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경요집 제10권
18.2. 지계편(持戒篇)
〔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18.2.1. 술의연(述意緣)
가만히 듣건대 계율은 바로 사람의 스승이다.
그래서 도인이든 속인이든 다 함께 받들며, 마음은 업(業)의 주인이라서 범부(凡夫)나 성인이 다 함께 제어한다.
진실로 삼보에 의지하기 때문에 사생(四生:胎ㆍ卵ㆍ濕ㆍ化)이 함께 윤택해 지나니, 그런 까닭에 경에서 말한
“바른 법이 머문다, 바른 법이 사라진다”고 한 것은 그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계율 잘 지키는 것으로 덕을 살아 스스로 대경(大經)을 나타내고 성품이 착함을 숭상하여 대론(大論)을 밝힌다.
혹은 다시 계율을 해나 달에 비교하기도 하고 보배 구슬에 비유하기도 하나니, 그 뜻은 바르는 향과 같고 일은 물을 아끼는 것과 같다.
큰 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단단한 배라고 말하고 좋은 싹을 자라게 하는 땅을 또한 평평한 땅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품수(稟受)한 것을 작은 먼지만큼도 잃어버리지 않고 나한(羅漢)은 계율을 잘 보호하고 지켜서 작은 겨자씨만큼도 범하는 일이 없다.
차라리 목이 말라 죽을지언정 물에 벌레가 있으면 마시지 않고 끝내 몸을 동여 매고 살다가 죽음지언정 풀잎 한 개라도 상하게 함이 없다.
경서(經書)에 말하기를
“몸을 세우고 도를 닦아서 후대(後代)에 이름을 드날리고자 하면 말과 행동을 충직하고 믿음 있게 하고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으니,
어찌 심마(心馬)를 멋대로 놓아둔 채 고삐나 재갈을 물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리저리 치달리는 정후(情猴)를 도무지 제어하여 묶어놓지 않아서 부낭(浮囊)이 이미 훼손되면 어떻게 앞길을 기약하겠는가?
덕의 병(瓶)이 이미 깨져버리고 나면 뛰어난 연(緣)도 길이 끊어지리라.
때로는 또한 악한 사람을 한곳에 모아 흉칙한 무리를 만들고 서로가 부추기며 갖은 허물을 지으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워함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함도 없고 수치(羞恥)도 없이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심해지고 한층 더 가라 앉았다간 떠오르고 한다.
그것은 흡사 정력(葶藶)과 쑥의 가지와 잎사귀가 다 쓴 것과 같고 가리륵(訶梨勒) 과일 나무의 몸에 온통 단 맛이 더욱 짙은 것과 같다.
밝은 데에서부터 어두운 데로 들어가면 다시는 벗어날 기약이 없고 겁의 수효가 이미 아득히 멀어지면 그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기 어렵다.
이에 가마솥에 펄펄 끓는 물은 맹렬한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화로의 숯불이 이글거리며 피어올라 폭발하는 소리에 땅이 찢어진다.
구리를 녹여 입 안에 부으면 뱃속이 문드러지고 간(肝)이 녹으며 구리 기둥에 몸이 부딪치면 뼈와 살이 다 없어지나니, 뒹굴면서 오열하고 울부짖음을 어찌 생각이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이와 같은 따위의 괴로움은 곧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이니라.
18.2.2. 권지연(勸持緣)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현재의 과보(果報)를 얻는다.
내가 옛날에 들으니 난제발제성(難提跋提城)에 우바새(優婆塞)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다섯 가지 계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아우에게 갑자기 협통(脇痛)이 생겨 장차 목숨이 끊어지려고 했다.
그 때 의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새로 개를 잡아서 그 고기를 먹고 아울러 술을 마사면 질환이 바로 낳을 것이다.’
그러자 환자가 말하였다.
