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총면적의 2배에 달하는 산림 662㏊(약 200만평)을 아무 조건 없이 국가에 기부했다. 공시지가 400억원, 시가로 따지면 1000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땅이다. “누구냐”며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그는 기부하면서 조건을 딱 하나 달았다. “내 신상은 절대 언론에 공개하지 마라.”
얼굴 노출을 극도로 꺼린 손창근 옹이 국가에 아무 조건 없이 1000억원대의 산림을 기부한 용인 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 옹은 지난 4월 21일 이돈구 산림청장과 함께 현장을 방문, 설명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산림청에서 밝힌 기부 당사자는 손창근(83)옹이라는 사실 뿐이다. 손 옹은 지난 3월 19일 대리인을 시켜 사전 약속도 없이 산림청을 찾았다. 담당자에게 “1000억 원대 산림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긴가민가 어리둥절하면서 서류를 찬찬히 살폈다. 모두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기부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눈앞에 당사자가 당당이 서 있었다. 손 옹은 의사를 밝히고 난 뒤 번거로운 절차나 조건 없이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모두 자신이 직접 마무리했다. 식목일 바로 직전인 4월 4일의 일이다.
손 옹이 기부한 용인 땅의 울창한 산림 모습.
산림청은 세상에 알리자고 했다. 기부를 알리는 것도 사회 기여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극구 사양했다. 산림청은 할 수 없이 부랴부랴 보도자료만 작성했다. 신상노출을 극도로 꺼린 손 옹은 보도자료까지 직접 점검했다. 딱 한 가지 추가했다. ‘아들 딸 등 가족도 손씨의 뜻에 적극 동의했다’는 부분이다.
손 옹이 기부한 땅은 경기도 용인시 시궁산 일대 김대건 신부 묘역을 포함한 천주교 미리내 성지에 인접한 곳이다. 기부한 땅 앞뒤로 두 개의 골프장이 나란히 있다. 손씨는 “수도권 지역의 끈질긴 개발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숲이 다음 세대에까지 온전하게 잘 보호되고 관리되길 바란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 숲은 손 옹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산에서 직접 먹고 자며 가꾼 자식 같은 곳이다. 잣나무와 낙엽송 등 5종류 200여만 그루의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산림 내에 산길과 같은 임도 16㎞를 뚫었고, 임야 내 계곡 하류에 인접한 천주교 성지를 보호하고 계류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방댐을 설치하는 등 산림관리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1년에는 산림청의 모범독림가로 지정됐다.
손 옹이 기부한 산림은 천주교 미리내 성지를 일부 포함하고 있다.
손 옹은 4월 20일 산림청장 등 관련 직원과 함께 현장을 방문, “좋은 숲을 만들려니 여력이 부족해서 국가에 기부하게 됐다”며 “지자체 등에 기부하면 난개발 우려가 있을 것 같아 아예 관리와 보존을 국가에 맡겼다”고 말했다. 이돈구 산림청장은 “그 뜻을 잘 이어받아 모델림으로 잘 가꿔 후세에 길이 전하겠다”고 화답했다. 손 옹은 이날도 앞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손 옹의 얼굴 없는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미술사연구기금 1억원을 선뜻 냈다. 서강대에 조석진, 안중식 등 유명 화가의 작품 100여점도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추사 김정희의 말년의 대표작 ‘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도 그의 소유다. 고미술품은 개성 갑부 상인이었던 그의 부친 손세기씨가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 옹이 기부한 산림은 앞으로 아름다운 숲길로 가꾸어질 예정이다. 사진 산림청 제공
산림청은 손 옹의 뜻에 따라 해당 산림의 정확한 실태를 조사해 국유림경영계획을 세울 계획이다. 또 조림지는 숲가꾸기사업을 확대, 임목생산림으로 경영__관리하고, 나머지 산림은 공익기능과 생물다양성 증진 및 탄소흡수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할 방침이다. 산림청은 손 옹이 기부한 산림을 손씨 선친의 호를 따 ‘석포숲’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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