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 주간 월요일
각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그 복음서의 중심 주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ἄφες ἄρτι, οὕτως γὰρ πρέπον ἐστὶν ἡμῖν πληρῶσαι πᾶσαν δικαιοσύνην. τότε ἀφίησιν αὐτόν.”: 3,15)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세례자 요한이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을 때 하신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의로움(‘δικαιοσύνη’), 곧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로움은 예수님께서 마태오복음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18ㄴ-20)와 연결될 것입니다. 곧 세상에 대한 복음 선포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에 대한 선포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ἰδοὺ ἡ παρθένος ἐν γαστρὶ ἕξει καὶ τέξεται υἱόν, καὶ καλέσουσιν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μμανουήλ, ὅ ἐστιν μεθερμηνευόμενον μεθ᾽ ἡμῶν ὁ θεός.”: 1,23).
루카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τί ὅτι ἐζητεῖτέ με; οὐκ ᾔδειτε ὅτι ἐν τοῖς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δεῖ εἶναί με;”: 2,4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던 해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셨다가 그분의 부모님께서 그분을 잃어버리시고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48절)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루카복음서는 성전에서 시작해 성전에서 끝납니다. 루카복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건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르야 사제가 주님의 성소에서 분향을 하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한 사건입니다(1,5-25). 그리고 마지막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승천) 후 제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내는 사건입니다(24,50-53). 이를 통해 우리는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집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 여정 중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무엇을 찾느냐?(τί ζητεῖτε;) … 와서 보아라.”(1,38-39)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본 세례자 요한이 그의 두 제자에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ἴδε ὁ ἀμνὸς τοῦ θεοῦ.”: 1,36)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너는 나를 따라라.”(“σύ μοι ἀκολούθει.”: 21,22)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바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πεπλήρωται ὁ καιρὸς καὶ ἤγγικε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μετανοεῖτε καὶ πιστεύετε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1,15)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의 중심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πορευθέντες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ἅπαντα κηρύξατε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πάσῃ τῇ κτίσει.”: 16,15)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로 우리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이미와 아직 아니', 'already but not yet).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 세상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회개(悔改)가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리스어로 회개(‘μετάνοια’)는 방향 전환(轉換)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Life style, modus vivendi)을 바꾸는 것이고 세상을 향해 있던 나의 시선을 하느님 나라로 돌리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잘못된 길에서 멈추어 서서(히브리어 ‘נחם’) 하느님께 돌아서야 합니다(히브리어 ‘שׁוב’).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4,22-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