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주사파 대부들(5)-김영환과 주체사상
문재인 전 정권의 핵심 철학이 되고, 한국사회를 좌경화로 몰고가는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귀신적 초등학문'(골로새서 2:8) 이 있다.
바로 김일성 주체사상이다. 이 사상을 따르고 신봉하는 자들을 주체사상파, 즉 '주사파'라고 한다.
한국에 주체사상을 퍼뜨린 장본인은 서울 법대 82학번인 김영환(1963)이다.
한국을 빨갱이로 물들인 대표적 지식인은 백낙청, 리영희 및 신영복이다.
그러나 김영환은 주체사상과 이를 실천하는 행동강령으로 인해 남한 좌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당시,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영환과 같은 학생운동권은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리영희의『전환시대의 논리』, 「한겨례신문」 설립자인 송건호의『해방전후사 인식』 등을 통해 스스로를 빨갛게 물들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국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레닌의 계급투쟁론이나 혁명론은 현실성이 부족하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행동 강령도 없었다.
이러한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김영환은 당시 금기였던 북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북한 단파방송을 통해 주체사상에 접하면서, 그 내용을 「강철서신」(1986)이란 이름의 조그만 팜플렛을 발간했는데, 이 내용이 운동권 학생들을 뿅 가게 만들었고, 김영환은 단숨에 학생운동의 대부로 우뚝 서게 되었다.
김영환은「강철서신」에서 북한을 이렇게 황당하게 '이상향'으로 묘사했다.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불과 수십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는,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적 전통을 가진 사람들,
같은 민족 같은 동포들이 사는 곳에서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귀가 따갑도록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고 들어온 바로 그곳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특히 노동자들이 얼마나 풍족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고,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한 자발적 의지를 갖고 노동하고 있으며,
단순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협의와 협조를 통해 생산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생산력과 문화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
농민들이 기계를 사용하여 얼마나 편안하게 농사 짓고 있고,
병원과 도서관이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복지시설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
민중이 폭넓은 민주주의적 권리를 보장 받으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회주의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생생한 실제 자료로 설명하고. . . .'
이에 더하여 김영환은 주체사상은 '품성'을 강조한다면서 솔직, 소박, 겸손, 성실, 용감한 품성을 강조하여 많은 학생들의 찬사와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 NL과 PD의 통합
김영한은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공산 종주국 중소간의 상호 비방, 캄보디아의 ‘칼링필드’를 알았지만 교조와 권력 보다는 인민대중을 파고 드는 '인간중심의 김일성 주체사상'에 빠져들고 말았다.
김영환은 주체사상을 담은 초기의 ‘반제민중민주화운동'의 횃불을 들고 민족해방의 기수로 부활하자’는 제목의 팜플렛(1985.10)에서는 특히 반미를 강조했다.
이 글의 서두는 이렇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충고한다. . . .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으로 혈관이 꿈틀거리지 않는 사람은 이 글을 읽기 전에 미리 반성부터 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는 미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가 파쇼적으로 지배하는 신식민지 사회다.'
한국사회의 기본 모순이 한국민중과 미제국주의자 사이의 모순이므로 당장 해야 할 일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공산혁명운동이 아닌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투쟁운동이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현재 학생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하자는 것인지 민주주의 혁명을 하자는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주징하면서 후자를 강조한다.
남한 민중은 미국 때문에 민주주의 훈련을 받아 보지 못했으므로 당장 사회주의 혁명은 안되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는 물론 다른 계급의 지지도 얻는 민주주의 혁명을 해야 한다.
남한이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면 소련, 중국, 북한의 도움으로 미 제국주의의 간섭을 막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이룰 수 있다.
이전까지 마르크스-마오쩌둥의 이론을 달달 외우던 것은 급진주의의 과오였다.
PD처럼 골치 아프게 마르크스와 레닌을 공부할 필요도 없고 한국사회의 구성체 이론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NL이 미국만 몰아내면 소련, 중국, 북한의 도움으로 사회주의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학 운동권을 강타했다.
그때까지 운동권은 노선과 행동 문제로 이분화 되어 서로 질시하거나 반목했고 한 자리에 모여서도 서로를 외면하던 상태였다.
이후에는 김영환이 내세운 NL이 PD를 접수했다.
서울대 운동권에서 별 볼 일 없던 김영환파는 ‘반전반핵 양키 고홈’이란 주사파 반미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했고 구심점을 잃은 운동권을 급속하게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NL 이론을 띄운 것이다.
김영환은 주체사상을 통해 NL과 PD로 대립되었던 학생운동을 NL계열로 통합한다.
NL은 National Liberation(민족 해방전선-김일성 주사파)이고 PD는 Proletaria Democracy(마르크스∙레닌의 계급투쟁파)이다
이후 NL은 각 대학에 급속하게 전파된다.