‘그 개고기는 저자에서 사서 먹으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술을 마시는 일은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을지라도 계율을 범하면서까지 술을 마시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우가 매우 고통스러워 하고 목숨이 위급해진 것을 본 형은 술을 싸가지고 와서 아우에게 말하였다.
‘계율을 버리고 숨을 마셔서 그 질병부터 치료하여라.’
아우가 형에게 말하였다.
‘제가 아무리 병이 위급하더라도 저의 몸과 목숨 버리기를 원할지언정 계율을 범해가면서까지 이 술을 마시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었다.
괴이한 일입니다. 목숨을 마칠 즈음에 임박하여
나의 영락(瓔珞) 같은 계율을 깨뜨리라 하다니,
나는 계율로써 몸을 장엄할 뿐
땅에 파묻힐 장구(葬具)는 소용이 없답니다.
사람의 몸은 이미 얻기 어렵고
계율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우니
원컨대 차라리 백천 번 목숨을 버릴지언정
금지하는 계율을 훼손하거나 깨뜨리지 않으리이다.
한량없는 백천 겁(劫)이 지나
이 때에야 비로소 계율을 만났으니
염부제(閻浮提)의 세간 속에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가는 너무도 어렵답니다.
비록 사람의 몸 다시 얻을 수 있어도
바른 법을 만나기는 몇 배나 더 어렵습니다.
어느 때 법보(法寶)를 다시 만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은 취할 줄 모를 것입니다.
분별을 잘하고 능한 사람이라도
이 일만은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계율의 보물이 내 손 안에 들어왔는데
어찌하여 다시 빼앗아 가려고 합니까?
이야말로 원수이며 미운 사람이요
나의 친척[親]이 아닙니다.
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그 아우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친애하기 때문이지 계율을 막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동생이 형에게 말하였다.
‘친애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었다.
나는 훌륭한 곳을 향해 가려고 하는데
계율을 훼손시켜 저로 하여금 떨어지게 하시니
계율 버리게 하는 것을 이와 같이 하면서
어떻게 친애한다고 하십니까?
저는 부지런히 계율의 근본을 익히고 있다가
끝내는 겁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키는 다섯 가지 계율 가운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이 가장 소중합니다.
이제 저에게 강제로 훼손하게 하시니
친애한다고 이름할 때가 아닙니다.
형은 아우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술을 계율들을 근본으로 삼느냐?’
동생은 곧 게송을 읊어 형에게 대답하였다.
만약 금지하는 계율들을
마음을 다하여 보호하고 지키지 않으면
곧 커다란 자비를 어기는 것이니
풀 끝에 술 한 방울 묻었다 해도
오히려 감히 맛보거나 접촉하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숨은 곧 악한 세계에 태어나는 원인입니다.
속가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다라(修多羅:經)에도
술의 나쁜 과보가 설해져 있지만
오직 부처님만이 잘 분별하시나니
그 누가 부처니께서 설명하신
몸과 입과 뜻을 헤아려 알 수 있겠습니까?
세 가지 업(業)의 악한 행위 가운데
오직 술이 그 근본이 되어
다시 나쁜 행위 가운데 떨어진다 하였습니다.
지난 과거에 어느 우바새(優婆塞)는
술을 먹은 인연(因緣) 때문에
마침내 나머지 네 가지 계율까지 깨뜨렸으니
이것을 나쁜 행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술은 방일(放逸)하는 과보가 되나니
마시지 않으면 악한 세계를 막아버리고
믿고 좋아하는 마음을 획득할 수 있으며
간탐을 버리고 능히 재물을 보시할 수 있어서
수라(首羅)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한량없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이 없었건만
어째서 헐어 범하게 하려고 하시옵니까?
