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지만
김 상 립
하루는 원로시인인 신경림선생의 토크쇼를 방청했다. 제목은 시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는가? 이었다. 그는 첫 마디에 “내가 강연을 가면 방청객들이 제일 많이 질문하는 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 당장 내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부탁하건 데 제발 오늘은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며 토크쇼를 시작하였다. 그는 “시란 글로써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글로서 그려내는 것이 바로 시다. 그러니 시를 잘 쓰는 확실한 방법을 나도 모른다. 만일 내가 안다면 우선 나부터 시를 잘 쓰고 보겠다.”는 얘기로 말머리를 잡았다.
그는 젊었던 시절 정치를 비판하는 시를 썼는데 곧바로 군사정권으로부터 탄압받았던 아픈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인 시 창작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던 얘기로 이어나갔다. 나는 잘 알려진 원로 시인의 솔직한 표현방법도 놀라웠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내용을 몇 차례나 강조하시어, 나도 모르게 숙연해져 옷깃을 여미었다.
토크 쇼를 들은 다음날 나는 한 평생 사군자를 치고 있는 어느 선배의 화실에 들렸다. 40호 크기의 화선지를 펼쳐놓고 겨울철 연(蓮) 밭을 거의 완성해가고 있었다. 연꽃은 흔적도 없고 잎은 떨어져 물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짠하다. 연대도 꺾이고 쪼그라져서 물위에 손가락 길이만큼 보이는 것도 있어 당초의 연대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속으로 많이 놀랐다. “선배님, 그림이 많이 변했습니다?” 했더니 “그림이 뭐 별건가? 이제 나는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네. 어디 내가 남의 눈치 볼 군번인가?” 하신다. 그런데 선배의 붓 가는 대로의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달관한 어느 인생도 보였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자필멸의 법칙을 엿볼 수도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할 것만 골라서 그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사람 누구나 막판에 가면 잡은 것, 누리던 것 다 내려놓고, 심지어는 몸뚱이마저 내려놓지 않는가? 장수시대라고는 해도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누워 꼼짝하지도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가? 삐쩍 마를 대로 말라버린 피부와 뼈만 남은 사람의 몰골을 차마 그릴 수 없어 연에 빗대어 그렸던 건 아닐까? 모든 생명의 죽음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보자는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한 붓 가는 대로가 결코 아무렇게나 그려 내려간 게 아니고, 그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절실한 형상들을 상징적으로 그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필에서도 붓 가는 대로란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냥 붓이 가는 대로 쓴다는 말이 아니고 붓끝에 작가의 고의성이 가 붙는 순간, 도리어 진정성은 무너져버리니 가슴에서 울어나 써지는 대로 그냥 두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어야 할 터이다. 아니면 ‘몸과 마음과 붓이’ 혼연일체가 되어 글 쓰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물 흐르듯 써가란 말이겠지. 아, 많은 예술가들이 나보다는 훨씬 더 깊은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활동을 하고 있구나 싶으니, 더 이상 있기가 거북하여 화실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나에게는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 20여년간 한국화를 배운 선생이 한 분 있는데, 그가 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었다. ‘비단 그림뿐만이 아니고 예술의 세계에서 천재는 없다. 천재라 불리는 그 어떤 사람도 상상도 못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또 어떤 분야에서던지 무조건 잘 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선까지 배우고 나면 나머지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는 제자들이 전시회 등을 관람하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진 찍어와 앞에 두고 그리는 것을 보면 펄쩍 뛴다. “남의 그림을 보고 그리면 은연중에 그 사람의 붓질을 흉내 내게 되어 자기 자신이 점차 사라진다.”며 절대로 못하게 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글이나 그림이나 다 마찬가지다. 남 흉내 낼 생각 말고 자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가면 된다. 그림을 완성해 놓고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게 좋은 그림이다. 