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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대구법회 법문(230708)
반갑습니다
불교성전 335페이지 이어서 설하겠습니다
19) 세속(俗世)을 떠나는 참 뜻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꿈속에서 축생(畜生)을 본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서원할 것이다.
『내가 불도수행(佛道修行)에 정진하여 이윽고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의 세 가지 나쁜 경계(境界)는 나의 불국(佛國)에는 그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수보리야, 이것이야말로 불도수행에 있어서 이미 물러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보살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수보리야, 악마는 보살이 세속을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다가 와서 말할 것이다.
즉『세속을 멀리하는 것은 여래가 항상 칭찬하는 일입니다.』라고.
<<잠시돌아봅시다
우리가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라는것인가?
우리는 항상 어디에 빠져서 삽니까?
내 현실에 빠쪄서 산다. 자기현실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정해져서 오는것도 아니다.
내가 잘못받아들이고 잘못배우는과정에서 현실에 얽메이게된다.
내가 아는 잣대에 얽메여서 고통을 자처하고 끌여다니는 것이다. 보살도라는 마음가짐 내가 보살의 원을 세웠다 부처의 원을 세웠다
부처님 10대제자의 1인자가 되고자하는 것은 집착이고 욕심이다
그런데 1인자가 되기를 각각 발원해서 성불하고
제1인자는 1인자가 되기위한 집착이다
그 집착이 끊어지지않으니 진보할수가없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 자기의 서원을 세워라 보살도의 길을 가는 것은 내가 가는 나의 앞길은 지옥아귀축생의 길이없다
즉 윤회하지 않는다 돌지않는다
육도 지옥아귀축생아수라 인간천상 육도의 길을 헤메고 다닌다.
내가 가야하는길을 무엇이 나를 인도하나?
육도의 길로 인도하나
나의 생각 나의 집착이다
나라고 알고있는 내 마음이 거기로 인도한다.
내가 만약 보살도를 성취하였다 성취했다면 이제 나의 불국정토라는 것은 내가 다스리는 나의 나라이다.
내 마음의 집착이없고 모든 것이 끊어졌다면 그 자리는 나의 불국정토이다 여러분들의 집착이 다 끊졌다면 불국정토이다.
집착이 끊어진 자리는 어떤것인가?
내것이라는 존재자체가 사라져야만 집착이 끊어진 것이다.
내눈에 좋은것도 미운것도 원망도 싫은것도 없어져야한다.
내귀의 오감의 감정이 끊어져야하고
나의 후각에 향기와 악취 등 오감이 전부다 사라져야하고
나의 입에 먹는 것이 맛이있다거나 없다거나 싫어한다거나 분별에 빠져 움직이지않는 마음
나의 촉감에도 똑같다.
보드라운 촉감 따가운촉감 괴로운 촉감 등 이없어야한다
이 오감이 다 끊어졌다면 움직임이없다
그 자리가 보살도를 행하는 자리이다
내가 그것을 성취했다고할때에는 다시 성취한 것으로 끝나지않고 나의 나라 나의 불국토에는 지옥 아귀 축생이라는 길은 다시없을 것이다.
원을세운 것이다
이제 내나라에는 육도의 길에 3도가 사라진 것이다. 남은 것은 아수라 인간 천상을 윤회하게된다
아수라는 어떤것인가 시시비비가 끊이질 않고 말이 많은 것을 아수라라고한다.
인간은 오감 육입이 존재하고 육입으로 인한 유혹은 한도 없고 끝도없다.
천상의 자리는 수행자의 극락정토라고한다.
내가 수행이 완성되지않으면 항상 멤돈다
그래서 이제 내스스로 내나라에는 가지않겟다는 자기원을 세워라
세속을 떠나라하는데 참뜻이 무엇이냐?
내 주위가 없다면 수행자가 될 수 없다
내혼자 외딴섬에 혼자 살거나 거기에 나를 시험하는자가 없다면 옳고 거름을 찾을수가없다
부딪끼지않는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은 수행이 아니다
그런데 한결같은 마음으로 있는게 아니고 외로움으로 혼자사니 어떤 망념이 끌어오를까?
나에게 찾아오는 도둑놈이 또 나를 괴롭히러 오는 것이다.
왜?
전자에 내가 외딴섬에 갖히기 이전에 있었던 나의 생활 나의 뒤안길이 긑없이 끝없이 타성을 일으키고 내머리속에서 괴롭힌다.