그것을 간략하게 설명하여 말하자면
차라리 백천 번 목숨을 버릴지언정
부처님의 가르침을 헐거나 범하지 않겠으며
차리리 이 몸이 바짝 마르게 될지언정
끝내 이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가령 계율을 훼손하고 범하면
백천 년 동안 오래 살 수 있다 하여도
금지하는 계율을 보호하다가
즉시 몸과 목숨 사라지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결정코 술이 병을 낫게 한다고 해도
나는 오히려 마시지 않겠거늘
더군다나 그것이 병을 고칠지 고치지 못할지를
지금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결정된 마음을 짓고 나니
마음에 큰 기쁨이 생겨나서
즉시 참다운 진리를 얻어 보게 되었고
병들었던 것도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 말하였다.
“내가 옛날에 들었는데 어떤 여러 비구와 모든 장사꾼들이 바다에 들어가서 보물을 캐다가 이윽고 바다 한 가운데에 이르자 배가 파괴되었다.
그 때 어느 나이 어린 한 비구는 널빤지 하나를 붙잡았으나, 상좌(上座)비구는 널빤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장차 물 속으로 빠져들려고 하였다.
이 때 상좌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서 물에 떠내려 갈 것을 몹시 겁냈다. 그리고 어린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마땅히 상좌를 공경해야 하나니, 그대가 얻은 그 널빤지를 나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그 때 나이 어린 비구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 세존께서 정말로 온갖 이익과 즐거움은 마땅히 먼저 상좌에게 주어야 한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리고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널빤지를 상좌에게 주고 나면 나는 틀림없이 물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이다.
굽이쳐 돌아 흐르는 물과 파도마저 심하니, 큰 바다의 재난은 지극히 깊고도 넓어서 이제 나의 생명은 장차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나이도 젊고 처음 출가한지라 아직 도과(道果)도 얻지 못했다. 이것이 걱정스럽구나.
그러나 지금 당장 내가 몸을 버려 상좌를 구제하려면 정녕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난 다음 곧 게송을 읊었다.
나 자신이 이 바다에서 온전하게 살아나야만 할까,
아니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승함을 따라야 할까?
한량없는 공덕의 덩어리를 얻으면
그 명성이 시방 세계에 두루 하리라.
몸과 목숨은 극히 비천(鄙賤)하거늘
어떻게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 수 있으리.
나는 이제 부처님의 계율을 받았으므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굳게 지키리라.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까닭에
널빤지를 바치고 몸과 목숨 버리리라.
만일 어려운 일 하지 못한다면
끝끝내 어려운 과보 획득하기 어려우리.
만약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버리면
하늘이나 사람에게 이익된 일 잃어버리고
또한 큰 열반(涅槃)과
더할 나위 없는 제일의 즐거움도 잃게 되리라.
이미 게송을 읊고 난 뒤에 곧 널빤지를 가져다가 상좌에게 주었다.
그렇게 널빤지를 주자마자 그 때 바다 귀신이 그 정성에 감동되어 곧바로 나이 어린 비구를 데려다가 바닷가 언덕 위에 내려주고는 합장한 채 비구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계율을 굳게 지키는 분께 귀의(歸依)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렇게 위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서도 능히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셨습니다.’
바다 귀신은 게송을 읊었다.
그대는 바로 참다운 비구이시고
진실로 고행(苦行)하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이를 이름하여 사문(沙門)이라 하는데
그대야말로 진실로 이런 명칭에 걸맞습니다.
제가 이런 때를 당하여
어떻게 더욱 더 옹호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본 뒤에 능히 계율을 지키는
그런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범부는 금지하는 계율을 훼손하지 않는 것
이것을 비로소 희유(希有)하다 하나니
비구는 편안하고 고요한 데에 있으면서
청정하게 지켜 스스로 삼가하고 조심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목숨을 버리고 난 뒤에
하기 어려운 일을 잘 해내기에
이것을 가장 희유하다 합니다.”
또 『대장엄론』에서 말하였다.
“내가 옛날에 일찍이 들으니, 어떤 비구 한 사람이 차례를 따라 걸식하다가 구슬을 꿰는 집에 이르러 문 밖에서 있었다.
