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 장
잔인한 일을 한 베냐민을 심판 (찬송 22장, 옛찬송가 26장)
2018-5-8, 화
맥락과 의미
19-21장은 사사기의 결론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영적 음행의 결과로 실제적으로도 엄청난 음행을 저지른 기브아의 악한 사람들과 그들을 두둔하는 베냐민 지파 전체를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사사기의 마지막 에 나오지만 사사 시대 초기의 일입니다.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섬기던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28절). 비느하스는 여호수아 시대에 아버지와 함께 성막을 섬겼습니다 (수 22:13).
1. 이스라엘 온 지파가 베냐민을 처벌하기
위해 모여 전쟁을 준비 (1-16절)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제사장이 보낸 그의 첩의 시체 도막을 보고 다 함께 총회로 모였습니다. 군인으로 싸울 40만이 모였습니다. 첩을 희생한 그 제사장에게 그동안의 경과를 묻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자기 첩을 바깥으로 내
보낸 사실은 쏙 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가 그 행한 대로 기브아를 징벌하기로 합의합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베냐민 지파에 사람을
보냅니다. 기브아의 비류들(불량배)을 넘겨 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자.”(13절)라고 합니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듣지 않았습니다. 온 베냐민 사람들이 기브아에 모여서 이스라엘 전체와 싸움을 준비했습니다.
2. 전쟁 (17-48절)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는 것은 반드시 성공할 전쟁입니다. 첫째, 군대
수가 훨씬 많습니다. 군대는 40만 명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10명 중 한 명은 양식과 보급품을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군대는 26,700명이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정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한 일입니다. 동성연애와
음행하는 자를 벌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라” (13절)는 것은 율법에서 명령한
것입니다. 율법서에서 비류가 한 도시에 있는데, 도시 전체가
그 비류에게 유혹되어 넘어간다면 그 도시 전체 사람을 죽이고 탈취도 불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 13:12-16).
셋째, 이스라엘은 그 당시에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 제사장이 있던 벧엘에 올라가서 어떻게 싸울지를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싸우라고 대답하셨습니다 (18절).
“이스라엘
지파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을 치리이까?”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18절). 1:2절에서 여호수가가 죽은 후 가나안 민족을 칠 때에도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라 지시하셨습니다. 그 때 유다가 전쟁에서 완전히 이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유다
지파을 선봉으로 해서 베냐민 족속을 완전히 굴복시킬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차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완패했습니다. 22,000명이 죽었습니다.
2차 전투를 “스스로 용기를 내어” (22절), 즉 “스스로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준비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즉, 언약궤가 있던 벧엘에 갔음을 의미합니다. 해가 저물도록 울면서 물었습니다.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연약한
자신들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 갑니다. 지난번에는 “악을 제거하여 버리자.” (14절) 하던 태도에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이라 부릅니다. 자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올라가라.” 그러나 2차
전투도 이스라엘의 전패. 18,000명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전쟁을 위해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3차 전투를 앞두고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갔습니다. 여호와께 다시 묻습니다 (26절). 지난번에는 “이스라엘 자손”(23절)이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대표가 올라간 듯합니다. 이번에는 모든 백성 (백성은 “군인”을 뜻하기도 합니다.)이 다 올라갔습니다. 지난번에는 저녁까지 울면서 기도했지만, 이번에는 저녁까지 금식했습니다. 저녁에는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26절). 그리고 이어서 언약궤와 대제사장이
벧엘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언급합니다(27절). 이제야
온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분명한 자각이 생겼던 것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는 언약을 새롭게 할
때 항상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남아 있는 자기 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거룩을 지키기 위한 목적의식이 분명해졌음을 암시합니다. 목적을 바로 알아도 단순히 “군사적
실력”으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롬 12:1). 칼과
창이 아니라, 번제와 화목제로 자신의 영혼을 드리는 것이 승리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더 분명해진 다음 이스라엘 백성은 더 겸손히 묻습니다.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울까 말리이까?” (28절)라. “말리이까?” “혹시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두겠습니다.” “어쩌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형제를
이렇게 징벌해야 하는가?” – 정의의 하나님이지만 자비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으니, 그도 깊은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말하십니다.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28절). 전에는 “올라가라”고만 말했다가, 이제야 “내일은 그들을 네 손에 주리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올라가라”라고
하시고 하나님은 사실 함께 가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전에 금송아지 우상 숭배 이후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했지만, “내 사자만
보내고 나는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출 33:3)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함께 올라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후에 백성을
이끌고 올라갔습니다.
지금까지
두 번의 패전은 제사를 통한 예배와 형제 사랑이 적었습니다. 정의감과 인간의 열정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패전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브아
사람처럼 음행을 행하지 않았지만, 우상을 숭배하고,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참 경건을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 40,000명을 먼저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신들도 악한 베냐민 자손을 징벌하기 전에 그들이 금식하며 자신을 징벌하고,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께 온 영혼을 바쳤습니다.
3차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베냐민 사람 25,100명 (35절. 46절에서 25,000명이라고 하는 것은 1,2차 전쟁 때 베냐민 사람이 100명 죽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닥치는 성읍마다 불살랐다.” (48절)는 인간적
감정으로 파괴를 즐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명기 13:16절에서
한 지역 전체가 악한 자를 권징 하지 않고 보호할 때 그 도시 전체를 “불사르라는 하나님의 형법을 신실하게 집행하는 공적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자격 없는 자들로서의 겸손과 형제에 대한 사랑에 기초해서 임무 수행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다른
가족, 자녀나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교정하고 권징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회개합시다. 나도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는지 돌아 봅시다. 악한 일을 한 가족이나
성도를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도록, 또 가능한 벌을 가볍게 해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나와 그들의 악을 위해 금식하며 울며 회개한 다음에,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언약 관계가 새로워 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정당한 의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용서와 칭의, 무조건적 수용의 의입니다. 의롭게 하신 다음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매를 드십니다. 매를
드시는 권징 보다 먼저 오는 것이 의롭다 하시는 은혜입니다.
자녀와
성도에 대해 권징하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서야 합니다. 항상, 의롭다 하시는 그 은혜에 앞에서 나 자신의 자격 없음을 고백합시다. 나와
나에게 잘못을 행한 사람을 용서와, 사랑으로 품으시는 그 은혜 안에서 권징해야 합니다. 그래야 권징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용서와 사랑의 이름으로 기브라 사람의 음란을 덮어 두는 베냐민을 하나님은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징벌하셨습니다. 정당한 권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계속 거룩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으로 우리를 충만케 해주셔야,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이 아름답게 녹아가는 교회와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 함이라니 각각 자기 짐을 질 것임이니라.” (갈 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