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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영농·생활수기 당선작<다문화부문> 나는 작은 농부다 바키로바 말리카 (27·전북 익산시 함열읍)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기후가 다양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고 계절마다 기온이 다릅니다. 그중에서 봄에는 봄바람이 불고 기온이 따뜻합니다. 그리고 진달래·개나리·벚꽃 등이 피어 주변을 무척 아름답게 꾸며줍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산이나 공원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맘때쯤이면 농촌에서는 모내기를 시작하며 농사일이 바빠집니다. 봄은 이렇게 바쁘게 일을 시작하는 계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드라마만 보고 시집온 27세 바키로바 말리카입니다. 저는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한국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일 뿐이구나!” 머릿속으로 꿈꿔왔던 것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새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올해로 한국 생활 8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은 대가족의 착한 며느리로, 남편의 예쁜 아내로, 그리고 우리 두 아들의 슈퍼우먼 엄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말도 서툴고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습니다. 특히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저한테는 큰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 모두가 농사일을 하는데 저만 안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차근차근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집와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지만 못하게 됐습니다. 농사일과 집안일이 많아서 ‘그냥 마음 편하게 남편한테 맞추면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농사일로 바쁜 남편이 새벽 4시에 나가 밤늦게 들어와 제 옆에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시부모님과 세 아들이 같이 사는 대가족입니다. 모두 전북 익산시 삼기면에서 고구마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시아버님이 사장님이시고 아들·며느리들이 다 직원입니다. 시부모님께서는 아들만 네명을 두셨는데 그중 셋째 아들만 서울에서 살고 남은 삼형제가 고구마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네 아들 가운데 우리 남편이 막내아들이며 저는 막내며느리입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시집왔을 때 겨우 열아홉살이었고 농사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고향에서는 엄마가 주신 돈으로 공부만 한 철없던 제가 한국에 와서야 농사에 대해 알고 일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로 보였습니다. 제가 처음 해봤던 일은 바로 시설하우스에 비닐을 끼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농사일을 시작해서 결국 저도 농촌 아줌마가 돼버렸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도 농사일에 익숙해졌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할 때도, 고구마 종순 장사할 때도, 남편을 도와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동네 사람들은 이런 저를 보고 일을 빨리빨리 잘한다고 ‘번개’라는 별명도 지어주셨습니다. 농사일을 하는 다른 이웃들처럼 우리도 3월부터 아주 바쁩니다. 이 계절에는 비닐하우스 일이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비닐하우스 안에서 지난해에 남겨뒀던 종순용 고구마를 심어 물을 주며 관리합니다. 낮에는 비닐을 열어주고 밤에는 덮어주며 몇주 동안 기다리면 고구마 종순이 자랍니다. 고구마 종순이 잘 자라면 팔기 시작합니다. 3개월 동안 여러 종류의 종순을 팝니다. 고구마 종순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밭에 심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구마농사를 짓기 위해서 우리 가족들은 항상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일하러 가 밤늦게 들어오는 고생을 하면서도 서로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구마농사를 짓다보면 잘될 때도 있지만 안될 때도 많습니다. 수확할 때 양이 적고 모양도 예쁘지 않고 바이러스에 걸리는 고구마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지난해부터 조직배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마 무병묘, 한마디로 바이러스 없는 고구마를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직배양 기술로 고구마를 생산하면 바이러스가 없어지고 모양도 예뻐지고 생산량도 많아집니다. 고구마 조직배양묘 생산은 순서대로 해야 하는데 무척 까다롭습니다. 처음 시작은 줄기소독을 하고 줄기 끝부분에 있는 생장점을 현미경으로 보면서 0.3~0.5㎜ 크기로 떼어서 배지에 접종합니다. 그리고 1~4개월 정도 배양하면 고구마 싹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양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 양이 확보되면 순화과정으로 들어갑니다. 인공광에서 자연광으로 적응시키는 순화과정은 4주 동안 이어집니다. 그다음에 드디어 비닐하우스에 심습니다. 이렇게 좋은 고구마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아직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험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은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있기도 합니다.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갑니다. 처음에는 저도 농사일을 하기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하루종일 있어도 힘들고, 밖에 나가서 일을 해도 힘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열심히 일하면서 힘든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움도 많습니다. 다행히 시부모님께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다독여주시고 많은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잘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고구마밭 일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고된 하루가 모두 잊힙니다. 저보다 힘들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과 건강하게 잘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고구마 종순을 싣고 배달 가는 날이었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어 애들을 두고 가지 못해 우리 가족이 함께 배달 가기로 했습니다. 남편과 제가 고구마 종순을 싣고 있는데 큰아들이 “아빠, 이게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이거 고구마 순이야”라고 대답했는데 아들이 또 “그럼 이거 먹어도 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다시 “아니” 하고 답을 했는데 아들이 “아, 고구마 순을 밭에 심으면 고구마가 나오지? 그다음에 고구마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비가 많이 오자 큰아들은 “엄마 엄마, 비가 많이 와서 고구마가 많이 나와요” 하며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우리 아들들은 벌써부터 농사에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작은아들도 길거리에서 트랙터만 보면 “엄마, 아빠꼬 아빠꼬” 하면서 좋아한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말이 서툴러 남편 말을 잘 듣고 일만 하고 다녔지만 지금은 한국말도 잘하는 수다쟁이 아줌마가 돼 부부싸움도 가끔씩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시아버님이 “너희 부부는 참 재미있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실 때는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조금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정말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아버님은 남편보다 저한테 잘해주십니다. 시어머님은 말씀이 많은 분이지만 제가 장난칠 때마다 잘 받아주시고 딸처럼 이해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머나먼 이국땅에 시집와 살다보니 좋은 날도 힘든 날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좀더 노력하면 나중에는 돈도 많이 벌고 우리만의 예쁜 집도 지을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엄마 엄마, 나 고구마튀김 먹고 싶어요.” “여보, 오늘 일찍 갈 테니 저녁에 고구마맛탕 좀 해줘요.” 오늘도 이런 좋은 목소리가 집 안을 맴돕니다. 이것이 제 행복입니다. 저는 힘들더라도 행복해지려고 힘을 내고, 노력하면 다 잘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한 가족의 며느리로,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작은 농부의 아내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하루하루 밭에 나가서 고구마를 심으면서 여러 일을 하는 우리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 또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앞으로도 파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