그 때 저 구슬을 꿰는 이는 국왕을 위해 마니주(摩尼珠)를 꿰고 있었는데, 비구가 입은 붉은 옷이 그 구슬에 비치자 그 구슬도 붉어졌다. 그러자 그 구슬을 꿰던 사람은 비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곧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거위 한 마리가 있다가 구슬의 색깔이 붉어서 그 모양이 흡사 고기와 같았으므로 그것을 보고 얼른 삼켜버렸다.
구슬 꿰는 이가 밥을 가져다가 비구에게 주고는 구슬을 찾았으나 그 구슬은 온데간데가 없었다. 그 구슬의 값은 매우 비싼 것이었고 구슬 꿰는 사람은 너무 가난하였으므로
황급히 비구에게 물었다.
‘제 구슬을 가져가셨습니까?’
비구는 구슬을 찾기 위해 거위를 죽일까 두려워한 나머지 장차 어떻게 꾀를 내어 이 환난을 변하게 할까 생각하다가 곧 게송을 읊었다.
나는 지금 다른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내 몸 일부분에 고통과 괴로움을 받으렵니다.
다시 다른 방편이 없으므로
다만 이 목숨으로 그를 대신할 뿐이라오.
만일 남이 가지고 갔다고 말하면
이 말도 또한 불가(不可)한 일이며
설령 내가 가져갔다 하더라도 탓하지야 않겠지만
마땅히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몸과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 거위의 목숨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내가 계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이로 인해 해탈을 이룩할 것입니다.
그 때 구슬 꿰는 사람은 비록 이 게송을 들였으면서도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그 구슬을 돌려주지 않으면 당신만 부질없이 괴로움을 받을 것입니다.
끝내 그냥두지 않을 것입니다.’
비구는 곧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치 사슴이 동산에 들어갔다가 나갈 길을 알지 못해 하는 것처럼 비구를 구원해 줄 이가 없는 것도 역시 이와 같았다.
그 때 비구는 곧 스스로 몸을 사리며 의복을 단정하게 추스렸다.
그 사람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나와 싸울 작정입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당신과 함께 싸우지 않겠습니다. 나는 스스로 모든 번뇌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게송을 읊었다.
내가 몸과 목숨을 버릴 때에
땅에 떨어지는 것은 마른 나무와 같겠지만
장차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과 찬미를 받되
거위를 위해 능히 몸을 버렸다고 할 것이네.
그 때 구슬 꿰는 사람은 곧 몽둥이로 매질하며 두 손과 머리를 모두 묶어버렸다.
비구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고 죽고 하면서 받는 고통이 모두 이와 같으리라.〉
또 게송을 읊었다.
이 위태롭고 연약한 몸을 버려서
해탈한 목숨을 취하리이다.
나는 다 떨어진 누더기 옷[糞掃衣]을 입고
음식을 빌어먹는 것으로 업(業)을 삼있습니다.
나무 밑에 살면서 머물러 있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그 때를 당하여 도둑질을 했겠습니까?
당신은 마땅히 잘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구슬 꿰는 사람은 비구에게 말하였다.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가?’
드디어 그 비구에게 포박을 지워 갑절이나 더 매질을 했고 붙들어 맨 줄을 한껏 죄었다. 그러자 귀ㆍ눈ㆍ코ㆍ입에서 온통 피가 흘러 나왔다.
그 때 그 거위가 곧 그곳에 와서 피를 쪼아먹자 구슬 꿰는 사람은 성을 내면서 거위를 때려 죽였다.
그러자 비구가 물었다.
‘이 거위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구슬 꿰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거위가 지금 죽었든 살았든 무엇 때문에 묻는가?’
그 때 그 비구는 곧 거위가 있는 곳에 가서 거위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언찮은 표정으로 거위를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내가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받은 것은
이 거위를 살리기 위해서였거늘
이제 나의 목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거위가 나보다 먼저 죽었구나.