그러면 대상은 없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은 끊어지지않는다.
그래서 스님은 옆에 두고 버려라
이것을 가르쳤다
그리워하는사람을 내 내 옆에두고 버려라
내혼자서 떨어져서 버렸다는 아니다
보면은 이가갈린다
그래서 대상이 없으면 수행이 안된다
대상을 두고 수행을 하라>>
그러나 수보리야, 내가 말하는 것은 보살이 반드시 마을을 떠나서 삼림(森林)이나 공지(空地)나 산간(山間)이나 나무 밑이나 묘지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외롭게 수행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상을 두고 대상을 버릴수있는 것이다 마음의 갈등이 일어나지않고 고요한것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삼림이나 공지나 산간이나 나무 밑이나 묘지에 사는 것이 세속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세속을 멀리하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수보리야, 보살이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의 마음씨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비록 마을 가까이 살더라도 그는 세속을 멀리 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살아도 세속을 멀리떠난 것이다.
우리는 별개의 수행처 별개의 도닦는곳을 찾으로 다닌다.
그들이 깨달을수있겠나?
부처님도 혼자서 깨달을려고 설산에 6년이나 앉아있었지만 못 깨달았다.
하산을 하는 첫 공양을 올리는 수자타라는 어린 보살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최초의 공양을 받으면서 세속에 하산해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대상이 없이는 깨달을 수 없다 나를 시험하는 그 대상을 통과 할 수 있어야한다.
나를 시험하지 않는 고요한곳에서는 그냥 자화자찬으로 끝나는 것이다
혼자고요하게 머물고있다가 하산해서 이제 왁작지글한곳에서 하나한 대상이 시험에 들어올때에는 하나도 통과를 못한다
내 대상은 내가족 내주위 일가친척이 시험이 들어옮으로서 무사히 통과할 때 한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서 대상없는 수행은 없다
지금 나의 대상은 항상 내 가족이다
내가족이 내수행의 척도이다.
그래서 어디에도 연연해 하지않고 걸리지 않고 나은 완성된 길을 완주할수있다>>
물론 삼림이나 공지나 산간이나 나무 밑이나 묘지에 사는 것도 세속을 멀리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곳에 살고 있을지라도 만약 그 사람이 성문이나 독각의 마음씨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다면, 그가 세속을 멀리한다는 것은 아직도 불순(不純)하며 그의 마음씨는 아직도 깨끗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외면하고 안보면 다 잊을수있다 하는데 안보면 다 잊은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으니 착각하고있을뿐이지 내마음속에서 버리지못했다.
옆에두고 버려라
내 남편도 내 자식도 내자신도 내 부모형제도 버릴수있어야한다.
이게 진정한 수행자이다 세속을 멀리하고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없다.이것을 부처님이 다시한번 강조한것이다>>
20) 선우(善友)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좋은 벗(善友)에게 친근(親近)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좋은 벗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부처는 보살의 좋은 벗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은 보살의 좋은 벗이며 보살의 스승이고 도(道)이며 등불이고 횃불이다.
수보리야, 과거의 부처들도 미래의 부처들도 현재의 모든 불국(佛國)에 있는 부처들도 모두가 육바라밀(六波羅蜜)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는 본래 보살로서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⑴물건이나 가르침을 보시하고
⑵부드러운 말을 쓰고
⑶갖가지 이익을 주며
⑷고(苦)⋅락(樂)⋅비(悲)⋅희(喜)를 함께 하는 네 가지를 가지고 중생을 섭수(攝受)하고 구제(救濟)하며, 그래서 마침내 무상의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희노애락이다
오감의 감정이 끊어지지 않는디면 아무것도 얻을수있는 것이 없다
오감의 분별로인해서 감정이 일어난다
눈귀코입몸
이게 다섯 개이다 오감이다
각각 다섯 개이니 25개이다
육입이라고했는데 왜 육입인가?
눈으로 받아들여서 생각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눈 귀 코입몸뜻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통합시키는 것은 오감에서 뜻이라고한다
30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되풀이하고 살아간다. 모든 분별이 일어난다
그 감정을 끝까지 이겨내야한다 무감정 무맛으로
내가 눈에 맛이없다면 마음의 갈등이 일어나지않는다
귀에 감정이 없다면 마음에 갈등이 없다
보고 듣고 안이비설신의 오감의 감정을 희석시켜서 입으로 배출한다
이뻐다 아름답다 등 발설을 하게된다
이 오감을 우리는 잘 활용하는사람을 무엇이라고하나?
