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바르는 약(藥)(요14:15,요13:34-35)
2015.10.11(김상수목사, 안흥교회)
영국의 유력한 일간지 중의 하나인 '더 선(The Sun)'이라는 신문에서 사람이 평생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조사한 내용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의 평균수명을 80년으로 가정하고 일생동안 어떤 일에 얼마의 시간을 소비하며 지내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영국인의 경우 평생 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80평생 동안 일하는 시간은 26년, 그 다음으로 잠자는 시간이 평균 25년이었다. 이 둘을 합하면 평생시간의 64% 가까이 된다. 그리고 이어서 TV보는 시간이 10년, 식사시간이 6년, 전화통화 시간이 4년, 화장실 가는 시간이 3년,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남자는 1년3개월 여자는 2년 5개월, 기다리는 시간과 화내는 시간이 각각 2년, 이성을 바라보는 시간이 남자는 1년 여자는 0.5년, 몸단장하는 시간이 남자는 46일 여자는 136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웃는 시간이 88일이었다. 눈에 띠는 것은 화내는 시간이 평생 2년이나 되는데 비해 웃는시간은 88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만큼 행복하지 못한 시간을 사람들이 보낸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이 조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사랑하면 살아도 부족한 시간 동안에 왜 우리는 좀 더 사랑하지 못하고, 왜 서로에게 좀 더 많은 웃음지을 시간을 주지 못하고, 왜 서로를 좀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더나아가 주님을 웃음짓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남은 평생동안 의미없는 시간들은 줄이고, 그대선 더욱더 힘을 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사람들이 되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하면 좀 더 많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놀라운 생명의 약(藥)이다. 사랑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물이다. 그리고 사랑의 약을 서로의 마음에 발라주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더나아가 하나님께도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서로의 마음에 행복의 약을 발라주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이 시간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나누고 싶은 것은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사랑표현의 방법이다. 이 말씀 속에서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사랑표현의 방법이 뭘까? 먼저 요한복음 14장 15절을 함께 읽어보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계명(=예수님의 말씀, 약속, 부탁하신 것들)을 지키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것을 지킴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주신 계명은 무엇인가? 그것이 뭔지 요한복음 13장 34-35절을 믿음으로 함께 읽자.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 즉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이다. 십자가가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할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근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 속에는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전도의 문도 열린다는 뜻이 숨어있다.
오늘 말씀을 잘 보면, 분명히 주님은 ‘서로 사랑에 빠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에 빠지거나 원수를 미워하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감정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것은 의지와 인격적인 영역이다. 심지어 마태복음 5장 43-44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라도 특별히 우리들이 가정과 교회 안에서 더욱 힘써서 서로 사랑하자. 가끔 “아무리 나이 들어도 여자는 여자다!”, “나도 여자다!”라는 하소연 섞인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이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몸무게가 늘고 S라인 몸매는 사라졌어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다는 숨은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우리들이 가정이나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기는 커녕 그와 반대되는 언행을 얼마나 많이하는가? 가끔 보면 다른 사람이 듣고 싶은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자는 약하지만 아줌마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아내를 동네 아줌마로 취급하거나, 남편을 동네 아저씨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배우자나 가족들이나 옆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 내 맘대로 함부로 취급해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돕는 자(Helper)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사랑의 약을 발라줘야 한다.
사실 지금 우리시대의 기성세대들은 중간에 낀 세대와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시어머니 앞에서도 머리 꼿꼿이 들고 할 말 다하지만, 최소한 40대 중반 이상의 분들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웃어른이 어떤 힘든 일을 요구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은 순종했다. 옛날 시부모들은 큰소리치며 살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어머니가 오히려 며느리 눈치 보는 세상이고, 고모는 없고 이모만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옛날에는 나이가 들고 자식들 결혼 시키면 부모로서의 인생숙제를 다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식 며느리에게 봉양 받기는 커녕 틈만 나면 애 봐달라, 도와달라는 말하면서, 내 어깨 빠지고 무릎 허리 아픈 것은 생각 안하고 자기들만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요청하는 자식과 며느리가 사돈댁에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사돈의 사정을 알아주면서, 내 사정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슴에서 불이 올라와도 내색을 못한다. 왜냐하면 싫은 내색을 하면 자식이 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까봐 겁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그나마도 잘 살아주면 좋은데, 둘 사이에 눈치가 이상하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 것이 아프다. 만약 결혼도 안하고 혼자 살겠다고 우기는 자식이 있으면, 그 괴로움은 더 심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 보다 가장 힘든 것은 남편이 알아주지 않을 때다. 알아주기는 커녕 한 술 더 떠서 어린아이처럼 요구만 한다. 나도 몸이 아파서 천근만근인데 밥솥에 있는 밥도 안 퍼먹는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잘하고, 친절하고, 돈도 잘 쓰고 호인(好人)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기 부인에게는 딴판이다. 심지어 폭력과 폭언을 심심찮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모르고 남들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불신 남편일 경우에는 더하다. 자기 잘못은 생각안하고, 할 말 없으면 교회를 걸고 넘어지면서 오히려 큰소리친다. 그래서 속으로 ‘나중에 좀 더 나이들면 보자’고 훗날을 기약해 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러한 모습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좀 더 많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부분만 해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주님은 우리들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 서로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대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증표요, 서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며, 서로의 마음에 행복의 약(藥)을 발라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깊어가는 추수의 계절에 십자가의 사랑으로 더 깊이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자. 용서없는 치유란 없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성도가 되자. 때로는 격려의 말로, 행동으로, 선물로 그리고 섬김으로... 그래서 주님이 주신 새계명을 실천하는 건강한 성도, 가정, 교회를 함께 이루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