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부처님, 무슨 옷인지 왈가왈부마라”
<42> 강급사 소명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편지 ①-2
[본문] 옛 사람들의 말씀을 가지고 어지럽게 천착하지 마십시오. 예컨대 마조대사가 남악회양 화상을 만나서 설법하시기를, “비유하자면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만약 가지 아니하면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소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하니 마조대사가 듣고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갈 줄을 알았습니다. 이 몇 구절의 말을 여러 지방에서 대단히 많이 설법하는데 구름이 일 듯하고 비가 내리 듯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잘못 알고 말을 따라서 알음아리를 내는가?
[강설] 대혜선사는 강소명을 깨우치기 위해서 마조(馬祖, 709~788)대사와 회양(懷讓)화상과의 유명한 대화를 인용하였다. 마조대사는 회양화상의 제자로서 선불교 역사상 눈 밝은 제자들을 가장 많이 길러낸 선사다. 회양화상의 회상에서 살 때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회양화상이 물었다.
“대사는 좌선을 하여 무엇을 도모하고자 하는가?”
“부처를 짓고자 합니다.”
어느 날 회양화상이 기왓장을 가지고 와서 좌선을 하고 있는 마조대사 앞에서 소리를 내며 갈고 있었다.
여래선이니 조사선이니 떠도는 말…
뭐든 알더라도 함부로 표현 말아야
마조대사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기왓장을 간들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가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좌선을 하여 부처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그 때 회양화상이 하신 말씀이다.
“비유하자면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만약 가지 아니하면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소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마조대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알아차렸다.
이 말은 너무도 유명하여 그 당시의 여러 지방에서 “구름이 일 듯하고 비가 내리 듯이” 왈가왈부하며 떠들어댄 말이다. 아니 1천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수레를 때려야 하는지 소를 때려야 하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수레를 매질하는 것으로 선불교의 공부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다시 비유하자면 운전기사에게는 일언반구도 없고 택시에 대고 발로 차고 주먹질을 하는 격이다.
[본문] 그대가 주봉(舟峯)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엉터리(杜撰)로 주해한 것을 내가 보았는데 산승이 그것을 읽고 나도 모르게 포복절도를 했습니다. 여래선(如來禪)이니 조사선(祖師禪)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한 사람들까지 한 장에 죄목을 기록해서 함께 귀양을 보내야 합니다.
보내 온 게송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지난날의 두 가지 게송보다는 좀 낫지만 이것으로 이제 그만 두십시오. 게송이 오고 게송이 가고하면 무슨 일을 마칠 기약이 있겠습니까? 저 이참정과 같이 하십시오. 그 사람이 어찌 게송을 지을 줄 모르겠습니까마는 무슨 까닭으로 도무지 한 글자도 없겠습니까? 그것은 법을 아는 사람이 두려워서입니다.
[강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이 편지의 주인도 역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여러 경로를 통하여 표현하였는데 대혜선사가 보기에는 얼토당토 않는 내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이참정이라는 사람처럼 알더라도 함부로 표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여래선(如來禪)이니 조사선(祖師禪)이니 하는 내용은 예부터 선불교에 떠도는 말이다. “여래선은 알았어도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는 등의 표현으로 여래선이라는 말과 조사선이라는 말의 경지를 차별하여 달리 평가하였다.
사람이 본래로 부처인데 무슨 옷을 입었든지 그 옷 입은 것을 문제삼아 왈가왈부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리라.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불교를 공부하여 재미를 붙인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설사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표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는 바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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