일천재라고한다
오감을 극대화시켜서 몰고가는 무리를 일천재라고한다
하나밖에 모르는 중생이다
배울 때 지식으로 이 오감을 하나씩 받아들여 배운다. 배웠기 때문에 배운 것을 버려라 잘못배운 것이다
오감을 옆에두고 버려야만 버려지는것이지 내 마음의 갈등이 안일어나고
접하지않고 버리겠다고 산속깊이들어가서 도 틔우겠다고 앉아있으면 도가 트겠습니까?
대상이 없는 도는 없다
대상을 두고 끊어라
대상이 바로 나의 스승이고 나를 시험하는 악마이다
그게 없다면 우리의 느낌은 무감각 생각을 일으키지않으면
생각만 잡으면 다 끝난다 보면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면 아무런 의미가없다
진정버린 것이 어떤것인지 논할 수 있다.>>
수보리야, 그러기 때문에 육바라밀이야말로 보살의 스승이며 아버지이며 어머니이며, 휴식처이고 의지하는 그늘이며, 기착하는 섬이고 구제의 손길이며, 마지막 의지 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야, 그것을 방해하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의 특성이다.
반야바라밀이 아무런 방해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모든 법(法)도 또한 아무런 방해하는 것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法)은 공(空)이며 실체(實體)로서의 존재를 떠나있기 때문이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법(法)이 공(空)이며 실체로서의 존재를 떠나있다면 어찌하여 중생에게 염오(染汚) 가 있고 청정(淸淨)이 있습니까?」
「수보리야, 중생에게 나(我)라든가 나의 것(我所有)이라든가 하는 생각이 있을 때 , 그 사람은 미혹(迷惑)의 생사(生死)를 왕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중생을 염오(染汚)된 사람이라고 한다.
<<염오라는 것은 물들여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 보지않으면 일어나지않는데 보는순간 일어난다 그래서 항상 대상을 두고 대상을 버려라 그럴 때 우리는 무심이될 수 있고 오감에 물들지않는 청정한자가된다.>>
그는 존재(法)에 대하여 무엇인가가 있다고 하는 고정적인 수용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거기에 염오(染汚)도 없고 염오를 가진 사람도 없다.
수보리야, 중생이 어떠한 존재(法)에 대해서도 무엇인가가 있다고 하는 고정적인 수용태도를 갖지 않고, 나라든가 나의 것이라든가 하는 생각이 없을 때, 이와 같은 중생을 청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은 거기에 청정(淸淨)도 없고 청정함을 가진 사람도 없다. 이와 같은 보살을 반야바라밀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리송하다
청정도 없고 청정함을 가진사람도 없다 누구나 다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버리는게 힘들까?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얽메여 스스로 지옥을 즐기고 있다
그 괴로움을 즐기기 때문에 못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내가 낳은 자식인데 한다
이게 잘못된 집착이고 애욕이다
첫째는 내가놓은 자식이 아니다
여기에 고정시키고 결론을 내리고 버리는 것은 쉬운일이다.
스스로 내가 선택한 나의 부모요 내가 이세상에 첫발을 디뎌서 내스스로 이세속에 모든 만물을 접하면서 내 스스로 흔들고 다녔지 누가 내 대신 나를 위해서 해줄수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잘못배운 나의 기준이 모든 것은 대신해줘야한다
내가 낳았으니 내가 키워야한다
생존의 테두리를 지스스로 개척하고 익혀나갈뿐이다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키우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거꾸로 키우는 것이다
내가 잘못배운 것을 그 아이에게 세뇌시키고 그렇게 살아야한다하고 잘못 가르키는 그죄는 얼마나 크나?
이것을 못보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그 아이가 누워서 일어날 때 자기 수족으로 움직일수있게 끔 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 이외에는 생존을 위해서 그놈이 개척해나간다
왜?
배고프면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삶의 목적이 먹는게 전부인가?
