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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와 수금들아(1577.2-13.11.24.경북북지방 찬양축제시) 시150:1-6
경북북지방 제12회 찬양축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노래 중에 아주 좋은 노래가 있습니다. 콧노래입니다. 사람들이 기분이 좋고 또 평안하면 저절로 콧노래를 하개 되는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평안함이 있을 때, 기쁨이 생겼을 때 그런 상황 중에 속해 있는 노래 이기 때문에 노래 중의 노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기분 나뿐 중에도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보편적으로 이 노래는 참 즐거운 노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자기만을 위한 노래 입니다. 누가 듣기 위해서 또,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하는 노래는 아닙니다. 그저 흥에 겨워서 하는 노래일 뿐입니다. 수준 높은 노래가 있는데 이것은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정리하고 분명하게 발음하고 그리고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소리를 모아서 최대한으로 훈련하고,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마치 성가대가 부른 찬양같은 노래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시편 150편은 짧은 하나의 시입니다. 그래서 수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50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주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 150편은 특별하게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맨 먼저 생각하면 맨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뿐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로 시작할 수밖에 하나님은 대하면 대할수록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마땅한 분이다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참사랑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참 기쁨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참 평안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참 능력이 내게 머무르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참 위로가 우리 속에 얼마나 넘치는지 알고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덧입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한적일 수밖에 그리고 희미하게 알 수밖에 없습니다. 물에서 막 건져낸 물고기같이 싱싱하지 않고 선명도가 떨어진 상태로 하나님을 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분명해 집니다. 그래서 감사가 생겨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곧 찬양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양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만난 끝에 우리 마음속에 가질 수 있는 것은 감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어서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맺게 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위대성을 찬양하라.
1-2절, 이 시에는 찬양하라는 요청이 모두 열세번 나옵니다, 그 중 서두는 이 땅에서의 예배를 통한 찬양과 하늘(궁창)의 권세들의 찬양이 서로 합해지도록 명령합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찬양의 이유를 거론하기 전에 하나님은 온 우주가 찬양을 드려야 할 유일한 존재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소’는 지상의 성전을, ‘그 권능의 궁창’은 천상의 성전을 뜻할 수 있습니다. 두 성전은 서로 연결됩니다. 지상의 피조물과 천상의 피조물은 서로 연관됩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 지으신 존재라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특히 ‘궁창’을 ‘권능의 궁창’이라고 한 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권능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찬양하는 자들이 인식하여야 할 하나님은 권능의 하나님입니다. 찬양하는 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대성이 깊이 인식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피조물들의 존재 이유이며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렇듯 하나님의 위대성을 높이도록 창조된 존재라면 무엇으로 그 위대성을 반영할 수 있겠습니까? 찬양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지상과 천상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은 예배 가운데 드리는 찬양입니다. 인간 사이의 선행. 주의 뜻을 행하는 것. 깊은 묵상 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위대성은 모든 피조물들이 예배 중에 하나님을 한 목소리로 찬양할 때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그럴 때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연이어 하나님의 위대성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행동’이란 용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위대한 역사들을 다 떠올릴 수 있습니다.
창조와 구속의 줄기찬 역사 안에서 계속된 하나님의 행위들은 하나님만이 지니고 계신 권능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하려면 책이 부족할 것이며 최소한 성경전체를 이 본문 안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을 한 마디로 간추려 ‘지극히 광대하심’이라고,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을 압축하여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넓이을 알 수 없는 우주와 불가사의한 천상의 세계를 지으시고 다스리는 갓도 작은 일이니. 그분은 너무 광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스쳐지나가는 한 줄기 생각까지 아시는 분이시니 그분의 위대한 통치가 미치지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크신 분이며 위대하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임마누엘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앙의 대가, 웨슬리 형제가 있습니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가면 웨슬리 형제를위한 기념비가 있습다고 합니다. 그 기념비에 세가지 웨슬리가 했던 중요한 세가지 말이 기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전세계를 가슴에 안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일한 사역자 였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해 나가신다’, 세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 세 번째는 웨슬레가 임종을 맞이했을 때 웨슬레가 죽음을 앞에두고 힘이 다 빠져나가고 있을 때 들 수 없는 손을 높이 쳐들고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 지금 전능하신 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구원하심과 섭리하심은 우리가 찬양해야 될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2.최선을 다하여 찬영하라.
찬양은 우리의 정성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혼을 다하여 드릴 수 있는 우리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가장 많이 함축해서 그리고 가장많이 정성들여서 모든 것을 합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하나님 앞에 최고의 것을 드릴 수 있는 이것을 소흘히 하면 그런 여건이 주고 그런 역할이 가능한 이것을 소흘히 한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저 무조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를 바르게 가지고 있어야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 속에 진정한 찬미의 제사가 하나님앞에 들여지길 축원 합니다.
3-5절, 시인은 이제 찬양하는 자들의 마음과 태도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여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한이 없는 최상의 방법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의 위대성을 온전히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모든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하나님의 위대성에 걸맞는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열렬히 하나님을 높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종류의 직책을 맡은 자들 모두가 그 찬양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찬양은 인간의 목소리와 언어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언어 표현으로 하나님의 위대성이 시로써 나타나야 하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적 음성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시와 목소리에 음악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음악에서도 모든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포함되어야 그 섬세함과 웅장함이 드러나는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께 올려지는 예배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적 은사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악기가 다 동원되고 포함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3.모두 찬양하라.
6절, 드디어 모든 피조물은 다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확대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호흡이 있는 자’란 모든 민족. 모든 세대, 모든 땅에 있는 전 인간을 가리킵니다. 이 처럼 전 인류에게 확대된 찬양의 요청은, 다시 한번 인간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위대성을 찬양하는데 있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찬양은, 무시 간적이어서 영원하며 공간의 제한 없이 무한한 영역에까지 계속하여 이어질 하나님의 위대성을 그 피조물들이 반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편입니다.
여호와 경외를 삶의 제일가는 태도로 가르친 시편 1편의 시편 전체의 도입부와도 잘 조화되고 있습니다. 결국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앞에서 인간이 갖춰야 합당한 삶의 태도와 찬양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신앙인들이
갖춰야 할 합당한 심령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104:33절에‘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106:48절‘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시146:2절‘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149:1절‘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제12회 경북북지방 찬양축제에 오셔서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운데 병든 자는 치료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귀신들린 자는 더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찬양하시다가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의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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