나는 너의 목숨 보호하기를 희망하여
이와 같이 극심한 신고(辛苦)를 치루었거늘
무슨 뜻으로 네가 먼저 이렇게 죽었느냐?
내가 과보(果報)를 이루지 못했구나.
구슬 꿰는 사람이 비구에게 물었다.
‘그 거위가 지금 당신과 끝끝내 무슨 친분이 있었단 말이오?
시름하고 괴로워함이 그리하니 말이오.’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의 서원을 채우지 못한 까닭에 언찮은 것입니다.’
구슬 꿰는 사람이 물었다.
‘하려 했던 서원이 도대체 무엇이오?’
비구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보살은 과거 먼 옛날 어느 때에
몸을 버려 목숨을 비둘기와 바꿨다오.
나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거위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려고 했었오.
이 거위로 하여금 목숨을 보전하게 하여
오래오래 살면서 늘 안락하기를 바랬는데
당신이 거위를 죽였기 때문에
마음에 품은 서원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때서야 비구는 다시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구슬 꿰는 사람은 즉시 거위의 배를 갈라 다시 구슬을 찾아냈다.
이윽고 구슬을 찾아낸 뒤에 문득 소리 높여 통곡하면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거위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나로 하여금 이렇게 법이 아닌 일을 자행하게 하셨군요.’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었다.
당신이 공덕을 감추신 일은
마치 재로 불을 덮은 것과 같습니다.
나는 어려삭였기 때문에
수백의 몸을 불에 태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부처님의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와 모습이 지극히도 닮았건만
나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자세하게 잘 관찰하여 살피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을의 불에 태워졌으니
바라건대 부디 잠시만 머물러 계시어
저의 조그마한 참회나마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마치 발을 헛디뎌 념어진 이가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남과 같게 하소서.
청정한 행에 귀의[南無]하옵고
계율을 굳게 지난 이에게 귀의합니다.
이렇게 극심한 고난(苦難)을 당하면서도
금지하는 계율을 잘 지키시어
거위를 위하여 몸소 고통을 받으면서도
금지하는 계율을 범하지 않으시나
이런 일은 참으로 있기 어렵습니다.
또 『대장엄론』에서 말하였다.
“어떤 여러 비구들이 넓은 벌판을 걸어다니다가 도둑을 만나 겁탈당하여 옷을 모두 빼앗겼다. 그 때 이 도둑떼들은 여러 비구들이 마음으로 가서 알릴 것이 두려워 모조리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둑 가운데 한 사람은 과거에 일찍이 출가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무엇 때문에 모조리 죽이려고 합니까? 비구의 법에는 풀도 손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풀로 비구들을 묶어 두면 저들은 풀이 상할 것을 두려워한 까닭에 마침내는 사방으로 달려가서 알리거나 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도둑들은 곧 풀로 꼭꼭 묶어 두고 떠나가 버렸다.
모든 비구들은 이미 풀에 묶인 채 행여 금한 계율을 범할 것이 두려워 당겨 끊지도 못하고 있었다.
몸에는 옷조차 걸치지 못했는지라 해에 그을리고 모가ㆍ등에ㆍ파리ㆍ벼룩 따위에게 시달렸다.
아침에 묶여서부터 그 날 저녁에까지 이르렀다. 이윽고 해가 저물어 아주 깜깜해지자 밤에 다니는 새와 짐승들이 번갈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므로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다.
그 때 어떤 늙은 비구가 나이 젊은 여러 비구들에게 게송으로 경계하여 말하였다.
만약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금지하는 계율을 굳게 잘 지키면서
인간 세계나 천상, 그리고 열반을 구한다면
모두 그들의 뜻에 맞추어 획득할 수 있으리라.
이라발(伊羅鉢) 용왕이
그 금지하는 계율을 무너뜨리고
나뭇잎을 손상(損傷)하였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 용의 세계에 떨어졌다네.
