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옛이야기
만백성이 사모하는 영월을 바라보며 공경하던 자규루, 채제공의 상량문(전체문장)
김원식(영월군 문화해설사)
2016년 4월25일에 발행되었던 『희망영월 제113호』「만백성이 사모하는 영월, 바라보며 공경하던 자규루」와 이어지는 글이 됩니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건물에는 ‘어떠한 연유로 집을 짓게 되었고 언제 어느 때 신축·개축·증축 한 이는 누구이다.’ 라는 글을 짓고는 대들보에 보관하거나 매달게 되는데 이것을 상량문이라 합니다. '꽃은 향기로워 그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 마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花香千里 人情萬里’ 옛 말이 있듯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간절함을 후대인이 알게 된다면 선대 어른의 뜻을 헤아릴 때마다 공경의 예를 다하게 되는 기록이 됩니다. 하지만 누구이든 이해할 수 있는 ‘한글’이라면 좋으련만 온통 ‘한문’으로 되어 있어 누구인가 질문이라도 한다면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이지요.” 라면서 대충 얼버무리는 게 오늘입니다.
조선국 역사의 현장인 영월관아 경내「자규루」에 오르면 2편의 상량문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한문의 한글화, 한문과 한글을 기록한 문서를 찾아내었기에 모두가 함께 영월의 과거를 만나는 희망영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子規樓 上樑文(자규루 상량문)
撰述(찬술·지은이) : 좌의정 채제공(左議政 蔡濟恭)
「樊巖先生集卷之五十八 번암선생집권지58」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 역주 장릉지속편 권2, 78~84쪽」
발췌·인용 : 해설사 김원식(시·수필)
山哀浦思(산애포사)。산과 강은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百年之流峙不改(백년지류치불개)。백년토록 변함없이 흐르고 우뚝한데
天長地久(천장지구)。장구한 저 하늘과 땅 가운데
一樓之成毁無常(일루지성훼무상)。누각하나의 흥폐가 무상하니
人神爲之合謀(인신위지합모)。사람과 신령이 그 때문에 함께 도모하고
雲月爲之動色(운월위지동색)。달과 구름도 그 때문에 낯빛을 바꾸었네.
昔在帝重華廵野(석재제중화순야)。옛날 중화께서 순행하실 때
乃有春三月登樓(내유춘삼월등루)。춘삼월에 이 누각에 오르셨지
三讓越中(삼양월중)。세 번이나 나라 사양한 뒤 영월에서
非有意於旋天轉地回龍馭(비유의어선천전지회룡어)。세상 바뀌어도 수레 되돌릴 생각 없었으나
五更樓上(오경루상)。오경의 깊은 밤 누각에 앉았노라면
不禁愁於夜月空山啼子規(불금수어야월공산제자규。) 달빛 아래 두견새 울음에 밀려드는 근심이여!
악부전성。樂府傳聲(악부전성)。악부에서 그 성률을 전파하니
僾㤪恨於詩裏(애원한어시리)。원한이 행간에 어렴풋이 묻어나고
山氓掩耳(산맹엄이)。산골 백성들은 손으로 귀를 막은 채
紛拜跪於墻邊(분배궤어장변)。담장 가에서 어지러이 절하고 꿇어앉네.
伊來滄桑之屢經(이래창상지루경)。그 후 상전벽해의 세월이 거듭 지나
於焉墊沒之已久(어언점몰지이구)。자취조차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지
鵑聲此地(견성차지)。이곳의 두견새 울음을
王孫女之詠詩何年(왕손녀지영시하년)。왕손의 딸 언제 읊조렸던가!
蜀魄東風(촉백동풍)。봄바람 두견새 울음에
李蓀谷之寓慕無所(이손곡지우모무소)。이손곡은 그리움 부칠 곳 없었네.
懷帝閽而不可見(회제혼이불가견)。대궐을 생각해도 눈으로 볼 수 없건만
暮雲荒荒(모운황황)。저녁 구름은 어찌나 황량한지
思公子兮未敢言(사공자혜미감언)。공자를 그려도 감히 말할 수 없거늘
春草漠漠(춘초막막)。봄풀은 아득히 펼쳐 있구나.
使君圭測(사군규측)。수령(守令)은 옛터를 측량할 때
撫溪山而彷徨(무계산이방황)。산천을 더듬으며 이리저리 서성였고
刺史車停(자사차정)。방백(方伯)은 수레를 세운 뒤에
詢父老而茫昧(순부로이망매)。노인들에게 물어보나 도무지 오리무중
况籬落爰居爰處(황리락원거원처)。게다가 담장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으니
而基址指東指西(이기지지동지서)。동쪽을 가리키다가 다시 서쪽을 가리키네.