생존의 법칙에서 하나하나 몸으로 부딫혀서 살아가는길과 내가 가는길이
내가 대신 다해주면 나를 의지하고 그놈을 무지렁뱅이로 키우게된다
배운게 없다 살아날수가없다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것을 잘못 살았다는 것을 알면은 참회를 해야하고 자식에게 용서를 받아야한다. 그아이가 앞으로 내가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서 그 아이가 받아야할 그 업식의 길을 얼마나 길까요?
그래서 우리는 좋은모습만 보여야하는데 나쁜모습을 보이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된다.
죄의 근원을 모르고 살았다.>>
그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천신(天神)들의 왕 제석천이 있었는데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물었다.
<< 고통의 괴로움의 길을 살았다
멋도 모르고 가르친 것이 그 아이가 일생동안 받아야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산다.
이게 전부 내가 지은죄이고 내가지은 업식이기 때문에 스스로 참회를 해야한다.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모르고 지은죄 끝없이 짓는다.
부처종자에는 보처가 난다 내가 부처의 행을 할 때 내 자식도 부처의 행을 하고 그 손자도 부처행을 하게된다.
이것을 종자법이라고한다
마구니는 마구니를 놓고 악마는 악마를 놓는다
우리는 말잘하는 것을 자랑삼아한다
세속에서는 그것을 변론자라고한다
그런데 하나도 쓸 말이없다
세속의 악업을 다 갖추고사는자이다
여러분들 돌아보세요
자식이 왜 저렇게 갈까?
어릴 때 내가 잘못가르쳤기 때문이다 옛날에 엄마가 나를 가르쳤으니 그게 전부인줄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가르침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실천한다면, 그 보살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 즉 부처님의 계보(系譜)를 잇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상의 깨달음에 가까이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드시 보리도량(菩提道場), 즉 부처님이 깨달음을 연 장소에 앉는 사람일 것입니다.
미혹된 생사(生死)의 바다에 빠져 가라앉고 있는 중생을 구제할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배우는 보살을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1) 배 움
그때, 수보리는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법(法)의 멸진(滅盡)에 대하여, 법의 불생기(不生起)에 대하여, 법으로부터의 원리(遠離)에 대하여, 열반(涅槃)에 대하여 배운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을 아는 지혜에 대하여 배우는 것입니까.」
「네가 말한 대로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如來)는 여(如)이므로 여래라고 불리지만, 이 여(如)는 법의 멸진이 아니겠느냐. 법의 불생기요 법으로부터의 원리요 법의 열반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이와 같이 배우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아는 지혜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다.
보살로서 이와 같이 배우는 사람은 모든 바라밀을 얻는다.
마(魔)도 그 사람을 항복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빠르게 물러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다. 빠르게 보리도량(菩提道場)에 앉는다.
스스로 행동해야 할 범위에서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중생을 구호하는 법(法)을 배운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배운다.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제(四諦), 즉
⑴ 인생의 고(苦)와
⑵ 그 원인과
⑶ 고(苦)의 소멸과
⑷ 거기에 이르는 방도에 대해서 세 가지로 고찰하는 것을 배운다.
즉 중생으로 하여금 고(苦)를 뛰어넘어 건너게 하는 것을 배우고, 불종(佛種) 즉 부처의 계보를 단절시키지 않는 것을 배우며, 불사(不死)의 문을 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가는길을 바른길로가고 자식에게 바른모습을 보여준다면 반드시 세가지를 얻게되고 모든 것을 물리칠수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입으로 버린다 버린다 하는데 입으로 끝이난다
나는 버린것도 없고 안버린것도 없어야하는데 내 소중한 것을 먼저버려라.
내 제일 소중한것은무엇일까?
하나같이 여러분들은 자식이라고한다
남편은 쉽게버리면서 자식은 안버린다
내 제일 소중한 대상은 남편이다
남편은 흐지부지한다
내 일생전부 걸린 것이 내 대상이다 내 자식은 나의 원수라고했다
부부도 원수고 자식도 원수면 뭐가남나
부부가 원수라면 원수끼리만난 후대 자식이 좋은 인연이될수있습니까?
없죠
그런데 참 우리는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한다 그래도 내가 낳았는데
그래도라는 존재자체가없다
내 굴레를 내가스스로 만든다
핑계거리이다
그래서 내가 원수를 만났으면 1차 원수를 먼저 화합을 하고 해결해야한다
제일의 급선무이다
그런데 그것은 후순위이다
독사가 독사새끼를 낳았는데 독사새끼는 독이없습니까?
