에 각종 나무를 살립니다. 잎은 모든 민족들을 살리는 약 재료가 되었습니다(겔 47:6-12). 에덴 동산의 동쪽으로 물이 흘러 나와 모든 동신을 적시고 땅으로 흘러나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집회의 제 8일에 가르치셨습니다. 제 8일의 집회에서는 물을 흘려 보내는 의식이 없습니다. 물은 그쳤지만 그 물이 의미하는 실제적인 의미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1차로 염두에 둔 것은 성전에서의 물 붓는 의식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제단의 물은 성도들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흘러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광야에 물을 마시던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 명절 준수에서 물을 간구하는 행위로 하는 기도에 대해, 예수님은 예배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배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 안에서 흘러 나옵니다. 성도들이 성전이 됩니다. 교회가 성전이 됩니다. 성령께서 교회와 성도와 함께 계시면서 움직이는 생명을 풍성히 공급하십니다. 교회와 성도의 삶에 생명이 가득하게 됩니다.
나아가 교회와 성도는 이 세상에 생명을 풍성히 흘러 보내는 생명 저수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세상에 전달하는 직분을 합니다(엡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