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다니엘 영재교육원 원문보기 글쓴이: 천사
한 영혼을 위한 천 번의 기도와 백 번의 만남 |
|
필자는 지난 8년간 전도편지를 직접 쓰고 한 영혼을 위한 천 번의 기도와 백 번의 만남 전도를 하면서 전도편지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으며, 이를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母乳 傳道法)이라 부르고 연합으로 또는 개교회에서 수백회 전도 세미나를 해오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하나마 원고를 정리해 출판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을 통해 복음에 빚 갚는 생활(롬1:14),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삶(갈5:13), 그리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엡4:11~14)에 이르는 은혜를 힘입고, 전도의 열매를 맺어 전도받은 자와 함께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한국교회 전도의 문제점
1) 캠페인성 전도의 제고
20년간 4배 성장한 한국교회 |
|
한국 교회는 1973년까지만 해도 280만 정도였던 성도의 수가 ’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엑스플로 ’74성회, ’77성회, ’80 세계복음화성회, ’84 세계기도성회, 엑스플로 ’85성회, 한국기독교 100주년 성회, ’92 세계 성령대회 등 일련의 초교파 민족단위의 대성회를 통해 연합함으로써 지금은 1천2백만명의 교세로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며 이는 실로 20년만에 4배 이상 교회가 부흥한 셈입니다.
그러나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89년부터 96년까지 7년 동안은 200만명 정도 성장으로 과거 전도 부흥과 엄청난 차이가 나, 이에 당황한 한국 교회는 새로운 전도 전략의 하나로 배가운동, 총동원 전도 주일, 또는 예수 초청 큰 잔치라는 최대의 교회 행사를 단위 교회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해왔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 준비와 엄청난 물량을 투자해 가면서 전력 투구한 전도 행사에 긍정적인 면도 있겠으나 (온 교회를 전도의 바람으로 몰고갈 수 있는 좋은 기회) 흘린 땀에 비해 그 거둔 결실에 많은 회의를 가지는 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서울 A교회 담임 목회자가 제시한 총동원 전도주일의 허와 실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91년에는 3,000명, 92년에는 10,000명이 총동원 전도 주일에 초청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일회성 허수였음을 곧 알 수 있었다고 그의 강의노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생명을 내게 주옵소서” |
|
그 후에 시도된 새로운 전도 전략이 “한 생명을 내게 주옵소서”입니다. ‘한 생명 구원 운동’은 전도편지를 통한 모유 전도법의 근본 전도 정신이므로 앞으로 계속해 말씀드리기로 하겠으며,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 교회도 전도의 거품을 걷고 알림식 전도 운동을 뛰어넘어 생활 전도로 새로운 전도 전략을 세워야 할 때인 줄로 확신합니다.
2) 전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한국 교회 출석교인의 몇 퍼센트가 전도에 동참하고 있을까?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도시, 농촌, 대형 교회, 소형 교회가 차이가 있음) 전도의 이벤트를 통해 출석교인 30퍼센트 정도가 전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으나 그 중 10퍼센트 정도가 전도의 결실을 맺습니다(전도에 열정을 갖는 교회 중심).
그러나 이 수치도 좀더 세분화한다면 ±5퍼센트 정도이며 이는 90~95퍼센트가 전도에 무관심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한국 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의 조사에서도 참고했듯이 전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전도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전도하여 소위 전도왕이라는 영예(?)를 획득하나 안하는 사람들은 더욱 무관심해져 전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내 전도의 무풍지대가 확산되는데… |
|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전도의 사명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으며 또 전도할 충분한 시간과 능력이 있는 신자들(장로, 안수집사, 권사, 각 부서장) 가운데 전도의 무풍지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기류가 전도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신앙의 엘리트층(남자 직분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을 전도 현장에 적극적으로 동참시켜 전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양극화된 전도의 현상을 좁히는 방법은 없을까? 분명히 있으니 여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1) 교인들을 전도의 양적인 짐에서 해방시켜 ‘한 영혼 구원하는 전도 운동’을 장기적으로 실천해 보자.
(2) 이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전도의 양극화된 현장에 전도의 완충지대를 만들어 신앙의 엘리트층을 투입해 역할과 사명을 고조시켜 보자.
(3) 앉은 자리, 선 곳이 곧 전도의 문이 될 수 있도록 전도편지 운동의 일원으로 동참케 하자(모유 전도법 참조).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총동원 전도 주일이나 예수 초청 큰 잔치를 교회 부흥의 계기로 활용해 왔고 이러한 일련의 교회적 신앙운동(행사)을 앞두고 그 이름난 전도왕들을 초청해 전도의 천문학적인 결실을 간증으로 들으며 은혜와 도전을 받고 그 전도 방법을 닮고자 노력해 왔음은 사실입니다.
풀뿌리 전도자에게 목회자의 관심을… |
|
그러나 결과는 몇 사람의 화려한 전도왕 등장으로 모두의 관심이 그들에게로 쏠리고 있을 때 한 영혼 구원에 전심전력했던 대다수 성도들의 모습이 초라하게 되어 끝내 장막 뒤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현실에 대다수 목회자는 관심의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못 이해하면 총동원 전도주일 무용론이나 교회 부흥에 앞장선 전도왕의 역할과 중요성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같이 느낄 수 있겠으나 사실은 저 또한 총동원 주일 예찬론자이며 전도왕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닮고자 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현 시대적 전도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과거의 전도 방식대로 전도해 열매를 얻기는 매우 힘들다는 사실은 일선 목회자들과 전도 일선에 나선 전도자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결단만 남아 있습니다.
0에 가까운 1의 수를 제시하자 |
|
각 교회에서 모두가 전도자로 나서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전도의 동참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0에 가장 가까운 1의 수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시된 1의 숫자가 온 천하보다 더 귀하고 위대한 숫자임을 자랑하고 교육해야 하며, 이 1의 수 한가운데 교회내 항존직에 있는 일꾼들이 머물러 있게 함은 목회자의 역량이기도 하며 교회 성장에 있어 열쇠이기도 합니다.
3) 전도왕의 허와 실
“전도는 어렵다”라는 생활 전도의 훈련 |
|
필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제는 전도의 다른 면을 준비하고 실천할 때라고 보며 그 첫 단계는 “전도는 어렵다.”라는 생활 전도의 훈련입니다.
흔히들 전도왕들은 간증을 통해 “전도는 쉽다.”라고 말하며 쉽게 하는 방법으로 ‘열매는 성령님께서 맺게 하시니 전하기만 하라’ 또는 ‘예수 천당’ 한 마디에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다며 누구든 붙잡고 복음을 전하면 그곳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역설하며 평신도들을 길거리로 또는 아파트나 주택가로 내몹니다(필자 역시 주 2~3회 지하철과 노방 전도를 함).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열성적으로 전도에 동참한 교회는 성장해 왔다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단위 교회의 성장은 있었으나 한국 교회 전체를 놓고 볼 때 성장 둔화 또는 정지라는 통계 수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곤혹스럽습니다.