쉬지 말고 앞으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꼭 찾아 온다. 그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견뎌내라. 그리는 작업을 고통으로 생각하는 선을 넘어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참고 견디면 된다. 특히 주의할 점은 가르치는 선생의 흔적을 작품에 남기지 말아야 한다. 물론 선생의 가르침을 보이지 않게 화선지에 배어들게 하는 것이야 피할 수 없겠지만, 실제 붓질에서는 선생을 지워야 자신이 산다.’ 나는 그런 선생 밑에서 20년이란 세월을 버텼다. 평소 선생의 말을 들으며 수필을 자주 떠 올렸고, 모든 예술은 그 배움의 길이 서로 통하는 것 같아 글 쓰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선생이 말한 대로 정말 예술에는 정답이 없을까를 생각해본다. 물론 모든 작품에 다 통할 수 있는 정답은 없을 지 몰라도, 개개인에게 맞는 방법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게 서로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다름을 찾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동안에는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아보려 노력해볼 작정이다. 나는 작품 속에서 내 주장이 분명하게 있으면서도, 독자가 읽기에는 가까운 친구가 곁에서 정답게 얘기해주는 듯한, 작품을 남길 수는 없을까를 고민할 시기가 되었다고 인식한다. 또 내 글이 지금보다는 생명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당장은 인기가 없더라도, 오래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머리를 굴려 붓을 놀리지 말고 영혼을 불러 붓을 끌고 갈 방법은 없을까 하는 문제는, 하루 하루 더 늙어가는 내게 주어진 제일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첫댓글
선생님.
감히 동감합니다.
'머리를 굴려 붓을 놀리지 말고 영혼을 불러 붓을 끌고 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에
밑줄 쫘악 긋습니다.
점심은 드셨나요?
저는 글 중에 스스로 만족하면 그게 좋은 작품이다에 박수를 칩니다.
저는 그다지 글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일기 같은 글을 써놓고도 만족합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무소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용맹정진
장좌불와
그런 기질과 그런 기백은 사주팔자에 타고 나는 것이라서 누구나 함부로 흉내 내지 못한다.
가르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가르침입니다. 감히 그런 후학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큰바위 얼굴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나다니엘 호손이 이미 말했는데 저는 그 이야기를 초등학교 도덕책인가 국어 책에선가 배운 기억이 납니다. 이제 제 나이도 나이라고 오른 쪽 눈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머리는 더욱 맑아지는데 글을 쓸 여건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니 그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모임 너무 많이 오라고들 하는데 글 쓰는 데는 도움이 안되는 일들입니다.
수필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말씀들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자주 뵙길 고대하겠습니다~~~^^*
김 선생님의 이 글을 읽으며 예술에 대한 깊은 고뇌와 성찰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수필에서도 붓 가는 대로란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냥 붓이 가는 대로 쓴다는 말이 아니고 붓끝에 작가의 고의성이 가 붙는 순간, 도리어 진정성은 무너져버리니 가슴에서 우러나 써지는 대로 그냥 두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어야 할 터이다. 아니면 ‘몸과 마음과 붓이’ 혼연일체가 되어 글 쓰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물 흐르듯 써가란 말이겠지."라고 한 구절에서 방점을 찍게 됩니다.
한 가지, 겨울 연밭의 풍경을 두고 '흉물스럽다'고 한 표현은 조금 거슬린다고 봅니다. 전체적인 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연의 그런 모습을 보며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연도 시절 인연이 다하면 이 대자연의 질서 앞에 깊이 고개 숙이고 다음 생을 기약하며 마침내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리고는 온 연밭 가득 자신들이 남긴 육신의 형해形骸로 뜻 모를 그림문자를 새긴다."
그러고보니 그런 면도
있네요. 내가 일부러 흉물스럽게란 표현을 쓴것은 그 분이 모든 죽음의 모습을 스러져가는 또는 초라하게 소멸되어 가는쪽으로 강하게 표현하는것 같아서...그랬습니다. 나같으면 좀 애잔한소멸이나 초연한 소멸을 그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깝게
하고 싶었거든요.
표현을 좀 부드럽게 고쳐
보겠습니다.
곽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니 박재삼 시인의 싯구 한구절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