이 여러 비구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핍박을 당하면서 몸을 몸짝달싹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였으며, 행여 풀의 생명을 손상시키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오직 계율만을 지키면서 죽음에 이르도록 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우리들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숱한 악업(惡業)을 지었나니
혹 인간 세계에 태어나서는
도둑질도 하고 남의 아내와 을행까지 하였습니다.
왕법(王法)에 의해 형벌을 받은 것은
아무리 계산해도 헤아려 알 수 없으며
또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와 같은 일 또한 헤아려 알기 어렵답니다.
가령 이 햇볕이
이 몸을 내려쬐어 목숨이 마른다 해도
우리는 기어코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면서
끝끝내 중도에서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령 사나운 짐승을 만나
나의 몸과 손을 자르거나 찢는다 해도
끝끝내 감히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석사자(釋師子)께서 금지하신 계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차라리 계율을 지커다가 죽음지언정
계율을 범하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비구들은 늙은 비구가 말하는 게송을 듣고 난 뒤에 각각 그 몸을 바로잡고 전혀 동요하는 일이 없었는데,
그것은 마치 비유하면 커다란 나무가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엔 가지나 잎사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이 때에 그 국왕이 우연히 궁성을 나와 사냥을 하면서 점점 걸어가다가 여러 비구들이 묶여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왕은 멀리에서 그들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의혹을 내었다.
〈이들이 형체를 드라내놓고 사는 니건자(尼揵子)들인가?〉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가서 살펴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비구들임을 알고는 그 사실을 왕에게 말하자,
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매우 괴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푸른 풀로 손이 묶여 있는 모습이
마치 앵무새의 날개와 같으며
또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양과 같아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구나.
비록 위험하고 험난한 곳인 줄 알면서도
잠자코 머문 채 풀을 손상시키지 않음이
마치 숲에 불이 나서 타고 있을 때에
꼬리 긴 소가 꼬리 때문에 죽은 일과 같구나.
이 게송을 설하여 마친 뒤에 그 곳에 이르러서 게송으로 물었다.
신체는 지극히 정정하고도 장성하여
병도 없고 힘도 있는 듯한데
무슨 까닭이 있기에
풀에 얽혀 매인 채 동요하지 않습니까?
그대들은 어찌하여 자신의 몸에
힘이 넘쳐 흐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
주문[呪]에 미혹되어
이러한 고행(苦行)을 하는 것입니까?
스스로 몸의 근심거리를 싫어해서입니까?
부디 속히 그 뜻을 말해주기 바랍니다.
이에 비구가 곧 게송으로 왕에게 대답하였다.
금지하고 있는 온갖 계율을 지키기 위해
감히 잡아당겨서 끊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풀과 나무는
귀신이 살고 있는 마음이라고 하셨으니
저희들은 감히 어길 수 없어서
이 때문에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흡사 주문을 외우는 도량에서
뱀의 침입을 위해 경계를 그어놓으면
신비한 주문의 힘 때문에
독사가 감히 넘어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모니존(牟尼尊)께서 경계를 지어놓으셨기에
저희들도 감히 넘지 못하고 있답니다.
성인이 될 수 있는 다리[橋]이자 나루[津]요
온갖 이익의 머리이자 눈이거늘
누구든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계덕(戒德)의 병을 깨뜨리려고 하겠습니까?
그 때 국왕이 이 게송을 듣고 난 뒤에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곧 풀에 묶여 있는 비구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석사자(釋師子)께서 말씀하신 것을 굳게 지키시어
차라리 자기 자신의 몸과 목숨 버릴지연정
법을 보호하여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으시는군요.
저도 이제 또한
이와 같이 나타난 큰 법에 귀명(歸命)하고
뜨거운 번뇌를 여의신
모니(牟尼) 해탈존(解脫尊)께 귀의하며
또는 금지하는 계율을 굳게 지키시는 이에게도
나는 이제 귀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