교회 부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
|
이 문제에 있어서 필자의 조심스러운 진단은 교인들의 수평 이동에 의한 교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며, 다음은 쉽게 교회에 등록시킨 후 전도자가 돌보지 못해 장기간 휴면 신자의 상태에서 열성적인 전도자를 만나면 또다시 쉽게 교회를 옮겨 다니는 철새 교인들의 양산(量産)입니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전도의 모델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행적을 읽어 보면 그의 말씀을 듣고 수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기사는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건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회개하여 예수를 믿으라”하니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행2:1~41)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전도자는 성령이 임한 베드로의 외침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이전에 3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복음을 전하셔서 구원의 텃밭을 일궈 놓으신 우리 주님의 모습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전도자인가? 인도자인가? |
|
그러므로 전도자는 내가 전도자인가, 인도자인가를 묻고 쉽게 수 백명 또는 수 천명을 교회로 데려왔다면 누군가가 그 영혼을 위해 천 번을 기도하고 백 번을 만났음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 문제의 해결점
1) 목회자가 먼저 전도하자
어느 교회에 초청되어 전도 세미나 후 목사님과 전도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목회자에게 있어 전도란 목회의 한 부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실제로 현장에 나가 전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목회자의 수고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목회자의 하루하루란 전쟁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 주일에 10번이 넘는 설교와 심방, 교인들의 경조사 주관, 특별집회 인도, 당회, 제직회, 성전 건축, 바깥 모임 참석 등으로 목회자의 일과는 하루 25시간이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하며 무엇을 위해 그리도 바쁘게 움직이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
|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당신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마시오. 그러므로 이 일로 시간을 보내고, 이 일을 위하여 당신이 쓰여지도록 하시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원하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당신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가시오. 당신이 얼마나 많이 설교했느냐 또는 이런저런 일들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최선을 다해 많은 영혼을 구원했느냐가 문제입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죄인을 데려와 회개하게 하시오. 그리고 당신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오. 거룩함이 없이는 그들이 주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단 하루도 전도하지 않으면… |
|
또한 무디(D. L Moody)는 “단 하루도 전도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고 했으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수 만명 교인 앞에서 설교하는 기쁨보다 죽어가는 한 영혼에게 전도하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에게 있어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은 어떤 목회(?)를 하셨으며 선교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셨을까요? 먼저는 기도요 다음은 전도이셨습니다(막1:35~38). 주님께서는 광야로 나가 많은 위험과 어려움 속에 직접 전도하시고 제자로 삼으셔서 교회의 주춧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위와 같은 주님의 모습은 목회자가 목회를 함에 있어 영원한 모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천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전도의 열매를 맺는 교회 |
|
모두가 한국 교회 성장이 멈췄다고 아우성치며 이런저런 처방을 내놓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한다면 목회자가 전도의 열매를 맺는 교회는 온 성도가 전도의 대열에 함께 참여해 부흥하고 성장하는 축복을 누리나 목회자가 본을 보이지 못하는 교회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서 이름값을 한다 할지라도 머지않은 시간에 성장의 대열에서 도태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2) 전도의 사명을 주자
신학적인 의미를 떠나 사명이란 ‘꼭 해야 될 일’을 말하며, 전도의 사명을 주자는 뜻은 교인들에게 “꼭 해야 될 큰 일감을 주자.”라는 말로 쉽게 풀이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잡일은 많이 시키지만 큰 일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아픈 현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위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 개인에게 주시는 전도의 명령이며 큰 일감입니다.
교회내 전도의 조퇴, 명퇴의 현상은… |
|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명퇴, 조퇴, 또는 황퇴 바람이 불어 직업과 일감의 소중함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남자가 평생 먹고 살 돈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자신을 나타내며 가문의 명예이기도 한 일감을 갖지 못하고, 또 가진 일감을 잃는다면 이는 꼬리 잘린 물고기에 비유 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 전도에 대한 의욕이 없거나, 사명 분담론을 내세워 전도를 다른 봉사로 대체해 만족케 한다면 사람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신앙 조퇴자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명으로서, 목회자는 수없는 설교외 반복된 교육을 통해 전도의 본을 보이며 일꾼을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전도의 목표를 설정해 주자
0에 가장 가까운 수는 1입니다. 이 수가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 전도 운동이라고 하나 교회적으로 말한다면 배가 운동이 됩니다.
1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수이다 |
|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전도하여 배가운동을 지상 목표로 삼고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만족한 결과를 얻은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한 생명 구원 운동은 전도의 최후 보루이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숫자인데 어디에 문제가 있기에 한 생명 구원 운동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관해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목회 계획에 있어 전도에 관한 마스터 플랜의 미비와 단기간 눈에 보이는 실적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 1이라는 수가 귀하고 아름답다는 교육 미비입니다. 작은 수는 기적의 수이며 이는 가까이에서만 볼 수 있고, 그것을 보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이 노출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작고 귀한 수일까요? 선택의 여지 없이 내 가까이 있는 구원받을 한 생명입니다. 나와 함께 호흡하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구체적인 삶의 본을 보이는 생활 전도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셋째, 목회자는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에 대한 위대성과 가치”를 늘 강조하며, 오늘 꼭 한 사람 전도라는 현실과 실천의 수를 뇌리에 심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1의 수에 박수와 1의 수에 격려를… |
|
또한 목회 현장에서 1의 수에 박수와 1의 수에 격려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전도의 중산층을 형성시켜 나간다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모범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4) 전도의 방법을 제시해 주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전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전도를 못한다는 이유 중 하나가 바쁘다는 핑계와 전도할 상황이 아니라는 변명입니다. 그런데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남자 일꾼들로 신앙의 터인 교회와 생활의 터인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전도의 사명에 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문제는 앉은 자리와 선 위치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전도 방법만 제시한다면 그곳에 새로운 변화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은 분명합니다.
매주 한 줄의 전도편지를 쓰게 하자 |
|
먼저 실천 가능한 방법으로 이들의 배움과 인간관계 그리고 베풀 수 있는 친화력을 이용해 대상을 정하게 한 후 매주 한 줄의 전도편지를 한 사람의 특정인에게 쓰도록 하는 방법입니다(전도편지 이용법 참조).
이 방법을 제시함에 있어 다음을 유념하도록 해야 합니다.
. 전도 대상은 1~2명을 넘지 않는다.
. 나를 알고 나의 사랑과 기도가 미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 한번 시작하면 3~5년간은 지속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 매주 한 통의 짧은 글을 꼭 쓰도록 한다.
. 전도편지 기도회를 만들어 서로 격려하고 기도로 도와 주며 간증으로 은혜를 나눈다.
. 복음에 빚진 자의 심경으로 동참케 한다(롬1:14).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너희는 우리의 편지 또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고후3:2~3). 뿐만 아니라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수년간 편지로 전도했습니다(눅,행).
바쁜 가운데서도 정이 그리운 현대인들에게 나를 알고 나의 사랑이 미치고 있으나,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분들에게 복음의 좋은 말씀과 기도로 쓴 한 줄의 전도편지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위대한 생명력을 나타내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 전도편지 쓰는 법
전도편지 작성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직접 매주 전도편지를 써서 전도자에게 발소이하는 방법, 둘째 교회나 전도편지 선교원으로부터 작성된 편지를 받아 전도할 대상에게 한두 줄 친필로 써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두 줄 친필로 쓰자 |
|
전자(직접 쓰는 방법)가 전도에 열매를 맺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나 쉬운 일이 아니기에 대부분 교회에서 전도편지 선교단체로부터 글을 받아 전도사역에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남는 전도편지 |
|
가. 구성
a) … 편지 발송 호수 및 발송 날짜
b) …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제목 설정
c) … 공감이 가는 예화(성경, 간증, 시사, 미담, 우화)
d) … 예수께로 이끄는 마무리 글
e) … ○○○님께
ㄱ. 매주 한두 줄 직접 써라
ㄴ. 관심을 표하라
ㄷ. 감사를 표하라
ㄹ.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f) … 전체를 설명하는 성경말씀 기재
나. 발송
a) … 우편을 이용할 경우
ㄱ. 주말이나 주초에 받으면 좋다
ㄴ. 여행지에서 엽서 전도편지를 써라
ㄷ. 우표를 붙일 때도 기도를 잊지 말라
b) … 직접 전할 경우
ㄱ. 읽어준 데 대해 고마움을 꼭 표현하자
ㄴ. 격주로 작은 선물을 전하자
ㄷ. 대문에 들어설 때 축복을 빌어라
전도편지 견본 a) 전도편지 제 ○○○ 편 1998년 9월 17일 b) 총을 잃었습니다 c) 사람이 살다보면 한번쯤 중요한 물건을 잃어 몹시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매년 12월에는 1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사단 규모의 대규모 모의 전투 훈련이 실시됩니다. 첫날은 12시간 야간 행군이 있습니다. 전방의 겨울 날씨는 콧구멍이 쩍쩍 달라붙듯이 매섭습니다. 아무리 방한복으로 무장을 해도 바늘 구멍으로 파고 드는 칼날같은 쇠바람은 살을 도려내고 말초 신경을 마비시킵니다. 행군을 하다가 잠이 들면 끝장입니다. 가상의 적들이 침공해 일단 후퇴한 우리 부대는 다음날 전열을 갖춰 공격에 나섰습니다. 아침에 열기가 다 빠져 나간 식은 밥을 황소가 장화 신고 건너간 멀건 고기 국물에 말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하고 나니 완전 군장에 산을 넘으라고 했습니다. 앞사람의 발뒤꿈치가 코에 와닿는 가파른 산 정상을 향하여 죽을 힘을 다해 넘고 있었습니다. |
쌓인 눈이 발목까지 푹푹 잠깁니다. 앞 뒤 전우들의 표정은 인내의 한계점을 이미 넘었습니다. 지휘관이 “그 자리에서 10분간 휴식을 한다.“고 외쳤습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렸던 말인가. 눈 쌓인 산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면서 칼빈 총을 어깨에 가로질러 메었기에 총을 벗어 어린 소나무 옆에 세워두고 밀려 드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꿀맛 같은 아식이 또 어디 있을까요? “휴식 끝. 출발!” 이 한 마디에 군인 정신이 발동해 산을 기어오르고 내리면서 얼마쯤 가다가 어깨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어어 내 총, 총이 없잖아.” 소대장님께 분실 신고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정신 없이 온 길을 쫓아 내려왔습니다. 엎어지고 자빠지며 휴식지에 도착했으나 그곳에는 우리가 쉬었던 흔적도 두고 온 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점점 불안은 더해갔고 저를 두고 떠난 전우들의 모습도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군인이 목숨과도 같은 총을 잃어버림은 영창을 살아도 한참 살아야 합니다.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 발걸음은 자꾸 산 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정신이 번쩍 들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시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 평지에서부터 산으로 올랐던 길을 더듬다 어느 한 지점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그곳으로 사력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 다시 새 힘이 솟았는지 단숨에 험한 산을 넘어 본대와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d) 생명처럼 귀한 것을 잃어 본 적이 있습니까? 건강을 잃은 자, 사업의 희망을 잃은 자, 배움의 기회를 잃은 자, 혹은 가정의 행복을 잃은 자 누구든 좋습니다. 어렵겠으나 먼저 높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십시오.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그러면 어느 지점에서 내 생명보다 귀한, 잃어버린 그 무엇을 다시 발견하고 기뻐 감사하며 하늘로부터 새 힘을 얻어 이미 앞서간 자들을 추월하는 승리하는 삶을 얻을 것입니다. 생명처럼 귀한 그 무엇을 잃었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교회로 나오십시오.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서 잃은 것을 다시 찾게 하시며 여러분을 영원한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e) 께 f)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전도란 무엇인가?
