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2012년 11월호에 연재된 글
20년 전 쯤 꽤 유행했던 이야기. 뱃사공이 노를 저어 교수한 명을 강 건너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교수는 뱃사공에게 물었다. “당신은 스피노자를 아시오?” 뱃사공이 모른다고 하자 교수는 한 껏 비웃으며 말한다. “스피노자를 모른다면 당신은 삶을 반 밖에 살지 않는 것이오.” 잠시 후 뱃사공이 교수에게 물었다. “당신을 수영을 할 줄 아시오?” 교수가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대답하자 이번엔 뱃사공이 교수를 한 껏 비웃으며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삶 전체를 잃는 거요.” 배가 뒤집히기라도 했으면 아는 건 많지만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그 교수는 어찌 됐을까.
얼마 전 어린이 집에 화재사건이 났을 때 꽤 큰 불이었음에도 사망은 커녕 다친 아이 한 명 없이 무사했던 것은 ‘평소 훈련한대로’ 움직인 덕이었다. 이 케이스가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뉴스를 봤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사고들이 매뉴얼 부재에서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걸 수도 없이 겪어 왔고 겪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충분히 ‘어쩔 수 있었던’ 상황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뉴스를 볼 때 마다 학교에서의 안전교육 수준이 대체 어떤 지경이길래 이런 걸까 안타깝기 그지 없다. ‘평소 훈련한대로’ 라는 한 마디가 갖는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다. 당황하면 모든 걸 잊게 될 것 같지만 매뉴얼대로 정기적으로 습관을 들여놓은 대처행동들은 마치 조건 반사처럼 유사시에 빛을 발한다.
아이 학교에서 일년에 한 번씩 학부모들에게 설문지를 보내 학교에 바라는 것을 묻는다. 내가 앵무새처럼 학교에 부탁하는 것은 영어수업을 늘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첫째도 안전이요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다. 화재는 기본이고 어른이 없을 때 갑자기 친구가 숨을 쉬지 않는다거나 발작을 일으켰을 때 어딘가에서 떨어졌을 때 대처행동들을 정규수업 안에 넣어 필수로 익힐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몇 년 전,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5학년 아들이 침착하게 심폐소생술을 써서 살려낸 이야기, 기억할 것이다. 그런 것이 더 이상 신기한 화제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교통사고 현장이나 화재 현장에서 구해줄 어른이 없을 경우 적당한 대처를 통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간혹 인근 소방서와 학교가 연계하여 아이들에게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그런 교육은 ‘간혹’ 이뤄진다는 게 문제다. 그런 건 집에서 부모가 해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집에서도 혼자 있을 땐 아무한테나 문열어주지 말라는 거 말고도 많은 기본안전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안타까운 사고들은 소외계층에서 일어난다. 평상시 그런 걸 가르쳐 줄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 아이들, 혼자 밥을 해먹으며 노동현장에서 할머니가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아이들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이 있는 거다. 아이들을 낳으라 하고 그 아이들로부터 나중에 꼬박꼬박 세금을 받아낼 국가와 사회가 해줘야 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어쩔 수 있는’사고 현장의 대처훈련인 것이다.
씨랜드 사건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끔찍한 기억이다. 부모들 중 어떤 이는 사재를 털어 어린이 안전 훈련장을 만들었다. 이미 자기 자식은 세상에 없거늘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남은 생을 다른 집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살기로 한 걸까. 먹먹하다. 우왕좌왕하다 일이 커졌다, 라든가 당황해서 발만 동동 구르다 생명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다. 특히 아이들은 말이다.
내 유년과 학창시절. 매달 15일이면 어김없이 싸이렌이 울렸다.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왔다는 가상 시나리오는 달마다 반복됐다. 우린 수업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싸이렌이 울리면 집으로 냅다 뛰거나 자동으로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공산당 전투기의 폭격으로 인해 불이난 상황이면 우린 손수건 따위로 코를 막고 몸을 낮게 숙인 뒤 어른을 따라 복도를 절도 있고 침착하게 빠져나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끝내주는 매뉴얼이었다.
2천년대를 사는 우리. 확률적으로 볼 때 북한공산당이 쳐들어와서 공중에서 폭격을 해대는 거보다는 정글짐에서 아이가 놀다 떨어지거나 부모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불이 나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학교와 사회에선 아이들에게 어떤 훈련을 해줘야 하는가.