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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함과 순수함
순진함은 때가 묻지 않은 상태이다. 순진함은 미숙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잘 속고 어리석고 자기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순진함은 순진한 사람에게도 연루된 사람에게도 독이 될 때가 더러 있다. 순수함은 묻은 때를 털어낸 상태이다. 순수함은 순수한 사람에게도 연루된 사람에게도 약이 될 때가 더 많다.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 순수함의 약을 받아먹었을 때에 독이 되는 순간이 있긴 하다. 명현 증상처럼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무언가 뒤집힌 듯한 알 수 없는 부작용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긴 이후부터는 약으로 작용된다. 순수함은 성숙함의 한 속성이며, 현명함에 대한 하나의 근거이다. 순진한 사람은 속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조종하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조종할 수 없다. 순진함은 이기적이지만 순수함은 이타적이다. |
솔직함과 정직함
솔직한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과 미워한다는 말을 번복과 반복으로 발설하지만, 정직한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정리하여, 사랑하지만 미워한다거나, 밉기도 하지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자기 감정에 충실할 때는 좋을 때에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나쁠 때에 미워한다고 말해버리지만,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을 때에는 사랑하되 미워한다거나 밉지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즉, 솔직함은 자기 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려는 것이다. 솔직함은 전부를 다 풀어헤친다. 이율배반적인 것들과 대책 없는 것들과 막무가내인 것들까지를 그냥 다 뱉어낸다. 솔직함은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는다. 반면, 정직함은 전부를 다 풀어헤치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것들 중에서 일관성을 찾아 정리하고, 대책 없는 것들의 대책을 함께 궁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직함은 한층 더 정리되어 있고 고집스럽고 편집적이다. 정직함은 가리는 것이 있다. 의도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주겠다는 신념 아래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정직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더 믿어지는 것은 정직함이지만, 진실로 더 믿어지는 것은 솔직함이다. 또한 솔직한 행동은 하는 사람은 편하고 대하는 사람은 불편할 때가 많으며, 정직한 행동은 하는 사람은 조금 불편해도 대하는 사람은 편리하다. 나를 편하게 하려는 것이냐 남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냐에 따라 솔직함과 정직함은 쓰임새를 달리 한다. 또한 솔직함은 탈제도적이지만, 정직함은 제도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솔직한 공무원'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정직한 공무원'이라는 것은 의미 있게 쓰인다. |
질투와 시기
질투는 자기가 못 가진 것을 향해서만 생기는 감정이지만, 시기는 자기가 갖고 있으면서도 생기는 탐욕이다. 질투는 시기보다는 깨끗한 감정이다. 질투 때문에 잘 될 수 있지만 시기 때문에는 망가지기 쉽다. 스스로에게 질투는 힘이 되고 시기는 폭력이 된다. 질투는 예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기는 예쁘지가 않다. 질투는 사랑과 동경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시기는 반목과 질시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질투는 자기가 못 가진 것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시기는 남의 것을 뺏거나 얻으려던 것을 못 얻으면 자기 것마저 잃는다. |
반항과 저항
저항은 본질을 보지만 반항은 현상을 본다. 저항은 뿌리의 튼튼함을 추구하지만 반항은 꽃의 무늬에 주목한다. 저항은 문제 해결 앞에서만 멈춰지지만 반항은 스스로 멈추고 싶을 때 멈춘다. 저항은 하나의 목소리이며 투항이지만, 반항은 하나의 포즈이다. 저항은 근본을 뒤바꾸는 혁명을 꿈꾸지만 반항은 근본을 떨어뜨려 놓은 채 개선만을 꿈꾼다. 저항은 바닥을 박차고 일어서지만, 반항은 벽에 기대어 일어선다. 기댈 데가 없을 때에 저항은 힘을 갖지만, 기댈 데가 있어야 반항은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기댈 데가 있어야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저항하지 못하고 반항만을 하게 된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저항은 자기를 억압하는 대상의 방법을 닮아가며, 반항은 자기가 반항하는 대상을 닮아간다 |
착함과 선함
착함은 행위로 가늠되고 선함은 행위가 배제되었을 때에 가늠된다. 선하지 않고도 충분히 착할 수 있다. 악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도 알고 보면 선한 경우도 있다. 착함은 현상이고 선함은 본질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선한 사람은 선하게 살도록 배려되지 못한 환경에서 이를 악물고 인내하거나 해결하려고 용기를 내지만, 착한 사람은 착한행동을 하도록 배려되지 않은 환경에서 인내도 없고 해결도 없이 툴툴거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착한 사람은 온순하고 순종적이지만, 선한 사람은 반드시 순종적이지는 않다. 착한 사람은 남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지만, 선한 사람은 남을 위해 노력할 때의 보람을 안다. 착한 사람은 불의를 보고 화낼 줄 모르지만 선한 사람은 불의를 보고 분노한다. 착함은 일상 속에서 구현되고 선함은 인생 속에서 구현된다. |
위선과 위악
위선은 없는 것을 있게끔 하는 포장술이고, 위악은 있는 것을 감추려는 악다구니이다. 위선은 어쩔 수 없는 무력함에 대한 대안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표현해야만 할 때 위선은 소용스럽다.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에게 위선적인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을 향해, 그 요구를 들어줄 능력도 의욕도 없다는 것을 위장할 때 쓸모가 있다. 위선은 자기 편의를 위하여 관계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하며, 자신의 불완전성을 간단하게 메워버리기에 적합하다. 위선은 그것이 가짜임이 밝혀지는 순간, 흉칙한 본질이 들키는 것이기 때문에 끝없이 또 다른 위선을 찾아 덧씌우게 된다. 반면, 위악은 이미 있는 것들이 소용스럽지 못할 때에 함부로 방기하고 싶은 욕망의 분출이다. 존재하지만 소용스럽지 못한 것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에 행해지는 안쓰러운 폭력이며, 어쩔 수 없는 힘에 대한 반어적 고증이다. 위악은 욕망하는 바가 분명하지만 그것이 거부당하는 환경 속에서 쩔쩔매다가 주눅이 들어, 욕망하는 바를 억압하여 엉뚱하게 발산되는 것이다.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에게보다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더 쉽게 위악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선명한 욕망이 위악의 근거이기 때문에 그렇다. 위악은 그것이 가짜임이 밝혀져 본질이 드러날 때 오히려 숭고하다. 위선은 또 다른 위선만으로 살아낼 수 있지만, 위악은 본질이 알려지면 멈춰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위선은 나의 식은 사랑과 당신의 식지 않은 사랑의 간격을 메우기 위하여 필요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위악은 나의 식지 않은 사랑과 당신의 식은 사랑을 견뎌내기 위하여 필요하다
(김소연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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