성경적으로 복음전도의 의미는 ‘유앙게리조’인데 그 뜻은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사용하신 말씀 중의 하나인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의하면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타난 복음이 바로 유앙게리조인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입니다. 어쨌든 신학적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모습을 중요시 여기는 관점에서 열매 맺는 생활 전도란 이렇다고 정의합니다.
전도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定立)하여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
좋은 전도자는 본을 보이고 양육하는 전도자다 |
|
모유전도법(母乳傳道法)의 근본적인 전도의 자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 오느냐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전도자가 먼저 되어, 전도된 한 영혼을 기도와 말씀과 행함으로 본을 보이고, 양육하여 뿌리 내리는 신자로 일꾼을 삼느냐 함에 그 사명이 있습니다.
* 설명 |
|
한국의 어머니로서 슬하에 6남매 모두를 명문 하버드 대학과 예일대를 졸업시켜 의대, 법대 교수로 훌륭히 키운 전혜성 박사는 미연방 교육부에 의해 ‘연구 대상 가족’으로 지정돼 88년 워싱턴에서 열린〈가정교육 학술회의〉에서 성공적인 가정 교육의 대표적 인물로 선정되어 주제 발표를 한 바 있는데, 전 박사는 한 인텨뷰에서 “아이 잘 키우는 법보다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고 회고하면서 “결혼 직후 9년 동안 옷이라고는 스타킹밖에 사지 못하는 세월도 보냈지만 자녀를 기르고 양육함에 있어 적당히 하지 말자고 스스로 채찍질했고… 하나님이 그런 우리 가족을 도와 오늘에 이르는 기쁨과 영광을 얻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1) 동구 밖 전도
눈으로 읽는 전도편지 |
|
모유 전도법에 있어서 전도의 첫 단계를 동구 밖 전도라 칭하고, 이 때 전도자는 세상 밖으로 나가 좋은 인간 관계 속에 먼저 전도할 대상을 기도 가운데 찾으며, 그에게 좋은 얼굴을 보여주고 끝으로 복음의 손을 내미는 과정을 거친 후 전도편지를 전해 줄 때 비로소 눈으로 편지를 읽습니다.
가. 대상을 찾아라(눅5:1~11)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눅5:2~3)
a) 먼저 보자
b)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자 c) 내 삶을 보여 주자
* 말씀 설명 |
|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를 부르시기 위해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전도하시기 전 행동은 모든 전도자가 본받아야 될 부분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먼저 전도할 대상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시기 위해 배 위에 오르셨고, 텅 빈 배 한 가운데 서서 자신이 메시야됨을 나타내신 후 비로소 그들의 빈 그물을 채워 주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전도할 대상을 보고 그들의 형편과 문제를 들여다본 후 예수 믿는 내 삶을 보여 줄 수 있을 때 전도자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나. 좋은 얼굴을 보여라 (행3:1~10)
예수를 닮은 얼굴 |
|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3~6)
a) 기도하는 얼굴
b) 우리를 보라 하는 얼굴
c) 예수의 능력이 나타나는 얼굴
* 말씀 설명 |
|
그러므로 전도의 기회란 기도하는 자에게 찾아오고 그 기도를 통해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이 잡아준 손, 능력의 손 |
|
“…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19~21)
a) 전도자가 내민 손
b) 주님이 잡아 준 손
c)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는 손
* 말씀 설명 |
|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핍박의 절정인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 사람 중에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전도했고,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내용입니다.
당시 안디옥에서는 각종 잡신 숭배가 성행했고 부유한 시민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는 곳에 하나님은 전도자를 보내 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 안디옥 교회는 이방 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간 증 |
|
‘군인 백여명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다.’
군대시절 전방 부대에서 군종병으로 약 3년간 복무했습니다. 당시 대대장님으로 육사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을 지낸분이 새로이 부임했습니다.
부대내 기독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저로서는 신경이 쓰였으나 대대장 순시 때 용기를 내어 교회의 필요성을 건의했더니 받아들여져 헌 막사를 개조해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를 호출해서 교회를 종교관으로 이름짓고 천주교 불교 신자들이 함께 사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군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대대장님은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저는 대대장님을 모시고 입당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간곡하게 예배에 참석해 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고 당신을 제외한 모든 장교와 사병은 예배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내리니 교회 가득 장병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을 모시지 않고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고 그의 능력의 팔이 함께해 주시므로 대대장님은 30분이나 지나서 참석하셨고 그분을 맨 앞자리에 모시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불교신자 대대장님의 도움으로 지역 복음화를 위해 야간학교를 설립했고 매주일 새벽기도 때는 백여명의 군인 신자들이 모여 군복음화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도편지 전도 |
|
1주~2주 … 전도 대상자를 위한 준비 기도의 단계
3주~10주 …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나눔의 단계
12주 이상 … 전도편지 쓰는 복음 전함의 단계
전도편지를 읽게함에 있어 기도와 사귐과 베풂이 없이 전도편지를 전해 줄 때 편지는 휴지통에 들어가고 말며, 전도편지의 속성은 기도와 사랑의 토양에서만 읽혀져 열매 맺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앞마당 전도
마음으로 읽는 전도편지… |
|
모유 전도법의 두 번째 단계로 앞마당 전도는 예수 믿기로 결심한 새신자가 교회 등록 이후 1년간 전도자가 마땅히 가르치고 행할 바를 보여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해진 전도편지는 비로소 마음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가. 식을 올려라 (요21:15)
“더 사랑하느냐 어린 양을 먹이라” |
|
오랜 연애 끝에 처녀는 마음을 정해 신랑의 아내가 되기로 했습니다. 새색시가 결혼식장으로 들어오는 날 그를 아내로 맞이하는 신랑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신부의 손가락에 영원히 함께하자는 증표를 주고 곁에 서서 만인 앞에 부부임을 선언합니다.
부모 형제 친지 등 모든 축하객은 새색시와 서로의 관계를 익히며 새 식구에게 따뜻한 애정과 축복을 아끼지 않습니다.
a) 함께 입장 … 교회에 등록 b) 예물을 줌 … 성경 찬송을 선물
c) 공포함 … 새신자 소개
* 말씀 설명 |
|
요한복음 21장 15~17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주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세 번 그의 사랑을 다짐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는 곧 주의 양을 먹일 자격은 주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을 어린 양과 함께하라. 꼴을 먹게 하라. 양의 목자가 됨을 알게 하라고 받아들여 생각해 봅니다.
