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원점 - 기념촬영회 ④ 하
청년기는 토대를 만드는 때입니다
주고쿠의 동지 곁으로
주고쿠 총합본부 기념촬영회는 1965년 11월 14일, 히로시마 시내에서 열렸다. 밤새 내린 비가 그쳤고, 질퍽거리는 운동장에서의 촬영이었지만 순번을 기다리던 멤버 표정은 밝았다.
이날 시모노세키, 마쓰에, 요나고, 오카야마 등 주고쿠방면 전역에서 3천명이 모여들었다. 모임 장소인 하쿠시마 강당에는 기념촬영용 커다란 계단식 단이 마련되고 조명기구도 설치되는 등 규모가 큰 촬영회가 되었다.
오후 3시 40분, 이케다 회장이 도착. 12개 그룹으로 나뉘어 촬영회를 시작했다.
먼저 장년부.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회장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촬영이 끝나자 회장은 뒤를 돌아보고 이야기했다.
“제목을 힘차게 그리고 많이 올려서 그 공덕을 부인, 자식, 손주에게 전부 회향할 수 있는 강한 당체(當體)를 확립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이어서 남자부, 대학부.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싹싹하게 말하면서 의자에 앉는 이케다 회장, 촬영이 끝나자 열렬한 지도를 시작했다.
당시 이야기 - 기하라 히로히사 씨
기념촬영회에 참석한 것은 야마구치대학교 1학년 때 여름으로, 대학부 그룹장의 임명을 막 받았을 때였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년기는 토대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많은 노력으로 자신을 단련하세요. 묘법의 힘으로 자연히 금세에 절대 후회 없는, 올바르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입회. 이케다 선생님이 “남자는 전원 대학에” 라는 지도에 분기하여 ‘광포의 인재가 되자’는 마음으로 대학진학을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기에 대학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여 겨우 등록금을 모았습니다.
소원을 이루어 대학에 진학. 촬영회에는 ‘대학진학의 맹세를 다했습니다.’ 하고 승리의 보고를 하는 기분으로 참가했습니다.
촬영회에서 선생님은 “어머니를 소중히” “미래를 목표로 삼아 확신과 희망과 용기백배로 나와 함께 힘내자.” 하고 격려하셨습니다.
그 뒤로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어본존 앞에 앉고, 어서(御書)연찬에도 도전. 그것이 자신감과 긍지가 되어 올곧게 사제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어본존과 직결한다
이어서 부인부가 계단식 단에 줄 섰다.
“어본존과 직결하면 최고의 경애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활과 가정에 나타납니다.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모두 이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케다 회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남편을 여의신 분이 있습니까.”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케다 회장은 곧바로 격려를 거듭했다.
고생하는 사람, 힘든 상황에서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내, 철저하게 격려한다. 그것이 회장의 격려투쟁이었다.
당시 이야기 - 노무라 게이코 씨
저는 지구부인부장으로 참가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촬영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광선유포를 위해 싸운 증거를 남기기 위해 기념촬영하는 겁니다.” 모두 감격했습니다.
선생님은 대표에게 휘호와 작은 비단 보자기 등의 격려품을 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힘찬 글씨로 ‘안온’이라고 쓴 휘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투쟁하지 않으면 안온은 없습니다. 싸우는 일이 안온입니다.”
저는 20대에 결핵에 걸리고, 결혼 뒤에는 남편이 진 엄청난 빚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안온’과는 거리가 먼 나날.
그 당시는 교사였던 남편도 신심을 하기 시작, 지구부장으로 참석했습니다만, 직장에서 부당한 인사이동 등 힘겨운 고투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싸우는 것이 안온’이라는 지도를 가슴에 새겨 숙명전환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남편과 함께 격려를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였던 남편에게 “이 선생님에게 배우는 아이는 행복하겠네요.” “정말 좋은 선생님이군요.” 하고 몇 번이나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실은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빚 등으로 고생이 이어진 것은 ‘남편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남편을 존경하고, 스승과 함께 싸운 증거를 남기려고 일념을 정해서 광포를 위해 달린 덕분에 오늘이 있습니다.
여자부는 일본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마지막으로 여자부 기념촬영 차례가 되었다.
“구김살 없이 옳고 강하고 명랑한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케다 회장의 상냥한 목소리가 멤버들의 가슴에 스며든다.