더 강한독을 가지고 나온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잃어버리고 산다 그래서 이제 옆에두고 버리는 법을 배워야한다
항상 보이는 자리에 두고 내가 분별을 안일으켜야한다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대상을 옆에두고 내마음에 갈등이 일어나지않고 고요할 때 버렸노라
내 마음속에서는 버렸지만 실재로는 버리지않았다
왜?
항상 내주위에서 맴돌고 떠나지않기 때문에 버리지않은 것이다
그래서 버린것도 아니고 안버린것도 아니다
없는것도아니고 있는것도 아니다
이 자리가 반야바라밀이다
천지가 고요하더라
내 대상만 잠재우면 전생에 원수만 잠재우면 나머지는 잠재우기 쉽더라
그런데 내 전생에 업식은 녹이지않고 후생에 있는 업식을 녹일려니 거꾸로가는 것이다
그러니 독사대가리를 먼저 제도하고 바꿔놓을 때 독이 사라지는데 자식도 독이 사라진다.
내 처사에게 여러분들은 우리집 대왕에게 먼저 조복을 받아라
그러면 내가 먼저 조복해야한다.
철저하게 전생빚을 갚아야한다.
내가 그 빚을 청산하고 가면 그 대상은 나를 따라올려고 죽자고 따라온다 기를쓰고 따라온다
전생에 악연이 아니면 ᄄᆞ라오나?
이제는 선연으로 따라오게된다 내가 빚을 다갚았기 때문에
다음생에도 나를 찾기위해서 따라온다
따라오다 보면 부처의 길로 인도하는 내가된다 마구니 하나를 지구소굴에서 벗어나게한다
그 전생숙업의 원수 내 남편을 제도하고나니 자식들은 그냥 따라오더라 나도모르게 따라오더라
맞아요 틀려오
맞습니다
자식을 가르칠게 없다 내 행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독사는 내가 만든것이고 원수도 내가 만든 것이다
무엇으로 ?
물질
내가 잘해주겠다는 물질로 원수를 만든다
잘해주는게 아니다
철저히 버리고 버릴 때 그 자식은 잘되어서 온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온다.>>
<<이지구상에 모든 무리는 부처종자로 태어났으나 잘못받아들인 것이 나를 괴롭히고 남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원망할 대상이 없는데 왜 그동안 내 주위에있는 사람을 그렇게 미워했을까?
나쁜사람을 내가 다 만들었지 그사람은 안했다
왜?
내 기준에 맞지않는다고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사람의 기준은 한번도 반영시켜보지않았다
원망의 대상이없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부터되어보라
이게 나를 버린자리이다
갑자기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나를 친다
저사람이 얼마나 나를 미웠으면 나를 쳤을까?
그것은 내가 원인제공을 한 것이다
그러면 아이고 죄송합니다하고 하면
그사람은 패고 미안하다하니 할말이없다
그런데 너가 왜 나를 패?
하면 시시비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 전생에 내가 저사람일 때 저사람이 나에게 행동한 것을 저지런 것이 있기 때문에 앙갚음한 것이다
내가 지은 업보의 댓가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나무중에 내가 왜 맞아야하나?
똑같다
그게 벼락이다.
내가 전생에 벼락맞을 한 행동은 알려고생각하지않고 상대를 저주하더라
이게 아귀지옥다툼이다>>
22) 허깨비와 같은 마음
<<왜 우리마음을 허깨비와 같다고할까?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왜 유형과 무형으로 나누어놓았을까
세속에있는 사생의 실체가 다 허깨비같다. 그 허깨비가 무엇인가?
우리마음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유는 있는것이고 무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부처님은 유는 없는것이고 무는 영원한것이다라고 역설한 것이다.
유무의 역설이 시작된 것이다
왜?
우리가 몸을 사생의 몸을 받는 실상은 무에서 시작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않는다면 몸을 받을 대상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가진 내 마음이 연이되어서 그 연으로 인해서 12인연을 쫓아다닌다
그래서 무명에서 명색이 시작되고 그 명색으로 인해서 육입이 구성된다
육입은 사람만 육입이 있나?