俄然百姓之家(아연백성지가)。얼마 지나지 않아 백성의 초가집이
遽歸八人之焰(거귀팔인지염)。사람을 감동시키는 화염에 느닷없이 휩싸이더니
灰燼飄蕩大風起兮(회신표탕대풍기혜)。큰 바람 불어 재가 말끔히 날리자
瓦礎縱橫眞形宛爾(와초종횡진형완이)。기와와 주춧돌이 도처에서 본모습 드러냈지.
浹月經始(협월경시)。달포 만에 경영을 시작하여
縱意匠之爲勞(종의장지위로)。정성을 다해 노심초사했으나
積雪崢嶸(적설쟁영)。가파른 산에 눈이 수북이 쌓였으니
奈木石之難具(내목석지난구)。목재와 석재 구할 방도 없었거늘
迺隆冬之月(내륭동지월)。바야흐로 엄동설한의 계절에
忽大雨連宵(홀대우련소)。홀연 큰 비가 내렸네.
於是泠浦凍瀜(어시령포동융)。이에 청령포의 얼음이 녹아내려
運江筏而無碍(운강벌이무애)。무리 없이 뗏목을 운행하였고
仄徑冰坼(측경빙탁)。비탈길의 빙설이 갈라지니
曳雲根而如期(예운근이여기)。예정대로 산 바위 끌어내렸지.
惟營邑自盡深誠(유영읍자진심성)。감영과 고을에서 온 정성을 다했으나
而宸極豈聞玆事(이신극기문자사)。임금께서 어찌 이 일에 대해 들었으랴!
惟我主上殿下(유아주상전하)。우리 주상전하께서
偶於萬幾之暇(우어만기지가)。우연히 정사를 돌보던 겨를에
念及六臣之忠(념급륙신지충)。여섯 신하의 충정을 생각했는데
所事盡心(소사진심)。진심으로 선왕을 섬긴 절의가
挹耿光於露渚(읍경광어로저)。노저에서 환히 빛났네.
於斯起感(어사기감)。이에 애틋한 감회가 일어나기에
閱秘乘於沁都(열비승어심도)。심도의 신록 열람케 했는데
惟玆史官返陛之辰(유자사관반폐지신)。때마침 사관이 복명한 날은
適會名樓豎柱之日(적회명루수주지일)。이름난 누각의 기둥을 세운 날이었지.
藩臣馳盈尺之狀(번신치영척지상)。번신이 치계한 것을
豈曰偶然(기왈우연)。어찌 우연이라 말하리오!
神孫有一氣之通(신손유일기지통)。신손께서 진실로 이와 같이
固如是矣(고여시의)。전일한 기운으로 감통시킨 게지.
石室開櫃(석실개궤)。석실에서 금궤를 연 것과
異哉不謀而同(이재불모이동)。기이하게도 꾀하지 않았으나 일치하고
銅山應鍾(동산응종)。신령한 종이 동산에 호응한 것이
是何若符之合(시하약부지합)。어찌 부절을 합한 듯 들어맞는지!
孰能名焉蕩蕩(숙능명언탕탕)。누가 감히 탕탕이라 명명하리오!
不敢歸之冥冥(불감귀지명명)。감히 명명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네.
嗚呼(오호)。아!
錦水長流(금수장류)。금강은 유장히 흐르고
明月不老(명월불로)。밝은 달은 늙지도 않는구나.
雕欄彩闥(조란채달)。아름다운 문과 난간 바라보니
怳仙人好樓而居(황선인호루이거)。신선이 머무시기에 안성맞춤
風馬雲車(풍마운차)。신령한 말과 수레를 몰면서
慰我民不嚬以笑(위아민불빈이소)。우리 백성 위로하며 활짝 웃으리라.
聽此如何不淚寃血(청차여하불루원혈)。이를 듣고서 어떻게 피눈물 흘리지 않을까!
至今登玆聊暇消憂(지금등자료가소우)。허나 이제는 이곳에 올라 근심을 풀고 싶네
翠華非昔(취화비석)。푸른 깃발은 예전의 것 아니건만
義起之壇壝隣近(의기지단유린근)。의리로 일으킨 제단이 인근에 있고
感懷之綸綍諄勤(감회지륜발순근)。옛일 회상하는 윤음이 근실도 하다.