“벚꽃은 벚꽃답게, 매화꽃은 매화꽃답게, 국화꽃은 국화꽃답게,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살아가는 겁니다.
아무리 국화꽃이 좋아 보여도 민들레가 될 수는 없다. 민들레는 민들레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 개성을 발휘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당시 이야기 - 아베 게이코 씨
저는 여자부의 임원으로 참석했습니다. 선생님은 각 그룹의 촬영 때마다 모두에게 말을 거는 등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할 정도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히로시마현 구레시에서 태어난 저는, 전쟁 통에 공습으로 집을 잃고 원자폭탄 투하 후에 히로시마시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갔습니다. 그 직후, 아버지가 병환으로 별세. 어머니는 고생하면서 우리 세 자매를 키우셨습니다.
1960년 4월에 입회. 동지들의 격려 속에 여자부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기념촬영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고난은 이어졌습니다. 기념촬영을 하고서 몇 년이 지난 뒤, 주고쿠 여자부장으로 임명 받기 직전에 집안 문제로 어머니와 함께 심각한 고민에 맞닥뜨렸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서적에 시를 써서 선물해 주셨습니다.
‘때가 오면 / 봄빛이 난만한 / 행복의 춤’
저뿐 아니라, 계속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도 선생님의 격려에 크게 감동. 설령 겨울과 같은 고난의 때라도 신심을 근본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행복한 봄빛이 난만한 때가 온다고 확신하며 맞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격려 속에 숙명전환의 걸음을 지속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고쿠방면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기념촬영회로부터 올해로 50년. 사제의 유대는 더욱 더 주고쿠에서 강하게 맺어지고 있다.
이웃을 소중히
시고쿠 동지의 기념촬영회는 1966년 1월 30일. 가가와현 다카마쓰 시에 있는 시고쿠본부에서 열렸다.
이날 참가자는 약 2200명. 오전 중에 다른 장소에 모여, 촬영순서대로 버스를 타고 회관 앞 공원으로 이동한다. 겨울치고는 따뜻한 햇볕이 참가자의 미소 짓는 얼굴을 비췄다.
당시 이야기 - 다카네 야스오 씨
기념촬영회 당일 저녁의 일입니다. 저는 직원으로서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각지에서 열린 지도회로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때 계단 쪽에서 인기척이. 이케다 선생님이 내려오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대로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저는 황급히 손전등을 들고 선생님 뒤를 따라가 길을 비추며 걸었습니다.
회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시고 다시 현관 앞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한마디, “이웃을 소중히 해야 해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로는 이웃을 배려하려고 마음 쓰고 있습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끝까지 힘낸다
여유 있게 나아가라
회관 앞의 공원에 모인 참가자는 현관이 아니라, 강당의 옆문으로 질서정연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맨 처음 촬영은 장년부. 줄을 서서 대기하자 이케다 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중앙의 의자에 앉은 이케다 회장. 촬영이 끝나자 마이크를 잡았다.
“장수하기 위한, 그리고 인생을 즐기기 위한 신심입니다. 제목을 착실히 올려서 넓고 넓은 태평양 같은 마음으로 어본존과 직결하는 신심입니다.”
그리고 더욱 힘차게 말을 이어갔다.
“어디서 싸우든 본유상주(本有常住)이며, 자기 자신의 사명입니다. 그것을 확신해서 마(魔)에 지지 않고 한평생 불도수행을 관철하십시오. 그리고 낙토, 불국토를 확립합시다.”
기세 당당한 장년부의 “예”라는 대답이 강당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부인부의 차례가 되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예쁜 얼굴로 찍힙시다.”
이케다 회장의 말에 빙그레 미소가 번진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모두가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며 왁자지껄하게 소리를 질렀다. 귀를 기울이며 한 사람 한사람의 말을 듣는 이케다 회장.
거기에는 허물없는 사제의 모습이 있었다.
이케다 회장은 말했다.
“불도수행, 신심에 있어서는 여유 있게, 인간성 풍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여학생처럼 생기발랄한 마음으로 나아가십시오. 또 건강 조심하시고 명랑하게 힘내기 바랍니다. 마지막은 틀림없이 소원만족하는 인생을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이야기 - 다구치 료코 씨
선생님은 “남이 뭐라고 하든 끝까지 힘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목과 학회활동을 다 해야 합니다.” 하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 않을 거야! 해낼 거야!’ 하고 결의한 것이 어제인 듯 합니다.