아니다
모든생명에는 다 육입이 있으나 그 육입의 실상을못보고 있다
내 눈에는 눈귀코입있는거로만 착각하지만 나머지 사생은 육입의 구분을 부정한다. 부정하고 살아왔따
그래서 우리는 마음대로 잡아먹고 마음대로 두들겨 패면서 생존해온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잡아먹은 대상이 누구였을까가 중요하다
무명은 연을 쫓아간다고했다
ㄴ내가 잡아먹은 대상이 나의 부모요 조상이다 그조상인줄알면 못잡아먹는 것이다.
그 형체와 같아야만 죽인것이다라고 착각속에 산다
몸을 뒤바꾸어살고있는세계에 더불어 살고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죽어도 이 지구를 더날수가없다
내 마음이 지구를 떠나지못하는데 내 몸이 어떻게 지구를 떠나나?
지구밖에 단 한발자국도 떠날수가없다
중력안에 갖혀서 산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몸을 벗으면 우리는 몸을 받지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지않을 것이다 나는 새가될 것이다 지가 원을 세우고 발원하며산다
스님을 만나기전에 헛꿈을 꾸고 살았지요?
그세계나 이세계나 먹고사는 약육강식의 사슬은 벗어나지못한다
우리마음은 영구불변이다
불멸과
영구라는 말은 영원히 죽지않는다 어떤것도 죽을 수 없다
단지 생각에서 죽었다 살았다 할뿐이다
몸을 받을 때마라 우리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네 굴레를 항상 다람지 쳇바퀴돌 듯이 그 고통을 즐기면서 살았다
왜?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지옥인줄 모르고 그것을 추구하고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게 옛날 시인이요
시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그 감정에 휘말려서 꿈의 세계로 갈구하고 갈구하고 또 갈구하고 염원하며산다.
수많은 마구니가 대기하고있는줄 모른다
우리는 괴로움을 스스로 즐기면 산다
육입을 즐기며 산다
영원히 그 굴레를 벗어날수가없다
부처님은 그세계를 펼쳐놓은 것이다
사생의삶을 화엄의 세계라고한다
그 화엄경속에는 윤회를 하고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여러분들이 불법을 접하면서 금생에 그 고통을 단절시켜야한다.
내가 단절함으로서 나와 인연지었던 수많은 업식의 굴레를 이어갔다
악업의 굴레
전부 나와 동떨어진 세계가가 아니고 나와 연계되어있는 대상이다.
우리는 윤회의 고리를 내가 끊음으로서 일체중생의 연결고리를 끊어줄 수 있다
욕심을 버림으로서 내가 버린 것 만큼 그분들도 1/10줄이고 버릴수있더라
1/10줄였을 때 그 업식이 그만큼 탕감되는것이다
내가 수행을 함으로서 28가지를 얻을것이고 내가족은 10가지를 얻게될것이고 내가족이 10가지를 얻을 때 내 조상은 7가지를 얻어서 각각 다 성불하노라하였다
길을 잘서고 줄을 잘서야한다
내가 줄을 잘못쓰면 항상 그 나쁜길로만 내가 쫓아가는것이고 내가 줄을 잘 썻을 때 나와연계되어 있는 것이 다 잡혀가더라>>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대해서 배울 때에는 다른 여러 바라밀의 전부를 거기에 포함시킨다.
그러기 때문에 보살이 모든 바라밀을 포함하여 배우려고 생각할 때에는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된다.
그러나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라든가. 이 사람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어떤 실체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보며, 그것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반야바라밀의 도(道)를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라든가 이 사람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무언가 실체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렇게 보지 않으며, 그것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보살이야말로 반야바리밀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법에 대한 욕심까지도 버려라 그냥 우리는 하고 갈뿐이다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행하면서 그냥 우리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나만 보면서 앞만보고 가거라>>
그때, 제석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구하는데 뜻을 일으킨 사람은 부처님의 법(法) 즉 모든 것을 아는 지혜와 상승하는 법(法)이며,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法)이며, 번뇌의 빛깔에 물들지 않는 무루(無漏)의 법(法)을 완성하고자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뜻을 일으켜서 이 세상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미혹된 생사를 스스로 넘고 건너서, 아직 넘고 건너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넘고 건너게 하며, 스스로를 윤회(輪廻)에서 해방하고, 아직 해방되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해방하게 하며, 스스로 안정(安靜)하고 아직 안정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안정되게 하며, 스스로 열반에 도달하고, 아직 열반에 도달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열반에 도달하게 하려고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보살이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데 대하여 기쁜 마음을 품고, 혹은 보살이 육바라밀의 수행을 닦는데 대하여 기쁜 마음을 품고, 혹은 보살이 이미 물러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다음생애 중에는 반드시 무상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경지에까지 도달한데 대하여 기쁜 마음을 품는다면, 이 사람이 얻는 공덕은 어느 정도나 되겠습니까?」
<<모든 분별이 끊어지고 내가 육바라밀을 성취할 것이다 다 버렸노라 도 나의 집착이다
버려도 버린 것이 아니요 버리지않아도 버리지않은 것이 아니다
이말을 되씹어야한다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버려야하는지를 모랐다
그런자를위해 세세하게 설해주었는데도 전부 자기 지식을 가지고 잘못된 해석을 하니 얼마나 왜곡되게 가느냐?