나. 신혼여행을 떠나라(요21:16)
“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
|
결혼식 후 신혼부부는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낯선 곳을 향해 남편만 의지하고 기쁨으로 떠나는 신부에게 있어 남편은 좋은 안내자, 좋은 보호자, 그리고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a) 좋은 안내자가 되라 … 베풂으로 b) 좋은 보호자가 되라 … 기도로
c) 사랑과 희망을 심으라 … 말씀으로
* 말씀 설명 |
|
주님은 베드로에게 두 번째 말씀하십니다(요21:1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시고는 “내 양을 치라”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치라’는 말의 뜻은 ‘먹이라’는 의미보다는 좀더 구체성을 나타내 옳고 틀림을 분명히 가르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라는 뜻입니다.
다. 잉태케 하여라(요21:17)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
|
신혼 여행지에서 돌아온 새색시는 한동안 남편과 시부모님, 가까운 친척들에게 극진한 사랑과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뀐 환경에 적응이 서툴러 시부모님으로부터 꾸중도 듣고 남편의 관심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 적지않게 설명합니다.
“계속 살아! 말아?”
남편과 헤어져 자유스러운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갈까를 망설이고 있을 때 신부에게 한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속이 메스껍고 헛구역질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새색시의 갈등은 사라지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모함을 봅니다.
a) 성도의 교재에 참석 … 구역 예배 / 선교회
b) 성경공부 참석 … 학습 세례 c) 작은 봉사에 참석 … 구제/ 노력 봉사
하나님의 부르심
전도로 연단
저는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전도자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저 자신에게 늘 하곤 합니다.
. 전도 대상자를 위해 천 번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 전도 대상자를 위해 백 번의 만남을 이루려 힘쓰겠는가?
. 전도 대상자를 위해 5년간 전도편지를 쓸 수 있는가?
1) 한 영혼 귀함을 체험케 한 전도
인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내와 저는 한달간 이 교회 저 교회 순례예배(?)를 드리며 좋은 교회, 좋은 목사님을 만나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가운데, 좋은 광성교회 훌륭한 김창인 목사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지역 ○○ 교회에서 교회학교 부장과 학생회 지도 교사까지 한 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데 속이 상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옮긴 2년간은 주일 낮예배에만 참석하는 보따리 신자로 전락했습니다. 과거에 그렇게도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며 또 성경을 읽던 제 모습은 어느 한 구석에도 보이지 않고 그저 낙엽따라 바람따라 이리저리 뒹굴었습니다.
또한 제가 섬기고 있는 광성교회는 2천 몇 백명이 성경공부하는 소문난 교회로 성경 공부를 하지 않으면 교인들과 서로 어울리기 힘든 상황이었으나 신학 공부를 2년 정도 한 저의 자존심으로 초급 성경 공부반에 들어가 새신자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즈음에 저는 저의 친구 목사님을 만나 하나님 앞에 그동안 바르게 살지 못했음과 되먹지 못한 신앙의 교만을 회개하고 두 가지 서원 기도를 드렸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결심한 첫 주부터 교회에서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서원 기도를 드린 주일 날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이른 시간에 용기를 내어 교회에서 봉사하는 각 기관을 기웃거렸으나 여의치 않아 결국 20여년간 봉사한 경험을 자본삼아 교회학교로 갔습니다.
여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최초 한달간 20명 어린이를 목표로 한 전도일지를 공개합니다.
1990년 1월 ○일(토) 오후
전도목표 20명 : 전도에 자신감으로 행동함
전도장소 : 교회 근처 놀이터와 초등학교 앞
준비물 : 껌, 사탕, 연필, 전도지
현장결심 : 28명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기로 약속함
결과 : 한 명도 나오지 않음
첫 주 토요일 자신을 가지고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티로 가서 껌, 사탕, 연필 등을 주면서 전도하니 28명의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기로 약속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아 실패함.
1990년 1월 ○○일(토) 오후
전도목표 10명 : 실망하여 반으로 축소
전도장소 : 교회 근처 놀이터와 초등학교 앞
준비물 : 아이스크림, 노트, 전도지
현장결심 : 아이스크림 먹은 22명이 자진해서 나오겠다고 약속
결과 : 역시 한 명도 나오지 않음
두 번째 주 토요일 달라진 저의 전도 모습은 아이들에게 좀더 비싼 물건을 사주고 먹여 물량 작전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못견딜 방법을 썼으나 역시 실패로 끝났음.
1990년 1월 ○○일(토) 오후
전도목표 5명 : 점점 자신을 잃음
전도장소 : 교회 근처 놀이터와 초등학교 앞
준비물 : 기도 명단과 성경 찬송 전도지 (물질보다 기도와 사랑으로 만남)
현장결심 : 신경쓰지 않음
결과 : 역시 한 명도 나오지 않음 / 교사들 이상기류 감지
교회학교 반을 배정받은 지 3주째까지 한 명도 등록시키지 못하고 빈 자리를 혼자 지키려니 죽을 맛이었고 왠지 교사들의 쑥덕거림에도 신경이 쓰임.
1990년 2월 ○○일(토) 오후
전도목표 1명 : 한 생명이 귀함을 깨달음
전도장소 : 교회 근처 놀이터와 학교 앞
준비물 : 한 생명 전도를 위해 작성한 기도 명단
현장결심 : 아이들이 닫힌 마음을 조금 열어 보임
교회학교 새 반을 맡아 전도한 지 꼭 한달이 되는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오는 주일에 한 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교회에 가지 못하면 교사직을 그만둔다는 각오로 아이들 앞에 매달려 불쌍한 제 모습을 보였습니다. 20명, 10명, 5명보다 이제 한 생명의 귀함을 아이들 앞에서 실토했습니다. “나는 너만 기다릴게, 꼭 교회로 나오너라.” 저의 간절한 모습을 본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두워질 무렵 내일 날씨를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와 일기예보를 보고 저는 교회학교도 이제 떠나야겠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빗나가기를 기도한 일기 예보는 그날따라 정확히 맞아떨어져 새벽부터 겨울 눈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일찍 교회학교로 가서 한 달간 아무도 앉지 않은 긴 의자 셋을 닦으면서 “한 명만, 한 명만,”을 끝도 없이 불렀습니다.
9시 5분 전 뒤에서 교사 기도회 후 예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텅 빈 우리 반을 바라보면서 저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강심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공과책과 출석부를 서기부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슬그머니 빠져나왔습니다.
패잔병의 모습으로 한 달간 숱한 아이들을 만났던 놀이터 앞에서, 그리고 학교 앞에서 전도에 무능한 제 모습에 자탄과 눈물의 회개를 했습니다.
골목 끝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가에 ‘전자 오락실’이라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곳이었으나 마음이 동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꽉 들어차 전자 오락에 열중인데 가만히 보니 지난 한 달간 만났던 그 녀석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습니다.
제 심장은 방망이질을 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 왔다. 일어나 교회로 가자.”
그래도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리높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서! 교회로 가자니까!”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재수없게 들켰네.”하며 투덜대던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소대가 되어 비를 맞으며 교회로 가서 빈 의자를 채웠고 1년 동안 48명의 어린이들이 교회를 들락거리며 성경 말씀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첫발을 내디디는 저에게 한 생명의 귀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찾아가 사랑을 나누게 하신 후 귀한 생명들을 붙여주셨습니다.
2) 양육 전도를 통한 연단
하나님께 서원기도 드린 대로 1991년 2월 직장에 사표를 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즉시 수리가 되지 않아 한동안 전도일과 직장일을 겸하며 8개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전도사역을 준비하는 가운데 노방전도보다 태신자 전도에 힘쓰기로 하고 태신자를 만듦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전도에 임했으며 이 원리가 모유 전도법의 기초가 됐습니다.
첫째, 무릎으로 전도하자
둘째, 손으로 전도하자
셋째, 발로 전도하자
넷째, 서리 집사가 될 때까지 양육 전도하자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 가운데 20명을 뽑아 전도 대상으로 삼고 한 달간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도움 없는 전도는 결코 열매 맺을 수 없음을 어린이 전도에서 이미 체험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병행하면서 더 가까워지기 위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했습니다. 과거의 친밀함은 이해타산에 의해 맺어진 사업적인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꾸밈없는 사랑으로 제가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여러 번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 힘썼고, 이런 저의 행동에 그들은 부담스러운 모습으로 조금씩 조금씩 허물을 벗고 좋은 친구로 다가왔습니다.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좋은 친구가 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저는 이들의 허락을 얻어 전도편지를 매주 월요일 한 통씩 띄우기로 했습니다.
첫째 주에 정성을 다해 20통의 편지를 썼고 광성교회 주보와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포장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부쳤습니다.
