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칼란디바를 식구로 맞아들일 때의 모습이다.
아담한 크기에 자그마한 진분홍 꽃이 다섯 송이 피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불과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 아래와 같이 폭풍 성장해버릴 줄이야~!!
어떻게 저렇게 무지막자하게 커서 꽃을 무더기로 피워낼 수가 있는거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뿐이 아니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임에도 꽃각시들이 너도 나도 뒤질세라 꽃망울을 터뜨려서 대형 꽃잔치가
벌어졌다.
아무래도 꽃각시들끼리는 서로 교감하면서 질투도 하고 시샘도 하는 듯 하다.
생전 꽃을 피우지 않을 것처럼 침묵을 지키던 차이니스 자스민도 드디어 꽃망울을 터뜨렸다.
오렌지 자스민이나 아라비아 자스민에 비해 향기는 진하지 않고 은은해서 나는 듯 마는 듯 하다.
장미허브를 처음 식구로 맞아들일 때엔 젖비린내 나는 아기 같았다.
먼저 와 있던 선배 각시들 위세에 눌려서 수줍게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폭풍 성장하여 역도선수처럼 어깨가 떠억 벌어지더니 주위 각시들을 막무가내로
덮치기 시작했고, 덮쳐지는 각시들마다 싫어하면서 쟤 좀 쫓아달라고 원성이 높아서 여기 저기
쫓겨다니기 바쁜 신세가 되었다.
이제 너무 커서 화분까지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뿌리가 통이 아니고 줄기랑 연결되어 나누어지기 때문에 줄기랑 뿌리를 나누어
분갈이해줬는데도 분갈이를 또 해주어야 할 정도로 날로 폭풍성장 중이다.
어찌나 옆에 있는 꽃각시들을 덮쳐버려쌌는지 긴긴 동짓밤 허벅지 꼬집으며 지새우는
과부 꽃각시 옆에나 놓아 두어야 사랑받지 싶다.
.
겨울을 이겨내면 바로 봄이 온다고들 한다.
찬란한 봄을 기대하며 혹독한 겨울을 참아내보자는 의미인 듯 하다.
그러나 오롯이 봄이 오기 만을 기다리면서 겨울을 참아내는 삶은 가혹하다.
겨울 자체를 즐기며 지내다보니 어느새 봄이 다가와 있더라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 황지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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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처럼 살고싶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주홍빛 얼굴로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 살고 싶다.
언젠가 다시 저물녘 어둠이 내려와
따사로운 햇살 내 곁을 떠나가도
고개 숙이고 가을로 솟아오르는 해바라기
해바라기처럼 살고 싶다.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서 있는,
영원한 해바라기 사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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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사랑 - 김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