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비꽃
월남댁 밭둑에 제비꽃이 피었다
바지랑대 휘도록 제비들 모여 앉아 지지배배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밥상머리가 휜 바지랑대 같던 시절 "지, 잘 묵고, 우리 숟가락 하나 덜면 됐제" 한마디가 식솔 하나 덜어내는 명분으로 충분했던 시절 고개 고개마다 꽃마저 서럽던 보릿고개 누이동생 식모살이 떠나던 날 아리게 밟히던 코고무신 콧등같던 꽃이 월남 땅 떠나올 때도 피었을까? 북위 10도선 타는 태양보다 고추하우스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따이한의 매운 시집살이 때문이 아니라 비행기 소리에 실려 오는 향수 때문인지도 몰라 월남댁 밭둑 위 포롬한 하늘에 아득한 구름 그리며 비행기 날아간다
♧ 복숭아 밭
사월 복숭아밭은 여학교 교실이다 가지가지마다 연분홍빛 소녀들 재잘댄다 뜀박질하는 햇살 사이로 왕거미 뜨게질 한창이다 꽃자리마다 솜털 보송할 풋풋한 꿈 영글어 가는 교실
바람과 햇빛 꽃잎마다 쌓이면 꽃분 칠한 벌 나비들 분주히 날고
초록 이파리 사이 수줍은 젖망울 부풀 듯 발그레 볼 붉히는 복숭아 단물 오르면 교실 칠판에 빼곡한 글씨처럼 소녀들 가슴에 가득 찬 꿈들도 복숭아 씨앗만큼 단단해지는
아지랑이 하롱하롱 꿈꾸는 사월
♧ 개나리 펀드
개나리 큰손이 투자에 성공을 했데요 금값이 치솟는 바람에 뜻밖의 수익을 얻었데요 해마다 하는 가지치기를 생략한 것이 행운이었다지요? 개나리꽃잎 몇 됫박 따주고 소음이 심한 꿀벌전용기를 최신형 나비헬기로 바꿨다지요? 아마?
지난겨울이 워낙 혹독해서 담장 밑 개미 동네는 문을 닫고 변두리로 이주한 집들이 태반이라지요? 옆에서 백매화도 은값이 올라서 재미 좀 봤다고 덩달아 자랑이에요 목련은 궁전 같은 별장을 여러 채 지어 놓고 있어요 분주한 개미들만 분통 터지고 냉이 뿌리는 더욱 억세어져 가는 4월이에요
♧ 얼레지꽃
기다림이지요 이젠 그리움의 시간이 보름달같이 찼어요
서로의 가슴이 떡잎만 하여 잔설 녹을 시간도 참지 못하고 이파리 말리듯 닫아버린 감정들 열어보세요 향기가 없으면 어때요 벌나비 오지 않으면 또 어때요 ‘얼라이오좀’으로도 희망의 꽃은 피지요
여린 꽃 대궁 휘어지고 수척한 보랏빛 얼굴에 눈물 같은 이슬이 봄빛을 담고 탱글거려요
기다림은 사랑을 위해 주어진 확실한 소명 아닐까요? 내일도 기다려야 오지요 내일은 바로 희망이고요!
♧ 매화 지는 봄 밤
온종일 들판에서 밭고랑만 뒤적이며 심심하던 바람이 달 밝아오자 뜰 앞 매화가 가지에 걸터 앉네
향기에 취해 파르르 몸 흔들다 꽃잎 껴안고 땅으로 눕네 한바탕 격정의 몸짓으로 뒹구네 달빛 사이로 터지는 새하얀 속살속살들
봄밤 하늘엔 별들이 꽃잎같이 분분하고 매화나무엔 꽃잎이 별같이 총총한데
마을 앞 방죽엔 개구리들 괜히 악을 쓰네
|
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술술 잘 읽혀집니다. 늘 활기차고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오랫만에 대하는 미촌 님의 봄꽃 시 술술 맛나게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로 여행과 추억을 하다 갑니다
좋은 시를 쓰시네요^^*
감사합니다,
다녀가신줄도 모르고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