NL 혹은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은 전략전술이고 주체사상은 그 이면의 사상이었다. 이후 주체사상은 NL을 통해 각급 대학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서울대에서는 김영환의 NL 중심으로 구학련(구국학생연맹), 고려대에서는 노무현의 왼팔 역할을 한 안희정을 중심으로 한 반미청년회, 연세대에서는 노무현의 오른팔 역할을 한 이광재 구국학생동맹 등이 결성되었다.
김영환은「강철서신」의 저자로 확인되자 당국에 체포되어 2년 1개월을 복역하고 1988년 12월 강릉에서 출옥했다.
출옥 중에 그는 주사파 확산을 위한 다짐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감옥은 교정시키는 곳이 아니라 이념을 공고히, 적개심을 더욱 강하게 한다.
레닌, 박원순, 문재인, 김영환 및 기타 주사파들도 이런 박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반체제 혁명가로 성장했다.
김영환에 의해 전파된 주체사상은 한국좌파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적절한 진단과 구체적 처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반(半)제∙반(半)봉건적(반은 제국주의적 부르주와지, 반은 봉건적) 남한사회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 다음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후 이미 사회주의화된 북한과 통일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사파들은 미군 철수와 미국과의 한미협정 파기를 제일의 행동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에게 미국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1950년 6·25 남침 저지, 이후 한미협정을 통해 70년간 남한의
평화와 번영의 토대를 제공한 은인이 아니라 남한을 식민지화하여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통일을 가로막는 제국주의 침략 세력이다.
-김영환의 전향-월북과 김일성과의 만남
「강철서신」으로 북한에서도 유명해진 김영환은 북한 간첩을 통해 1991년 5월 서해안에서 잠수정을 타고 월북했다.
김일성은 김영환의 「강철서신」을 칭찬하면서 ‘다 읽어봤다. 잘 썼다’고 평했다.
김일성: 남조선 혁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김영환: 광범위한 대중화의 의식이 필요하다.
김일성: 프롤레타리아(무산자, 노덩자, 농민) 독재는 공산당 독재이고 이는 다시 수령의 가르침과 결합해야 한다.
남조선 인민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는 것은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김영환은 북한에 17일간 머물면서 김일성도 만나고 북한 사정도 나름대로 관찰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북한에 대해 실망했다.
김영환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강철서신」에서 북한을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을 실제로 방문한 후에는 북한과 김일성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다.
탈북시인 조수진의 시집 제목은『천국을 찾지 마시라 국민이여 대한민국이 천국이다』이다.
부제는 '천국에 살면서 천국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지옥에 살면서 지옥인 줄 몰랐던 북한 여성의 시'다.
경험과 무경험의 차이가 이렇게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김영환의 비판
북한을 경험한 김영환은 북한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첫째 관료주의가 심하다.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고압적 자세가 심하다.
둘째 주체사상이 중시하는 사람의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예술 악단은 우상화 작업에 앞장서고 학자들도 주체사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셋째 사회 전체가 죽었다. 경제는 좀 뒤떨어져도 환경, 인간미는 북한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넷째 부정부패가 극심하고 무능과 비능률로 가득차 있다. 실제로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사회에서는 뇌물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고 뇌물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김영환은 짧은 북한 방문을 통해 사회주의의 비능률과 주체 사상의 허구를 발견한 것이다.
이후 김영환은 자신의 바뀐 사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문제다. 북한은 관료주의가 심하다.
북한에서는 오히려 주체사상이 실현되기 어렵다. 김일성이 초기에는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뒤에 가서는 왜 부패했는가?
북한 경제가 196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하다가 나중에 안된 것은 절대권력이라서 부패한 권력의 문제인지 아니며 사상이나 체제의 문제인지 즉 이념자체가 창의성을 계발하는데 장애가 되는 문제인지 최대한 연구해 봐야 한다.'
-1995년 『말』 지와의 최초 공개 인터뷰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상호 협조하는 것은 현대적인 국가 발전의 양식이다.
주체사상으로부터 마르크스 레닌의 계급 이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당 이론, 국유화론 등을 제거해야 한다. 남는 것은 철학이다.
-주체사상 동조자인 하영옥, 박금섭, 조유식에게 보낸 편지 내용
'북한 정권은 인민의 편에 있는 게 아니라 인민의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혁명가이므로 인민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북한 혁명이다.
인민을 굶주리게 하고 억압하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려 한다. 동참하라.’
-1998년 4월 『말』지와의 인터뷰
김영환은 ‘수령론은 거대한 사기극이다’면서 운동권 내에 자리잡은 북한 추종주의라는 우상을 강렬하게 비판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영환은 전향한 후 수년에 걸쳐 이전의 포섭자들을 설득시켰지만 이석기와 경기동부연합팀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북한의 주체사상과 수령론은 김일성 3대 종신독재를 옹호하고 유지하는 체제 결속용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북한 학자들조차 주체사상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주체사상은 김일성 가문 옹위용이었다.
김영환은 전향하여 현재 북한 실상을 고발하는 Daily NK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뿌린 주체사상의 씨앗은 남한에서 왕성하게 성장하여서 정치, 경제, 문화, 언론, 교육, 노조계를 장악하여 한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