목요일쯤 되니 어떤 반응의 전화가 올까 하는 기대감에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다 지나면서 한 통의 전화도 받지 못했습니다.
둘째 주, 셋째 주… 아홉째 주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전도편지를 보낸 지 두 달이 지났으나 한 사람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번 주간에 띄우는 편지를 받고도 아무 소식이 없으면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회사 책임자들에게는 적당한 전도 방법이 아니라 믿고 전도편지 선교를 끝내겠습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습니다. 그만큼 기도하고 그만큼 정성을 베풀었는데 어찌 전화 한 통 없을까?
어쩌면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은 기분에 간곡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전화를 기다렸으나 허사였습니다. 붓을 꺾었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직장을 사임한 결과가 이런가 싶은 생각에 참담한 마음이 들어 기도의 문마저 막혀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내가 전도 대상자들을 한번 찾아가 편지를 읽고 있는지를 알아 보고 편지 쓰기를 중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면을 했으나 실망 가운데 그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도편지 쓰기를 중단한 지 두 주가 지난 어느 목요일,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불만에 꽉 차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H 사장입니다.”
그 소리를 듣자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H 사장님은 저의 전도대상으로 전도편지를 처음부터 받은 분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원장님, 전도편지를 보내려면 끝까지 보낼 것이지 두 달 보내고 끊을 바에야 왜 이 일을 시작해 사람 피곤하게 만듭니까?”
“전도편지 받아 읽고 있습니까?”
그분의 원망 섞인 말투에 저도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H 사장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매주 전도편지를 혼자 회사에서 읽다가 하루는 일이 너무 바빠서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귀가 했는데 집에서 아내와 함께 편지를 읽기 시작한 후로 아내는 편지를 기다려 왔다고 했습니다.
두주째 편지를 기다려온 아내는 “내가 예수 믿을까 싶어 편지를 버리는 거지?” 하며 서운해 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부족한 저의 글을 읽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H 사장님께 정중히 사과 드린 후 용기를 내어 스무 가정에 다시 전도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때는 각각 달랐으나 3년 동안 전도편지를 보내면서 열두 가정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으며 계속해 5년 동안 편지를 보내는 가운데 여덟가정이 서리 집사로 임명되어 전도편지를 졸업하고 성실한 주님의 일꾼으로 각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전도편지를 이용한 양육 전도를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해 인내하게 하시는 은혜와 눈물로 뿌린 씨앗은 기쁨으로 꼭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3)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은혜
“K씨를 당신이 꼭 전도했으면 좋겠다.”는 특명을 아내로부터 받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전도할 대상자의 성함과 그분이 왜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파악한 후, 한 주간 전도를 위한 준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에는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규모와 시설이 크고 훌륭한 안경점이 있는데, 이 가게는 주변 교회에서 매년 한두 번 실시하는 총동원 전도 때가 되면 협박과 회유로 수난 아닌 수난을 겪는 가운데도 초지일관 지조(?)를 지킨 믿음직한 사장님이 계십니다.
한 주간 기도 후 먼저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손님으로 안경점에 들어섰습니다. 간단한 인사 후 “끼고 있는 안경이 불편해 왔다.”고 하니 시력도 다시 검사하고 안경을 살핀 후 “아직은 더 사용하셔도 됩니다.”며 안경을 깨끗이 닦아 내밉니다.
정말 경우가 바른 사장님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 안경의 불편을 말하니 “안경 알 코팅이 벗겨졌고 렌즈에 상처가 좀 있으니 알만 바꾸자.”로 결정하고 값을 지불한 후 기분 좋은 첫 만남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2주일후 케이크를 사들고 안경점에 들렸습니다. 그 동안 전도를 위해 늘 기도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사장님이 만들어 주신 안경을 쓴 후로는 글도 잘 보이고 눈에 피로감도 없어져 너무 고마워 케이크를 사왔습니다.” 고 했더니 사장님은 “가게 문 연 지 17년 동안 손님이 고맙다고 케이크를 사 오신 분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고 맞절을 합니다.
한 걸음 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전도 대상자에게 다가서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그곳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예수의 ‘예’도 교회의 ‘교’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전도 대상자와 기도 가운데 좋은 관계를 맺은 지도 3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제가 쓴 책〈한 영혼을 위한 천 번의 기도와 백 번의 만남〉을 가지고 사장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으시고 저에게 달려옵니다.
저는 그분께 책을 내밀면서 꼭 한번 읽어 주시면 고맙겠다고 한 후 서둘러 나왔습니다.
2주 후 안경점에 들르니 저의 손을 잡고는 좋은 책을 선물해 주었음에 대한 감사와 자신이 감명 깊에 본 곳을 펼치면서 두 번째 읽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이 때 “사장님, 책에서 보신 글과 같은 편지를 매주 한통씩 보내드리면 읽어 주시겠습니까?”하니 한 통 아니라 두 통도 읽겠다고 말합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손으로 사랑을 베풀기 시작한지 4개월이 되면서 이제는 그에게 발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광성교회는 1년에 두 번 총동원 출석 전도 주일 행사를 갖습니다. 그해 11월 셋째 주가 총동원 전도 주일인데 저는 11월 둘째주가 지난 월요일 사장님께 찾아가 오는 목요일 함께 점심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목요일 약속한 12시 30분에 가게로 가니 사장님께서는 정장을 하시고 저를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깨끗한 일식집으로 가서 사장님이 원하시는 음식을 주문해 많은 손님들 앞에 간절한 첫 기도를 드렸습니다. 식사 후 “사장님, 부탁이 있습니다.”라는 말에 긴장된 사장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고 저는 지난 5개월동안 소중히 간직한 한 영혼 구원의 소리를 했습니다.
“예수 믿읍시다.”
이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가게 문을 들어서자마자 전도지를 주고 예수 믿으라고 하는데 집사님은 왜 지금에 와서야 이 말을 하느냐.” 고 하시며 “지극 정성에 처음에는 보험회사 직원인 줄 알았다.”며 웃습니다.
등록 후 꼭 한 번 집안 사정으로 예배에 빠지신 사장님은 매주 정확한 시간에 예배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으시고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직원들도 예수님을 영접했으나 사장님 뒷모습에 그림자처럼 발목을 잡고 있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저는 오늘도 천 번을 기도하고 백 번을 만나고자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엡4:13) 하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신 것처럼 전도 대상자를 위한 기도와 그들의 삶 가까이에서 제 신앙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동은 매우 조심스럽고 두려우면서도 이를 통해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함께 이르는 은혜를 받습니다.
전전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母乳 傳道法)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의 중요성을 강의하면서…
눈앞에 다가온 21세기에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정보사회의 발달로 개개인의 생활 행동반경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듯 소프트웨어의 황제인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손끝 정보시대’(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를 예고했으며, 이미 Internet을 통한 재택 근무, 학교수업, 개인 과외, 쇼핑, 병원 진료, 취미생활, 은행 및 주식거래 등은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한 영혼을 위한 천 번의 기도와 백 번의 만남 |
|
필자는 지난 8년간 전도편지를 직접 쓰고 한 영혼을 위한 천 번의 기도와 백 번의 만남 전도를 하면서 전도편지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으며, 이를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母乳 傳道法)이라 부르고 연합으로 또는 개교회에서 수백회 전도 세미나를 해오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하나마 원고를 정리해 출판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을 통해 복음에 빚 갚는 생활(롬1:14),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삶(갈5:13), 그리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엡4:11~14)에 이르는 은혜를 힘입고, 전도의 열매를 맺어 전도받은 자와 함께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한국교회 전도의 문제점
1) 캠페인성 전도의 제고
20년간 4배 성장한 한국교회 |
|
한국 교회는 1973년까지만 해도 280만 정도였던 성도의 수가 ’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엑스플로 ’74성회, ’77성회, ’80 세계복음화성회, ’84 세계기도성회, 엑스플로 ’85성회, 한국기독교 100주년 성회, ’92 세계 성령대회 등 일련의 초교파 민족단위의 대성회를 통해 연합함으로써 지금은 1천2백만명의 교세로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며 이는 실로 20년만에 4배 이상 교회가 부흥한 셈입니다.