거꾸로 가는 것이다.
바로 정립을 하면 버리기가 쉽다
우리는 이세상도 버렸다하는 것은 얽메이지않아야한다
내가 이세상을 뒤바꾸어놓을것이다는 집착이고 죄악이된다.
지구의 멸망은 누가 시키나?
내가 지구를 멸망시킨다
남이 지구를 멸망시켰다?
아니다 내가 동참을 해서 지구를 멸망시켰다. 지구에서 움직이는 모든 중생과 연을 맺지않는 것은 단 하나도없다
쓰지않는 물건이없다
남이 쓰는물건을 내가 안쓸 수 없다
자동차가 세상에 모든 매연을 만든다
내가 굴리지않으면 그만큼 매연을 안만든다
만든사람을 원망할것인가 쓴 나를 원망할것인가?
만든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 물건을 쓰지않았더라면 매연이 줄어들고 청정해질 것이다
그런데 니 내 할거없이 문명의 이기를 다 누리고사니 다 동업죄를 짓는 것이다
동업죄를 지어놓고 나는 그래 안갈 것이다 는 안맞다
그 죄값을 나도 책임을 지고 받는다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한다
내가 누린 것 만큼 댓가를 치러야한다
그럴 때 이것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된다
누구 때문에 하면 안맞다
이 오묘한 이치를 다 깨달았으니 누구를 원망하나
나도 거기에 일조를 했다
공범자인데 자기는 안그런척한다면 가식이고 위선이고 기만이다.
그래서 흐르는대로 흘러갈뿐이다 내가 세상을 바꿀수없다면 그냥 흘러가자
그러나 이세상은 영구히 돌아간다.
지상천국은 미개지역에 있지 문명지역에는 천국이없고 아귀지옥뿐이다.
거기는 죽고 아니면 살기이다 극과 극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면밀히보고 깨달을수있을 때 내가 세상을 다 안다 손치더라도 내 마을 믿을자가 누가있나?
부처님이 입을 닫아야겠구나 이말씀을 한이유가 이것이다.
동시대에 나도 동업죄를 지었다 그들은 나를 믿고 나를 따른다
왜?
부처님이 자신도 깨닫기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리면서 쫓아온 것이다.
온 것은 되돌릴수가 없다
깨닫기전에 살았던 30년이라는 세속의 세월 업식은 누구도 대신해줄수가없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누가 나를 믿을것인가?
내 사는 모습을 다 보았는데
지금 깨달았는데 내주이사람들이 따라주나?
나를 너무 잘알기에 변명의 여지가없다
법이라는게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니다
이것이 법이다라고 할 수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각하고 그것을 지켜나갈 때 청결해지고 맑아진다
내가 청정하고 욕심부릴게 없다면 여여해진다.
내가 무심이된다면 내가 오감이 발동하지않는다면 자연에 순응할것이고 물에 섞여서 흘러간다면 파장이 일어나지않고 바람에 부딪혀서 역행하지않는다.
그렇게 살아가면 삼재팔란이 안일어난다
마음의 파장이 감정이다 그 감정이 흐느적그리때 반야바라밀의 실상을 알수가없다
마음이 고요하고 흔들리지않을 때
부처님이 유 무를 설하신 동기가 바로 여기있다. 무의 실상은 우리는 없는것이라고 중생세계에서 강설하고 눈에 보이는 유의 현상은 있는 것으로 강설한다
그런데 그것을 부처님은 있다고생각하는 것은 허상이고 아지랑이와같다
그런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실상 마음의 진실은 영원불멸이고 변하지않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않는불멸이다.