저는 당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 살고 있었는데 조직의 담당은 북쪽에 위치한 이미바리였습니다.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활동을 다녔습니다. “끝까지 힘내야 합니다.”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1960년 2월, 오카야마에서 열린 회합 전에 선생님을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당시는 권여자부장이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사실, 그 전년에 어머니를 잃은 일 등,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한 저에게 선생님은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그렇군요. 이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부터는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무슨 일이라도 상의하세요. 반드시 행복해지니까.”
그 말을 듣고 저는 희망이 생겨서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그 뒤, 결혼을 하여 부인부가 되었습니다. 기념촬영 때의 새로운 원점을 가슴에 새겨 지금까지 투쟁했습니다. 고민하고 있을 때 선생님에게서 “이겼구나!” 하고 격려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 먼저 이긴다고 정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고 미혹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나날을 보낼 생각입니다.
직장의 승리자로
남자부의 차례가 되었다.
이케다 회장은 힘차게 격려했다.
“퇴전만은 하면 안 돼요! 지금은 어떠한 밑바닥의 일이라도 열심히 해내야 합니다.”
젊은 눈동자가 진지하게 이케다 회장을 쳐다본다.
회장은 한층 더 힘을 더해 이야기했다.
“규칙적인 신심과 생활로 광선유포 달성까지 노력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직장의 승리자로 성장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학회 후계자가 되어 다음 지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므로,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기 바랍니다.”
당시 이야기 - 마키다 미쓰조 씨
1971년 8월의 본부간부회에서 일입니다. 저는 갑자기 “단상에 앉도록”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늠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셨습니다.
“자신을 망각한 사람들에게 ‘그는 순진한 바보다’ 하고 조롱을 당해도, 나는 씩씩하게 유쾌하게 지휘할 수 있는 빛나는 전인간(全人間)의 황금길을 유유히 걷는 당당한 신앙자로서 끝까지 살아가리라.”
놀란 것은 그 다음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시코쿠의 마키타군에게” 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말을 휘호한 책을 주시며 “잘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기념촬영회에서 하신 “어떠한 밑바닥의 일이라도……” 하는 지도를 가슴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온 것을 선생님은 지켜봐 주셨다. 그렇게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평생, 학회와 함께
끝으로 여자부 기념촬영.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이케다 회장은 세 가지 지침을 발표했다.
“중요한 것은 한평생 어본존을 떠나지 않을 것. 한평생, 화합승단인 창가학회를 떠나지 않을 것. 그리고 한평생 자기답게 착실하게 인생을 걸어가세요.”
이케다 회장은 맹세의 표정을 짓는 여자부 벗에게 거듭 말을 걸었다.
“여성의 승패는 40대로 정해집니다. 그것을 꿈꾸고 지금은 열심히 토대를 구축하기 바랍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숙명전환해서 건강해진다. 가정적으로 힘든 사람은 타개해 나간다.
그 ‘힘들다’를 밑거름으로 하여 자신이 강해지세요. 복운을 쌓아가세요.”
약 3시간 반에 걸친 기념촬영회는 시코쿠 동지의 커다란 원점으로 새겨졌다.
약진의 나날
2015년, ‘세계광포신시대 약진의 해’의 막이 올랐다.
이케다 SGI 회장은 ‘약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약(躍)’이라는 글자는 ‘뛰어오르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뛰어오르듯 힘차게 나아간다 ─ 이 기세가 약진하는 모습이다.
‘약(躍)’자를 보면 ‘足(발족)’자가 있다. 딛고 설 대지가 있다는 것은 가장 든든한 일이다.”
“또 ‘약(躍)’자 오른편에 붙은 ‘翟(꿩적)’자는 새가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려는 모습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명의 무대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치고 날아야 한다! 낭랑한 제목을 근본으로, 생활상에서 ‘약진’이라는 두 글자를 실증해야 한다!” (《수필 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대도》)
우리는 올해도 사명의 천지를 달리고, 승리의 하늘로 날아오릅시다.
비상의 원점-기념촬영회④ 하.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