그러나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89년부터 96년까지 7년 동안은 200만명 정도 성장으로 과거 전도 부흥과 엄청난 차이가 나, 이에 당황한 한국 교회는 새로운 전도 전략의 하나로 배가운동, 총동원 전도 주일, 또는 예수 초청 큰 잔치라는 최대의 교회 행사를 단위 교회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해왔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 준비와 엄청난 물량을 투자해 가면서 전력 투구한 전도 행사에 긍정적인 면도 있겠으나 (온 교회를 전도의 바람으로 몰고갈 수 있는 좋은 기회) 흘린 땀에 비해 그 거둔 결실에 많은 회의를 가지는 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서울 A교회 담임 목회자가 제시한 총동원 전도주일의 허와 실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91년에는 3,000명, 92년에는 10,000명이 총동원 전도 주일에 초청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일회성 허수였음을 곧 알 수 있었다고 그의 강의노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생명을 내게 주옵소서” |
|
그 후에 시도된 새로운 전도 전략이 “한 생명을 내게 주옵소서”입니다. ‘한 생명 구원 운동’은 전도편지를 통한 모유 전도법의 근본 전도 정신이므로 앞으로 계속해 말씀드리기로 하겠으며,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 교회도 전도의 거품을 걷고 알림식 전도 운동을 뛰어넘어 생활 전도로 새로운 전도 전략을 세워야 할 때인 줄로 확신합니다.
2) 전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한국 교회 출석교인의 몇 퍼센트가 전도에 동참하고 있을까?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도시, 농촌, 대형 교회, 소형 교회가 차이가 있음) 전도의 이벤트를 통해 출석교인 30퍼센트 정도가 전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으나 그 중 10퍼센트 정도가 전도의 결실을 맺습니다(전도에 열정을 갖는 교회 중심).
그러나 이 수치도 좀더 세분화한다면 ±5퍼센트 정도이며 이는 90~95퍼센트가 전도에 무관심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한국 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의 조사에서도 참고했듯이 전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전도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전도하여 소위 전도왕이라는 영예(?)를 획득하나 안하는 사람들은 더욱 무관심해져 전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내 전도의 무풍지대가 확산되는데… |
|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전도의 사명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으며 또 전도할 충분한 시간과 능력이 있는 신자들(장로, 안수집사, 권사, 각 부서장) 가운데 전도의 무풍지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기류가 전도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신앙의 엘리트층(남자 직분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을 전도 현장에 적극적으로 동참시켜 전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양극화된 전도의 현상을 좁히는 방법은 없을까? 분명히 있으니 여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1) 교인들을 전도의 양적인 짐에서 해방시켜 ‘한 영혼 구원하는 전도 운동’을 장기적으로 실천해 보자.
(2) 이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전도의 양극화된 현장에 전도의 완충지대를 만들어 신앙의 엘리트층을 투입해 역할과 사명을 고조시켜 보자.
(3) 앉은 자리, 선 곳이 곧 전도의 문이 될 수 있도록 전도편지 운동의 일원으로 동참케 하자(모유 전도법 참조).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총동원 전도 주일이나 예수 초청 큰 잔치를 교회 부흥의 계기로 활용해 왔고 이러한 일련의 교회적 신앙운동(행사)을 앞두고 그 이름난 전도왕들을 초청해 전도의 천문학적인 결실을 간증으로 들으며 은혜와 도전을 받고 그 전도 방법을 닮고자 노력해 왔음은 사실입니다.
풀뿌리 전도자에게 목회자의 관심을… |
|
그러나 결과는 몇 사람의 화려한 전도왕 등장으로 모두의 관심이 그들에게로 쏠리고 있을 때 한 영혼 구원에 전심전력했던 대다수 성도들의 모습이 초라하게 되어 끝내 장막 뒤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현실에 대다수 목회자는 관심의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못 이해하면 총동원 전도주일 무용론이나 교회 부흥에 앞장선 전도왕의 역할과 중요성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같이 느낄 수 있겠으나 사실은 저 또한 총동원 주일 예찬론자이며 전도왕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닮고자 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현 시대적 전도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과거의 전도 방식대로 전도해 열매를 얻기는 매우 힘들다는 사실은 일선 목회자들과 전도 일선에 나선 전도자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결단만 남아 있습니다.
0에 가까운 1의 수를 제시하자 |
|
각 교회에서 모두가 전도자로 나서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전도의 동참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0에 가장 가까운 1의 수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시된 1의 숫자가 온 천하보다 더 귀하고 위대한 숫자임을 자랑하고 교육해야 하며, 이 1의 수 한가운데 교회내 항존직에 있는 일꾼들이 머물러 있게 함은 목회자의 역량이기도 하며 교회 성장에 있어 열쇠이기도 합니다.
3) 전도왕의 허와 실
“전도는 어렵다”라는 생활 전도의 훈련 |
|
필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제는 전도의 다른 면을 준비하고 실천할 때라고 보며 그 첫 단계는 “전도는 어렵다.”라는 생활 전도의 훈련입니다.
흔히들 전도왕들은 간증을 통해 “전도는 쉽다.”라고 말하며 쉽게 하는 방법으로 ‘열매는 성령님께서 맺게 하시니 전하기만 하라’ 또는 ‘예수 천당’ 한 마디에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다며 누구든 붙잡고 복음을 전하면 그곳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역설하며 평신도들을 길거리로 또는 아파트나 주택가로 내몹니다(필자 역시 주 2~3회 지하철과 노방 전도를 함).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열성적으로 전도에 동참한 교회는 성장해 왔다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단위 교회의 성장은 있었으나 한국 교회 전체를 놓고 볼 때 성장 둔화 또는 정지라는 통계 수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곤혹스럽습니다.
교회 부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
|
이 문제에 있어서 필자의 조심스러운 진단은 교인들의 수평 이동에 의한 교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며, 다음은 쉽게 교회에 등록시킨 후 전도자가 돌보지 못해 장기간 휴면 신자의 상태에서 열성적인 전도자를 만나면 또다시 쉽게 교회를 옮겨 다니는 철새 교인들의 양산(量産)입니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전도의 모델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행적을 읽어 보면 그의 말씀을 듣고 수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기사는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건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회개하여 예수를 믿으라”하니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행2:1~41)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전도자는 성령이 임한 베드로의 외침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이전에 3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복음을 전하셔서 구원의 텃밭을 일궈 놓으신 우리 주님의 모습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전도자인가? 인도자인가? |
|
그러므로 전도자는 내가 전도자인가, 인도자인가를 묻고 쉽게 수 백명 또는 수 천명을 교회로 데려왔다면 누군가가 그 영혼을 위해 천 번을 기도하고 백 번을 만났음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 문제의 해결점
1) 목회자가 먼저 전도하자
어느 교회에 초청되어 전도 세미나 후 목사님과 전도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목회자에게 있어 전도란 목회의 한 부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실제로 현장에 나가 전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목회자의 수고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목회자의 하루하루란 전쟁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 주일에 10번이 넘는 설교와 심방, 교인들의 경조사 주관, 특별집회 인도, 당회, 제직회, 성전 건축, 바깥 모임 참석 등으로 목회자의 일과는 하루 25시간이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하며 무엇을 위해 그리도 바쁘게 움직이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
|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당신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마시오. 그러므로 이 일로 시간을 보내고, 이 일을 위하여 당신이 쓰여지도록 하시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원하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당신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가시오. 당신이 얼마나 많이 설교했느냐 또는 이런저런 일들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최선을 다해 많은 영혼을 구원했느냐가 문제입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죄인을 데려와 회개하게 하시오. 그리고 당신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오. 거룩함이 없이는 그들이 주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단 하루도 전도하지 않으면… |
|
또한 무디(D. L Moody)는 “단 하루도 전도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고 했으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수 만명 교인 앞에서 설교하는 기쁨보다 죽어가는 한 영혼에게 전도하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에게 있어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은 어떤 목회(?)를 하셨으며 선교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셨을까요?
먼저는 기도요 다음은 전도이셨습니다(막1:35~38). 주님께서는 광야로 나가 많은 위험과 어려움 속에 직접 전도하시고 제자로 삼으셔서 교회의 주춧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위와 같은 주님의 모습은 목회자가 목회를 함에 있어 영원한 모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천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전도의 열매를 맺는 교회 |
|
모두가 한국 교회 성장이 멈췄다고 아우성치며 이런저런 처방을 내놓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한다면 목회자가 전도의 열매를 맺는 교회는 온 성도가 전도의 대열에 함께 참여해 부흥하고 성장하는 축복을 누리나 목회자가 본을 보이지 못하는 교회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서 이름값을 한다 할지라도 머지않은 시간에 성장의 대열에서 도태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그 유명한 교회들, 구라파와 미국의 대형 교회들을 보십시오. 한 세대에 신앙의 르네상스를 외쳤던 그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고 이젠 기념관으로, 또는 관광 코스로 전락해 버린 모습을 한 제기 후 우리의 거울로 삼고 전도에 생명을 걸어야 될 줄 믿습니다.