우리는 유무의 실상을 거꾸로알고왔다.
유에대한 실상은 금강도 없어진다 그러나우리마음은 없어지지않고 소멸하지않는다
지장경에 면밀하게 해석을 해놓았다
지구가 1-000개가있다고 그 안에 지구가 또 100개가있고 그 분진을 가루로 내어 그 한겁으로 치고
마음이라는 존재는 지구상에 가득 차있다
지구가 쌉씨하나라고 치고 그 쌉씨안ㅇ 들어가있는 인구를 보면 얼마나많을까?
눈에 보이지않는 대상
여러분들이 걸어가는데 바람은 바람이 아니고 무형의 중생일 수 있다
그 중생이 나를 뚫고 나를 부딪혀서 지나간다.>>
「제석천아, 수미산(須彌山)의 크기나 이 전우주의 크기는 잴 수가 있지만, 그 사람이 얻는 공덕의 크기는 잴 수가 없다.」
수보리는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이 허깨비와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무상의 깨달음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이 마음이 허깨비와 같다고 보느냐」
「저는 그렇게는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허깨비도 아니요, 허깨비와 같은 마음도 아닌 다른 어떤 존재(法)가 있어서 그것이 무상의 깨달음을 깨닫는 다고 너는 보느냐.」
「저는 그렇게도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건 마음이 아니건 다른 어떤 것이 있어서 그것이 무상의 깨달음을 깨닫는다고 하고, 그것이 만약 절대로 미혹된 현실과 단절(斷絶)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미혹된 현실과 단절되어 있다고 한다면 무상의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있다고도 없다고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무상의 깨달음이라고 깨닫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절대로 단절(斷絶)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법(法)이 절대로 단절되어 있다면 그 법을 실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법(法)은 다른 어떠한 법을 낳을 수도 없습니다.
보살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절대로 단절해 있는 반야바라밀을 얻으며, 그에 의하여 이와 같이 절대로 단절해 있는 무상의 깨달음을 깨닫는 것입니까.」
「네 말이 옳다.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절대로 단절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보살은 그것에 의하여 무상의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다.」
<<있다 없다는 분별속에서 마음이 있나 없나할 때 마음이 없다고하는사람은 단 한사람도없다.
다 있습니다한다 그런데 있다는 그놈에게 너 마음을 내놓아보아라하니 한놈도 없더라
내 놓을 수 없는 그놈을 내놓아라하니 볼 수 없는 그놈은 논쟁의 시비거리밖에 되지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내 놓아라고하는 그놈도 마음이고
복보따리를 던져놓고 복받아라하는데 예 복받았습니다 하는사람은 한사람도없다
우리는 보이는것만 추구하고 보이지않는 것은 추구하지않는다
보이지않는 세계를 더 중시해야한다
예수와 부처님의 차이는 예수는 보이는 것을 근거로 삼았고 부처는 보이지않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인류 문명을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살았기에 멸망이 왔다
보이지않는 세계를 추구하면 극락이온다.
유는 고통이 따르고 무는 편안함이 따르더라
유무의 실상은 존재하고있으면서 부정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식을추구하는 그자에게 너 마음이있나에 대답하면서 그놈을 내놓아봐라하니 한명도없다.
이것을 가지고 논쟁을 한다
철모르는 시기에 닭이먼저나 알이먼저나
우리는 닭이 먼저나 알이먼전가 가 중요하지않고 내가 왜 닭의 몸을 받았고 알의 몸을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마음이 움직이지않고 몸으로 부디지혀라
마음은 고요하고 몸만 움직여라
몸만 움직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몸은 움직이지않고 마음만 움직일 때 결과가 비참해진다.
무상의 깨달음은 보이지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나의 안목을 키울떄라야만 성불할 수 있다
내 눈이 열리지않고 내 마음을 보지못한다면 통제하지못한다면 의미가없다
보이지않는 세계 마음의 세계를 통제하라
<<법이라는 단어가 가르치는 식이 헷갈리게한다
생각이 많은 자는 못받아들이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받아들인다
그 생각조차도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다방면으로 비유를 들어서 다방면으로 펼쳐놓다보니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더라
세속에 일어나는 현상이 왜 일어나나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시작부터 집착에의해서 시작하고 집착에 의해서 헤어지게된다
괴로움밖에없더라
<<오늘 법문 여기까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