靑烏珠邱(청오주구)。청오의 주구에는
四時之醴齊牲幣(사시지예제생폐)。사계절의 단술과 희생, 폐백이 나란하고
白鶴華柱(백학화주)。백학 앉은 화표주(華表柱)에는
千載之城郭人民(천재지성곽인민)。지금도 천 년 전의 성곽과 백성이라네.
玆陳短頌(자진단송)。이에 짤막한 노래를 지어서
助擧脩樑(조거수량)。기다란 들보 드는 것을 돕노라
拋樑東(포량동)。들보 동쪽에 떡을 던지세나
天下傷心是越中(천하상심시월중)。온 세상이 슬퍼하는 건 영월이거든
惟有寃禽如昨日(유유원금여작일)。원한 맺힌 새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靑山花老哭東風(청산화로곡동풍)。청산의 시든 꽃에서 봄바람에 통곡하네.
拋樑西(포량서)。들보 서쪽에 떡을 던지세나
雨濕庭花花欲低(우습정화화욕저)。뜨락의 꽃은 비에 젖어 고개 숙인 채
空裏愀然如復見(공리초연여부견)。다시 만난 것처럼 공연히 시름하는데
畫欄依舊與雲齊(화란의구여운제)。채색 난간은 예전마냥 구름과 나란하네.
拋樑南(포량남)。들보 남쪽에 떡을 던지세나
戶長家前水似藍(호장가전수사람)。호장 집 앞의 쪽빛 강물은
最是春深腸斷處(최시춘심장단처)。깊은 봄이면 애간장 끊어지는 곳이거늘
冬靑半掩落花巖(동청반엄락화암)。동청은 낙화암을 반나마 가리누나.
拋樑北(포량북)。들보 북쪽에 떡을 던지세나
太白山光雲外矗(태백산광운외촉)。태백산 산세는 구름 너머에 우뚝하고
白馬翩翩影有無(백마편편영유무)。백마는 너울너울 떠나 그림자도 없거늘
問誰陪扈忠臣六(문수배호충신륙)。단종을 호종한 여섯 충신은 누구이런가!
拋樑上(포량상)。들보 위에 떡을 던지세나
錦江東畔月華放(금강동반월화방)。금강의 동편 물가에 달빛 쏟아질 무렵
三更影落虛無中(삼경영락허무중)。삼경의 그림자는 허무 속에 떨어지고
奔走魚龍水底蕩(분주어룡수저탕)。분주히 헤엄치는 어룡은 물속에서 꿈틀대네.
拋樑下(포량하)。들보 아래에 떡을 던지세나
灰刦茫茫餘古瓦(회겁망망여고와)。잿더미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기왓장
天理人情不可誣(천리인정불가무)。천리와 인정은 결코 속일 수 없는 법
至今流涕經行者(지금류체경행자)。지나는 행인조차 지금도 눈물 흘리네.
伏願上樑之後(복원상량지후)。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
園陵有神(원릉유신)。능침에 계신 신령이시여!
榱桷不朽(최각불후)。서까래가 썩지 않게 해주소서.
經營不日(경영불일)。짧은 기간에 경영하여
告成功於二月中旬(고성공어이월중순)。2월 중순에 낙성을 고하니
陟降在天(척강재천)。저 하늘을 오르내리시며
垂陰騭於千秋萬歲(수음즐어천추만세)。천년만년 음덕을 내려주소서.
左議政 蔡濟恭 奉敎撰(좌의정 채제공 봉교서)。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전교(정조15년.1791년 2월 6일)를 받들고 찬술하다(글을 짓다).
寧越都護府使 李東郁 奉敎書(영월도호부사 이동욱 봉교서)。영월도호부사 이동욱이 전교를 받들고 글을 쓰다.
蔡濟恭(채제공)
• 생년 : 1720년(숙종 46) • 몰년 : 1799년(정조 23) 1월 18일
• 본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 시호 : 문숙(文肅).
• 저서(작품) 『번암집(樊巖集)』59권.
• 대표관직(경력) 규장각제학·예문관제학·한성판윤·강화유수|우의정|영의정
李東郁(이동욱)
• 생년 : 1739년(영조 15) • 몰년 : 미상
• 본관 : 평창(平昌), 자는 유문(幼文), 호는 소암(蘇巖).
• 대표관직(경력) : 의주부윤|참판
• 영월도호부사 재임 : 1789년6월20일 ~ 1791년 3월11일
영월 옛이야기, 채제공의 자규루 상량문(전체문장).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