2) 전도의 사명을 주자
신학적인 의미를 떠나 사명이란 ‘꼭 해야 될 일’을 말하며, 전도의 사명을 주자는 뜻은 교인들에게 “꼭 해야 될 큰 일감을 주자.”라는 말로 쉽게 풀이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잡일은 많이 시키지만 큰 일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아픈 현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위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 개인에게 주시는 전도의 명령이며 큰 일감입니다.
교회내 전도의 조퇴, 명퇴의 현상은… |
|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명퇴, 조퇴, 또는 황퇴 바람이 불어 직업과 일감의 소중함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남자가 평생 먹고 살 돈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자신을 나타내며 가문의 명예이기도 한 일감을 갖지 못하고, 또 가진 일감을 잃는다면 이는 꼬리 잘린 물고기에 비유 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 전도에 대한 의욕이 없거나, 사명 분담론을 내세워 전도를 다른 봉사로 대체해 만족케 한다면 사람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신앙 조퇴자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명으로서, 목회자는 수없는 설교외 반복된 교육을 통해 전도의 본을 보이며 일꾼을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전도의 목표를 설정해 주자
0에 가장 가까운 수는 1입니다. 이 수가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 전도 운동이라고 하나 교회적으로 말한다면 배가 운동이 됩니다.
1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수이다 |
|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전도하여 배가운동을 지상 목표로 삼고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만족한 결과를 얻은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한 생명 구원 운동은 전도의 최후 보루이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숫자인데 어디에 문제가 있기에 한 생명 구원 운동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관해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목회 계획에 있어 전도에 관한 마스터 플랜의 미비와 단기간 눈에 보이는 실적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 1이라는 수가 귀하고 아름답다는 교육 미비입니다. 작은 수는 기적의 수이며 이는 가까이에서만 볼 수 있고, 그것을 보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이 노출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작고 귀한 수일까요? 선택의 여지 없이 내 가까이 있는 구원받을 한 생명입니다. 나와 함께 호흡하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구체적인 삶의 본을 보이는 생활 전도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셋째, 목회자는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에 대한 위대성과 가치”를 늘 강조하며, 오늘 꼭 한 사람 전도라는 현실과 실천의 수를 뇌리에 심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1의 수에 박수와 1의 수에 격려를… |
|
또한 목회 현장에서 1의 수에 박수와 1의 수에 격려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전도의 중산층을 형성시켜 나간다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모범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4) 전도의 방법을 제시해 주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전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전도를 못한다는 이유 중 하나가 바쁘다는 핑계와 전도할 상황이 아니라는 변명입니다. 그런데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남자 일꾼들로 신앙의 터인 교회와 생활의 터인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전도의 사명에 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문제는 앉은 자리와 선 위치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전도 방법만 제시한다면 그곳에 새로운 변화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은 분명합니다.
매주 한 줄의 전도편지를 쓰게 하자 |
|
먼저 실천 가능한 방법으로 이들의 배움과 인간관계 그리고 베풀 수 있는 친화력을 이용해 대상을 정하게 한 후 매주 한 줄의 전도편지를 한 사람의 특정인에게 쓰도록 하는 방법입니다(전도편지 이용법 참조).
이 방법을 제시함에 있어 다음을 유념하도록 해야 합니다.
. 전도 대상은 1~2명을 넘지 않는다.
. 나를 알고 나의 사랑과 기도가 미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 한번 시작하면 3~5년간은 지속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 매주 한 통의 짧은 글을 꼭 쓰도록 한다.
. 전도편지 기도회를 만들어 서로 격려하고 기도로 도와 주며 간증으로 은혜를 나눈다.
. 복음에 빚진 자의 심경으로 동참케 한다(롬1:14).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너희는 우리의 편지 또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고후3:2~3). 뿐만 아니라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수년간 편지로 전도했습니다(눅,행).
바쁜 가운데서도 정이 그리운 현대인들에게 나를 알고 나의 사랑이 미치고 있으나,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분들에게 복음의 좋은 말씀과 기도로 쓴 한 줄의 전도편지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위대한 생명력을 나타내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 전도편지 쓰는 법
전도편지 작성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직접 매주 전도편지를 써서 전도자에게 발소이하는 방법, 둘째 교회나 전도편지 선교원으로부터 작성된 편지를 받아 전도할 대상에게 한두 줄 친필로 써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두 줄 친필로 쓰자 |
|
전자(직접 쓰는 방법)가 전도에 열매를 맺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나 매주 장문의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대부분 교회에서 전도편지 선교단체로부터 글을 받아 전도사역에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남는 전도편지 |
|
가. 구성
a) … 편지 발송 호수 및 발송 날짜
b) …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제목 설정
c) … 공감이 가는 예화(성경, 간증, 시사, 미담, 우화)
d) … 예수께로 이끄는 마무리 글
e) … ○○○님께
ㄱ. 매주 한두 줄 직접 써라
ㄴ. 관심을 표하라
ㄷ. 감사를 표하라
ㄹ.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f) … 전체를 설명하는 성경말씀 기재
나. 발송
a) … 우편을 이용할 경우
ㄱ. 주말이나 주초에 받으면 좋다
ㄴ. 여행지에서 엽서 전도편지를 써라
ㄷ. 우표를 붙일 때도 기도를 잊지 말라
b) … 직접 전할 경우
ㄱ. 읽어준 데 대해 고마움을 꼭 표현하자
ㄴ. 격주로 작은 선물을 전하자
ㄷ. 대문에 들어설 때 축복을 빌어라
전도편지 견본 a) 전도편지 제 ○○○ 편 1998년 9월 17일 b) 총을 잃었습니다 c) 사람이 살다보면 한번쯤 중요한 물건을 잃어 몹시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매년 12월에는 1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사단 규모의 대규모 모의 전투 훈련이 실시됩니다. 첫날은 12시간 야간 행군이 있습니다. 전방의 겨울 날씨는 콧구멍이 쩍쩍 달라붙듯이 매섭습니다. 아무리 방한복으로 무장을 해도 바늘 구멍으로 파고 드는 칼날같은 쇠바람은 살을 도려내고 말초 신경을 마비시킵니다. 행군을 하다가 잠이 들면 끝장입니다. 가상의 적들이 침공해 일단 후퇴한 우리 부대는 다음날 전열을 갖춰 공격에 나섰습니다. 아침에 열기가 다 빠져 나간 식은 밥을 황소가 장화 신고 건너간 멀건 고기 국물에 말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하고 나니 완전 군장에 산을 넘으라고 했습니다. 앞사람의 발뒤꿈치가 코에 와닿는 가파른 산 정상을 향하여 죽을 힘을 다해 넘고 있었습니다. 쌓인 눈이 발목까지 푹푹 잠깁니다. 앞 뒤 전우들의 표정은 인내의 한계점을 이미 넘었습니다. 지휘관이 “그 자리에서 10분간 |
휴식을 한다.“고 외쳤습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렸던 말인가. 눈 쌓인 산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면서 칼빈 총을 어깨에 가로질러 메었기에 총을 벗어 어린 소나무 옆에 세워두고 밀려 드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꿀맛 같은 아식이 또 어디 있을까요? “휴식 끝. 출발!” 이 한 마디에 군인 정신이 발동해 산을 기어오르고 내리면서 얼마쯤 가다가 어깨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어어 내 총, 총이 없잖아.” 소대장님께 분실 신고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정신 없이 온 길을 쫓아 내려왔습니다. 엎어지고 자빠지며 휴식지에 도착했으나 그곳에는 우리가 쉬었던 흔적도 두고 온 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점점 불안은 더해갔고 저를 두고 떠난 전우들의 모습도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군인이 목숨과도 같은 총을 잃어버림은 영창을 살아도 한참 살아야 합니다.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 발걸음은 자꾸 산 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정신이 번쩍 들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시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 평지에서부터 산으로 올랐던 길을 더듬다 어느 한 지점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그곳으로 사력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 다시 새 힘이 솟았는지 단숨에 험한 산을 넘어 본대와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
d) 생명처럼 귀한 것을 잃어 본 적이 있습니까? 건강을 잃은 자, 사업의 희망을 잃은 자, 배움의 기회를 잃은 자, 혹은 가정의 행복을 잃은 자 누구든 좋습니다. 어렵겠으나 먼저 높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십시오.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그러면 어느 지점에서 내 생명보다 귀한, 잃어버린 그 무엇을 다시 발견하고 기뻐 감사하며 하늘로부터 새 힘을 얻어 이미 앞서간 자들을 추월하는 승리하는 삶을 얻을 것입니다. 생명처럼 귀한 그 무엇을 잃었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교회로 나오십시오.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서 잃은 것을 다시 찾게 하시며 여러분을 영원한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e) 께 f)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전도란 무엇인가?
성경적으로 복음전도의 의미는 ‘유앙게리조’인데 그 뜻은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사용하신 말씀 중의 하나인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의하면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타난 복음이 바로 유앙게리조인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입니다. 어쨌든 신학적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모습을 중요시 여기는 관점에서 열매 맺는 생활 전도란 이렇다고 정의합니다.
전도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定立)하여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전도편지를 이용한 모유 전도법
좋은 전도자는 본을 보이고 양육하는 전도자다 |
|
모유전도법(母乳傳道法)의 근본적인 전도의 자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 오느냐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전도자가 먼저 되어, 전도된 한 영혼을 기도와 말씀과 행함으로 본을 보이고, 양육하여 뿌리 내리는 신자로 일꾼을 삼느냐 함에 그 사명이 있습니다.
* 설명 |
|
한국의 어머니로서 슬하에 6남매 모두를 명문 하버드 대학과 예일대를 졸업시켜 의대, 법대 교수로 훌륭히 키운 전혜성 박사는 미연방 교육부에 의해 ‘연구 대상 가족’으로 지정돼 88년 워싱턴에서 열린〈가정교육 학술회의〉에서 성공적인 가정 교육의 대표적 인물로 선정되어 주제 발표를 한 바 있는데, 전 박사는 한 인텨뷰에서 “아이 잘 키우는 법보다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고 회고하면서 “결혼 직후 9년 동안 옷이라고는 스타킹밖에 사지 못하는 세월도 보냈지만 자녀를 기르고 양육함에 있어 적당히 하지 말자고 스스로 채찍질했고… 하나님이 그런 우리 가족을 도와 오늘에 이르는 기쁨과 영광을 얻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1) 동구 밖 전도
눈으로 읽는 전도편지 |
|
모유 전도법에 있어서 전도의 첫 단계를 동구 밖 전도라 칭하고, 이 때 전도자는 세상 밖으로 나가 좋은 인간 관계 속에 먼저 전도할 대상을 기도 가운데 찾으며, 그에게 좋은 얼굴을 보여주고 끝으로 복음의 손을 내미는 과정을 거친 후 전도편지를 전해 줄 때 비로소 눈으로 편지를 읽습니다.
가. 대상을 찾아라(눅5:1~11)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눅5:2~3)
a) 먼저 보자
b)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자
c) 내 삶을 보여 주자
* 말씀 설명 |
|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를 부르시기 위해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전도하시기 전 행동은 모든 전도자가 본받아야 될 부분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먼저 전도할 대상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시기 위해 배 위에 오르셨고, 텅 빈 배 한 가운데 서서 자신이 메시야됨을 나타내신 후 비로소 그들의 빈 그물을 채워 주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전도할 대상을 보고 그들의 형편과 문제를 들여다본 후 예수 믿는 내 삶을 보여 줄 수 있을 때 전도자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나. 좋은 얼굴을 보여라 (행3:1~10)
예수를 닮은 얼굴 |
|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3~6)
a) 기도하는 얼굴
b) 우리를 보라 하는 얼굴
c) 예수의 능력이 나타나는 얼굴
* 말씀 설명 |
|
그러므로 전도의 기회란 기도하는 자에게 찾아오고 그 기도를 통해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이 잡아준 손, 능력의 손 |
|
“…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19~21)
a) 전도자가 내민 손
b) 주님이 잡아 준 손
c)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는 손
* 말씀 설명 |
|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핍박의 절정인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 사람 중에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전도했고,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내용입니다.
당시 안디옥에서는 각종 잡신 숭배가 성행했고 부유한 시민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는 곳에 하나님은 전도자를 보내 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 안디옥 교회는 이방 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간 증 |
|
‘군인 백여명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다.’
군대시절 전방 부대에서 군종병으로 약 3년간 복무했습니다. 당시 대대장님으로 육사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을 지낸분이 새로이 부임했습니다.
부대내 기독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저로서는 신경이 쓰였으나 대대장 순시 때 용기를 내어 교회의 필요성을 건의했더니 받아들여져 헌 막사를 개조해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를 호출해서 교회를 종교관으로 이름짓고 천주교 불교 신자들이 함께 사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군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대대장님은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저는 대대장님을 모시고 입당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간곡하게 예배에 참석해 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고 당신을 제외한 모든 장교와 사병은 예배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내리니 교회 가득 장병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을 모시지 않고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고 그의 능력의 팔이 함께해 주시므로 대대장님은 30분이나 지나서 참석하셨고 그분을 맨 앞자리에 모시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불교신자 대대장님의 도움으로 지역 복음화를 위해 야간학교를 설립했고 매주일 새벽기도 때는 백여명의 군인 신자들이 모여 군복음화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도편지 전도 |
|
1주~2주 … 전도 대상자를 위한 준비 기도의 단계
3주~10주 …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나눔의 단계
12주 이상 … 전도편지 쓰는 복음 전함의 단계
전도편지를 읽게함에 있어 기도와 사귐과 베풂이 없이 전도편지를 전해 줄 때 편지는 휴지통에 들어가고 말며, 전도편지의 속성은 기도와 사랑의 토양에서만 읽혀져 열매 맺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앞마당 전도
마음으로 읽는 전도편지… |
|
모유 전도법의 두 번째 단계로 앞마당 전도는 예수 믿기로 결심한 새신자가 교회 등록 이후 1년간 전도자가 마땅히 가르치고 행할 바를 보여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해진 전도편지는 비로소 마음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가. 식을 올려라 (요21:15)
“더 사랑하느냐 어린 양을 먹이라” |
|
오랜 연애 끝에 처녀는 마음을 정해 신랑의 아내가 되기로 했습니다. 새색시가 결혼식장으로 들어오는 날 그를 아내로 맞이하는 신랑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신부의 손가락에 영원히 함께하자는 증표를 주고 곁에 서서 만인 앞에 부부임을 선언합니다.
부모 형제 친지 등 모든 축하객은 새색시와 서로의 관계를 익히며 새 식구에게 따뜻한 애정과 축복을 아끼지 않습니다.
a) 함께 입장 … 교회에 등록
b) 예물을 줌 … 성경 찬송을 선물
c) 공포함 … 새신자 소개
* 말씀 설명 |
|
요한복음 21장 15~17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주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세 번 그의 사랑을 다짐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는 곧 주의 양을 먹일 자격은 주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을 어린 양과 함께하라. 꼴을 먹게 하라. 양의 목자가 됨을 알게 하라고 받아들여 생각해 봅니다.
나. 신혼여행을 떠나라(요21:16)
“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
|
결혼식 후 신혼부부는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낯선 곳을 향해 남편만 의지하고 기쁨으로 떠나는 신부에게 있어 남편은 좋은 안내자, 좋은 보호자, 그리고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a) 좋은 안내자가 되라 … 베풂으로
b) 좋은 보호자가 되라 … 기도로
c) 사랑과 희망을 심으라 … 말씀으로
* 말씀 설명 |
|
주님은 베드로에게 두 번째 말씀하십니다(요21:1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시고는 “내 양을 치라”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치라’는 말의 뜻은 ‘먹이라’는 의미보다는 좀더 구체성을 나타내 옳고 틀림을 분명히 가르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라는 뜻입니다.
다. 잉태케 하여라(요21:17)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
|
신혼 여행지에서 돌아온 새색시는 한동안 남편과 시부모님, 가까운 친척들에게 극진한 사랑과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뀐 환경에 적응이 서툴러 시부모님으로부터 꾸중도 듣고 남편의 관심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 적지않게 설명합니다.
“계속 살아! 말아?”
남편과 헤어져 자유스러운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갈까를 망설이고 있을 때 신부에게 한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속이 메스껍고 헛구역질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새색시의 갈등은 사라지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모함을 봅니다.
a) 성도의 교재에 참석 … 구역 예배 / 선교회
b) 성경공부 참석 … 학습 세례
c) 작은 봉사에 참석 … 구제/ 노력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